아라비아 숫자에 대하여 국립국어원에 문의했더니 숫자로 읽어도 되고 우리말로 읽어도 무방하다고 한다. ‘9살, 8마리, 3그루’로 적고 ‘아홉 살, 여덟 마리, 세 그루’로 읽을 수 있고, ‘9세, 8두, 3주’로 쓰고 ‘구 세, 팔 두, 삼 주’로 읽어도 된다는 말이다. ‘18시 30분’은 그대로 읽는 것이 무난할 듯하고 08:00은 ‘오전 여덟시 정각’이 좋겠다. 영(零)과 공(空)은 같은 뜻이므로 0은 영으로나 공으로나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수량을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하는 경우에는 한자어 단위와 묶어 그대로 읽고, 우리말로 쓸 때에는 우리말 단위와 함께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가령, ‘9세, 8두, 3주, 15매, 7종, 20년’으로 쓰고 그대로 읽으며, ‘아홉 살, 여덟 마리, 세 그루, 열다섯 장, 스무 해’로 쓰고 읽자는 것이다.
국어사전에 ‘효험’의 뜻을 가진 말로 올라 있었던 ‘소암’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소암약방’도 건재하고 아직도 연세 지긋하신 분들의 상용어인데 내쫓아버린 영문을 모르겠다. 박 선, 황 선의 ‘선(先)’도 사라졌다.
한쪽 다리를 손으로 잡고 외다리로 뛰면서 상대를 밀어 넘어뜨리는 놀이가 ‘닭싸움’이다. 모둠발로 공중전을 벌이는 닭싸움 장면과 닮은 구석이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국어사전의 풀이라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좋겠다. 한쪽 발을 다른 쪽 허벅지께로 들어 올려 한 손이나 양손으로 발목을 잡고 외다리로 뛰면서 상대방을 들이받는 놀이로, 먼저 넘어지거나 발목을 잡은 손을 놓치면 진다. ‘외다리 씨름’이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국어사전이 백과사전인 줄 착각하면 곤란하다고 하겠지만, 사실 우리 국어사전은 백과사전에 가까우니 새삼 문제 삼을 일은 아니지 싶다.
‘식겁했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뜻밖에 놀라 겁을 낸다는 의미의 표준어이긴 한데 저속하다는 느낌이 든다. ‘빈정상한다’는 많은 사람이 쓰고 있어서 머지않아 국어사전에 선을 보일 듯하다.
어리버리하다, 잔등(‘잔등이’는 표준어), (얼굴이) 벌개지다. 여지껏, 청남색, 히히덕거리다, (가시가) 돋히다, (멧돼지의) 어금니, 마굿간, 우겨넣다, 홧병, 햇님, 장미빛, 바다새, 굽신거리다, 흉칙하다, (물을) 들이키다, 눈두덩이, 핼쓱하다, 검정색, 노랑색, 빨강색, 담벽 등은 죄다 틀린 말이다.
`~스럽다`가 붙은 형용사는 `ㅂ불규칙용언`으로 `ㅂ`이 `오`나 `우`로 바뀌므로 `~스런`이 아니라 `~스러운`으로 활용된다. 그러므로 ‘자랑스런, 복스런, 걱정스런, 자연스런, 혼란스런’ 따위의 표기는 어법에 맞지 않다. ‘자랑스러우면, 걱정스러우면’을 ‘자랑스러면, 복스러면’으로 활용할 수 없으니 사람들이 자주 쓴다 해도 ‘~스런’이 허용되어서는 안 되겠다.
글을 쓰는 사람들도 지나치기 쉬운 낱말이 ‘는가’와 ‘는지’이다. ‘는가’는 종결 어미이다.
“그런다고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는가?”
종결 어미이기 때문에 연결형으로 쓰면 안 된다. “얼마나 웃었는가 배꼽이 빠져버렸다.” 라고 하면 틀린 문장이 되고 만다. ‘는지’는 연결 어미이다.
“어찌나 졸라대는지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막연한 의문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로 쓰이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생략한다.
‘~ㄹ는지’는 형제자매를 두지 않았기에 ‘비가 올런지, 내일 갈련지, 무엇을 할른지’ 따위로 쓸 수 없는데 자꾸 어중이떠중이를 데려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올는지, 갈는지, 할는지, 먹을는지, 웃을는지’이다.
‘놓치다’가 눈에 익다 보니 무심코 ‘손에서 놓치 말고’한다. ‘놓지’가 바른 표기이다. 고도를 높히지 말고 높여야 한다. ‘마뜩잖다’를 ‘마뜩찮다’로 오용하는 사례도 종종 눈에 띈다. 사이시옷 규정이 조금 까다롭기로서니 ‘장밋빛’을 ‘장미빛’이라고 해서야.
‘가지다’의 준말인 ‘갖다’는 ‘갖고, 갖는’으로만 부려 쓸 수 있다. 모임을 ‘갖었다’거나 시간을 ‘갖은 후’는 ‘가졌다’, ‘가진 후’로 바루어야 한다.
‘믿다’의 피동사는 ‘믿기다’이므로 “네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라고 해야 마땅한데 ‘믿어지지 않는다.’를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한다. 모름지기 어법을 지킬 일이다. 먹어지지 않고 팔아지지 않고 잊어지지 않아서는 곤란하고 먹히지 않고 팔리지 않고 잊히지 말아야 한다.
자주 틀리는 것이 ‘(목이) 메이다’이다. ‘메다’가 옳으니 ‘멘, 메어, 메서’로 활용된다. 따라서 ‘(목이) 메인, 메여, 메여서’로 쓰면 안 된다.
‘려고’는 ㄹ 받침이 있는 동사의 어간이 오는 경우에만 ‘ㄹ려고’로 쓴다. 따라서 ㄹ 받침도 없는 ‘웃다, 하다, 먹다, 참다, 갚다, 주다, 가다’를 ‘웃을려고, 할려고, 먹을려고, 참을려고, 갚을려고, 줄려고, 갈려고’ 따위로 표기해서는 안 된다. ㄹ받침이 있는 ‘울다, 살다, 걸다, 팔다’ 등을 ‘울려고, 살려고, 걸려고, 팔려고’로 쓰는 것은 당연하다.
‘작열-하다(灼熱--)’와 ‘작렬(炸裂)하다’의 발음은 같아서 [장녈--]이다.
그러나 ‘작열하다’는 불 따위가 이글이글 뜨겁게 타오른다는 뜻이고, ‘작렬하다’는 포탄 따위가 터져서 쫙 퍼진다는 의미로 쓰인다. 박수 소리나 운동 경기에서의 공격 따위가 포탄이 터지듯 극렬하게 터져 나오는 때에도 ‘작렬’을 쓸 수 있다.
재난을 피해 멀리 옮겨가는 ‘피난(避難)’과 전쟁이나 분쟁을 피하여 옮겨가는 ‘피란(避亂)’은 조금 애매하다. 재난을 피해 가는 백성은 ‘피난민’이고, 난리를 피해 가는 백성은 ‘피란민’이다. 그러므로 ‘난민수용소’의 난민은 대개 ‘피란민’을 말한다.
불은 뜨겁게 마련일까, 뜨겁기 마련일까. 자장면과 짜장면, 소댕과 솥뚜껑, 가새표와 가위표, 우렁쉥이와 멍게처럼 둘 다 쓸 수 있다. 굳이 손을 들어보라면 ‘~게 마련’보다는 ‘~기 마련’이 편하고 보편적일 듯하다.
얼마나 놀랬는지 간이 떨어졌다고 한다. ‘놀래다’는 누구를 놀라게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간이 떨어진 사람은 놀란 사람이고 그렇게 만든 사람이 ‘놀랜 사람’이다.
알맞은 옷과 알맞은 답과 알맞은 날씨가 바른 표기이다. 알맞는 답을 고르라거나 알맞는 음식이라고 쓰면 안 된다. ‘걸맞은’도 마찬가지로 걸맞은 짝과 걸맞은 옷차림과 걸맞은 맞수는 있어도 ‘걸맞는’은 있을 수 없다. 알맞다, 걸맞다 등은 형용사라서 관형격으로 만들 때에는 ‘~은’을 쓰기 때문이다(고운, 추운, 무서운, 아름다운, 좋은 등). 참고로, ‘맞다’는 동사이므로 ‘맞는’이 옳은 표기이다. 이처럼 동사를 관형격으로 만들 때에는 ‘~는’을 쓴다(먹는, 가는, 치우는, 웃는 등).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떤 사람의 생각이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면 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일까.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함께 말마디나 하는 사람들의 상투어라서 더욱 귀에 거슬린다. ‘난이도(難易度)’는 어렵거나 쉬운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므로 난이도가 높다거나 낮다고 하면 말이 아니다. 난도가 높다거나 ‘고 난도’라고 하면 무난하겠다. 오늘도 사회자는 심도(深度) 있는 토론을 주문한다. ‘심도’는 단지 ‘깊은 정도’이니 연결해보면 어색하기 짝이 없다. ‘깊이 있는 토론’을 주문하면 좋겠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의 대답이 수상하다. 맛있느냐고 물으면, 되게 맛있는 것 같다고 한다. 기분이 좋으냐니까, 좋은 것 같다고 한다. 맛있어요, 좋아요, 기뻐요 하고 말의 주인답게 대답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맛있었다고 대답하지 않았느냐고 되묻기라도 하면, 맛있는 것 같다고만 대답했던 것 같았다고 할 참이다.
‘되다’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부가 대통령령 개정안을 예고하면서 “○○ 법률 시행령이 개정됩니다.” 한다. 어느 단체가 행사를 개최하는 홍보를 하면서 “○○ 행사가 개최됩니다.”라며 마치 남의 말 하듯 한다. “시행령을 개정합니다, 행사를 엽니다.”하면 상쾌할 터인데 말이다. ‘되면’도 안심찮았는지 ‘되어지면’까지 얼굴을 내민다. 뻔뻔스러운 책임회피일 뿐이다. 주인이 객인 체하니 그 사람의 말이나 글에 주체성이 있겠는가.
‘네요’ 타령도 줏대 없는 사람이나 부르는 노래이다. ‘어요’로 바꾸면 참 좋겠다. ‘맛있네요, 그러네요, 좋아 보이네요, 기분 좋네요’를 버리고 ‘맛있어요, 그래요, 좋아 보여요, 기분 좋아요’하며 주인다운 노래를 불러야 한다. ‘~군요’도 무난하다.
세종께서는 무지한 백성을 가엾이 여겨 훈민정음을 창제하셨다. 긍휼함을 입은 백성의 후예들은 까막눈에서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찌아찌아 족이나 동티모르는 아예 한글을 제 나라 문자로 삼았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동티모르나 찌아찌아 족과 다름없는 언어생활에 빠져들고 있다. 한글이 외국어를 표기하기 위한 기호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어의 홍수는 일제의 한글말살정책보다 위력적인 듯하다. 컴퓨터나 통신 용어는 말할 나위없고 온갖 상품과 그것들을 만들고 파는 회사와 가게 이름도 외국어가 대세이다. 한 술 더 떠, 우리말을 외국어인 것처럼 위장하고 변조하여 사용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저런 약관이나 의약품 사용설명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장벽 앞에 어느덧 기가 죽는다. 우리말과 글을 일부러 어렵게 만드는 세력이 있는 듯하다. 언중이 쉽게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들면 그를 미끼로 돈을 벌고 권위도 세울 수 있다. ‘무지한 언중’은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돈을 싸다 바친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글을 애지중지하며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한다. 한글은 온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이며 배우고 익히기도 쉬워서 틀림없이 세계인의 단일어가 되리라 확신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여러번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자꾸 보게 됩니다.
우리 말이지만 쉬운듯 하나 어렵습니다.
선생님, 갈수록 산인 듯합니다.
인산 선생님께서 큰일을 하시네요, 그렇지 않아도 글을 쓰면서 혼동되는 우리말이 많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우리말 사용을 틀리게 사용하면 점수를 깎는다는구먼유~~. ㅎㅎ
그리고 수필은 특히 우리말을 제대로 부리는지 여부도 상당히 중점적으로 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역시 한글 공부 다시 들어가야할 듯합니다. ㅎ
제 자신이 자주 헷갈리던 말을 두서없이 적어보았습니다.
공부하고 갑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여러번 읽어도 잘모르니 우리나라말도제대로 익히지못하니 무슨 글을 쓸까 잘읽어보겠읍니다 감사합니다.
사이시옷 규정 같은 것은 너무 어려워서 저도 자주 헷갈립니다. 누구나 쉽게 이하하여 쓸 수 있도록 손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