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사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목포가 항구라면 군산도 항구다.
조선후기에 개항한 군산은 일제시대에
쌀을 일본으로 수탈해서 가져가기 위한 전초기지였다.
그래서 나라 안에서 제일 먼저 전주 군산 간 신작로가 만들어졌고,
벚꽃이 그 먼 길에 줄을 지어 심어져 한때 벚꽃 축제로 이름이 알려졌었다.
그러나 세월 속에 그 벚꽃 백리 길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그렇게 많았던 일본식 건물들도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몇 개의 건축물만 남아 있고, 사라지고 말았다.
가고 오는 것이 어디 군산이라는 항구만 그럴까 싶지만,
그 세월 속에 사라진 풍경들을 회상하며 걷는 내내
가슴 한 귀퉁이가 서늘하기만 했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랴. <탁류>의 작가 채만식이 묘사한
군산의 모습은 몇 개의 자취만 남기고 사라졌고,
지금은 그 자리를 <8월의 크리스마스>의 무대인 초원사진관이나
동국사, 군산 세관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이고, 사라진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양주가 말했다.
“태고太古의 일은 다 없어지고 말았다. 누가 그것을 기억하랴? 삼황三皇, 삼황 하지만, 그때의 일이란 과연 그런 것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애매할 따름이며, 오제五帝 때의 사실도 꿈속의 일인지 생시의 일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삼왕 때의 일만 해도 어떤 것은 없어지고 어떤 것은 남아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억億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옛것은 고사하고 우리 평생의 일만 해도, 더러는 듣고 더러는 보고 했으면서도 우리가 아는 것은 만에 하나 꼴도 되지 않고,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의 경우에도, 어떤 것은 남아 있으나 어떤 것은 없어지고 말아서, 우리는 그 천분의 1도 알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태고로부터 오늘까지 몇 해나 지났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며, 복희씨 이후만 따진대도 30만 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무수히 반복된 현우賢愚, 성패成敗, 시비是非치고 소멸하지 않은 것은 없었으며, 다른 것이 있었다면 빨리 없어지고, 더디게 사라지는 차이 뿐이었다. 그렇다면 한 때의 비난과 명예에 마음을 써서 그 심신心身을 괴롭히고, 그것으로 수백 년 뒤까지 남을 명성을 추구한다 한들, 그것이 죽어버린 몸에 무슨 이익이 되며, 어떤 삶을 즐겁게 하는 것이 되겠는가?“
<열자> <양주 편>에 실린 글이다.
이렇듯 가면 돌아오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가버린 것에 대한 쓸쓸함에 걷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나뿐이었을까?
조금, 그래 조금 있으면 사라질 우리들,
우리에게 이 지상에서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지,
2018년 10월 17일 수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