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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기야(毋自欺也)
자기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거짓을 행하게 되면 잘못된 일이 생기게 된다는 말이다.
毋 : 말 무(毋/0)
自 : 스스로 자(自/0)
欺 : 속일 기(欠/8)
也 : 어조사 야(乙/2)
출전 : 대학(大學)
이 성어는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신중하게 처신해야한다는 경구로 대학(大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이른바 그 뜻을 정성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慎其獨也.
고약한 냄새를 싫어함과 같으며, 여색을 좋아함 같은 것이며, 이를 일러 스스로 만족함이라 하나니,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를 삼가는 것이다.
小人閒居為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後厭然, 掩其不善, 而著其善.
소인은 혼자 있게 되면 선하지 못한 일을 하여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가 군자를 본 뒤엔 슬쩍 시치미를 떼고, 그 선하지 못함을 가리고, 그 선함을 드러내려 한다.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는 것을 마치 그 폐와 간을 보는 것과 같으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慎其獨也.
이를 일러 안에서 정성되면 밖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삼가는 것이다.
曾子曰 :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증자가 말하기를, "열개의 눈이 보는 바이며,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 그 엄함이여!"
부유함은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니, 마음이 넓어지고 몸도 편안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정성되게 하는 것이다.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大學)
⏹ 무자기야(無自欺也)
스스로 속이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대학(大學)에서 '뜻을 성스럽게 한다(誠意)'는 것을 이렇게 시작한다.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慎其獨也.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後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
이른바 그 뜻을 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일이 없음이니, 나쁜 냄새를 싫어하는 것과 같고 예쁜 얼굴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 이를 스스로 낮춤이라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 삼간다.
유교 경전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이른바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毋自欺也)"는 말이 있다.
유학에서 말하는 공부란 '사람 되는 공부'를 말하는데, 자신이 사람이 되어서(修己), 다시 나아가 다른 사람들까지 사람 되게 인도하는 것(治人)이 선비다.
이 과정을 '대학'에서 팔조목(八條目)이라 하여 여덟 단계로 나누었다.
자기 몸을 수양하기(修身) 위해서는 그 앞 단계인 마음을 바로잡아야 되고(正心),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마음의 활동인 뜻을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誠意).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속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속이지 못할 것이 없다. 부모를 속이고 형제를 속이고 친구를 속이고 아랫사람을 속이고 윗사람을 속인다. 자기를 속이거나 남을 속이는 사람은 또 자신을 믿지 못하고 남을 믿지도 못한다.
자기를 속이는 사람은 강해 보여도 엄청나게 약하다. 자기가 거짓말하는 것을 자신은 잘 알기 때문에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자신이 밉고 남들이 원망스럽다.
지금 우리나라는 거짓말 때문에 나라가 정말 혼란스럽다. 청문회 나오는 장관이나 대법관 등은 거짓말로 날을 세운다.
논문을 쓰는 학자들도 발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남의 논문이나 특허를 표절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심지어 대학입시에서 자기소개서도 대신 써 주는 업체가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 거짓말이 얼마나 만연한지를 알 수 있다.
거짓말하는 것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윗사람과 아랫사람,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실이냐 사실 아니냐?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일 따름이다.
솔직하면 아무 일도 아닌데 자꾸 거짓말을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작년에는 법무부장관 조국과 그 가족 때문에 온 나라가 편이 갈리더니, 올해는 법무부장관 추미애 아들 때문에 또 그렇다.
이런 공방은 국가민족을 위해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앗아가는 소모전이다. 당사자는 거짓인지 참인지 모를 리가 없다.
이럴 때 대통령은 침묵하여 이런 소모전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정확한 판단을 해서 빨리 끝내게 해야 한다.
사병은 휴가에서 귀대해야 하는 날 오후 6시까지 복귀 안 하면 탈영 처리가 된다. 그래서 최전방에 근무하는 사병들은 가다가 사고라도 날까 해서 하루 미리 가서 부대 근방에서 자고 다음 날 정해진 시간에 복귀하는 것이다. 육군 사병이 소대장 만나 신고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밖에서 전화해서 자기 휴가를 연장해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 무자기야(無自欺也)
믿음, 곧 신뢰는 인간 공동체 유지의 기본 요체다. 신뢰를 잃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말해도 믿지 않을 정도로, 인간관계는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없다.
친구, 사업 파트너 간은 물론 친인척과 가족에 이르기까지 신뢰가 깨지면 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논어는 “사람이 신뢰의 바탕을 잃으면 바로 서지 못한다(人無信不立)”고 가르쳤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 풍조가 만연해 있다. 예컨대 어떤 사건이 터진 뒤 수사 결과 등을 발표하면 믿지 못하고, 또 다른 의혹을 연신 제기하는 게 굳어졌다.
일반적으로 인간적 신뢰는 일방의 선언이나 계약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 상호 간의 자발적 감정 유발에 의해 형성되는 교감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신뢰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형성되기 어려우며 한 번 손상된 신뢰는 회복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
논어의 가르침은 계속된다. “사람에게 신뢰가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그것은 마치 큰 수레에 예(輗)가 없고, 작은 수레에 월(軏)이 없는 것과 같으니 어찌 수레를 움직일 수 있겠는가.”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居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
국가 주요기관의 평균 신뢰도는 10점 만점에 4.23점으로 나타났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보통을 의미하는 5점 이상은 지난해 대통령(6.21점), 군대(5.77점), 정부(5.09점) 등 3개였지만 올해는 1개(대통령, 5.44점)로 줄어들었다.
하락 폭이 가장 큰 기관은 지난해 1~3위를 기록한 군대(-1.1점), 정부(-8.83점), 대통령(-0.77점) 등이었다. 군대 내 폭력과 ‘관(官)피아’ 등의 부정적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신뢰 형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신뢰는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확인되는 믿음이다. 물론 신뢰의 발현은 자기 자신에서부터 비롯돼야 한다.
대학은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誠其意者 無自欺也)”고 일러주고 있잖은가.
⏹ 신독(愼獨)과 미투(Me Too)
신독(愼獨)은 신기독(愼其獨)의 준말이다. ‘혼자 있을 때에도 마음을 잘 다스려 도리(道理)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신독은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에 실려 있는 말이다. 사람들은 남의 시선이 없을 때 본성에 이끌려 행동하기 쉬우니 혼자 있을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평소 마음의 수양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대학의 원전을 보자.
所謂誠寄意者, 毋自欺也.
이른바 성의(誠意)는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악(惡)을 미워하기를 나쁜 냄새를 싫어하는 것과 같이 하고, 선(善)을 좋아하기를 여색(女色)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하니, 이를 자겸(自謙)이라 한다.
故君子必愼其獨也.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가야 한다.
공자(孔子) 역시 논어에 불괴옥루(不愧屋漏)라며 ‘혼자 있는 시간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옥루(屋漏)란 방 가운데의 서북쪽 구석을 말한다. 조명 사정이 좋지 않았던 옛날에는 방안이 매우 침침했다. 특히 볕이 들지 않는 북쪽은 더욱 어두웠다.
어두운 방안에, 그것도 혼자 있으면 사람들은 본능대로 움직이게 된다. 환하고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는 인격적으로 행동하던 사람들도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는 어긋난 모습을 보이기 쉽다는 것이다.
중국 근대의 사상가이자 교육가인 양계초(梁啓超)는 마음을 닦아 올바른 행동을 하는 수양의 방법으로 ‘신독(愼獨)’을 권했다.
양계초는 청나라가 무너지는 혼란한 시기에 많은 이들이 애국자임을 자처하면서 온갖 음험한 일과 부도덕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런 이중성을 버리려면 ‘신독’을 통해 인격수양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래야 어두운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욕심과 욕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게 그리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인류 역사 이래로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몇에 불과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들을 성인(聖人)이라 부른다.
일반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오욕 칠정(五慾七情)에 붙잡혀 마음과 몸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존경하는 광주 최초의 한국인 목사 최흥종 목사 역시 그토록 고매한 인격을 지녔지만 50살 이후에도 세속과 육신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최흥종 목사는 57세가 되던 해에 거세(去勢) 수술을 받고 온전한 자유를 얻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아호를 오방(五方)이라 했다. 다섯 가지 욕망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였다.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적으로 속박당하지 않고, 정치에 나서지 않으며, 경제에 구속되지 않고, 종파를 초월해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고자 했다.
그 뒤 최 목사는 주위에 자신의 사망통지서를 돌리고 가난한 사람과 한센 병(나환자)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다.
이 역시 범상치 않은 일이다. 의지가 약하고 유혹에 쉽게 무너지는 일반인들은 잘못과 회개를 반복하며 산다.
예수가 간음을 저지른 여인을 징치하기 위해 몰려든 이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할 때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던 사람들은, 실은 우리 자신들이다.
겉으로야 멀쩡해 보이고, 흠없고,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실수와 죄 가운데 살고 있는지는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남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젊은 날의 혈기와 방종으로 잘못 살아온 날이 많다. 지금도 그렇다. ‘방에 홀로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면’ 마음은 여전히 헝클어진다. 값나가는 것, 좋은 것을 대하면 부럽고 욕심이 생긴다. 자족(自足)하지 못한다.
몇 해 뒤면 이순(耳順)이지만 이제 뜻을 세운(而立), 혈기 방장한 30대처럼 몸과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많다. 고등학생 시절 ‘신독’이라는 단어를 처음 대하고 마음에 품고 살았지만 실천과는 거리가 멀다.
미투(me too)로 많은 이들의 과거 삶이 드러나고 있다. 사회 유명 인사들을 대상으로 시작돼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me too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me too 운동이 진정으로 우리사회를 변화시키려면 고발운동에서 각성운동으로의 성격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독의 삶은 자신과 주위를 편하게 하고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들 것이다. 홀로 있어도 마음을 잘 지키는 것, 나와 우리를 잘 지키는 지혜다.
⏹ 근독(謹獨)
서울신문 儒林(503)에는 謹獨(삼갈 근/홀로 독)이 나오는데,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간다’는 뜻이니, 신독(愼獨)과 같은 말이다.
신독(愼獨)은 대학(大學)의 “이른바 성의(誠意)라는 것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는 데서 삼간다(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 故君子 必愼其獨也)”고 한 것과
중용(中庸)의 “감춘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고, 조그마한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는 데서 삼간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謹(근)자는 원래 ‘삼가다’라는 뜻을 나타냈으며 용례(用例)로는 근엄(謹嚴; 점잖고 엄숙함), 근하(謹賀; 삼가 축하함) 따위를 들 수 있겠다.
獨(독)자는 의부(意符)인 개사슴록변(犭=犬)部와 머리가 크고 몸체가 둥글게 말린 벌레의 형상인 蜀(나라 이름 촉)이 음부(音符)로 쓰인 형성자(形聲字)이다.
獨(독)의 본래 뜻이 ‘외롭다’인 데 대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용례로는 독거(獨居; 혼자 삶), 독재(獨裁; 특정인이나 집단이 어떤 분야에서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독단으로 일을 처리함) 등에 쓰인다.
옛 선인들 중에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행동거지(行動擧止)를 조심하며, 자기의 언동(言動)을 보고 듣는 이가 없더라도 법도를 지킨 사람이 많았다.
혼자 숨어서 한 일이라고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며,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하나 마침내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각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은 평소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과 경의검(敬義劍)을 지니고 있었다. 수양(修養) 도구로 삼아 안으로는 거울과 같은 마음을 유지하고 밖으로는 과단성(果斷性) 있는 실천을 이룩하려는 의지 때문이었다. 특히 성성자에는 雷(뇌)와 天(천)자를 새겨 항상 극기(克己)와 성찰(省察)의 도구로 삼았다.
조선시대 평양(平壤)에 사는 이 아무개 진사가 우연히 한양에 왔다가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듣고는 황급히 평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를 보고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찌 조문(弔問)을 마다하고 평양으로 되돌아 가십니까?”
이진사가 답하기를, “온 김에 조문(弔問)을 하면 이는 일을 겸(兼)하는 것이니 망자(亡者)에 대한 도리가 아니지요.”
결국 이진사는 평양에서부터 다시 한양에 당도하여 조문을 하였다고 한다.
어느 고을의 선비가 친구를 조상(弔喪)하는데 홑이불 위 아래로 시신(屍身)이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닌가. 민망하여 빈소(殯所)를 지키고 있는 미망인(未亡人)에게 제안(提案)하였다. “홑이불을 대각선으로 덮는다면 충분히 시신을 감쌀 수 있겠네요.”
미망인이 답하기를, “반듯한 삶을 살다간 남편을 삐딱하게 덮을 수는 없지요.” 미망인(未亡人)의 대답에 친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먼지와 티끌이 뱃속에서 나는 거라면 주저없이 배 갈라 흐르는 물에 부치겠노라고 읊은 남상(南冥)의 옹골찬 기상, 평생 귓속말을 멀리한 율곡(栗谷)의 공명정대(公明正大)한 태도…
목전(目前)의 편익(便益)을 마다하고 정도(正道)를 고집(固執)하는 선비의 우직함이 무척 아쉽다.
⏹ 직장인의 슬기로운 지혜와 처세를 제시하는 대학(大學)의 명구
큰 사람이 되기 위한 학문의 대학(大學)은 중용(中庸), 논어(論語), 맹자(孟子)와 함께 사서(四書) 중 하나로 불린다.
최근 들어 이런 대학이 인문학 열풍과 더불어 직장인들이 읽어야 할 필수 고전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직에서 행동과 처세, 자신의 수양, 상하 관계를 이어나가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평한다.
온라인 교육 전문 기업 휴넷 관계자는 "대학에는 자신의 내면을 수양하는 단계부터 천하를 다스리는 위정자가 되기 위한 배움의 단계가 모두 들어있다"며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신을 수양할 수 있는 조직관리의 지침서가 되는 고전이다"라고 말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을 위한 위로, 대학을 통해 본 직장인의 자세를 소개한다.
🔘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하라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故.
이른바 뜻을 성실하게 갖는 것이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니, 나쁜 냄새를 싫어하듯 하고 좋은 빛깔을 좋아하듯이 하면 가히 스스로 만족스러워진다.
🔘 날로 새로워지도록 노력해라
湯之盤銘曰 :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탕왕이 대야에 새겨 경계로 삼았던 글에서 말하기를, 진실로 하루를 새롭게 할 수 있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 했다.
🔘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되자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 必誠其意.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니, 마음이 넓어지매 몸이 편안한 것이라.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정성되게 하느리라.
🔘 언제 어디서나 성실하게 생활하자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열 개의 눈이 지켜보고 열 개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으니, 진정 엄한 것이다.
🔘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부터 잘하자
所藏乎身不恕, 而能喩諸人者, 未之有也.
남의 입장을 헤아리는 마음도 없이 다른 사람을 깨우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 현명하고 착한 사람을 가까이 하자
見賢而不能擧, 擧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현명한 사람을 보고서도 등용하지 않거나 등용하더라도 남들보다 먼저 하지 않으면 태만한 것이고, 선하지 않은 사람을 보고서도 물리치지 않거나 물리쳐도 멀리하지 않으면 잘못이다.
⏹ 이하는 정천구의 성의(誠意)의 글이다.
지극히 할 성(言/6)
뜻 의(心/9)
격물치지(格物致知)에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까지 성리학자들이 말한 8조목 가운데 성의(誠意)를 다룬 부분이다. 먼저 3-1을 제시한다.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이른바 그 뜻을 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일이 없음이니, 나쁜 냄새를 싫어하는 것과 같고 예쁜 얼굴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 이를 스스로 낮춤이라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 삼간다.
여기서 毋(무)는 하지 말라, 없다는 뜻이다. 欺(기)는 속이다는 뜻이다. 惡惡臭(오악취)에서 惡(오)는 싫어하다, 미워하다는 뜻이고, 惡(악)은 나쁘다, 고약하다는 뜻이다. 臭(취)는 냄새를 뜻한다. 好好色(호호색)에서 앞의 호는 좋아하다는 뜻이고, 호색은 예쁜 얼굴, 아름다운 여인을 뜻한다. 謙(겸)은 삼가서 자신을 낮추다는 뜻이다. 愼(신)은 삼가다는 뜻이다.
성의(誠意)를 다루는 이 구절에서 誠(성)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요즘 흔히 쓰는 '성실히, 성실하다'라는 말보다 의미가 훨씬 깊고 크다. 오롯하다, 지극하다, 한결같다는 뜻으로, 聖(성)과 통한다.
중용(中庸)에 나오는 "성스러움은 하늘의 길이고, 성스러워지려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라는 뜻의 성과 다르지 않다.
격물(格物)을 함으로써 지극한 앎을 갖추더라도 그 뜻이 지극하지 않으면, 힘들여 터득한 앎을 올바로 쓰지 못한다.
그릇된 뜻을 지니면, 그 앎을 삿되게 쓰다가 망신(亡身)에 이를 수 있다. 그릇되지 않더라도 뜻이 야무지지 않으면, 의도치 않게 실수하거나 허물을 짓는 일이 곧잘 생긴다.
그런데 성의는 반드시 격물과 치지를 한 뒤에 하는 것이 아니다. "지극하다 또는 성스럽다"고 풀이되는 것처럼 수신하기로 했다면 늘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또한 얻는 것은 지극히 어려우면서 잃기는 참으로 쉬워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워낙 마음 깊은 데서 내밀하게 이루어지는 까닭에 어설프게 뜻을 지니고서 지극하다고 착각하기도 쉽다.
그래서 신독(愼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신독은 "홀로 있을 때 삼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강조하는 것은 덕을 갖추는 일에서 자칫 소홀히 할 수 있는 점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신독은 '중용'에서도 언급된다.
▶️ 毋(말 무, 관직 이름 모)는 ❶지사문자로 母(모)에 一(일)을 더하여 여자(女子)를 범하는 자를 一(일)로 금지함의 뜻이다. ❷지사문자로 毋자는 ‘말다’나 ‘없다’, ‘아니다’와 같이 무언가를 금지하거나 부정하는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毋자는 ‘어머니’를 뜻하는 母자에서 파생된 글자이다. 금문에 나온 毋자를 보면 母자의 가슴 부위에 획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금지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금지하다’라는 것은 간음(奸淫)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금문이 등장했던 은(殷)나라 후기는 모계사회가 부계사회로 전환되던 시기였다. 여성의 정조를 강조했던 시대로 접어들면서 母자의 가슴 부위에 획을 긋는 방식으로 금지의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毋(무, 모)는 ①말다 ②없다(=無) ③아니다(=不) ④(의심쩍어)결심(決心)하지 아니하다 ⑤발어사(=차라리) ⑥앵무새(鸚鵡-: 앵무과의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그리고 ⓐ관직(官職)의 이름, 무추(毋追) (모)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말 물(覅)이다. 용례로는 말할 것도 없음을 무론(毋論), 아저씨 아저씨 하고 길짐만 지운다는 뜻으로 겉으로 존경하거나 아끼는 체하면서 부려 먹음을 이르는 말을 무왈숙존 등장녕부(毋曰叔尊等長寧負), 급하면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쓸까라는 뜻으로 아무리 급하더라도 일의 순서는 밟아야 한다는 말을 무이용급 선박침요(毋以用急線縛鍼腰), 곗술에 낯 내기라는 뜻으로 남의 것을 가지고 제 생색을 냄을 이르는 말을 무장사주 이열오우(毋將社酒以悅吾友), 동냥은 아니 주고 쪽박만 깬다는 뜻으로 요구하는 것은 들어주지 않고 도리어 해를 끼치거나 나무라기만 한다는 말을 수불급량 무파아표(雖不給糧毋破我瓢), 뜻하지 않게 닥친 화라는 뜻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생기는 재앙을 이르는 말을 무망지화(毋望之禍) 등에 쓰인다.
▶️ 自(스스로 자)는 ❶상형문자로 사람의 코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사람은 코를 가리켜 자기를 나타내므로 스스로란 뜻으로 삼고 또 혼자서 ~로 부터 따위의 뜻으로도 쓰인다. 나중에 코의 뜻에는 鼻(비)란 글자가 생겼다. ❷상형문자로 自자는 '스스로'나 '몸소', '자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自자는 사람의 코를 정면에서 그린 것으로 갑골문에서는 코와 콧구멍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래서 自자의 본래 의미는 '코'였다. 코는 사람 얼굴의 중심이자 자신을 가리키는 위치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나 자신을 가리킬 때는 손가락이 얼굴을 향하게끔 한다. 이러한 의미가 확대되면서 自자는 점차 '자기'나 '스스로'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自자가 이렇게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畀(줄 비)자를 더한 鼻(코 비)자가 '코'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自(자)는 어떤 명사(名詞) 앞에 쓰이어 ~부터, ~에서(~서)와 같은 뜻을 나타내는 한자어. 시간이나 공간에 관한 낱말 앞에 쓰임의 뜻으로 ①스스로, 몸소, 자기(自己) ②저절로, 자연히 ③~서 부터 ④써 ⑤진실로 ⑥본연(本然) ⑦처음, 시초(始初) ⑧출처(出處) ⑨코(비鼻의 고자古字) ⑩말미암다, ~부터 하다 ⑪좇다, 따르다 ⑫인하다(어떤 사실로 말미암다) ⑬사용하다, 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몸 기(己), 몸 신(身),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를 타(他)이다. 용례로는 제 몸을 자신(自身), 남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함을 자유(自由), 제 몸 또는 그 자신을 자체(自體), 저절로 그렇게 되는 모양을 자연(自然), 제 몸이나 제 자신을 자기(自己),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어서 죽음을 자살(自殺), 스스로 자기의 감정과 욕심을 억누름을 자제(自制), 스스로 그러한 결과가 오게 함을 자초(自招), 스스로 움직임을 자동(自動), 제 스스로 배워서 익힘을 자습(自習), 자기 일을 자기 스스로 다스림을 자치(自治),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함을 자립(自立), 자기의 능력이나 가치를 확신함을 자신(自信),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 몸이나 마음을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자존심(自尊心), 어떤 일에 대하여 뜻한 대로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스스로의 능력을 믿는 굳센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신감(自信感), 스스로 나서서 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자발적(自發的), 자기의 언행이 전후 모순되어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가당착(自家撞着), 자신을 스스로 해치고 버린다는 뜻으로 몸가짐이나 행동을 되는 대로 취한다는 말을 자포자기(自暴自棄), 스스로 힘을 쓰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아니한다는 말을 자강불식(自强不息), 자기가 그린 그림을 스스로 칭찬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일을 자기 스스로 자랑함을 이르는 말을 자화자찬(自畫自讚), 자기가 일을 해놓고 그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격지심(自激之心), 물려받은 재산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가를 이룸 곧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을 이룩하거나 큰 일을 이룸을 일컫는 말을 자수성가(自手成家), 자기의 줄로 자기를 묶다는 뜻으로 자기가 자기를 망치게 한다는 말이다. 즉 자기의 언행으로 인하여 자신이 꼼짝 못하게 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자승자박(自繩自縛), 잘못을 뉘우쳐 다시는 그런 잘못이 없도록 함을 이르는 말을 자원자애(自怨自艾), 처음부터 끝까지 이르는 동안 또는 그 사실을 일컫는 말을 자초지종(自初至終),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한다는 뜻으로 마음속으로 대화함을 이르는 말을 자문자답(自問自答), 제 뜻이 항상 옳은 줄로만 믿는 버릇이라는 뜻으로 편벽된 소견을 고집하는 버릇을 이르는 말을 자시지벽(自是之癖) 등에 쓰인다.
▶️ 欺(속일 기)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하품 흠(欠; 하품하는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其(기)로 이루어졌다. 기력을 잃고 하품을 한다는 뜻에서 음(音)을 빌어 '속인다'는 뜻으로 쓰인다. ❷형성문자로 欺자는 ‘속이다’나 ‘거짓’, ‘허위’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欺자는 其(그 기)자와 欠(하품 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其(그 기)자는 곡식의 겨·티끌·싸라기 등을 걸러내는 데 쓰는 ‘키’를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欺자는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欠(하품 흠)자를 응용한 글자로 ‘속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欺자에 쓰인 欠자는 남을 속이기 위해 입을 떠벌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欺(기)는 ①속이다 ②업신여기다 ③보기 흉(凶)하다, 추(醜)하다 ④거짓, 허위(虛僞) ⑤기만(欺瞞)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속일 사(詐), 속일 궤(詭), 속일 무(誣), 속일 휼(譎), 속일 편(騙)이다. 용례로는 남을 그럴 듯하게 속여 넘김을 기만(欺瞞), 자기의 양심을 속임을 기심(欺心), 속이어 농락함을 기롱(欺弄), 속이어 미혹하게 함을 기혹(欺惑), 남을 조롱하거나 속여서 우습게 봄을 기소(欺笑), 사람을 속임을 기인(欺人), 속이고 감춤을 기은(欺隱), 남을 속이고 토색질 함을 기색(欺索), 남을 속이고 우롱함을 기우(欺愚), 남을 속이고 해침을 기해(欺害), 세상을 속임을 기세(欺世), 속맘을 드러내지 않음을 기정(欺情), 속이고 깔봄을 기릉(欺陵), 꾀로 남을 속임을 기사(欺詐), 꾀로 남을 속임으로 남을 속이어 착오에 빠지게 하는 위법 행위를 사기(詐欺), 자기 자신의 마음을 속임을 자기(自欺), 거짓으로 꾸며 속임을 무기(誣欺),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비뚜루 말하여 속임을 저기(詆欺), 사람을 속여 돈이나 물건을 빼앗는다는 말을 기인취물(欺人取物), 나라를 속이고 백성을 해친다는 말을 기국두민(欺國蠹民), 세상 사람을 속이고 헛된 명예를 탐낸다는 말을 기세도명(欺世盜名), 사람을 속이고 재물을 빼앗는다는 말을 기인편재(欺人騙財), 그럴듯한 말로써 남을 속일 수 있다는 말을 가기이방(可欺以方),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라는 뜻으로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사람을 풍자한 말을 자기기인(自欺欺人),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지 말라는 뜻으로 스스로에게 엄하고 정직하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라는 말을 불기자심(不欺自心) 등에 쓰인다.
▶️ 也(잇기 야/어조사 야, 잇달을 이)는 ❶상형문자로 뱀의 모양을 본떠서 본 뜻은 뱀이다. 그 음(音) 빌어 오로지 어조사(語助辭)로 쓰여지고 있다. ❷상형문자로 也자는 ‘어조사’로 쓰이는 글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조사란 ‘~이다’나 ‘~구나’, ‘또한’, ‘역시’와 같은 것을 뜻한다. 也자는 乙(새 을)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새’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렇다고 也자가 어떤 것에서 기원한 것인지도 명확하지는 않다. 일부에서는 뱀이 꽈리를 틀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고대에 사용하던 주전자를 그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두 가지 해석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닌 것은 也자와 결합하는 글자들을 보면 두 해석이 모두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고대에도 也자의 기원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也(야, 이)는 ①잇기(한곳에 대어 잇거나 한곳에 닿아서 붙는 일) ②어조사(語助辭), ~이다, ~느냐?, ~도다, ~구나 ③발어사(發語辭) ④또한, 역시(亦是) ⑤딴, 다른, 그리고 ⓐ잇달다(다른 사물에 이어서 달다)(이) ⓑ대야(둥글넓적한 그릇)(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영탄하는 어조사 야야(也耶), 그러한가를 야여(也歟), 별로 해로울 것 없음을 야무방(也無妨), 괜찮음 또는 해롭잖음을 야자무방(也自無妨) 또는 야자불방(也自不妨), 마침내 또는 마지막에는 급기야(及其也), 만일에 또는 행여 나를 혹야(或也), 그 사람 또는 그 자라는 궐야(厥也), 나는 것 같음이나 매우 빠름을 비야사(飛也似), 홀로 푸르다는 독야청청(獨也靑靑), 말인즉 옳다는 언즉시야(言則是也), 입이 관문과 같다는 구자관야(口者關也), 옳으니 그르니 하고 시비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일을 시야비야(是也非也), 전쟁에서 사람은 죽는다는 병사지야(兵死地也), 누구들이라고 드러내지 않고 가리키는 말을 모야수야(某也誰也), 의외로 많음을 이르는 하기다야(何其多也)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