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톨로지 (scientology)의 창시자 로널드 허바드 (Ronald Lafayette Hubbard)는 1911년 3월 13일 미국 네브라스카에서 해군 제독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2년 조지 워싱턴 대학을 1년 만에 중퇴한 그는 소설가가 되었는데, 주로 삼류 웨스턴이나 공상과학 소설을 썼지만 벌이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인의 아들답게 해군에 자원입대했고, 전투가 치열했던 남태평양으로 배속 되었다. 부상을 입고 제대한 그는 한동안 군의관에게 부상 때문에 머리가 약간 이상해 졌으며 자꾸만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하여간 군에 있는 동안 인도나 중국에도 들를 기회가 있었던 그는 성자 (聖者)가 기적을 일으키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으며, 45년과 46년엔 알라이스터 크라울리(Aleister Crowley)의 오리엔트 십자 기사단 (Ordo Templi Orientis)에 가입하기도 했다.
존 파슨스가 이끄는 캘리포니아 아가페 지부에서 평신도로 시작한 그는 재능이 출충했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파슨스의 보좌관으로 승격했다. 그러던 어느날, 비밀종교의식을 치르는 도중 파슨스는 여자 신도와 마술적(?) 성교 행위에 돌입하고, 허바드는 그동안 별자리의 변화를 감지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종교의식은 대실패로 돌아가고, 두 사람은 서로 서로에게 실패의 책임을 돌려 결국 갈라서게 되었다. 갈라서면서 파슨스에게서 아가페 지부에 속한 땅을 사려다가 거절 당하자. 허바드는 파슨스의 처제와 함께 플로리다로 도망쳤고, 허바드의 아내가 이혼소송을 냈을 땐 이미 새로 장만한 요트를 타고 기나긴 "쾌락만점의 항해"를 떠나고 난 후였는데, 그게 7월 초였다. 하지만 항해 도중에 악귀를 부르는 비밀의식을 진행하다가 오히려 태풍을 만나 다시 플로리다 해안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고, 어떤 흥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해 말에 허바드는 다시 파슨스의 아가페 지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미있는 것은, 오리엔트 십자 기사단에 몸 담았던 기간에 대한 허바드의 해명인데, 마술을 하는 사교조직 핵심인물의 행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007 제임스 본드의 모험이라고 해야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간의 그의 행적을 그의 입을 통해 들어보자.
어느 정부 고관이 내게 은밀한 요청을 해 왔다. 물론 내가 그만큼 경험이 풍부하고 냉철하며 치밀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핵무기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테크의 교수 하나가 오리엔트 십자기사단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혹시 핵무기에 관한 중요한 정보가 사교 조직으로 새어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 이었다. 물론 지극히 위험한 일이긴 했지만, 도저히 좌시할 수도 없는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에, 일부러 그곳 지부장인 파슨스에게 접근하여 심복이 되었던 것이고, 그덕에 무사히 수사를 마무리 짓고, 핵 정보의 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
어쨋건 간에, 십자기사단에 있으면서 뭘 보고 어떤 것을 배웠는진 몰라도, 허바드는 그후 Sequoia 대학에서 우편으로 박사 학위를 땄고, 자신이 훈장을 어마어마하게 받은 전쟁 영웅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이에 관해 1948년에 있었던 소송판결에서 판사는 허바드에 대해 병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으로 결론을 내렸다.
Dianetics 책 표지
허바드는 1948년에 집필하여 1950년에 Dianetics라는 사기성이 농후한 책을 출간했는데, 거짓말 탐지기 보다도 훨씬 더 구조가 간단한 "E-Machine"이란 기계로 사람의 정신을 감정하여, 그 사람의 정신건강을 해치며 정신적 문제를 야기시키는 과거 기억의 흔적을 찾아, 심리상담을 통해 그것을 근본적 집중적으로 해소시켜 줌으로써 그 사람을 "청명한" 상태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바람둥이 아버지를 둔 처녀는 유아시절의 그러한 좋지 못한 기억 때문에 남자를 믿지 못 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원만한 이성관계를 꾸려나갈 수가 없다. 이렇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거의 기억이 정확히 뇌의 어느 부분에 저장되어 있는지 "E-Machine"으로 찾아내서 심리상담을 통해서 지워준다는 것인데, 모르고 들으면 그럴듯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심리학에 관해서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 들으면 전혀 말도 안 되는 이론이다.
때는 1950년, 심리학이란 학문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이었기 때문에, 허바드의 책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무려 백 오십만 부가 팔렸다. 하지만,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의하면, 허바드의 책들은 모두 신도들이 대량으로 사들인 것이기 때문에, 판매부수만 가지고 인기도를 얘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어쨋건간에, 초판 발행만으로도 큰 재미를 본 허바드는 바로 그 즉시 뉴저지 주에 허바드 다이아네틱스 연구소라는 것을 세웠고, 그 해 말에는 전국에 지부를 설립했다. 재정적으로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근거무근의 사기라고 주장하는 심리학계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고, 이에 따른 소송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1952년 피닉스로 본부를 옮긴 허바드는 허바드 사이언톨로지 연구소라는 것을 세웠고, 1954년엔 LA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 사이언톨로지 교회를 건립했다.
심지어는 허바드 자신도 자신의 이론이 과학인지 철학인지 혹은 종교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지만, 어쨋건간에 가장 중요한 관건은 항상 돈이었다. "무료" 정신감정을 받으러 온 사람들은 무조건 "청명 요 (淸明 要)"라는 판정을 받았고, 그후부터는 돈을 내야했다. 비교적 최근인 1991년의 경우를 보면, "청명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여덟 단계를 거쳐야하는데, 갈수록 비용이 더 많이 들며, 평균적으로 여덟 단계를 모두 거쳐 "청명" 판정을 받기 까지 일인당 무려 30만 달러(약 4천백만원)란 거금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소를 찾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던지, 너무 돈이 많이 벌리자, 허바드는 일종의 돈 세탁 용으로 이러저런 단체를 많이 만들어 자금을 돌렸는데, 인권을 위한 시민 위원회, 공공건강과 안전관리 위원회, 정직한 정부를 원하는 시민 연합, 전국 사회정의 위원회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1960년 대에 허바드의 이론은 기기묘묘한 방향으로 빠지기 시작하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에겐 모두 "테탄(thetan)"이란 외계 영혼이 붙어있는데, 이는 7천5백만년 전에 제두(Xedu)라는 "우주" 독재자를 피해서 외계인들이 지구로 도망쳐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허무맹랑한 소리긴 하지만, 인간세상이란게 원래 웃기는 곳이라, 허바드의 "썰"은 상당히 인기가 있었고, 1967년에서 69년 까지 교회의 신도 수는 무려 네 배나 증가했다.
허바드의 사이언톨로지가 이렇게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되자, 자연 경쟁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이언톨로지 런던 연구소에서 학생 신분으로 만난 로버트 무어와 매리 앤 맥린은 결혼을 하면서 사이언톨로지에서 따로 떨어져나와 1963년에 자기들만의 독자적인 사교 조직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사탄 숭배 경향이 짙은 최후심판교회(Process Church of Final Judgement)다.
그후 최후심판교회에서 떨어져 나온 사교집단도 많은데, 사악하며 폭력적 성향이 아주 강한 사탄 숭배 조직인 Four P Movement는 물론, 1969년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 샤론 테이트 등 여러 사람을 엽기적으로 살해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찰스 맨슨 역시 사이언톨로지와 최후심판교회를 거친 인물이다.
자동차 절도 등의 죄로 연방 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찰스 맨슨은 감옥에서 150여 차례나 "청명 치료"를 받았으며, 1967년 결국 청명 판정을 받고 교도소를 나왔다고한다. 맨슨사건을 담당했던 빈센트 부글리오시 검사는 맨슨과 사이언톨로지를 연계 시킬만한 증거 자료가 없다고 했으나, 전 Family 멤버들의 증언에 의하면, 평소 맨슨은 자주 사이언톨로지를 들먹였다고 한다. 찰스 맨슨의 행동 대원이었던 브루스 데이비스 역시 최후심판교회의 런던 본부를 방문한 적이 있으며, 사이언톨로지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훈련 프로그램에 등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맨슨이 너무나 사이언톨로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 나머지, 심지어는 멤버 몇 명이 아예 사이언톨로지 쪽으로 전향해 버려서 맨슨을 열받게 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5달 후, 싸이언톨로지로 전향한 패밀리 멤버 중 두명이 LA에서 칼에 50여 차례나 찔린채 살해됐는데, 그중 도린 굴은 패밀리의 핵심멤버인 브루스 데이비스의 애인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의 용의자 역시 맨슨 패밀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허바드의 교회가 맨슨을 감싸고 돌진 않았지만, 이렇게 저렇게 맨슨 사건과 연루되어 비난이 쏟아지자, 허바드는 또 하나의 단체를 만드는데, 이는 사이언톨로지를 향한 연방 정부의 공개적인 비방과 조사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이후 사이언톨로지 측은 비난을 잠재우려는 노력으로 좌충우돌, 결국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소송을 걸기에 이르렀으며, 같은 목적으로 역시 온갖 더러운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 결과 1980년 대에 들어서자, 허바드의 아내를 포함하여 11명이 형무소 신세를 지게되었는데, 죄목은 정부 기관에의 위장 잠입과 공문서 절도, 도청 등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사이언톨로지는 일반인들에 의해서 정신분열증적 과대망상 집단이며, 사악하고 위험한 부패 집단으로 낙인 찍히게 되었다.
1982년 뉴욕에서 있었던 샘의 아들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기소가 되지는 않은 상태에서 용의자인 사탄숭배자 마이클 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