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문에서 읽은 글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딸만 있는 집안에서는 상주를 세우는 일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도 '여자 상주'를 어색하게 생각해
빈소에서만이라도 '남자 상주'를 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어디서 구해오라는 식이다.
사위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상주할 남자가 없어 소개팅한 남자를 데려갔다고도
한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선 먼 친척에게라도 부탁을 해야
하는 처지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이 단촐해지고 가까운 친척이
왕래하지 않는 일도 많아 점점 '남자 상주'만 내세우는 일에 이제는 장례 절차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다.
무남독녀인 내가 시집 가보니 시아버님 형제가
열 분, 시어머님 형제가 열 세 분이었다.
고조, 증조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상주 열 사람
뒤로 부인과 남편들이 나란히 줄 서서 스무 명이
곡소리를 내는데 낯선 광경에 어리둥절했다.
초하루, 보름 삭망 때마다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고모님 세 분만 살아계시다.
어머니가 차려준 밥만 먹고 직장 다니며 아무 분수도 모르던 철부지가 장손며느리가 되었다
수많은 대소사를 겪으며 실수도 많이 하고 '살아가는 데는 참을 忍자도 필요하다.'것을 깨달으니 뒤늦게 철이 들었다.
어른 모시는 법고 알게 되고 형제들의 우애를 지키는
것도 자연스레 배우게 됐다.
대소사 때에는 며느리와 동서, 조카들에게 가르치는 입장이 되니 격세지감이랄까?
대도시와는 달리 아직도 장례식장에 가면 남자 상주들이 빈소를 지키는 모습을 보게된다.
근조화환은 왜 그리 많은지.....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부고문자를 보내온다.
친척이 많았으니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많이도 다녔다.
시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시니 대신 해야할 일이 더
많아진 것도 한 몫했다.
아직 여자 상주가 빈소를 지키는 모습은 보지 못
했으나 이제는 "시대에 따라 장례 문화도 바뀌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례 절차는 대부분 집안의 남자 어른들이 주관했기에 보수적인 측면도 있으나 반드시 '남자 상주'만
고집하는 것도 무리다.
옛날에 오일장례나 집에서 돼지 잡고 며칠동안 떠들썩하던 결혼잔치는 없어졌으니 시대 상황에 맞게
조촐한 대소사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첫댓글
큰살림을 사셨네요
쓰신글에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까마득한 옛일이지요.
요즘 초하루, 보름 삭망하는 데는 없지요.
추석도 벌초하고 그자리에서 간소하게
치룬다네요.
AI시대인만큼. ㅎ
좋은글 올려주셨네요.
이제 남아선호사상이 아닌
시대흐름을 따라야지요.
그렇습니다.
남아선호사상도 있었겠지요.
요즘은 애들도 안 낳고.
하루 장례로 끝나는 일도 많다네요.
7월5일 사둔어른이 소천하시고 딸만 넷인 댁에 가족장으로 가족이 까만정장들 하고 사진찍고 장례식장없이 스몰 장례식 아름답고 멋젔어요 저희도 준비만하고 못갔네요.
예.
요즘은 간소하게 가족장도 많이 한다네요.
저희도 뿔뿔이 흩어져 있던 조상님들 산소를
가족공동묘지에 모두 모셨지요.
자손들도 한 곳에서 자신의 뿌리를 알게되고.
장손며느리로 할 일은 다한 느낌입니다.
요즘장례절차도 간편하게 치루고 어떤분은 하루만에 해 치운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망자의 입장에서 어땠을가 생각도 듭니다
장례 문화가 많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 단촐하면 빨리 끝내고
자손들이 많으면 삼일장은 하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사돈이 돌아가시면
팥죽을 써 가져가기도 했지요.
팥이 나쁜 액을 없애고
배고픈 시절이라 먹을거리로도 좋았으니까요.
그 후로는 라면 서너개를 비닐봉지에 넣어
주더군요. ㅎ
사망후 24시간 지나지 않으면 화장을 안해준 답니다.
아아!
그렇군요.
요즘은 거의 병원에서 돌아가시니까
의사의 진단서가 필수겠지요.
전통이 사라지니...............그 자리에 삭막함만 그리고 인간의 정리도 같이 없어지네요
예전에야 집에서 돌아가시니
온 마을 사람들이 같이 슬퍼해주고
문상도 와 주고 했지요.
이제는 요양병원이나 병원에서 사망하니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처리 순서로 여기는 듯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 하지만.
오히~!
무남독녀가
우찌하시다가
고생하신게 울엄마 보는것처럼 눈에 선합니다
시집에서 아무리
잘 해주신다 해도
남모를 애환이 있을듯,
우리 엄마도 외동딸로
종가집 장손으로 시집오셔서
시제를 비롯하여 제사,
집안 대소사를 치루다보면
유세차아~~로 시작해서
한해가 다 갔을것 같아요
할머니 구박도
많이 받았을거 같아요
그나마
아버지께. 엄마를 존중하셔서
엄마한테는 우리도
꼼짝을 못했지요
한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그래도 연세 들어
편히 쉬시다가
돌아가신게 조그나마
우리는 위안을 삼고 삽니다
종가집 장손, 참 힘들지요.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
벙어리 삼년
그때의 시집살이죠.
저는 시부모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병환으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철부지가 사람 됐지요. ㅎ
요사인 무빈소가 대접받는답니다
예.
요즘 아주 간소해졌다네요.
아들 하나, 딸 하나 시대이니 빈소인들
얼마나 허허롭겠어요?
시대 상황 따라가는 거죠.
새대에 따라
스몰위딩도
간단한 무빈소 장례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모든것이 힘든 세상이니까요.
아모르파티 님.
더운 날씨에 건강하세요?
시대 상황에 맞게 살아야지 어떡합니까?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빈소가 적적했어요.
저 혼자라서.
요즘은 애도 안 낳은 시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