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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화장실의 경우 대개 비장애인 화장실과 분리되어 설치된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분리를 몸으로 익히고, 화장실 공간에 마련된 두 개의 성별을 통해 이 세상의 성을 두 개로 한정하기도 한다.” - <공중화장실 모니터링 자료집> 중에서,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이렇듯 화장실이란 공간은 장애와 젠더의 이슈를 품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화장실’과 관련한 논의는 이제까지 이를 제한적으로 다뤘다. 논의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물리적 접근성이다. ‘장애인 화장실’ 설치 여부, 출입구 경사로, 화장실 내부 구조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공중화장실이 남녀공용으로 설치된 경우다. 비장애인 화장실은 남녀로 분리된 데 반해 장애인 화장실은 예산과 공간 부족을 이유로 남녀공용으로 설치된 경우가 있다. 장애인계는 ‘장애인을 무성적 존재로 보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법원은 지난 2013년 ‘지하철역 장애인 화장실을 남녀 구분하여 설치하라’는 강제 조정을 내렸다. 셋째, 장애인 화장실이 ‘비품 창고’로 쓰여 장애인이 필요할 땐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다. 사용 빈도가 적다는 이유로 사실상 ‘폐쇄’되는 거다.
이렇듯 장애인 화장실과 관련한 논의와 요구는 이제까지 주로 물리적 접근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물론 이는 인간의 기본 생리 욕구를 해결하는 ‘공간’인 화장실에 대한 기본적 접근조차 마련되지 않았기에 발생한 일이다. 그렇다, 화장실은 ‘공간’이다. 사람들은 공간에서 살아간다. 때로 내 의식에 앞서 공간의 형성 구조에 따라 의식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물음을 바꿔보자.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아래 센터 숨)은 센터 숨이 위치한 강동구를 중심으로 작년 한 해 화장실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그리고 ‘장애여성’의 시각에서, 즉 장애와 젠더의 시각에서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바라봤다. 이 글에서는 센터 숨이 모니터링 한 결과를 담은 <공중화장실 모니터링 자료집>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고자 한다.
# ‘여자화장실’에서 장애여성이 쓸 수 있는 것은 없다
여자화장실에 설치되어 있는 생리대 자판기, 파우더룸, 영유아 거치대, 에티켓벨. 하지만 센터 숨의 조사에 의하면 이중 휠체어 탄 장애여성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휠체어 이용 장애여성은 생리대 자판기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아야 한다. 이 시각에선 품목이 보이지 않는다. 파우더룸은 진입조차 쉽지 않고 설령 진입해도 테이블 하단이 막혀 있어 온전한 접근이 어렵다. 센터 숨의 조사에 따르면 “장애여성 대부분이 파우더룸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영유아 거치대는 공간이 넓다는 이유로 대개 장애여성 화장실에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장애여성은 사용할 수 없다. 무겁고 손잡이는 없으며 높이 조절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자화장실에 설치되어 있으나 장애여성은 '사용할 수 없는' 것들. 설계 구조에서부터 장애여성은 사용자에서 배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길을 가다 급작스럽게 월경을 하여도, 자신의 몸을 단장하고 사람들에게 보일 준비를 하는 공간도, 이 사회 여성들에게 '당연'할 뿐만 아니라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양육도 장애여성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주로 여성화장실에 설치된 에티켓벨도 장애여성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에티켓벨은 버튼을 누르면 음악 소리, 물소리가 나와서 용변 과정 중의 소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 이는 여성에게 정숙함을 강요한다고 비판받아 왔다. 그러나 활동보조인을 통해 신변보조를 받는 장애여성의 경우, 타인에게 자신의 몸을 노출하는 것이 일상이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몸을 보이지 않는 정숙함', 이를 장애여성은 수행하기 어렵다. 그래서 센터 숨은 장애여성의 시각에서 물음을 다시 던진다. “에티켓벨은 어떤 여성들을 위한 장치이며 무엇을 전제로 설치되었는가?”
# 남녀 분리된 화장실 앞의 트랜스젠더, 어디로 가야 하지?
“가정에서의 화장실의 경우 명확한 성별이 나뉘어 있지 않고, 남녀 구별 없이 하나의 화장실을 사용하지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중간지대인 공중화장실은 남녀라는 성별에 따라 나누어진다.” - <공중화장실 모니터링 자료집> 중에서
장애여성으로서 갖게 되는 젠더(gender)에 대한 고민은 ‘젠더 그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된다. 남녀로 분리된 화장실 앞에서 이용자들은 남녀 둘 중 하나를 택해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성 활동보조인과 함께 있는 상황이라면?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소수자라면?
돌봄노동에 속하는 활동보조 일엔 현재 남성 노동자보다 여성 노동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규정상 동성 활보가 원칙이지만 남성 이용자의 경우, 불가피하게 여성 활동보조인의 돌봄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성 이용자-여성 활동보조인’이 동행하게 될 때, 남녀 구분된 공중화장실 앞에서 어느 한쪽을 택해 들어간다는 것은 매우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다. 장애여성이 자신의 활동을 보조해주는 남편과 동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은 “가족 화장실과 같은 사회적으로 이성 간의 신변보조가 허용되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가족’ 역시 가부장, 이성애중심의 ‘정상가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사회의 가족제도에 포괄되지 못하는 관계들은 소외받을 수 있다.”
남자같이 생긴 여성, 여자같이 생긴 남성, 자신의 성별정체성과 외형이 일체하지 않는 사람, 트랜스젠더 등도 남녀가 분리된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몰래' 이용하거나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불안감으로 아예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센터 숨의 조사에 의하면, 당사자들은 종종 “방광염에 걸리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혹은 장소마다 자신이 갈 수 있는 화장실을 알아두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낯선 공간에 갈 때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편의시설을 걱정하는 모습과 닮았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화장실은 1인 화장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와 같은 남녀공용 화장실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강요되는 성별 분리가 없으며 사회적으로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수용”되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의 화장실이다. 실제 마포구에 있는 인권재단 사람 화장실 문 앞엔 ‘성별 구분 없는 1인 화장실’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