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식 / 엄마와 섬아이 『동화』. 국제PEN문학. 2018.9,10월호...2018.10.19
■ 안재식 『어른과 함께 읽는 아름답고 슬픈 동화』
- 엄마와 섬아이
。국제pen문학. 2018. 9,10월호
。 2018년 10월 19 발행
。 정가 10,000원
"어른과 함께 읽는 아름답고 슬픈 동화"
엄마와 섬아이
안재식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섬에 동찬이와 엄마가 살고 있습니다.
이곳은 이장 아저씨네와 완식이 할머니네, 성솔이 할아버지네 등 모두 합해 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섬마을입니다.
동찬이가 마을 한 바퀴를 휘돌아도 오 분밖에 안 걸리고, 섬에서 제일 높은 뒷산 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도 이십 분이 채 안 걸리게 작았습니다.
동찬이 아빠는 동찬이가 세 살이었을 때,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가 태풍을 만나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찬이 엄마는 아빠가 하늘나라에 산다고 하면서 보고 싶다고 푸념하지만, 동찬이의 생각은 다릅니다. 머리 위에 하늘나라가 있는데, 잠깐이라도 얼굴 한 번 보여 주지 않는 아빠가 원망스러워 별로 그리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동찬이를 보면서 완식이 할머니는 혀를 쯧쯧 찹니다. 그래도 동찬이는 완식이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완식이도, 성솔이도, 육지로 나가 뿌려 동찬이 혼자 심심하쟤?
동찬이 엄마가 물질을 나가면, 완식이 할머니는 동찬이를 불러 감자랑 조개도 구워주고, 친손자처럼 예뻐했습니다.
전기가 안 들어와 텔레비전조차 없는 동찬이는 깜순이와 가장 친한 단짝입니다.
깜순이가 누구냐고요?
깜순이는 이장 아저씨가 육지에 나갔다가 주워 온 강아지입니다. 동네에 한 마리밖에 없다 보니 어른들도 깜순이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깜순이는 이집 저집 모두 돌아다니며 제집처럼 잠도 자고, 먹이도 해결했습니다.
저 멀리 동찬이가 나타나면 어느새 달려와 꼬리를 흔들고, 뺨을 핥으며 난리를 칩니다. 동찬이는 엄마 다음으로 깜순이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물때가 되면 동찬이 엄마는 소라나 멍게, 해삼 같은 해물을 잡으러 바다로 들어갑니다.
동찬이와 깜순이도 엄마를 따라 바다로 가지만 발에만 물을 묻힐 뿐, 바닷속으로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엄마가 저만큼 헤엄쳐 가다가 손을 흔들면, 동찬이도 마주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냅니다.
망시리를 바닷물 위에 띄워 두고, 엄마는 자맥질할 준비를 합니다. 이윽고 엄마의 머리가 점점 작아지며 다리가 하늘로 솟구칩니다.
동찬이는 엄마가 바닷속으로 사라진 것을 보고 난 다음, 깜순이와 함께 갯바위에 앉습니다. 심심하면 바다에 돌던지기를 하기도 하고, 모래 위에 엄마한테 배운 가나다라…… 글씨쓰기 연습도 합니다.
깜순이는 동찬이가 써 놓은 글자를 따라 발자국을 남기며 뛰어다닙니다.
바다에서 엄마의 휘파람(숨비) 소리가 들리면,
엄마, 엄마!
큰소리로 동찬이는 엄마를 부릅니다. 그러기를 이십여 차례 되풀이한 후에야 엄마는 멍게나 전복 등을 망태에 가득 담아 헤엄쳐 나왔습니다.
동찬이는 엄마를 연달아 부르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물에 흠뻑 젖은 엄마에게로 달려가 덥석 안깁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는 바닷속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산호들의 예쁜 색깔이며 노래미, 쏠종개, 문어, 돔 같은 고기들의 신기한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그러다가 엄마는,
아이고 다리야, 내 다리야, 죽기 아니면 살기다.
중얼거리며 노래를 부릅니다.
요 바당에, 요 물에 들언 (여기 바다에, 여기 물에 들어가서)
좀복, 구젱기, 고득하게 잡아당 (전복, 소라, 가득하게 잡아다가)
혼 푼, 두 푼, 모이단 보난 (한 푼, 두 푼, 모이다 보니까)
서방님 술깝에 몬딱 들어감쩌 (신랑 술값에 모조리 들어가더라)
엄마는 동찬이가 잡은 손을 꽉 쥐기도 하고, 볼을 쓰다듬어 주기도 합니다.
동찬아, 내일은 엄마랑 육지에 가자. 동찬이 신발도 사고, 과자도 사고 그러자.
정말? 아유, 좋아라!
그렇게 좋아? 동찬이 좋아하는 자장면도 사먹을 거야.
그런데 엄마, 돈은 있어?
요걸 팔면 돼.
엄마는 갓 잡아온 해산물이 들어 있는 망태를 가리킵니다.
엄마, 정말이지? 꼭이에요, 꼭!
동찬이는 엄마와 깍지 낀 손으로 약속을 하고, 한달음에 완식이 할머니에게 달려가 자랑했습니다.
동찬이는 좋겠네.
응, 정말 좋아요. 할머니는 안 가세요?
할머니는 팔 것도 없고……. 안 간다.
할머니도 가시면 좋겠는데…….
동찬이는 완식이 할머니가 못 간다고 해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기분이 좋아 헤헤거렸습니다.
동찬 어멈, 내일 육지장에 가게?
네, 할머니.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별로 없어. 설탕이나 있으면 좋겠구먼.
제가 사다 드릴게요.
동찬이가 멀미하지 않을까? 그 먼 데를 데려가고…….
완식이 할머니의 걱정을 들으며, 동찬이는 엄마와 손을 꽉 잡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날 밤, 엄마는 동찬이 몸을 깨끗이 닦아 주면서 물었습니다.
동찬아, 엄마가 좋냐? 싫냐?
난 엄마가 좋아.
얼마만큼?
바다보다 더 많이…….
동찬이가 양손을 들어 크게 원을 그렸습니다.
그런 동찬이를 엄마가 꼭 끌어안았습니다.
동찬이는 엄마 냄새에서 비누 냄새도 난다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엄마도 바다보다 더 많이 좋다는 동찬이 말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날이 밝았습니다. 엄마는 소라, 전복, 멍게 등을 담은 바구니를 머리 위에 얹었습니다. 동찬이도 작은 가방을 하나 메고 배에 올라탔습니다.
뒤따라온 깜순이는 배에 오르지를 못하니까 끙끙대며 몸부림을 쳤습니다. 하늘을 향해 멍멍 짖어대고, 동찬이를 바라보며 애원의 눈빛으로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배가 떠났습니다. 깜순이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면서 동찬이네 집도 작은 점으로 보였습니다. 이윽고 외딴섬 전체가 작은 점으로 보이는가 싶더니, 안개 속으로 모두 파묻혀 버렸습니다.
육지에 도착한 엄마는, 이고 온 해산물을 시장 한 모퉁이에 벌여 놓고 손님을 불러모았습니다.
그 옆에서 동찬이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끊임없이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을 바라봤습니다. 기가 질렸는지, 아무 소리도 못하고 엄마 치맛자락만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어느덧 엄마가 갖고 온 물건이 모두 팔렸습니다. 엄마와 동찬이는 시장 한복판에 있는 자장면 집으로 갔습니다.
자장면을 먹으며 동찬이는 얼마나 맛있는 건지, 완식이 할머니와 깜순이에게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맛있는 자장면을 먹고 나서 엄마는 동찬이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시장에서 예쁜 옷을 골라 입혀 주고, 새 신발도 신겼습니다. 그리고 미장원에서 머리도 단정하게 잘랐습니다.
동찬이는 머리가 조금 띵했지만, 여기저기 구경할 것도 많고 갑자기 왕자님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엄마는 택시에 오르더니, 동찬이를 더욱 꼬옥 안아주며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동찬아, 섬에서 혼자 노니까 심심하지?
응, 심심해. 그런데 깜순이도 있고, 완식이 할머니도 계셔서 괜찮아.
그래도 사람 많고, 자동차도 많은 육지에서 살고 싶지?
응, 육지에서 살고 싶어. 엄마랑 같이 여기서 살았으면 참 좋겠어.
그럼 오늘 친구들이 많은 큰집에서 한 번 살아볼까?
응, 좋아. 엄마도 좋아?
응, 엄마도 좋아.
엄마는 좋다면서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동찬이는 엄마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면서, 엄마도 좋아서 우는 거로 생각했습니다.
한참 동안 달리던 택시가 멈췄습니다.
『천사보육원』이라는 큰집 앞에서 엄마가 동찬이를 안아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보육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동찬이 또래 친구들이 많이 있고, 장난감도 많았습니다. 동찬이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동찬아, 엄마도 오늘은 여기에서 잘 거야. 동찬이는 친구들과 같이 자고, 엄마는 어른들과 같이 잘 거야. 알았지?
동찬이는 장난감에 얼이 빠져 엄마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만지고 놀던 동찬이 옆에 엄마가 꼭 붙어 앉았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느라 힘들었던지, 동찬이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동찬이는 배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가다 보니 완식이 할머니네 집도 보이고, 깜순이가 마중 나와 꼬리를 흔들고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가 동찬이네 집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동찬이 얼굴에는 미소가 환하게 번졌습니다.
▶ 안재식작가는,
⦁국제PEN클럽 자문위원, 한국문인협회 편집위원,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중랑작가협회 회장, 소정문학동인
⦁시가곡 「그리운 사람에게」 등 15곡
⦁저서 「야누스의 두 얼굴」 등 2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