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말씀(2014.3.16) 말씀 /창세기 37-41장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우리가 알거니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구약 성경을 보면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셉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요셉이라 부르기도 하고, 아름다운 삶을 산 그의 삶을 보며 예수님의 그림자라 하기도 합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유독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비 이스라엘은 요셉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채색 옷을 지어 입혔고 이런 것들 하나 하나가 형들의 미움을 사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요셉은 17세의 소년이었습니다. 어느날 요셉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꾼 꿈이야기를 형들에게 하였습니다. 그 꿈은 형제들이 밭에서 곡식을 묶을 때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었고(6,7), 또 다른 꿈은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9). 그 꿈은 형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여 더 큰 미움의 대상이 되게 하였습니다. 물론 그 아비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서 그 말을 마음에 깊이 새겨두었습니다.
요셉의 꿈 이야기가 있은 후 어느 날 야곱이 그를 불러 세겜에서 양을 치고있는 형들에게 가서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고하라는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약 70(100)km 되는 먼 거리였지만 착한 요셉은 순종하여 형들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절호의 기회를 잡은 형들은 그동안 미웠던 요셉을 결박하여 애굽으로 떠나는 이스마엘 상고에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붙들고 눈물로 애걸을 하였지만 형들은 잔인하게 거절하고 아비에게는 짐승에게 찢겨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미디안 상고에게 이끌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렸고, 채색옷을 입고 아버지의 사랑 받던 요셉이 하루 아침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타지에서 요셉의 아버지 집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그리고 장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실의와 좌절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거나, 증오심 복수심에 이를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훌륭했던 것은 조금도 사람이나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어진 현실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런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는 형통한 자가 되었고, 보디발 주인도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위임하였습니다. 요셉을 인하여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치기 시작하였고, 요셉은 노예가 아니라 그 주인 가정에 복덩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요셉은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요셉에게 또 다른 큰 시험이 다가왔습니까? 그 후 약 10년이 지났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요셉은 충성스러울 뿐아니라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는데 보디발 아내가 음심을 품고 날마다 동침하기를 요구하였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질 수 없다고 계속 거절하였지만 막무가네였고, 급기야 집 안에 아무도 없을 때 요셉의 옷을 붙잡고 유혹하는 보디발 여사를 뿌리치고 도망하다 다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옥중에서도 그는 또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도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 다른 죄수들을 섬기면서 옥중에서 죄수의 본분을 다하였습니다. 이런 그를 하나님은 전옥에게 은혜를 입게 하셨고 옥중에서도 인정을 받는 모범수가 되었습니다. 전옥은 옥중 죄수들을 다 요셉에게 맡기고 그의 손에 맡긴 것은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바로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범죄하여 시위대장의 집안에 있는 옥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목자의 심령을 가지고 이 죄수들을 살피다가 어느 날 수심에 찬 이들을 보고 그들의 꿈 해몽을 해주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술맡은 관원장은 전직이 회복되고, 떡맡은 관원장은 형을 받게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해몽대로 떡 굽는 관원장은 죽임을 당했고 술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어 바로 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술맡은 관원장에게 전직이 회복되거든 자신을 기억하여 무고함을 증거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또 한가닥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철썩같이 믿었던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일을 잊어버렸고, 요셉은 기약 없이 또 2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젊은 날을 노예와 죄수로서 보낸시간이 자그마치 13년이 흘렀습니다. 10년의 노예생활 그리고 3년의 옥중생활 정말 말로다하기 힘든 날,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무고한 누명, 기나긴 감옥살이 모두가 괴로움만 당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을지 모릅니다. 잃어버린 내 청춘을 보상해달라고 통곡할 수 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처지에 놓일 때 이렇게 탄식합니다. “나의 삶은 어찌 이리도 기구한가?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 못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어려운 가운데 처하게 하시는가? ” 그런데 요셉은 이 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또 묵묵히 하나님의 때가 이룰 때가지 기다렸습니다. 시편 말씀은 이런 요셉의 시간들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105:17)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시105:18) 그의 발은 착고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시105: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시105:20)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시105:21)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시105:22)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하나님의 때, 즉 말씀이 이루어 질 때까지 요셉은 거기서 믿음의 연단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연단이란 미래를 위한 더 큰 뜻을 위한 준비 기간입니다. 이러한 요셉의 기구한 운명적인 삶에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다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요셉 본인 역시도 당장에 이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다 더 큰 뜻을 위해서 왕의 부름을 받고 나갈 때까지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이 것이 운명을 넘어선 섭리입니다. 순종과 기다림의 인내를 과정을 통해서 이러한 삶을 묵묵히 받아들일 때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되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 내면성있는 지도자로서 빚어지게 되고,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환란과 역경의 때에 사람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의심하며 자포자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럴 때 고난을 통해 더 깊이 믿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고,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멘!
한자 성어에 '새옹지마'(塞翁之馬)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에 한 농부는 애지중지한던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습니다. 농부는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당나귀도 늙었고 쓸모없는 우물도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는 흙을 파 우물을 메 워 갔습니다. 당나귀는 더욱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웬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 우물속을 들여다보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 더미를 털고 털어 바닥에 떨어 뜨렸습니다. 그래서 발밑에 흙이 쌓이게 되고 당나귀는 그 흙더미를 타고 점점 높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 무사히 그 우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중국 변방에 외몽고와 중국의 국경사이에 사는 변두리의 노인이 말을 기르고 있었는데 그 말이 어느날 집을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노인에게 가서 "얼마나 상심이 되십니까?"하고 위로의 말을 하는데 노인은 그까짓 말 한마리쯤 없어졌다고 무엇이 그리 대단할 것이 있겠는가? 하고 태연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난 후 그 말이 더 좋은 말을 데리고 노인의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이번에는 동네사람들이 술잔이라도 얻어 먹으려고 노인에게 가서 아니 나갔던 말이 더 좋은 말을 데리고 들어왔으니 경사가 났사옵니다. 하면서 넉두리를 떠는데 노인은 그까짓 말 한마리 늘어난 것이 뭘 그리 대단한가요 하고 반응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좋은 말을 타고 다니던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다리 병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또 안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동네의 젊은이들은 전쟁터에 나가 생명을 잃거나 다쳐서 상이용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져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서 무사하였습니다.
세상의 일도 그렇습니다. 인생 역전인줄 알았는데 인생 파탄인 경우가 있고, 불행인줄 알았는데 행운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안에서야 어떻겠습니까?
41: 1절을 보십시기 바랍니다. 하루는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꿈에 하숫가에 섰는데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잡아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한줄기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왔는데 그 세약한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기한 꿈이었습니다. 꿈 내용도 그렇지만 두 번이나 겹쳐 꾼 것도 이상했습니다. 바로는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 일어나 이 꿈을 인하여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바로가 꿈을 인하여 고민할 때 술맡은 관원장이 옛날의 일을 기억하여 바로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자신도 꿈을 꾸었다가 그 꿈과 같이 전직이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그 꿈을 해몽해준 한 히브리소년이 옥에 있다는 것을 소개하였습니다. 바로는 급히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옥에서 불러내었습니다. 요셉은 부름을 받아 곧 수염을 깎고 그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왔습니다. 이때가 만 2년 후로 요셉이 애굽에 팔려온지 13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요셉의 나이는 30세였습니다. 바로는 요셉에게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그대로 해주었습니다. 꿈 이야기를 다 들은 요셉은 이 꿈이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그의 꿈은 하나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증거하고(15,16,25,28,32), 하나님께서 곧 일으키실 것이며 사건의 임박성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몽을 해주었습니다. 이 꿈의 일곱의 숫자는 일곱 해를 가리키고, 반복한 것은 사건의 확실성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은 일곱 해 동안 큰 풍년이 들고 그리고 나서 일곱 해 동안 큰 흉년이 드는데 흉년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로 인해서 온 세상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단지 꿈해몽만 하지 않고 더 나아가 그 해결책까지 조언하였습니다. “바로 왕이여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땅을 치리하게하고,국중에 여러 관리를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모든 곡물을 거두워 저장하여 예비하도록 하십시오”. 숨을 죽이고 듣던 바로와 대신들은 요셉의 명쾌한 꿈 해석과 분명한 해결책을 듣고 요셉이야말로 ‘명철하고 지혜있는자’라오 리 일에 적격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바로는 즉석에서 대신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그리고 요셉을 향하여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 바로는 자신은 요셉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라고 하며 왕의 직권으로 애굽의 총리로 공식 등용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루 아침에 노예가 되고 죄수가 되었던 요셉은 하루아침에 대국의 2인자인 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로는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웠습니다. 그리고 애굽 전국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총리가 되어 7년 풍년을 그리고 7년 흉년을 지혜롭게 준비하여 위기의 세상과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마지막에 형들을 만났을 때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건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려하셨나니"(창 50:20
이상에서 우리는 요셉의 신앙에 대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날도 가시밭과 같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한 사람의 지도자를 키워가시며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 안에 운명이 없습니다. 그는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리는 불행의 운명에 처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바로 왕의 측근 시위대장의 집으로 이끄셨습니다. 거기서 노예로 일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정총무로 곡물관리를 하게 하심으로 장차 애굽의 흉년을 대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했어도 억을한 누명을 쓰고 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옥에서 바로의 술맡은 관원장을 섬게 하심으로 바로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 하나 한 사건 한 사건이 다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장 차 대 흉년에 이스라엘 온 세계를 구원할 일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럴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앞으로의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근시적 안목을 갖고 멀리 내다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고 낙심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였습니다.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아멘! 지금 힘들고 어려운 것 같지만 우리는 언제나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유수연 강사의 ‘내가 이런 일이나 할 사람이야?’ 칼럼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1997년도 당시 그는 영국에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IMF가 터지는 바람에 다시 돌아와 빚더미가 된 집안을 위해서 식당을 하며 낮에는 점심을 팔고, 저녁에는 호프와 양식을 팔며 하루 3-4시간 자며 일했습니다. 영국에서 공부를 해야 할 그가 이런 식당 일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 때 그는 밤마다 너무 서러워서 울었다고 합니다. “내가 장사하다가 평생을 늙어가겠구나.” 그 1년 이라는 시간을 장사하면서 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아깝고 억울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국으로 돌아가 다시 공부를 할 때라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영국으로 돌아가자마자 학교에서 바로 석사 논문을 써야 하는데 공부를 잘하는 타입이 아니라 논문을 잘 쓸 자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논문 주제가 서비스 업종에서의 고객관리였습니다. 알고보니 그가 인생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일했던 호텔이나 레스토랑이 논문이 100% 적용되는 곳으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고 학술지에 발표가 되면서 미국에 있는 하얏트 호텔에 취업까지 할 수 있다고 합니다. IMF 때문에 한국에 돌아와 서러워 울며 일했던 과거의 삶이 미래를 세우는 기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강의를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에서 장사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 장사를 할 사람이냐고” 못하겠다고 하면서 집에 곱게 있었으면 모든 가족이 어려움에 처하고 저 역시 영국으로 돌아가 공부를 마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현재 하는 일 원하는 일이 아닐지라도, 마지못한 일을 잠시하게 된다하더라도 그 곳에서 무조건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의 결과를 내십시오. 그러면 다음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은 요셉을 도우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도우실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들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안에 운명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통해서 운명을 섭리로 바꾸고 하나님의 원대한 비전과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김해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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