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골에 텃밭 가꾸랴 나무 가꾸랴 매실 수확하랴 혼자서 동분서주하는 그는
오직 부실한 아내만을 위한 다섯 번째 여행을 준비하였다.
둘이서 움직이는 여행인지라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
체력이 부족한 내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는 점도 장점.
무엇을 먹을 것인지 어디를 구경할 것인지 둘만의 마음만 일치하면 만사형통이라.
종자골 텃밭에 가듯 가볍게 떠나도 문제가 없는 여행.
중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중앙 고속도로를 거쳐 북단양 톨게이트로
진입할 예정이란다. 지난 4월의 여행은 초봄인지라 산수빛깔이 수채화처럼 고와서
지루한 줄 몰랐던데 비해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6월 산들은 무겁고 지루하니,
눈꺼풀이 무거워질 수도 있어 이때다 싶어 그의 노래를 신청해보는데.
오호! 애국자 여기 계셨다. 6월은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달이라나.
비목을 부르겠다나. 괜찮은 생각이다 싶다. 군대를 다녀온 사내 답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오오 영령들이여 평안하시라!
요즈음 그가 노래를 부르는 횟수가 줄어든다 싶었는데도 불구하고
갈고 닦은 짱짱한 실력 어디가랴. 처음에는 목에 무엇이 걸린 듯한 답답한 소리가 나더니
한 소절 두 소절 부를 때마다 일취월장,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소리로 옮겨간다.
성불사, 가고파 그리고 슬픈 노래인데도 박자가 신나는 삼각관계를 불렀다.
당연히 노래가 끝날 때마다 엄지를 치켜세우고 박수를 쳤다. 오호호호!
운전하면서 노래를 이렇게 잘 부르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천둥산 터널이며 산척터널, 그리고 4465m 나 되는 금성터널 등 산이 많은 지역답게
터널이 많았는데, 금성터널 입구로 진입하기 전이었지 싶다. 달려가는 오른쪽이었는데
삼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고속도로 쪽으로 확 트인 구릉이 보인다.
그 가운데쯤에 마을이 있고 구릉 아래쪽으로 굽어진 강물이 고요히 흘러가고 있다.
그림 속 풍경처럼 군더더기가 없다. 초록빛 산과 푸른 강물과 햇살로 눈부신 마을.
그 어디쯤에는 들꽃이 지천이리라. 강물에는 물고기가 펄떡이리라.
그곳에 가 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곳에서 살아도 좋겠다.
단양, 구비구비 강물같은 호수를 끼고 그 호수에 몸을 담근 초록빛 산들이 만들어내는 풍경과
처음 마주쳤을 때 나는 소리를 쳤다. 여보 아무데나 좀 차 세우면 안될까?
너무 멋지지 않아? 한 장 남겨야 하는데 그냥 지나쳐야 돼? 아깝네 아까워!
무리한 부탁이라나 뭐라나 아무데서나 차를 세울 수 없다나 뭐라나
눈에 새겨두라나 뭐라나 봤으면 됐다나 뭐라나 흥! 잘났어! 말하려다가
봤으면 됐지 라는 말에 동의하기로 했다. 뒤에서 차들이 줄지어 따라오고 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찰칵 찰칵 찰칵! 안타까움이었다. 한 장 건졌다.
사인암
높이는 약 50m이며 기암 아래는 남조천이 흐르며 소(沼)를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풍치를 더해주는 곳이다. 사인암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고려 때 유학자인 역동(易東)우탁(禹倬) 선생의 행적 때문에 지어졌다. 고려 시대 우탁이 임금을 보필하는 직책인 정 4품 '사인(舍人)'이라는 벼슬에 있을 당시 이곳에 머물렀다는 사연이 있어 조선 성종 때 단양 군수가 우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사인암이라 지었다고 전해진다.
여행을 오기 전 단양 팔경에 대해서 들여다봤다. 그 중 사인암이 유독 눈길을 끌었는데
직접 보는 모습은 더 경이로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마치 책을 쌓아놓은 형상이기도 한데
푸른빛이 도는 바위 조각조각들이 켜켜로 쌓여있는 모습이다. 긴긴 세월 바람과
비와 눈과 기후와 온도의 영향으로 변화된 지구의 흔적이 아닌가.
계곡물이 좀 더 많아지면 물에 비친 사인암은 얼마나 신비로울것인가.
경건하기까지 한 사인암 앞에서 사진을 찍어보는데 그 앞에 사람은 왜소하고 볼품이 없어보인다. 당연지사다.
단양에 도착. 이래저래 점심이 늦어졌는데 먹을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넓지도 않은 단양을 빙빙 돌다가 손두부집 발견. 멧돌두부집이란다. 어머니나
이웃집 아주머니가 뛰어나올 것 처럼 고향냄새가 나는 이름이다. 순두부를 시켰다.
젊은 안주인이 반찬을 열가지나 상에 올려놓는다. 빛깔로 봐서는 별로 입맛이
당기지 않는데, 가지나물부터 맛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맛이 담백하고 간이 맞는다.
순두부를 한 입 먹어보는데.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고소하고 단맛이 살짝 감도는
두부 맛이 입안에 가득 맴돈다. 서울 쪽 순두부처럼 해물이나 고기로
맛을 더한 것과는 다르게 그냥 얼큰한 국물에 순수하게 순두부만 가득하다.
고유의 풍미를 살렸다. 하도 맛있게 먹어서 안주인에게 나답지 않게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순두부 맛 최고인데요 잘 먹었습니다. 함박꽃같은 웃음과 눈인사를 주고받기를 기대했는데
어허! 젊은 안주인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일에 몰두, 묵묵부답이다.
우리가 문을 나서서 대여섯걸음을 옮긴 후에야 들려온다. 안녕히 가세요.
후후 충청도에 왔음을 실감한다.
무리한 일정보다는 천천히 한두곳 정도 구경하는 것으로 이번 여행을 계획하였으므로
일단은 숙소에 들러 충분히 쉬기로 하였다. 산으로 빙 둘러싸인 것은 물론 앞쪽으로는
강물같은 호수가 펼쳐진 단양 숙소는 베란다 창이 액자라도 된다는 듯 산 풍경이 가득이다.
숙소로 들어오기 전 휴게실 창에는 산과 호수가 가득이다. 휴식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푹 쉬고 싶을 때 찾아와 호수가나 산길 산책을 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맑은 공기를
끌어안고 빈둥거려도 좋겠다.
청풍호반 케이블카
숙소에서 40분 거리. 단양이 아니라 제천에 속해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비봉산 물태리역에서 비봉산역까지 2.3km. 육지 속의 바다를 보는 느낌과 바다
가운데 섬을 구경하는 느낌이랄까. 충주댐을 건설하면서 생겨난 빼어난 풍경이다.
월악산과 치악산과 소백산 등 겹겹이 둘러싸인 산능선들과 마주하는 동안 자연의
광활함과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노랑빛 초승달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나는 멋지게 나오려고 비스듬하게 앉아서 찍었는데,
그는 인터넷에서서 봤다면서 별 위에서 깡총 뛸테니 사진을 찍어보란다.
순간포착을 번번히 놓쳐 깡총 뛰어오르는 사진은 찍지는 못하였으나
그 대신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사진이 나왔다. 별을 따려는 몸짓인 듯
한 손을 들어올리고 무릎을 살짝 굽히고 다리에 힘을 주고 있다.
한 젊은이가 찍어준 우리 둘의 사진은 광각렌즈를 사용하여 풍경도 인물도 멋지고 과장되게 나왔다.
그는 키에 비해서 다리가 짧은편인데, 물론 내 다리는 한참 더 짧지만, 우리 다리가 늘씬하게 나왔다.
흐흐 짧게 나온 거 보다 백배 낫다. 가짜라해도.
숙소에 오니 저녁밥 시간이다. 호수를 끼고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즐비하다. 벚꽃이 피면
얼마나 장관일지 상상이 간다. 나무와 호수를 배경으로 그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었다. 그가 푸른 가지들과 호수와 어울려 예의 바르고 반듯한 영국신사처럼
찍혔다. 마음에 든다. 아래쪽에는 장미길을 만들어놓았고 많은 사람들이 산책중이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복이 많은 사람들이야 그치? 단양이 두 군데로 나뉘어져 있는데
우리의 숙소가 있는 곳은 수몰민들이 자리잡은 계획된 읍이란다.
강같은 호수를 끼고 언덕을 내려가면 재래시장이 있는 구시가지가 나온다.
양쪽 다 관광지라서인지 거리가 말끔하고 정돈되어 있다.
저녁은 맛있는 것을 먹어야 여행 맛이 난다. 단양은 마늘떡갈비가 유명하단다.
떡갈비에 냉면. 달달한 떡갈비 한 입에 냉면 한 젓가락이면 대만족인데
와우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휘돌아가는 호수와 산이 다가앉을 듯 옆에 앉아있다.
떡갈비 한 입에 풍경 한 입 그리고 실실 나오는 웃음 한 입까지 보태니
몸과 마음이 남산만해졌다. 집에 돌아왔을 때 거짓말 보태지 않고 내 몸무게가 증가.
몸무게를 늘이려고 그렇게 노력했을 때에는 그날이 그날이더니 여행중에 몸무게 증가라!
여행이 보약인가봐 여보.
나이 먹으면 잠이 없어진다 했던가. 부지런히 일어나 누룽지를 끓이고 집에서 가져온
싱싱한 상추와 찬밥으로 아침 뚝딱. 뒷산 산책길부터 올라가 보는데 경사가 심해서 내가 오르기에는 역부족.
호수 아랫길 장미길을 걸었다. 하트형 장미덩굴 아래서 하트 모양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그도 내가 가르쳐주는 대로 포즈를 취했다. 반듯하고
예쁜 하트를 만든 그가 나왔다. 나는 좀 귀엽게 보이고 싶어서? 흐흐 약간 옆으로 고개를
젖히고 하트를 만들었는데 에구 삐뚤어진 하트가 나왔다. 단양 구시가지를 거쳐 숙소로
돌아왔다. 단양에 가로수는 특이하게 우산 모양으로 깎아놓았다. 복자기 나무란다.
다섯 번째 여행. 마음에 두 개의 풍경이 새 애인처럼 특별하게 자리잡았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남한강 줄기와 깎아지른 듯한 높은 산들이 이루어내는 풍경들이었는데
처음 마주쳤을 때 느낌이 가장 강하다. 지나치면서 보았기 때문이리라. 렌즈에 담아놓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눈에 새겨두라던 그의 말처럼 내 마음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먼 훗날 그 풍경을 떠올릴 때마다 단양이 그리워지리라. 호숫가 푸른 나무 아래에 서 있던
영국신사같던 그를 끄집어내리라.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만난 그 노란별, 그 위에서 깡총 뛰던
그의 소년같은 모습과 웃음을 기억해내리라. 호수와 산이 한꺼번에 보이던 그 떡갈비집 창가를
기억해내리라. 하트모양 장미 덩굴 아래에서 장미처럼 정갈한 하트를 내게 보내던
그를 기억해내리라. 고마워하리라. 더욱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리라.
여행은 인생길에 피어난 장미꽃이런가.
문득문득 발걸음을 멈추어 소중하게 들여다보게 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