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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육군3사관학교 통합에 따른 배경,과정 입니다.
부산 정기총회시 25기 심영석 동문이 설명회를 한 내용으로
지금까지의 역사를 바로 인식하는 차원에서 글을 올려 봅니다.
동문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렇게 동문앞에 서니 15년 전 서울 무역센터에서
기수 통합대회시 사회를 맡아 진행한 기억이
눈에 선합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여러분 중에서도 몇 분 정도는
참여한 분이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방금 사회자로부터 소개받은 25기 심영석입니다.
아마도 저를 이렇게 소개하는 것 보다
3사 출신 기수통합 이전인 92년 신3사 6기
즉 현재의 25기가 현역의 신분에서 진급문제로
소송제기한 일대사건을 여러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그 당시 제가 출신별 차별 진급문제로 소송을
추진했던 사람입니다.
더 정확히 소개하면
과거 25기 대위 진급문제로부터
3사인의 기수통합과 3사교의 폐교방지까지
대책을 기안하고 이를 끝까지 추진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차별 진급문제로 부터 3사교 폐교방지까지
수많은 사람이 일을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해서 마무리 한 사람은
저 한사람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한사람이라는 유일성 때문에 지금까지
3사 기수통합과정의 역사적 진실이
가려지게 된 이유입니다.
그럼 지금 부터 3사출신
구 3사과정 1~19기, 신 3사과정 1~13기,
그리고 신설 3사관학교의 33기가 어떻게 연결됐는지
증빙서류를 첨부하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동문 여러분께서는
테이블에 있는〈3사 기수통합과정 설명〉
이라는 유인물과 증빙자료를 보면서
설명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기수통합 추진배경 설명입니다.
추진배경은 93년 신3사 6기가 차별 대위진급
문제로 대책 준비과정 중 3사교 폐교를
감지하고 전역과 동시에 25기의 협조로
3사관 사무소를 개소하여,
3사교 폐교방지를 위한 3사인의 기수통합을
추진하게 됩니다.
동문 여러분은 25기 대위진급 소송사건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아마도 소송을 제기했다가 취하한 것으로만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25기의 진급문제로만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께서 갖고 있는 “취지”라는 유인물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들고 있는 이 “취지”는 소송사건 1년 전에
3사교 폐교방지와 3사 출신에 대한
차별 진급문제 해결을 위해 최초로 작성한 것 입니다.
그럼 취지의 당면 과제란에 적혀있는
첫 줄을 누가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방금 어느 분이 읽은 대로 저는 설명회 때마다
“3사교 폐교방지를 위해 나서야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동문들은 현역이라는
신분적 제약 때문에 나설 수가 없었고,
또한 25기 최종 모임에서 당면한 25기의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것이 중론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회장이었던 저는
어쩔 수 없이 25기의 진급문제부터 처리해야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25기 진급소송 사건의 전말을
간단히 소개 해 드리면,
소송제기 후 주동자 및 가담자 엄중처벌이라는
초강경대응으로 나오던 군 지휘부는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일이 확대되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여론이 25기에게 기울감을 알게됩니다.
여기에 계신 동문 여러분도
그 당시를 생각해 보시면 잘 알 것입니다.
출신별 차별 진급문제로 육사를 제외한 모든 출신이
불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잘 한다”,
“잘 한다” 하면서 박수를 쳤고,
“끝까지 밀어붙여”라고 응원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우리를 심문해야 할 육군본부 범죄 수사단
수사관마저도 우리를 옹호했습니다.
그러자 드디어 인사참모부장 시절
참모총장 김진영과 함께 3사관학교 폐교계획을 입안한
수도방위사령관 안병호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게 됩니다.
3사 동문 여러분!
3사인은 3사출신 말살정책의 핵심멤버인 안병호와
김진영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전두환, 노태우와 같이 12/12의 주역이면서
그 추종세력 양성을 위해 언제든지 우리에게
위협을 가할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결국, 진급소송사건은 수방사에 모인
25기의 대표 22명 중 8명이 안병호를 면담하고,
8가지 요구조건 수용을 약속받고
소송을 취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때의 요구조건을 몇 가지 이야기하면
첫째, 전역 전 진급보장
둘째, 구속영장 취소 및 25기 일체의 처벌금지
셋째, 전역 전 취업알선
넷째, 후배들 진급보장
이외에 네 가지가 더 있습니다만 생략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요구사항 중 “전역 전 진급보장‘만 빼고
모두 들어주었습니다.
아마도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고 “하나회”의
내란설만 없었어도 보다 많은 진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회의 내란설로 인해 수도방위사령관
안병호는 보직해임 되고 “하나회”는 보직이동
조치되어 25기 진급문제는 종결되게 됩니다.
하지만 25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진급문제로 알게 된 3사교 폐교방지를 위해
저의 전 재산 1.000만원과 약간의 동기 지원금으로
3사관 사무소를 국방부 옆에 오픈하고, 3사교
폐교방지를 위한 기수통합 작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동문 선후배 여러분!
3사교 폐교방지를 위해 3사 출신의
기수통합이 왜 필요했겠습니까?
그 답은 갖고 있는 설명서의
동문상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조작된 의견수렴에 의해 구3사와
신3사는 분열되어있었고,
타출신 및 일반인은 새로운 사관학교로 인식하여
학교명이 개명된 신설 1기가 대세였기 때문에
이렇게 잘 못된 대세를 역전시키려면 구, 신 3사가 통합해서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수 잇기 운동 〉을 기안했고,
그 골자는 25기를 전국적으로 재정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3사 1~6기 예비역 대표진을 구성한 뒤
〈기수 잇기 운동 〉을 의결하고,
구3사와 기수를 통합해서
그 통합된 힘으로 3사교를 살리고
신설 사관학교 기수를 33기로 연결하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이 계획은 참으로 어렵게....어렵게...
계획에 의거 여러분이 보고 있는 설명서의 준비과정
마지막 줄에 있는 구신3사 예비역 기수통합대회를
구3사 동문회인 육삼회의 승인으로
서울에 있는 무역센터에서 갖게 된 것입니다.
이상으로 기수통합 준비과정 설명을 마치고
다음은 추진과정 설명입니다.
추진과정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기수통합 추진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선후배 동문 여러분!
이제 막 제대한 막내 기수인 25기가
구신3사의 대 선배님 앞에서 기수통합을 이야기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3사교 폐교를 막자고 했으니
얼마나 선배님들이 황당했겠습니까?
설명을 들은 뒤에도
“계란으로 바위치기”야
“힘이 없으니 할 수 없지” 라고 자포자기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신3사는 예비역 동문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당지역의 동기가 준 정보를 바탕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끈질긴 설득 끝에
신3사 예비역 기수 대표진을 한 자리에 모았고,
또 몇 차례의 모임결과 〈기수 잇기 운동 〉을
의결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준비과정 마지막 단계인 구신3사
예비역 기수통합대회를 추진하자 동문여론은
“통합 잘 했다.”
“기수연결이 될 것 같다”라는 긍정적 여론으로
반전되었습니다.
긍정적 여론으로 준비과정보다
추진과정은 진전이 빨랐고,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되는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요지부동이었고,
통합 동문회 마져 멈짓했습니다.
그래서 저는〈기수 잇기 운동〉을 보다 공격적인
〈3사인의 맥을 잇기위한 계획〉으로 수정해서
통합 동문회 운영진회의에서 의결시켰고,
그 주된 내용은 유인물 내용과 같이 서명운동에서
궐기대회 순으로 수위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3사관 사무소에서는〈3사인의 맥을 잇기위한 계획〉대로 서명운동, 진정서 제출, 면담신청을 했지만,
그래도 군부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소에서는
이 계획의 마지막 단계인 궐기대회를 결심하게 됩니다.
유인물을 보면 법적 대응단계 순서이지만
사무소의 재정이 적자운영이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바로 궐기대회로 추진하게 됩니다.
이때 저는 “장교출신이 명예가 있지 어떻게 궐기대회를 하냐” 고
같이 일하던 동기에게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동기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3사교를 나라는 개인으로 보고,
저 못된 놈들을 강도라고 봤을 때,
강도가 이미 나의 몸 일부분을 잘랐고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심장에 칼을 꽂으려하고 있는데
내가 강도에게 무슨 짓을 해도 도의적으로 나 법적으로 전혀 책임이 없다“라고 말입니다.
동문 선후배 여러분 이 말이 틀린 말입니까?
그들은 19기에서 3사를 단절시켰고,
신3사 13기에서 단절시키는 것도 모자라
3사교 마저 폐교시키려했지 않습니까!
다시 본론 들어가겠습니다.
이렇게 궐기대회 추진을 결정하고
재경지역 신3사 동문들에게는 “체육대회을 한다”고
국방부 옆에 있는 초등학교에 집결하라고
공지를 했습니다.
궐기대회 계획은 이랬습니다.
집결하게 되면 제가 선동을 한 뒤 군중심리를 이용해서
국방부 앞까지 시가행진을 벌이고,
정문을 차단 연좌농성을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움직임을 다 알고 있던 군부는
궐기대회 3일전 “3사 기수 연결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니
궐기대회를 자제 해 달라고 연락해왔고,
우리는 “만약 조만간 답이 없을때는 통합 동문회와
수만명이 궐기대회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체육대회로 진행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3일 뒤인 5월 24일 참모총장의
“3사 기수연결안” 검토 지시가 하달됐고,
3개월 뒤인 8월 28일 절실한 숙원이었던
대망의 “3사출신 기수연결안이 확정”된 것입니다.
기수연결안 확정은 참으로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눈물이 나왔습니다.
“드디어 해 냈구나”라고 자축했습니다.
그러나 감격의 순간은 잠깐이었습니다.
하루가 지난 뒤 같이 일하던
오창규 동기와 저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기수통합 추진을 누가 몰라주는 서운함 보다는
각자의 앞날이 걱정된 것입니다.
앞에서도 조금 언급 했듯이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사무실 운영은커녕, 우리의 앞날이 캄캄했습니다.
현역으로 2년 활동했고 , 다시 전역 후 2년 동안
상기문제로 활동하면서
가지고 있던 돈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전이었습니다.
근거할 집이 없어서 친척집에 있으면서도
처음부터 식비도 못 주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얼마지 않아 3사관 사무소 문을 닫고
각자의 살길을 찾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 당시는 휴대폰시대가 아닌 삐삐시대였고,
컴퓨터시대가 아닌 타자시대였습니다.
그렇다보니 3사관 사무소의 활약을 홍보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사의 기수통합과 3사교의 폐교를 방지한
3사관 사무소는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그 곳에서 일하던 사람들 또한
역사의 그늘에 가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기수통합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동문 여러분은 기수통합과정에 대하여 그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25기 진급소송문제로부터
3사 기수통합과정까지의 설명입니다.
3사 동문 여러분!
3사의 비운은 여기가 끝이 아닌가봅니다.
역사학자 토인비의 말대로 역사는 반복되나봅니다.
그 징후가 수 년 전부터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하고자하는 것은
각종 동문관련 사이트에 화제가 되고 있는
3사의 미래에 관련된 일입니다.
기사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육사와 3사를 통합하려한다.
장교양성 과정을 정리하려한다.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하려한다“. 고 하면서
3사교를 개혁의 핵심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관학교 통합과 장교 양성과정 정리가
군의 장래와 국가의 미래를 위한 순수한 의도라면
우리 3사인도 적극협조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의 발단과정과 진행과정이
4년 전 주민 여론에 밀린
육군 사관학교의 이전문제 해결과 그들의
기득권보호와 연관되어 있다는데 주목해야합니다.
우리는 동문회 차원의 대책위원회를 구성해서
상기 내용에 대한 의구심을 해명하고
그들의 술책에 대응해야합니다.
우리는 수차례 방심했고,
그로인해 기수가 단절되는 치욕을 겪었으며,
당한 뒤에 힘이 없음을 한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위기만큼은 상대할 전력이 충분하고
시기와 지형이 3사인에게 유리함으로 적절히 이용하면 아무리 강한 세력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위기는 3사인을 단합시킬 수 있는 기회이고 , 이를 계기로 3사 동문회는 한 차원 높은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큰일을 시작하려면 많은 동문들이
추상적인 두려움에 빠집니다.
“과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말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우리의 상대는 육사출신 전체가 아닌
소수 특정세력이며, 그들은 양지를 두려워합니다.
저의 실전 경험으로 말 하건데,
우리는 의외로 쉽게 해결 할 수 있습니다.
과거 25기가 3사교 폐교위기를 해결 했듯이
몇 번의 모임참석과 서명정도만으로도
3사인의 생존권은 보호될 수 있습니다.
저들의 의도를 꺾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동문 여러분이 할 일을 간단히 표현하면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만
이라는 표현은 위기상황 뿐만 아니라 평소
동문회 활성화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마음가짐입니다.
동분 여러분이 처한 상황은 너무나 다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률적 행동요구는 불가합니다.
개인 개인이 처지에 맞게 참여할 기회가 부여돼야하고
개인이 처지에 맞게 참여된 것이 존중되었을 때,
동문회는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후배 동문 여러분!
지금까지 3사의 역사가
불운의 역사요.
한탄의 역사였다면
앞으로는 희망의 역사요. 부흥의 역사가 되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는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화랑의 후예요.
교가에 있대로 화랑의 핏줄입니다.
화랑의 혼이 깃든 3사교는 화랑이 그래 듯이 온갖 고통과 역경을 극복하고 대한민국 역사 앞에 우뚝 설 것입니다.
앞으로 역사앞에
“부끄러운 3사인이 되느냐.”
“자랑스런 3사인이 되느냐.”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여기계신 여러분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번 위기는 위기가 아닌 기회입니다.
모든 여건이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3사인이 혼연일체가 돼서 3사 역사의 새장을
열어주길 당부 드리면서 설명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동문--선후배여러분!
요즘 날씨가 춥습니다. 건강조심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모두 이루어기지 바랍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조금만 동문회 활동에
관심 갖어 주길 바라면서 설명회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첫댓글 수고 많으셨군요! 항시 관심을 가질 것을 맹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