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 (794) 2012/06/24 모악관광단지-선녀폭포-대원사-대피소-무제봉-모악산정상-775고지-전망암-장군재-모악정-금산사계곡-금산사-주차장
천년 고도인 전주시 남쪽에 솟은 모악산(793.5m)은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일원에 위치하여 김제시 금산면과 경계를 이루는 명산이다. 금산사, 귀신사, 수왕사, 대원사 등을 품은 모악산은 높이 793.5m로 김제평야의 동쪽에 우뚝 솟아있어 호남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호남 4경의 하나로 경관이 빼어나고 국보와 보물등 문화재가 많다. 특히 이곳에는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세워지고 10여 점의 각종 주요문화재를 갖고 있는 금산사가 자리하고 있어, 찬란한 불교예술을 살펴 볼 수 있다. 모악산 동남쪽 중턱에 대원사, 수왕사 등 사찰이 있고 서쪽으로 귀신사가 있으며, 금산사 입구 금평저수지는 낚시터로도 적당하다. 특히 모악산은 예로부터 미륵신앙의 본거지로 여겨져 증산교의 본부와 더불어 30-40년대 각종 신흥종교 집단지로도 관심을 끌어 기록에 의하면 모악산 기슭에는 대원사, 귀신사, 수왕사등 사찰을 비롯 무려 80여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금산사와 벚꽃은 변산반도의 녹음, 내장사와 단풍, 백양사의 설경과 더불어 호남의 4경이라고 한다.(출처: 한국의 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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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 벌곡휴게소에서 아침을 거른 사람들의 식사와 휴식을 가진다. 휴게소의 겉모양은 잘 정비되어 있으나 내부는 오래된 휴게소라서 인지 손볼 곳이 엄청 많아지는 것 같다. 바깥의 분수대와 인공 연못은 웃음을 자아내는 남녀 악동들의 오줌싸개 모형이 있고, 비단잉어가 물을 가르며 힘을 과시하여 눈요기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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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우얀 차가 일키 많누?' 입구 주차장에는 차들이 만원이다. 전주 유일의 산이고 고도 전주의 인구가 산이 수용할 만큼을 넘어선 탓인지 모악산으로 가는 길은 만원이다. 시인 '고은' 의 '모악산 예찬'에서 '모악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라 한 게 실감이 난다. 아무도 거부하지 않는 낮으막한 품을 커다랗게 벌여 사람들을 품는 가슴인 게다. 높지도 험하지도, 까다롭지 않은 산이기에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이른 저녁 먹고도 거리낌없이 안길 수 있는 친근감이 있는듯 하다. 또 사람들에게 건강이라는 마력이 작용하고, 걷는 길에 관심이 기울어지고 있는 추세도 한몫을 한 게 아니랴. 사람들의 걸음들은 삶이나 이웃, 그리고 미지의 세계로 향하게 되고 그 걸음은 길을 만들어 소통을 원할하게 하면서 세상의 공간적인 장벽을 훨씬 더 가까이로 끌어들인다. 모악산도 얼기설기 얽힌 길들로 갈갈이 찢겨졌지만 동서남북 모든 곳을 통하게 하여 경계가 없어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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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오르는 길은 돌 계단으로 잘 정비 되어 있으나 샛길이 자꾸 생겨 머지 않아 누리고 있는 산행을 휴식년제로 돌려야 할 만큼이지 않으려나 염려스럽다. 한두 사람이 계단을 버리고 옆길을 걸으면 금방 새로운 길이 생겨 식생들이 잡고 있는 흙은 점점 떨어져 나가 깊은 골이 되고 거기가 불편하여 다시 다른 길을 만들고. 다른 길로 갈 수 없는 모악산 유일의 등산로를 만들 궁리가 참 필요하다. 휴식년제로 묶어도 가야할 사람도 있고, 가고 싶은 사람이 있기에 몰래 다니는 여지를 줄 게 아니라 완벽한 산행길을 만드는 중국의 삼청산이나, 황산, 태산 등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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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 돌계단 길, 정상의 삼분의 일을 오른 게다. 풍수지리에 능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역사 속에 지어진 절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사방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산을 끼거나 강을 앞두거나, 사찰이 자리잡은 곳은 늘 거기의 제일 명당이다. 대원사 마당에서 내려다 뵈는 아래 풍경이 대원사를 우뚝서게 하는 배경이 되고 뒤로 곶추 선 모악의 줄기가 절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근원이 되는 것 같다. 대원사 쪽문을 지나 계곡을 따라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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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좌로 돌다가 우로 돌다가 비탈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하여 구불구불 삼거리 능선을 향해 숨을 고르면서 오르도록 되어 있고 중간에 쉼터가 있어 정자와 긴 의자에 사람들이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능선을 3분 거리에 두고 옛날에는 막걸리를 파는 주막이었던가 종이 안내판에 '막걸리는 3분 거리의 삼거리에서 팝니다.' 란다. 암자를 향해가는 길목의 막걸리 장수가 술문화에 대한 반성이 빗발치는 요즈음의 세태에 밀려난 것 같다. 한 때 막걸리는 농주로서 논, 밭일을 하는 농군들의 고된 일을 잊을 수 있는 노동주로 허기를 모면하는 새참 이었는데, 엉뚱하게 술을 배불리 마시는 문화의 주폭으로 발전한 현실이 안타깝다. 아마 농군들은 막걸리에 몸을 녹이지 않았다면 고된 육체노동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인내로 버틴 농군들이 차세대의 밑거름으로서 보다 한걸음 나아가는 삶을 쌓도록 하여 오늘날 물질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는 게 아닌가. 요즈음 주폭으로 우리네 술 문화의 부정적 관점보다 삶으로서 애환을 함께 한 값이 쌌던 서민의 삶의 음료로서 부각하여 보다 삶을 행복하게하는 사람을 살리는 생수로서의 의미를 술에 포함시키는 정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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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에 막걸리 점은 성황이다. 땀을 많이 흘린 등산이라 목이 마를대로 말라 막걸리 한잔 2000원에 풋고추와 된장이 얼마나 반가울까. 한잔을 두사람씩 나눠마시고 정상을 향한 길을 나선다. 능선길은 비교적 완만하여 0.8Km 라도 거리가 단축되는 것 같다. | |
당초 이야기와는 달리 무제봉을 지나 정상 아래 전망대를 정상으로 삼고 왔으나, 정상석은 울타리 안쪽으로감춰지고 안내판에는 한국통신에서 정상의 송신탑 옥상을 개방한다 반가운 글귀가 자리한다. 전망대에서 훤히 트일 평야의 시원함의 기대는 자욱한 안무로 기대보다 덜하나 아래 구이 저수지의 물빛이 가뭄에 다소 시원함을 주나 줄어든 수량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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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에 매달린 거울의 익살에 빠져 나의 영상을 스스로 담아본다. 정상은 우거진 철탑의 숲이다. 좁은 계단을 따라 개방된 정상으로 가는 발길이 어째 정상이 이고진 철탑 무게만큼이다. 대원사 쪽의 전망대에서 정상의 벽을 한바퀴 돌아 둘린 철책을 넘어 거대한 인공물에 다가선다. | ||
모악산 정상 793.5 철탑의 아래 한 귀퉁이에 선 정상 표지판 앞에 선다. 산의 꼭대기에 인공으로 쌓은 높이가 모악산을 하늘 가까이로 한치 더 다가가게 한다. 거대한 철 구조물이 자연스런 것들을 정상에서 모두 몰아내고 모악산의 대표로 들어 앉아 사방의 모든 것들에게 호령하는 것 같다. 모악산 자신의 머리는 철탑에게 자릴 빼앗긴 게야. 우리의 손에 들 만큼 작게 축소된 컴퓨터인 스마트 폰들이 명산의 정수리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송구하다. | ||
철탑이 내준 옥상의 산보로는 시원한 바람이 일고 사람들이 사방을 전망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되어 사방을 보다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다. 앞으로 가야 할 능선이 줄을 선다. 옥상의 세귀퉁이를 가장자리로 연결한 철판 산책로를 한바퀴 돌면서 풍경이 뿌연 안개로 덮이나 정상에서 눈을 부드럽게 고정시키는 산줄기의 물결은 여전히 거기에 아름다움으로 있다. | |
끝없이 올라오는 사람들을 피해 금산사 쪽 능선으로 가닥을 잡고 짙은 숲으로 들어간다. 정상에서 금산사로 가는 오솔길은 울창한 나무가 터널을 이루어 서늘한 동굴을 걷는듯 하다가 계단을 올라 금산사 산릉의 정수리라 할 수 있는 헬기장에 오르면 정상의 턱밑임을 깨닫게 된다. '야, 저서 요까지 지척인디.' '야, 거기서 니 맘대로 가게 되냐. 터 놓은 구멍으로만 댕겨야지.' 허긴 그렇다 통신장비의 특수성 때문에 여기저기 통로를 쉽게 내주지 못하지 않은가 | ||
헬기장을 지나 전망암은 절벽 위에 난간을 만들어 시원한 조망을 제공하는 시설을 만들었으나 야영하는 젊은이들이 텐트를 치고 점령해 버린다. 공공의 장을 사유화해 버린 게다. 우습지 않은가. 전망암을 지나치자니 씁쓸하다. 언덕을 지나 평평한 능선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다. 이러저런 생각을 잊게하는 멋진 오찬이다. 피이티병의 얼린 맥주는 슬러시 맥주로 숟가락으로 퍼먹는 것도 야릇한 경험이다. |
장군재 마루에 선다. 광주의 무등산 장불재는 거대한 평원을 이루어 정상에서 사방으로 갈라지는 산릉을 모아 펼친 곳이나 이름이 비슷한 이곳은 세 능선이 만나는 꼭지점이다. 숲이 있고 숲을 바탕으로 많은 생물들이 자신의 영역을 일궈 살아가고 있는 현장을 우리는 재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길을 만들고 새로운 형태의 숲을 강요한다. 모악산이 김제나 호남 평야의 한가운데 우뚝 선 중심으로서 모든 걸 어우르는 물과 대지의 원류로 있다고 하나 장군재가 보여주는 건 하늘과 내가 선 산줄기의 얼마되지 않는 이정표가 선 언덕이다. 그런 언덕들이 산을 여러 갈래로 오르게 하는 길의 교차로인 게지. | ||
계곡이 나타나고 산에서 사람의 숲으로 내려선다. 계곡은 오랜 가뭄으로 목이 탄다. 100년 먼의 가뭄, 내 평생 이런 가뭄은 처음, 중국의 홍수, 물풍선 등 기상 이변을 표현하는 새로운 말들이 퍽 귀에 익숙하다. 자연의 순리를 편리로 바꾼 우리네가 맞아야할 당연한 결과를 하늘 탓 하는 게 모순이디. | ||
금산사에 내려섬은 모악산에서 나옴이다. 유난히 보물이 많은 금산사를 문화재 관람료 없이 살짜기 뒤로 들어온 셈이다. 고찰답게 늘어선 거목들이 사람과 건물까지도 감싸안고 금산사의 대표 건물 미륵전은 오가는 이들을 압도한다. 미륵전 안 대불의 웅장한 미소는 누구에게라도 말없이 티없는 삶을 살라고, 가진 것 툴툴 털고 비워서 메울 자리로 남겨 두라고, 인연 슬프게 맺지 말라고, 빈손으로 살라고 그렇게 세상 이치를 깨우치라고, 모든 삶의 깨우침을 넘치도록 담은 듯하다. | ||
5층 석탑 옆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 앞에서 석가를 생각해 본다. 왕자로서의 기득권을 버리고 생로병사의 이치를 깨우치려는 참선을 가르친 게 누구나 벽을 보고 풀리지 않는 삶의 화두로 씨름하란 깨달음은 아닐진데, 우리 사는 세상은 빈번한 착각 속에 세상살이를 잣대에 올리는 것이 아니랴. 모든 삶이 똑같은 삶이 아닐 게고, 사리탑 앞에 엎드린 사람들의 사유역시 각각의 몫이기에 사람의 삶의 모습도 똑 같은 게 없는 게다. | ||
사람들이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둔 자연은 때로 우리에게 경이로움으로 우리에게 역사를 가르친다. 우리의 고정된 관념 속에는 덩쿨로 자란 등나무를 상상하지만 일반 관엽수처럼 자란 등나무가 눈길을 끈다. '흔히 일주문의 목재는 싸리나무라는데 맞은가.' 일행중 한 사람이 의문을 제기한다. 싸리나무가 어떻게 그렇게 굵은 게 있느냐 라는 의문이다. 허나 문경 어룡산에는 사람의 두 손으로 감싸 쥘만큼 굵은 싸리가 현존한다. 일주문 기둥의 싸리나무 진위는 각자의 생각에 맡겨본다. 싸리라는 식물의 우리눈에 보이는 현상에 따른 말의 어떤 의미에 나의 생각을 둘 껏인지 과학적으로 증명할 건지 그게 무슨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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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산사 주차장도 만원이다. 산을 내려온 사람들은 하산주 한잔으로 산행을 마무리 한다. 전문 산꾼들은 간단한 먹거리로 급히 마무리하고 산의 감흥을 안은채 버스를 타고 산행지를 꿈 속에 담는 것으로 모악산을 과거에 흘린다. | |
멋진 암봉을 이고 산 기슭 전체를 정원으로 숲속의 별유천지 자신의 공간을 멋드러지게 꾸며 놓은 산장을 지나는 길에 본다. 온통 멋진 정원수가 산을 덮고 유아독존의 집을 구축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공간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꿈을 꾸겠지. 나도 저런 집을 한번 가져 봤으면, 또는 꼭 가짉 거야 라고. 허나 모든 건 우리네 마음 속에 있음을 성현들이 깨달음으로 얻은 걸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시시처처 존재하는 구도자들로부터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데서 벗어나 나 스스로의 거울을 드는 게 삶을 곧게 끌어갈 힘을 얻는 기본이 아니랴.. |
2012/06/30 경북 문경 산북의 산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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