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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主式會社 드림 원문보기 글쓴이: 평공
어리석은 이모(李某)는 드림정신(dreemism)으로 살아보기를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먼저, 드림정신이란 무엇이며 왜 그것으로 살아보기를 제안하는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드림정신이란 무엇인가?
드림정신은 ‘드림’을 주제로 삼는 정신입니다. 지금 내게 맡겨져 있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본디 주인에게 잘 돌려드릴 수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천코자 하는 정신입니다.
바야흐로 자본주의 이념이 온 세계를 장악한 지금입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싫든 좋든, 자본주의 체제의 몰락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드림정신은 자본주의를 지지하지 않거니와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거꾸로 된 세상을 한 번 뒤집어 바로 된 세상에서 살아 보려는 것뿐입니다.
자본주의가 다스리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돈(자본)의 힘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돈을 많이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나, 돈의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람들 관심이 아무쪼록 더 많은 돈을 가지겠다는 쪽으로 쏠려 있습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전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권좌에 앉아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입니다.
자본주의에 반대하여 일어났던 사회주의가 사실상 붕괴되자 사람들은 그것 보라고, 과연 자본주의 이념이 옳았다고, 그렇게들 생각하나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행복을 풍족한 물질 소유에서 얻을 수 있다는 착각으로부터 자유롭기는커녕 오히려 그 착각을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상누각(砂上樓閣)은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드림정신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일 수 있을까에 골몰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지금 있는 돈을 잘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게 있는 것을 남들과 잘 나눌 수 있을까, 오로지 그 일에 골몰합니다. 지금 내게 없는 무엇을 바깥으로부터 구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지금 내게 있는 무엇을 이웃과 더불어 잘 써보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생명을 비롯하여, 온갖 것들을 일방으로 값없이 받았습니다. 받았으면 내놔야 합니다. 그것은 우주의 원리이기 때문에 누구도 어길 수 없습니다. 어기면 곧 죽습니다. 숨을 들이쉰 다음 내쉬지 않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송장입니다.
하느님한테서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싫은 분은 ‘천지부모’라고 해도 좋고 ‘우주’라고 해도 좋고 ‘절대자’라고 해도 좋습니다.) 일방으로 받았으니 그것을 돌려 드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드림(出)’은 ‘들임(入)’의 열매이자 씨앗입니다. 옛 어른들은, 보이는 부모에게 돌려드리는 것을 효(孝)라 하고, 보이지 않는 부모에게 돌려드리는 것을 충(忠)이라 했지요. 효든 충이든, 부모로부터 먼저 받지 않았다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없는 자식이 무슨 효를 하겠으며 없는 백성이 무슨 충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아침마다 잠을 깨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모두 하느님께서 값없이 주신 은혜임을 깨닫고, 그에 답하여 지금 내게 있는 것을 내어드리자는 것이 드림정신입니다. 숨을 들이쉬었으면 내쉬어야지요. 그래야 다시 들이쉴 수 있고, 그래서 삽니다.
보십시오. 부모님이 이 몸을 낳아주시지 않았다면, 그 숱한 생명들이 내 뱃속에서 분해되어 영양소로 바뀌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내가 살아 있겠습니까?
드림정신은 ‘드림’을 주제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드리려면 그것이 내게 있어야 합니다. 없는 것을 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드림정신은 말합니다, 그 무엇도 내어드릴 것이 없는 그런 사람은 없다고. 우리는 저마다 놀라운 것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찾아보면 누구에게나 이웃과 더불어 나눠 가질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서 이웃과 나눠 가지는 것이, 그것이 ‘드림’입니다.
지금 내게 없는 어떤 것을 구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얻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게 있는 것을 이웃과 더불어 잘 나눠 가지는 일은 맘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회사 사장이, 어떻게 하면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찾아서 실천하는 데 밤낮으로 골몰한다면, 그래서 실제로 말단 직원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그 회사에 노동쟁의가 일어나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미국이 막대한 군대 예산을 헐어서 이라크 재건에 쓰고 핵무기를 비롯하여 무장해제에 솔선한다면 누가 성조기를 불태우며 “반미”를 외치겠습니까?
무슨 터무니없는 헛소리냐고요? 어떻게 그런 망상을 하느냐고요?
예, 그렇습니다. 드림정신은 아마도 이 시대에, 아직은, 헛된 망상이나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회사 사장이 사원들의 복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거나, 미국이 무장해제에 앞장서서 세계 평화를 이끌어 가는 일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금 자기에게 없는 무엇을 바깥에서 구하는 일에 관심하는 대신, 자기에게 있는 무엇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일에 관심하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드림정신은 거대한 세계담론을 모릅니다. WTO가 어떻고 유목주의가 어떻고 세계화가 어떻고 그런 것 잘 모릅니다. 사실 그런 것 잘 모르지만, 그저, 오늘 내게 주어진 이 몸과 시간과 주머니 속의 돈 몇 푼을 어떻게 하면 그것이 필요한 이웃들과 더불어 잘 나눠 쓸 수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현장에서 실천코자 애써볼 따름입니다.
왜 드림정신인가?
답은 간단합니다. 자기에게 지금 있는 것을 잘 내어드리는 것이야말로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부처님한테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인류가 성현(聖賢)으로 불러 모시는 어른들이 모두 무엇을 바깥에서 끌어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것을 세상에 내어주는 방식으로 사셨습니다.
지금 있는 것으로 흡족하지 않아서 그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려고 허덕이는 한, 행복하고 건강한 삶은 가망이 없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리지도 않은 물건을 찾겠다고 이리저리 헤매는 것과 같습니다. 심신만 고단하지요.
드림정신을 제안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어리석은 이모(李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냄으로써 참으로 평화스런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아무개는 그동안 스승님께 배운 바를 좇아서 그대로 살고자 나름대로 애써보았습니다만,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과연 스승의 가르침이 진실한가를 여러분과 함께 실천을 통하여 입증해 보고 싶을 따름입니다.
“너에게 있는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를 내게 다오. 내가 그것으로 너를 포함하여 다른 많은 굶주린 배를 채워주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스승님께, 어디 과연 그 말씀대로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을 내어드려 보자는 것입니다.
무엇을 드릴 것인가?
우리에게 있는 것을 드려야겠지요. 아무리 능력있는 사람이라도 자기한테 없는 것을 줄 수는 없으니까요.
따라서, 드림정신으로 살고자 한다면, 눈길을 자기 바깥쪽에서 자기 안쪽으로 돌려야 합니다. 먼저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야 그것을 주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닙니까?
혹여, 바깥에서 무슨 요구가 오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래도 드림정신으로 살려면 눈길을 안으로 돌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바깥에서 오는 요구를 들어줄 수 있겠는지, 들어준다면 어떻게 들어줄 것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드림정신으로 사는 사람은 남의 요구에 응해주는 것으로 능사(能事)를 삼지 않습니다. 때로는 요구를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내게 없는 것을 달라고 할 때, 그것을 다른 데에서 구해다가 주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 돈을 꿔달라고 할 때, 수중에 꿔줄 돈이 있고 꿔줄 마음이 있으면 꿔주지만 그럴만한 돈이 없거나 꿔줄 마음이 없으면 꿔주지 않는 것이 드림정신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드린다는 말은 현상태에서 조금도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명분으로든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일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여린 새싹도 하늘 무게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일은 없습니다.
어떻게 드릴 것인가?
드림정신으로 사는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남에게 내어주되 “내 것을 남에게 준다.”고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편이상 “나”니 “내 것”이니 하고 말은 합니다만, 우주로부터 독립된 ‘나’란 실재하지 않는 관념일 뿐이며 따라서 ‘내 것’이란 말은 아예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내 것이 있겠습니까?
‘나’라고 생각하는 이 물건도, 이 물건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저 물건도, 모두가 한 분 하느님 것입니다. 그러니, “내게 있는 것을 드린다.”고 말은 합니다만 사실은 “내게 주신 것을 드린다.”고 해야 합니다.
‘드림’은 ‘베품’도 아니고 ‘줌’도 아닙니다. ‘베품’은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하는 것이고, ‘줌’은 비슷한 사람끼리는 할 수 있지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드림’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드리려면 당신보다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드릴 수가 없거든요. 드림정신으로 산다는 말은, 따라서, 언제 어디서나 낮은 자리로 내려간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예를 들어서 내가 내 딸에게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이 만일 불가능하다면 드림정신으로 살아가는 일 또한 불가능한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어디서는 가능하고 어디서는 불가능한 것일 경우, 그 ‘어디’를 정한다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내 딸에게 무엇을 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드리는 것을 받는 사람이 내 딸이 아니라 내 딸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드린다는 것은, 사실은, 그 중심에 계시는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 눈길을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중심에 계시는 주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드림정신으로 살아보자는 말은, 그러므로, 우리 눈을 새롭게 떠서 만물을 새롭게 보자는 말이 됩니다. 인식을 전환한다고 할까요?
불가(佛家)에선 보시(布施)를 가르칠 때 삼공(三空)의 원리를 말합니다. 주는 자도 공(空)이요 받는 자도 공이요 주고 받는 물건 또한 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주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고 주고 받는 물건도 없고, 오직 형체도 흔적도 없는 ‘주고 받음’ 그 자체만이 있게 됩니다.
드림정신으로 살아보려는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드렸다는 생각이 계속 남아 있어서 ‘드림’에 따라오는 무슨 보상 따위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런 속마음의 계산을 말끔히 지우고, 그냥 드리고 그냥 들이는 일을 연습, 또 연습하는 가운데, 참된 드림이 실현됩니다.
삼공(三空)의 원리를 그리스도인의 말로 바꾸면, 하느님(주님)께서 당신 것을 당신에게 주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그냥 해보는 말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러합니다. 이 원리를 온전히 깨닫고 드림정신을 삶에서 실현할 때 우리는 그야말로 아무 한 일이 없는, 하느님(주님)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누가 만일 기꺼이 하느님의 꼭둑각시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을 실천에 옮긴다면 그는 결코 꼭둑각시가 아닙니다. 자기 뜻을 실현하는 꼭둑각시란 없기 때문입니다.
드림정신으로 살아보자는 것은,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기도하고 온전히 당신을 내어드림으로써 결국 당신의 뜻을 이루신 예수, 그분의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 실습해보자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올시다.
2006년 4월 9일, 종려주일 새벽
관옥 이현주
첫댓글 "主式會社 드림" 멋지십니다. 이현주 목사님!! 이 지기는 드림이라 해서 꿈(dream)을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 우리의 삶이 "드리는 자세"로 살아갈 수 있다면, 곧 봉헌의 삶이 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수도자의 삶이 될 수 있겠지요. 부디 주식회사 드림이 이 땅에 임하기를 빕니다. 좋은글 소개해 주신 영원한방랑자
님께도 고맙다는 말씀 드립니다.
드림(出)’은 ‘들임(入)’의 열매이자 씨앗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드린다는 말은 현상태에서 조금도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명분으로든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일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여린 새싹도 하늘 무게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일은 없습니
편이상 “나”니 “내 것”이니 하고 말은 합니다만, 우주로부터 독립된 ‘나’란 실재하지 않는 관념일 뿐이며 따라서 ‘내 것’이란 말은 아예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내 것이 있겠습니까?..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좋은걸 배우고 갑니다, 드림정신을 갖고 살아아간다면 더욱 성실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
지금 존재하는것은 ..모든것은 다 받았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것을 드려야한다 ..저는 꿈의드림인줄 알았습니다 .;어제밤에 목사님 강론듣고 알았습니다 ..목사님 ! 언제나감사드립니다
그리구요 ..머리에 들어잇는 지식보다 감정 .감성으로 드려야한다 ..마음속깊이 새겨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