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류씨 용와공과 양파공 이야기를 모르시는 분은 없을거라 생각되지만 전주류씨 사랑방 블로그 류병훈 덕분에 몰랐던 이야기 많이 배우게 되었다.
용와공 양파공 이야기를 자세히 보니 저의 6대조 설죽 이병은 雪竹 李秉殷의 장모님 가문 이야기라서 옛 역사를 생각하면서 한자 지면을 빌려 글을 남겨봅니다. 설죽 이병은과의 이야기는 수정재집에 자세히 나오지만 다음으로 미루고자 합니다.
그저 시간 날때 틈틈이 취미로 보학공부 하는 외손이오니 많은 양해를 부탁드려봅니다.
최근 일본의 경제 규제로 인해 한일관계가 급랭하자 우리나라 국민의 국민의 반일 감정을 자극하려고 하고 있다. 안입고 안먹고 안쓰는 검소한 삶이 예전에는 미덕이었다면 지금은 쓰지않으면 경제 사이클이 돌아가지 않고 실업이 늘고 부도로 이어져 경제 파탄으로 결국 종결된다.
그러니 검소가 미덕이라는 말에 꼭 첨가해야 하는 것은 베푸는 미덕이 있어야한다. 그래야 칭송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주일한국대사를 불러 감정으로 무례하게 대하는 것을 보니 일본이 규제하니 역사인식이 임진왜란으로 가고 일제치하로 자주 언급되며 왕산 허위 후손이야기로도 가는것을 보았고 역사인식의 잘못인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도 보았다.
나라사랑에는 누구나 앞장을 선다고 하지만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임진왜란의 발생한 책임을 지고 선조가 총애한 영의정 아계 이산해는 영의정을 서애 류성룡에게 물러 주고 유배생활을 하면서 자나깨나 나라걱정을 하였고 그것을 기록한 내용이 아계집에 수록되어 있고 서애 류성룡은 징비록을 남겼다.
그리고 안동 하회마을에 낙향하였고 필자의 선조도 외조부를 따라 안동인이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1735년 영조시대 안동역사 아니 경상도 역사 좁게는 영남 남인의 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진기록 5인이 문과에 급제하였다.
당시 안동 출신인 류관현, 류정원, 이상정, 김성탁,김경필 등 5명이 급제를 하자,영조가 ‘안동의 비바람에 다섯 용이 날았다’ 고 했다고 하였고 퇴계 이황 이후 쇠퇴한 학풍의 재도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부흥을 알리는 신호였다.
정재 류치명의 아들이 세산 류지호이다. 학풍은 이러하다.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점필재 김종직-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 갈암이현일- 밀암 이재- 대산 이상정- 정재 류치명이다.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1777~1861)은 퇴계의 적전(嫡傳)을 이어받은 대학자(大學子)다. 본관은 전주(全州)요 자는 성백(誠伯), 호는 정재(定齋)로 한평(寒坪) 류회문(柳晦文)의 아들이며 대산 이상정의 외증손이다.
정재 류치명 이후 정재의 제자들은 모두 항일독립운동가가 되었고 우리나라를 일본에서 구하는 항일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흔히 삼대 독립운동가 5인을 배출, 협동학교를 유치함으로 표현하지만
정재 류치명 선생의 아들 세산 류지호는 척암 김도화, 서산 김흥락과 을미의병을 주선하였으며 그의 아들 수촌 류연박은 참모장을 담당했고, 파리장서에 서명했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병합되자 내앞의 협동학교가 문을 닫았다. 이를 한들의 정재종택에 유치하여 무상 대여하고 청송으로 이거했다.
협동학교는 이곳에서 7년간 5회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19년 삼일 운동 후 강제 폐교되었다. 수촌의 아우 류연성은 챗거리 만세운동 주관자로 7년 형을 받고 대구감옥에서 고문사 했다.
수촌의 아들 일창 류동시는 챗거리 만세운동을 주선했고 류동저는 민족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이것 말고도 수없이 있지만 정재 류치명의 제자 후손들은 모든 것에 선두로 나아갔고 그 기반에 정재 류치명의 선조 가학 정신이 숨어 있다.
바로 용와 류승현과 양파 류관현의 이야기 일것이다. 물론 더 윗대로 가면 학봉 김성일과 관련이 있다.
용와 류승현과 양파 류관현의 이야기, 더 넓게 보면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이야기 모두 관련되어 있지만 자세히 보면 대한민국의 역사의 중심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태풍 다나스가 지나고 나니 잔잔한 바람만이 지난날 역사를 이야기 해 주듯이 한일간의 관계도 제자리를 찾기를 바래보면서 항일독립운동의 역사 산실 정재 류치명의 선조 양파 류관현의 이야기로 잠시 떠나보려고 한다.
필자가 왜 이런 글을 쓰냐구요 물어 보신다면 필자와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옳으신 지적입니다. 필자의 직계 할머님의 모친의 지난 외가이야기이기에 때문에 역사를 잊지않기 위해 글로 남겨주고자하다.
가계보> 필자의 6대조 설죽 이병은 雪竹 李秉殷의 배위 의성김씨 김곤수의 따님. 의성김씨 김곤수는 약봉가 숭정처사 표온김시온 후손으로 노애공 류도원의 사위이다. 노애공 류도원은 생부가 양파 류관현이며 양파공의 형인 용와공 류승현의 후사를 이었다.
설죽 이병은의 사위도 전주류씨 수곡파 후손이다. 물론 필자의 백부도 전주류씨 수곡파 후손이며 필자의 고조부 배위도 전주류씨 휘 희잠의 후손 동림 류치호이며 항일독립운동으로 근대화로 전주류씨와 한산이씨와의 후손들이 흩어지고나서도 현재 필자의 숙모님도 전주류씨 수곡파 후손이다. 통혼이 너무 많다보니 다음에 지면이 허락되고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한산이씨 # 전주류씨 수곡파 # 정재 류치명 # 양파 류관현# 항일독립운동 #용와 류승현 # 청계종택 # 목은이색 #대산 이상정 # 아계 이산해 # 임진왜란
[다음카페] 한산이씨 대산 이상정 통정대부 형조 참의 양파 유공 행장[通政大夫刑曹參議陽坡柳公行狀 ] 의 행장을 짓다.-1탄
한산이씨 대산 이상정 통정대부 형조 참의 양파 유공 행장[通政大夫刑曹參議陽坡柳公行狀 ] 의 행장을 짓다.-1탄오늘 태풍 m.cafe.daum.net
첫댓글 안동의 의성 김씨와 전주 류씨의 한산이씨 관계 알고 갑니다~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