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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생가와 묘소를 찾아서 ①
-노무현 대통령 묘역(墓域)-
지난 1월 6일 지관대종사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있던 그날을 기하여 영결식과 다비식을 참 관하고, 해인사 홍제암, 해인사를 참배한 이야기와 그 이튿날인 1월 7일, 장인ㆍ장모님과 비니초님과 더불어 김해로 백우거를 몰아 봉화산 정토사를 찾고 봉화산 정상에 호미 든 관 세음보살을 참배했다는 이야기도 올린 바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 연장선상에서 살펴볼 까 합니다. 그 때로부터 두 달이 지나갔지만 기억은 생생합니다.
1월 7일 2시경, 봉화산 정토원을 내려와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 묘역 먼저 찾았습니다. 노대통령 생가와 사저, 묘소는 정토원 아래 자리하고 있어 지근한 거리입니다. 아래는 봉화산에 오를 때 사자암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자바위에서 내려다 본 고 노무현대통령 생가 및 묘소 그리고 봉하마을
바로 앞은 노대통령 묘소이고, 그 앞이 사저이고, 사저 왼쪽 옆이 생가이고, 도로 좌측이 추모관입니다. 그 앞은 봉하마을이지요. 노무현 대통력 묘역은 이등변삼각형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정점에 다시 삼각형 모양을 한 것이 수반(水盤)이고 가운데 중앙선 중간 지점 이 헌화ㆍ헌향대이고, 바로 앞이 묘소라 할 수 있는 너럭바위입니다. 바로 앞에 나무가 심어져 있고, 가로로 되어 있는 검은 부분이 곡장(曲墻)입니다. 지난 번 정릉을 참배하면 서 들어 보신 명칭이지요? ^^
봉화산 아래 봉하마을입니다.
부엉이바위 앞의 노란 바람개비
"밝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8년 노무현 대통령 신년사 중에서-
노무현대통령 묘역(墓域)
여기에 있는 안내문을 옮겨 사진을 보시는데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묘역은 '국가 보존 묘지 제1호'로 지정된 묘역으로 국민들의 눈물과 정성으 로 조성된 세계 최초의 '국민참여묘역'이며, 대통령의 삶과 정신을 기억하며 자신을 비우 는 추모와 성찰의 광장입니다.
참배방법
1. 수반을 보며 마음을 정결히 한 후, 중앙 박석을 따라 헌화대로 향한다. 2. 헌화대에서 헌화와 묵념을 한다. 3. 너럭바위에서 추모의 시간을 갖는다. 4. 추모의 시간이 끝나면 가급적 중앙 박석을 피해 다시 수반쪽으로 나온다.
묘역의 조성원리
대통령의 유지실현
마을 가까이에 화장한 유골은 안장하되 '아주 작은 비석'만 남기라는 대통령님 유언에 따 라, 지하에는 안장시설을 하고 검소하게 남방식 고인돌 형태의 낮은 너럭바위를 봉분처럼 올렸습니다.
너럭바위란 지하의 안장시설을 덮고 있는 남방식 고인돌 형태의 낮은 바위를 말합니다, 너럭바위 아래에는 대통령님과 함께 참여정부의 기록과 극민들의 추모영상 DVD를 함께 안장했습니다.
국민참여 방식으로 조성
1만 8천여 명이 넘는 국민들의 참여와 기부를 통해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글을 1만 5천여 개 박석에 새겼습니다.
사람사는 세상 형상화
너럭바위에는 따로 비문을 새기지 않고 '대통령 노무현' 여섯 글자만 새기고, 박석 하나하 나에 새겨진 국민들의 존경과 추모, 애도와 사랑의 글 전체가 비문을 대신하였습니다.
추모의 글이 새겨진 박석과 자연 박석이 어우러져 모역 전체가 사람들이 사는 세상(마을, 도로, 냇가 등)의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묘역의 모습 주차장까지 왔다가 정토원에 먼저 들리고자 했기에 어른을 모시고 산길을 오를 수 없어 뒤 로 후진한 다음 산을 빙돌아 정토원에 갔었지요. 우측의 바위는 사자 바위라 합니다. 저 바위에 오르면 이 일대가 훤히 다 보입니다.
수반(水盤) -작은 연못-
마음을 비추는 거울. 묘역에 들어가기 전 마음가짐을 정돈하는 곳입니다.
묘역을 찾은 사람들
중앙의 박석을 따라
비니초님은 앞서 가고 장인 장모님이 박석에 새겨진 글을 보시며 한 발 한 발 걸으십니다.
박석에 새겨진 추모의 글
이 글들을 읽으며 지나가는데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혀졌습니다.
절절한 추모의 글이 가슴을 메게 합니다.
장인ㆍ장모 어른께서 헌향하시고 참배하시는 모습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만히 서서 추모하시는 모습입니다.
추모의 묵념을 올립니다.
노무현 대통령 묘역
무엇을 읽을시나요?
곡장(曲墻) 및 비석받침강판 안내
『처음에는 검정색이지만 표면이 부식되면서 붉은색으로 변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암적색 으로 정착된다. 매일 변하는 모습이 다르고, 햇빛과 그늘에 따라 달리 보이며, 비오는 날 에는 짙은 수묵의 색채를 보인다. 그 변하는 과정이 세월과 함께하여 기억을 담기에는 이 만한 재료가 없다. 그 성질 때문에 이 재료의 벽체는 긴장을 불혀듯 조성한다. 많은 기념 시설에 이 재료를 쓰는 까닭이다. -묘역을 설계한 승효상 교수-
묘역 뒷편 벽(곡장)과 비석 받침판은 특수한 재질인 내후성 강판입니다. 5년 정도 산화되 면서 표면에 녹이 슬면, 그 녹이 보호피막이 되어 남아있는 내부의 철을 영구적으로 보호 합니다. 내후성 강판으로 만든 곡장(묘역 뒷편 벽)과 비석받침은 시간이 흘러 세상과 사람 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과 가치를 지켜 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묘소 '대통령 노무현'이란 여섯 자만 달랑 새겨진 너럭바위... 그리고 비석받침강판에는 생전 의 노무현 대통력의 어록이 두 줄로 쓰여 있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노무현 대통령 어록 중에서-
마을 가까이에 화장한 유골은 안장하되 '아주 작은 비석'만 남기라는 대통령님 유언에 따 라, 지하에는 안장시설을 하고 검소하게 남방식 고인돌 형태의 낮은 너럭바위를 봉분처럼 올렸습니다.
너럭바위란 지하의 안장시설을 덮고 있는 남방식 고인돌 형태의 낮은 바위를 말합니다, 너럭바위 아래에는 대통령님과 함께 참여정부의 기록과 극민들의 추모영상 DVD를 함께 안장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9년 7월 10일 정토원에서 49재를 마치고 이곳에 안장되었습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묘소
이 묘비명을 쓰신 분은 가산당(伽山堂) 지관대종사(智冠大宗師)이십니다. 아. 묘비명을 안 타까운 마음으로 쓰셨을 큰스님도 이미 입적한 후이니 참으로 마음이 울컥하더군요. 이곳 을 찾은 하루 전 해인사 보경당 앞에서 영결식을 치르고 해인사 연화대에서 다비장을 지켜 본 저는 이곳에서 다시 지관 큰스님이 쓰신 묘비명을 대하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대통령의 묘소를 찾으신 어르신
삼가 노무현 대통령의 왕생극락을 빕니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신 후 조계사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분향했던 기 억이 떠오릅니다. 그때 벅차오르는 슬픔을 안고 이렇게 추모의 시조를 남긴 적이 있지요.
"노무현 대통령님 왕생극락 하소서. 무진장 힘들었다 원망하지 말아라. 현생에 못 이룬 꿈을 내생에서 이루소서."
삼가 노무현 대통령의 왕생극락을 빕니다.
묘소를 지켜보는 아, 부엉이바위
원불교 좌산님의 추모글
김대중 대통령의 추모글
이 글을 남기신 김대중 대통령도 고인이 되셨으니... ㅠㅠ
지관스님의 글
一念普觀三世事(일념보관삼세사) 한 순간에 삼세사를 널리 관하니 無去無來亦無住(무거무래역무주) 오고 감도 머무름도 또한 없다네.
이 글을 쓰시면서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셨을 겁니다. 일념보관삼세사 무거무래역무주... 큰스님도 그렇게 오고 감도 머무름도 없는 세계에 드셨습니다. _()_
가산지관스님의 추모의 글
갔지만 가지 않았네! 국민을 위한 불멸의 그 열정은.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지못미...
추모의 글이 묘역에 가득합니다.
노란 바람개비 앞에서
사람사는 세상 노란 바람개비... 이 바람개비는 그냥 돌지 않습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 직된 힘에 의해서 팔랑팔랑 돌아갑니다.
묘역참배 기념
평소에 한 번 김해 봉하마을에 다녀오고 싶으셨다는 어르신, 이제 그 원을 성취시켜 드려 서 기분이 한결 좋습니다. 어느덧 이제 노년에 이르러었으니 누가 모시지 않으면 움직이 기 힘듭니다. 자주 이런 기회를 만들어 드리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박석을 굽어보며 거기에 새겨진 글을 읽으니 세상에 이런 대통령도 다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묘비명을 쓰지 않은 이유를 알겠습니다. 저 수많은 박석에 아로 새겨진 글이 그대로 비문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다음은 노무현 대통령 생가와 추모관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 다음은 노무현 대통령 생가와 추모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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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우님 잊지 않고 올려주셔서 편하게 볼 수 있네요. 감사합니다. _()_
늘 염두에 두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늦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_
현장에 가 보면 그런 마음이 더해집니다. 박석 하나하나에 그 숱한 사연이 적혀 있더군요. _()_
아주 간소한 묘소입니다. 봉분도 잔디가 없네요. 정치에 대해 모릅니다만 권력을 휘두른 자들에의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것을 느끼곤 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_()_
봉화산에 올라 오리농법으로 지었다는 들판을 바라보고 묘역에 들어 박석하나하나를 밟고 가기도 미안한 마음과 안타가운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_()_
백우님 장인 어르신 장모님 추모 하신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합니다.한번 가보려 해도 쉽게 안되는군요.
정치와 권력이 무엇인지 참 마음 아픔니다_()_
예, 어르신들이 그렇게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권불오년인데도 권력이란 비수가 날카로웠습니다. _()_
평화롭게 웃던 모습이 슬프게 떠 올랐습니다.
서거직전에 봉하마을에 들렸어 같이 사진한장 찍지요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지금은 인기가 넘 좋아 찿아오는이 없고 조용할적에 같이 기념사진 한장 남깁시다 이렇게 말씀 하셨는데
그래도 종로에서 왔다고 하시니까 참 반기는 모습이 ...
서거 전에 다녀오셨군요. 찾아오는 국민들과 스스럼없이 만나는 대통령을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_()_
많이 생각나시겠네요.
소담한 분이셨는데 마니 안타까웠답니다_()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