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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 장진, 류승완 편
감독과의 대화
그토록 할말이 많았을 줄은, 미처
몰랐다. 한 사람이 두개씩, 세개씩
끝도 없이 쏟아놓던 질문들, 질문들. 열혈 영화광들이 열혈 영화감독들을 만난 자리는 스파크가 일 만큼
열띠었다. 하긴, 그동안 관객이 감독을 접선할 수 있는 기회는 너무
없었다. 고작 영화제에서 영화상영이 끝난 뒤 20분 정도 마련되는 짧은 Q&A 시간, 아니면 대학에서 간헐적으로 열리는 특강이 다였으니.
창간 7주년이 되어 <씨네21>은 ‘진이 빠질 만큼’ 길고도 긴 감독과 관객간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고 장진, 류승완, 김지운, 박찬욱 감독을 섭외했다. 최장 3시간 동안 관객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자리, 감독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했다. 많은 독자/관객이 찾았고, 때로는 감독의 입이 헤벌어질 만한 사랑 고백을, 때로는 감독의 이마에 진땀이 흐를 만한 집요한 추궁을 서슴없이 했다. ‘도대체 감독은 어떻게 되냐’, ‘시나리오는 도대체 어떻게 쓰냐’, ‘내 나이 때 당신은 뭐했냐’ 등등 젊은 관객이 젊은 감독에게 쏟아놓는 질문은 거침없이 솔직하고 절절했다.
그 현장의 이야기들을 모아 여기 옮긴다. 이 글을 읽으며, 그 자리에 있었던 ‘여러분’들은 지면에 다 옮겨지지 않은, 객석의 모두가 공유했던 그날의 열기, 혹은 때때로의 ‘썰렁함’을 되새길 수 있으리라. 그 자리를 찾지 않았던 독자들은 행간의 숨소리와 박수소리, 웃음소리를 맘대로 상상해도 좋을 것이다. 당신의 상상대로, 그날 그곳은 그랬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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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장진, `메이드 인 자기`에 대해 수다를 떨다 (1)
“영화 많이 좋아하지 마세요, 아류가 돼요”
이날은 원래 박찬욱 감독과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전주영화제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상영행사에 참가하고 올라오던 박찬욱 감독은 6시쯤 차가 너무나 막혀 제 시간에 닿기 힘들 거라는 소식을 전해왔고, <씨네21> 진행자는 부랴부랴 5월2일 순서로 예정돼 있던 장진 감독님을 모셨습니다. 박찬욱 감독을
만나러 참석했던 독자 여러분, 그리고 5월2일 장진감독과의 대화를 기다리던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립니다. 이탈리아의 ‘우디네영화제’에
참가했다가 서울에 온 지 불과 2시간 만이라 경황도 없으셨을 텐데 특유의 재치있는 솜씨로 행사를 이끌어준 장진 감독님께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장진입니다. (박수) (마이크를 뽑아들고 일어서며, 사회자석에 앉아 있는 남동철 기자에게) 여기 계속 앉아 계실 건가요? (남동철 기자, 웃으며 내려간다. 단상 테이블에 걸터앉는 장진 감독.) 제가 이탈리아의 무슨 영화제에 갔다가 오늘 2시간 전에 서울에 왔어요. 그래서 시차적응도 안 되고, 한국말도 많이 잊어버려서…. (웃음) 이 자리가 참 애매해요. 무턱대고 ‘젊은 감독들, 관객을 만나다’라고 해놓았는데, 관객 만나서 뭘 어쩌자구? (웃음) 게다가 이 네명을 다같이 젊은 감독이라 그러면 어떡해요. 박찬욱 감독이나 김지운 감독은 나한테 삼촌뻘인데…. (웃음)
저는 지금 32살이에요. 71년생이죠. 학교 다닐 때는 연극을 했고 안 믿겠지만 연기를 전공했어요. 그러다 만들어보고 싶어서 연출을 했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 써보고 싶어서 써도 봤고…. 솔직히 영화가 꿈은 아니었어요. 저는 영화를, 1995년 말 <개같은 날의 오후> 시나리오를 쓰면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모래시계>의 김종학 감독이 불러서 제이콤 들어가서 <쿠데타> 준비하다가 잘 안 돼서 심심해서 쓴 게 <기막힌 사내들>이었어요. 1주일인가 열흘 만에 썼는데, 김종학 감독이 보고 “이런 거 누가 하냐, 네가 해라” 해서(웃음) 원한 것보다 빨리 감독을 하게 됐죠. 그리고나서 ‘반공영화’ <간첩 리철진>, ‘킬러권장영화’ <킬러들의 수다>를 했죠. 단편이나 디지털 단편작업도 조금 했구요. 기타 연극도 좀 했어요. 그런 절 더러 ‘크로스오버’라는 말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전 제가 그냥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해요.
감독 되기는 쉽다, 감독으로 살기는 어렵다
비가 오는 날 여기까지 찾아왔다면 저보다 몇배 더 영화에 대한 광팬이겠죠. 오늘 여러분과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할 텐데 제 얘기의 30% 정도는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심지어 책에도 나와 있는 것일 테고, 30%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것들일 거고, 40%는 나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새빨간 거짓말일 거예요. 그런 걸 염두에 두시고… 제가 요즘 한국영화판에 대해 할 수 있는 얘기를 좀 해볼게요. 대한민국은요, 감독 되기 가장 빠른 나라인 것 같아요. 감독이 되는 길은 크게 4가지가 있죠. 옛날식으로 충무로에서 연출부부터 시작해서 10년 걸려 조감독, 감독 되는 거. 근데 확률은 얼마 안 돼요. 다음, 1990년대 중반 ‘검증 안 된’ 유학파들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거의 그 바람은 사그라들었죠.
다음, 국내에 자생적으로 생긴 독립영화인들의 경우예요. 어디 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하다못해 졸업작품이 눈에 띈 후 감독이 된 경우인데, 그들은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죠. 허진호, 정지우가 그 예예요. (웃음) 단편영화에서 먹을 거 다 먹고 온 분들이죠. 다음이 시나리오를 쓰다 감독이 되는 경우예요. 라인 프로듀서 시스템 안에서 차라리 좋은 각본가가 감독 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돌았고, 그 예가 김지운, 김기덕, 장진이죠. (웃음) 시장에 빨리 나간다는 장점은 있는데 전문 시나리오 작가가 없다는 문제가 있어요. 지금 유학파 바람은 죽었지만, 단편이나 조감독 출신 중에 모든 사람들이 ‘0순위’라고 하던 사람들은 첫 작품은 실패해도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은 성공하더라구요. 송해성 감독이 그 경우예요. 요즘은 20대 감독들도 많은데, 감독되기는 쉽지만 감독으로 살기는 어려운 나라가 또 한국이에요. 저는 언제나 ‘이 작품이 유작이 될지도 몰라’ 하며 만들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감독은 불행하고 위험한 직업이에요.
(이 밖에도 배급사의 힘, 라인프로듀서 시스템, 시나리오 작가의 현실, 배우 캐스팅의 문제와 대안, “실력으로 승부해야지, 젊은 사람들 중에는 쪽팔려하는 사람도 있다. 태권도 쿼터를 생각해보라”는 스크린쿼터에 대한 딴죽 등 한국영화계 전반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고, 곧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됐다.)
저는 장진 감독님의 광적인 팬이거든요. 휴가 나와서 내일
복귀하는데, 원래 5월2일이 장진 감독님 차례라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순서가 바뀌니 인연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좋아서 여기저기 (팬클럽에) 가입을 했는데, ‘필름있수다’는 서울예대 사람들 위주의 조직이더라구요. 저는
연대라서…. 어떻게 안 될까요?
조직이라니까 좀 그렇네요. (웃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학연이에요.
서울예대도 막 가고 싶어 간 학교는 아니었어요. 저는 전문대를 7년
다녔는데(웃음) 친척들은 절더러 ‘의대 다니냐’고 했죠. 군대 어디
있어요? 빨리 군대 마치고, 졸업하고 들어와요.
저는 연극 전공으로 입학해서 영화로 전공을 바꾼 연극영화과 학생인데요, 감독이 하는 일 중엔 연기지도도 있잖아요.
연극을 하고 영화하는 게 어떤 도움이 되나요?
도움이 많이 돼요. 제가 스물여섯살 때 첫 영화 연출을 하면서, 최종원, 양택조, 이런 분들을 상대했거든요. (웃음) 저는 연극할 때 연기지도를 하는 게 아니라 연기제안을 해요. ‘이게 잘 안 되면 이런 것 어떻겠냐.’ 그래도 그래도 안 되면 ‘미안하다. 너 딴 역할 해라’ 뭐
이렇게. (웃음) 영화 갓 연출하는 사람들이 헤매는 이유가 카메라 스위치 켜기 전에 배우를 고작 5번밖에는 못 만나는 데 있어요. 연극하는
사람들은 한 작품 올리기 위해 배우를 50번은 만나잖아요. 저는 <택시
드리벌> 때는 당대 최고배우라는 최민식씨를 60번은 만났어요.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그렇게 해본 감독은 배우를 어떻게 대하고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죠. 연극은 직접 연출을 안 하더라도 연습현장에
있기만 해도 도움이 될 거예요.
학교에서 영화소모임을 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하고 치이고 부딪히고, 영화만들기가 너무 힘든데, 현장에서의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뭐, 카리스마죠. (웃음) 그게 웃을 문제가 아니에요. 카리스마가 얼마나 현장을 부드럽게 하고 모든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데요. 인상, 욕,
골질, 이런 게 카리스마는 아니에요. 이 작품에 관한 모든 것을 감독은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어야 해요. 그게 카리스마예요. 예를 들어 점심을 언제 먹냐 하는 문제가 있다고 해요. 감독이 몇컷을 얼마 만에 찍을지 딱 예상을 해서 그대로 연출부가 식당 예약을 하고 먹는 거하고,
잘 몰라서 예약하라고 해놓은 시간에도 계속 촬영 못 끝내고 있는 거하고, 얼마나 현장이 달라지는데요. 감독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유연성도 중요하죠. 감독이 너무 꿍하거나 너무 예술가면 안 좋아요. 가끔
조명부 막내 어깨도 주물러주고, 그의 이름도 불러주고… 저, 그런 거
잘해요. (웃음)
<킬러들의 수다>에서 화면을 둘로 분할한 장면이 참 재밌었어요. 어떻게 생각해내신 거죠? 그리고 캐스팅 기준은 어떤
건가요?
화면 분할한 건, 대단한 건 아니고 한번 해본 거예요. 근데 그런 치기어린 테크닉은 한달 후에 보면 후회가 돼요. ‘내가 왜 이렇게 까불었지?’ 하게 돼요. 그저 관객이 뭘 좋아할지 반발 앞서 알고 그걸 한 것이거든요. 캐스팅은, 물론 스타가 좋아요. 관객이 많이 들어서가 아니라 스타는 이름값을 하거든요. 신현준이나 원빈이나 제가 캐스팅할
때만 해도 그렇게 스타는 아니었죠. <킬러들의 수다>는 그래도 제 영화 중에서는 호화 캐스팅이에요. 근데 그들, 정말 이름값을 하더라구요. 신현준보고 눈만 부라린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예요. 정말 그 가격대 그런 배우 없어요.(웃음) 아무도 모르던 장면간 연결문제 같은 걸 딱딱 집어냈죠. 원빈은, 뭐 꽃미남이라고
하잖아요. 전, 처음 보고 기획사 사람한테 ‘애 옷도 안 사주냐’고 했어요. (웃음) 원빈은 카메라가 어떻게 클로즈업 들어가도 다 각이 나오는 흔치 않은 배우에요. 스타의 이름값이라는 것, 하지만 저는 그것 때문에, 내가 원하는 걸 바꾸지는 않아요. 한석규 캐스팅이 안 돼서 영화
엎어지고, 그런 건 말도 안 되잖아요. 내가 만들려는 이야기보다 위에
있는 건 없어요.
하지만 제작사하고 부딪히는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요.
하면 할수록 귀를 많이 여는 편이에요. 그들 말이 나중 가면 맞거든요.
그나마 내가 썼기 때문에 저는 ‘싫으면 관둬요’ 하고 시나리오 들고 나오는 수가 있어서 내맘대로 할 수 있는 거죠. 소소한 것들은 귀를
점점 열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게 어긋나면 누워야지, 별 수 있나요.
(웃음) 배 째라 하는 거예요. <킬러들의 수다> 때 정재영 캐스팅 갖고
한번, 마지막 검찰청 들어가 총쏘는 장면 갖고 한번, 총 2번 누웠어요.
(웃음)
감독님 영화에는 같은 여자 이름이 계속 나오는데요. 자기를
버린 여자라는 소문이 있는데, 영화 보고 돌아오라는 건가요?
<씨네21> 안 보시죠? 거기 문답 코너에 나왔는데. 제 영화에는 ‘화이’라는 여자가 계속 나오는데, 역대 화이만 모아도 꽤 될 거예요. 그걸 갖고 제 과거를 추측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과거 여자 얘기하면
어떤가요. 그런데 그런 건 아니구요, 그냥 지은 거예요. 저는 소개팅,
미팅, 헌팅, 이런 거 한번도 안 했거든요. 근데 화이라고 해놓고서 ‘화이팅!’ 하는 거죠. (웃음)
이야기꾼 장진, `메이드 인 자기`에 대해 수다를 떨다 (2)
“영화 많이 좋아하지 마세요, 아류가 돼요”
감독은, 카리스마
장진 감독한테
딴죽 거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시나리오는 좋은데
영화가 영화적이지 못하고
연극적이다,
라는 거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좋아하는 한국 감독, 외국 감독을 알려주세요.
연극적이다, 영화적이다, 이런 말을 저는 별로 고민 안 해요. <기막한
사내들> 내놨을 때 모 기자가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뭐라고 썼죠?
남 기자님? ‘비영화적’이라고 했는데,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제 영화를 보고 관습화되지 않은 것에 반응을 했거든요. 저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면 양식 같은 걸
따라했을 텐데, 다행이다 싶었어요, 본 게 없어서. 영화에서 화자의 숨소리가 느껴진다면 연극적인 거고, 어떤 배우의 다이얼로그에서 다른
서브텍스트, 다른 감성이 연상된다면 그건 또 문학적인 거겠죠.
어떤 영화가 연극적이다, 문학적이다, 하는 것은 객관적인 게 아니에요. 만약 영화가 안 좋다면 ‘쟨 영화를 못 만들었어’ 이렇게 말해야지, 함부로 연극적이네, 문학적이네, 하는 말을 써서는 안 될 거예요. 좋아하는 감독은, <하얀 전쟁> 만들었을 때의 정지영 감독, <기쁜 우리 젊은 날> 만들었을 때의 배창호 감독이구요, 인간적으로는 김기덕, 김지운, 류승완 감독이 재밌죠. 감독들 사이에서는 이민용, 이현승 감독 위아래로 세대를 나누는데, 사람들은 다 좋아요. (웃음) 외국 감독들은… 저는 대가를 좋아해요. 스티븐 스필버그, 마이클 베이, 마틴 스코시즈. 대단한 것 같아요. 그렇게들 하려면 힘들 텐데. (웃음)
저는 장진 감독님 영화를 하나도 본 게 없는데요. 보고 온 친구들은 재미도 없고 영화가 이상하다고 그러더라구요. (일동
웃음) 코미디를 주로 만드시는 이유가 뭔가요? 그리고 혹시
내가 만들었으면 정말 잘했을 것 같은 그런 영화가 있나요?
사람은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돼요.(웃음) 저는 코미디에 대한 강박관념은 없어요. 저를 코미디 작가라고 생각 안 해요. 저한테 더 어울리는
건 멜로죠. (웃음) 그런데 발명가적인 기질이 있어서,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려다 보니까 코미디쪽으로 갔던 거지, 한번 더 웃겨보자, 해서
코미디적 요소를 넣었던 것은 아니에요. 만약 재미가 없다면 규칙적인 관습에 익숙한 사람이 적응을 못하는 것이거나, 제 실험이 완성도가 없는 것이거나 둘 중 하나일 거예요. 내가 했으면 정말 잘했을 것
같은 영화는 <공포의 외인구단>이에요. 저는 야구를 되게 좋아해요.
언젠가는 야구선수 나오는 영화를 찍을 거예요. 그리고 이건 비하인드 스토리인데, <신장개업>이 사실 제가 준비하던 영화였어요.
이 행사의 다른 세 감독님들과의 공통점은 뭘까요?
일단, <씨네21>이 언제나 우호적으로 다룬 감독들이에요. 받은 게 많기 때문에 부르면 오겠지,(웃음) 하셨을 걸요, 아마? 생각해보세요. 저만 해도, 지금 외국에서 온 지 2시간밖에 안 됐는데, 우산도 없이 왔잖아요. 그리고 아직까지 확 망가지지 않은 사람들이라서, 마니아라거나 보러 올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셨을 테고. 또 내가 알기로는 넷 다 되게 한가해요. (웃음) 겉으로는 바쁜 척하지만. 그리고 이 네명은 요즘 젊은 세대들과 능수능란하게 소통할 수 있는 감독들이기도
하죠. 그리고는 공통점이 없는 것 같아요. 셋 다 담배 피우는데 나는
안 피우지. 술도 그렇고 커피도 그렇고. 집도 다 전세인데 박찬욱 감독은 샀고. 둘은 유부남이고 둘은 총각이고. 뭐 그렇네요. (웃음)
연극영화과 다니는 연기자 지망생입니다. 신인배우 오디션에서 중요한 점이 뭔지, 그리고 배우 지망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
저는 오디션을 본 적이 없어요. 사실 말이 안 되잖아요. 1, 2분, 기껏해야 5분 보고 어떻게 한 배우에 대해서 알 수 있어요. 저는, 제가 모르는 배우를 쓰는 비율이 한 작품의 모든 배우 중에서 30% 미만이에요. 신인배우는 무엇보다 경험을 많이 쌓는 게 중요해요. 아, 근데 막연하네요. 신인배우가 어떻게 경험을 많이 하지? (웃음) 음, 절망만 안
하면 되는 것 같아요. ‘난 만날 이렇게’ 하면서 한숨 쉬지 않는다면,
기회는 많이 올 거예요. 아셨죠?
중요한 건 장르가 아니라 ‘내 이야기’
저는 ‘검증 안 된’, 해외에서 영화공부하고
온 사람인데요. (웃음) 지금은 방송일을 하고
있구요. 제가 알기로, 장진 감독님도 방송 경험이 있으신데, 영화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건 뭐가 있나요? 그리고 시나리오는 어떻게
쓰시나요? 작은 에피소드부터 시작하나요, 아님 전체를 다 구성하고 들어가시나요?
저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보여주는 사람이에요. 필름,
무대, 방송, 장르를 구분하지 않아요. 오히려 영화에 어울릴 것 같은
걸 연극으로 할 때, 아님 그 반대인 것에 더 흥미를 느끼죠. 저는, 하다못해 얘기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전화로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해요. 그래서 누가 내 얘기를 듣고 좋아하면 어떤 작품 하나 성공한 것보다 희열을 느껴요. (웃음) 시나리오는, 한 5,6년 전에 아직 제가 언플러그드였을 때는, 메모하기를 좋아했어요. 꼭 그걸 어떤 데 쓴다기보다 메모에
묻어 있는 무형의 분위기랄까, 아우라를 보는 거죠. 지금은 쓰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는데, 일단 줄거리는 안 써요. 저는 줄거리 작가가 아니에요. 리서치 작가도 아니죠. 그래서 제 영화캐릭터들엔 과잉된 캐릭터가 많나봐요. 리서치를 하면 어떤 평균지수의 인물이 나오겠죠. 하지만 저는 예를 들면, 말도 못하고 사투리 쓰고 그런 사람한테 변호사
역 시키는 그런 식이에요. 그리고 시놉시스를 안 쓰니까, 저도 이 얘기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채 써요. 쓰면서 흥미를 갖고 쓰는 거죠. 저는 습작량이 아주 많았어요. 제 지금 방식은 권고할 만한 것은 아니구요, 습작하며 생긴 저만의 툴인 것 같아요.
지난해까지 일본 영화현장에 있다가 한국영화 붐을 보고 무작정 한국에 온 사람입니다. 저는 프로듀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일하는 데 벽이 있는 것 같아요. 외국 스탭이랑 일해본 적 있으신지. 조언을 좀 해주세요.
외국분이랑은 소통이 힘들어서…. (웃음) 하긴 한국 사람하고도 힘들지만요. 저는 연출부 중에 누가 외국어학원 다닌다고 하면 그래요, ‘내 말귀나 제대로 알아들어라.’ (웃음) 일본 현장은 합리적이죠? 근데 하다보면 다를 거예요. 프로듀서하려면 우리나라가 더 편할 수 있어요. 좋은 시나리오, 좋은 감독만 있으면 배우도 붙고 사람들이 돈 싸들고 오거든요. 그런 굿 프로젝트만 마련되면 프로듀서는 작품이 스크린까지 운반되는 데 안전사고만 책임지면 돼요.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런 작품은 개봉해서 잘되니까요. 다만, 볼이냐, 스트라이크냐, 하는 판단을 하는 선구안은 필요해요. 이건 좀 어려운 건데, 스트라이크라는 건 알아도 내가 안 좋아하는 코스면 안 치고, 뻔히 볼인데도 웬일인지 나한테는 보름달처럼 보이면 치고, 하는 감각도 필요하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구요.
감독 지망생입니다. 감독이 되는 데 주의할 점은 뭐가 있나요?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이 있다면 주위에서 뭐라 하건 그걸로 하세요. 그건, 세계 유일의 거니까요. 책에도 없고, 다른 누구도 생각 않는 거니까요. 책 많이 보지 마세요. 영화도 많이 좋아하지 마세요. 너무 감동받으면, 할리우드 키드가 되고, 그의 아류가 돼버려요. 지금 자기가 갖고 있는 그건 정말 ‘메이드 인 자기’잖아요. (웃음) 어디서도 못 배우는, 이십 몇년, 혹은 삼십 몇년(웃음) 동안 살면서 본능적으로 생겨온 거잖아요. 그걸 가장 소중히 하고, 극대화하세요. 그게 제일 소중한
거예요.
오늘 보니까 정말 감각이 있고 재치가 많으시네요. 언젠가
‘나는 스트라이크인 줄 알고 쳤는데 볼이 돼버리는’, 그런
매너리즘이 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제 팬클럽 사이트 이름도 ‘안티 매너리즘’이에요. 정신없이 왔는데, 내가 지금 어딜 향해 가고 있나, 생각하면서
요즘 삶의 태도가 변했어요. 어떻게 바뀌었냐면, 안 바쁘게 살고 있어요. 언젠가 비 많이 오는 고속도로를 쩔쩔매고 가고 있는데, 어떤 차가
내 옆을 쌩하고 지나가는 거예요. 그걸 보고 했던 메모가 있어요. ‘도착해보니 지옥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너무나 많은 추월을 했다.’ 나중에 40대 되고, 50 넘어서 만약에 일기장에 그 문구가 써 있으면 어쩌나 싶어요. 그래서 저는, 아직까지도 ‘커서 뭐 될래?’ 하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이소룡을 꿈꾸던 류승완, 영화를 쫓아온 삶을 털어놓다 (1)
“일단 뭐든 해봐요, 사는게 공부잖아요”
(두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일어나) 안녕하세요. 영화배우 류승완입니다. (웃음) ‘나의 인생 나의 영화’라는 걸로 아무 얘기나
하라는데, 학교 다닐 때 보면 듣기 싫은 얘기 자기 혼자 몰입해서 막 떠드는 사람들 짜증나잖아요. 지금
지나다가 그냥 시간이 남아서 들어오신 분도 있고 하실 테니까. 그냥 류승완이라는 사람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어떻게 살았나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1973년 12월15일 충남 온양에서 태어났구요, (웃음) 다섯살 땐가 여섯살 때, 천안아카데미극장에서 영화를 처음 봤는데, 장철 감독의 <철장>이라는 영화였어요. 일본 도장에서 배신자의 눈알을 뽑는 장면이 인상깊었죠. (웃음) 저는 어려서 주위가 산만한 아이였고,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성룡 영화를 처음 봤는데, 바로 그해에 류승범이 태어났어요. 제 장난감을 부러뜨리는 바람에 류승범이 액션연기 하는 데 제가 많은 도움을 줬죠. (웃음) 저는 지방에 살아선지 특히나 영화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학교에서 장래희망 쓰라 그러면 항상 그 주에 봤던 영화의 주인공 직업을 썼어요. (웃음)
<승리의 탈출>을 봤을 때는 축구선수, <007>을 봤을 때는 첩보원이라고 썼죠. 중2 때 서울로 올라왔는데, 성룡 같은 액션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근데 ‘아무도 날 배우로 써주지 않을 테니까 내가 찍자’ 했죠. 그땐 감독이 있는 줄 모르고 카메라하고 배우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카메라를 사려고 돈을 모았죠. 근데 <스크린>을 쫙 모아놓은 친구가 잡지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감독이 만드는 거다’라는 거예요. 보니까 감독이 멋있어 보이더라구요. 고2 때부터 8mm 필름카메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공부와는 점점 멀어져서 남들 대학 다닐 때 일하고, 박찬욱 감독하고 힘든 시절 같이 보내고 그러다가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영화 얘기를 하자면, 저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때문에 필요 이상의 환대를 받았다가 그 부작용을 <피도 눈물도 없이>로 받은 것 같아요. ‘너무 요란한 환대는 건강에 안 좋다’는 예가 저예요. (웃음) 뭐, 이렇구요, 저는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산 사람도, 천재도 아닙니다.
(사회자: 류승완 감독은 보통 영화광들이 유럽 등지의 예술영화들을 보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온 것과 달리 아주 대중적인 영화에서 자양분을 얻은 경우입니다. 홍콩이나 할리우드영화 등 장르영화에 매혹당했고, 그런 영화를 한국에서 지금 만들고 있죠. <죽거나…>는 단편옴니버스였고, <피도…>가 첫 장편인 셈인데, 사실 <피도…>가 첫 영화였으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 그럼 질문 시작할까요?)
단편영화와 장편영화 만드는 시스템 차이랄까, 장편이 어려운 점을 말해주세요.
보통 저예산 독립영화와 메인스트림 영화작업의 차이에 관한 질문은
많이 받는데, 그럴 때는 ‘별 차이 없다’고 하는데, 이런 질문은 처음이군요. 단편과 장편은 연출자의 자기관리능력이 얼마만큼 필요한가에서 차이가 나요. 단편은 촬영횟수가 많지 않으니까 체력이나 정신력을 유지하기 쉽죠. <피도 눈물도 없이>는 70회 넘게 찍었는데, 체력적으로 아주 힘들었어요. 몸이 지치니까 정신적 집중도 떨어지고 처음 내가 뭘 만들려 했었나 흐려지기도 했죠. 그런 걸 빼면, 숏별 연출에서는 단·장편이 큰 차이 없었어요. 다만 제가 요즘 생각하는 게 장편만의 드라마 구조거든요. 단편영화는 필름 한권을 넘어가는 적이
없지만, 120분짜리 장편은 35mm 필름이 6권이죠. 단편은 필름 한권
안에 기승전결이 있지만, 장편은 필름 한권이 바뀌는 것을 기준으로
이야기 구조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주말연속극이 결정적인 장면에서 딱 끝나고 ‘다음 시간에’ 하듯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이사이 분절점이 필름 한권의 끝마다 있는 건 아닌가. <피도…>는 뭘 완성했다기보다는 다음 영화 만드는 데 이런 식의 교훈을 준 것 같아요.
3년동안 데뷔작만 세 편 찍다
<죽거나…> 찍을 때 감독과 주연을 같이 했는데, 어땠나요?
힘든데 재밌었어요. 너무나 하고 싶었던 걸 하는 거니까. 찍을 때 이걸로 데뷔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단편 만드는 것의 연장이었죠. ‘다른 방식’이구나, 하는 걸 느낀 건 <다찌마와 리>도 아니고 <피도…> 였어요. 상대하는 사람 많아지고, 스타랑 일하고. 흥분된다기 보다는 긴장됐어요. 이상한 건 <죽거나…> 보고 데뷔작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다찌마와 리> <피도…>를
그때마다 또 데뷔작이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3년 동안 계속 데뷔작만
만든 거예요. (웃음) 데뷔라는 의미가 없어졌고, 단지 규모가 자꾸 커질 뿐이었어요.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게 있잖아요, 두 번째 작품 실패에 대한 두려움. 저는 <피도…>도 그랬고, 그 다음도 그럴 거고, 계속
긴장할 것 같아요.
공부를 별로 안 하셨다고 하는데, 현장 경험만으로 감독하는
데 부족함은 없나요? 감독이 되려면 어떤 게 제일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부족한 것 많죠. 제가 말은 그렇게 해도 공부를 했다면 한 놈인데(웃음) 이런 데 나오면 제일 무서운 사람들이 ‘현상은 어떻게 하셨나요?’, ‘조명은 몇 킬로를 썼어요?’ 그러는 사람들이에요. 그럼 저는
‘왜 저한테 그러세요. 조명한 사람한테 물어보시지’ 그래요. (웃음)
저는 사실 그런 것 잘 몰라요. 사람들마다 다 재주가 다르잖아요. 심지어 초능력자도 손끝에서 광선이 나온다든지 하는 저마다의 특기가 있는데. (웃음) 제가 잘하는 건 엎드릴 때 바짝 엎드리는 건 것 같아요.
‘나 이거 좆도 모르니까 나 좀 봐달라’ 그러면서 엎드리는 거요. (웃음) 그러면 ‘어 알았어, 형. 이렇게 갈까’ 하면서 테스트한 걸 보여주거든요. 저는 제가 다 짜서 제시하는 게 아니라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그래서 캐스팅을 중시하죠. 배우만 아니라 스탭까지 포함한
캐스팅요. 나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북돋워줘요.
감독으로서 필요한 자질에 정답은 없어요. 감독들마다 노하우가 다르거든요. 영화를 계속 만들어 나가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고…. (객석 맨 앞줄의 어느 여자참석자를 가리키며) 저기 뭐 굳이 적으실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요. (일동 웃음) 그냥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는 거니까. 제가 오늘 아침까지 이창동 감독 영화 <오아시스> 출연을 하다 왔는데, 이창동 감독 보면서 아 감독은 이렇게 냉정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피도…> 찍을 때 보조 출연자가 투견장 2층 난간에서 떨어져서 하반신 불구가 될 뻔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순간 저는 모든 걸 접고 그 사람에게 달려가야 하나, 아니면 모니터 앞에서 계속 영화를 진행해야 하나, 정말 힘들었어요. 결국 메가폰을 들고 ‘다음 상황 진행합시다’라고 했는데, 마음이 많이 아프더라구요. 근데 그렇게 감독은 냉정해야 돼요. 현장에서 아무리 의기투합했어도 영화가 안 좋으면 스탭들과 관계회복이 안 되는데, 현장에서는 엄청 ‘뒷다마’ 까고 그랬어도 영화가 볼 만하면 작품 계속할 수 있거든요. 영화는 모든 스탭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영화가 제일 소중한 거죠. 감독에게는 체력이 또 아주 중요해요. 스즈키 세이준이 영화 들어가기 전에 헬스클럽 다닌다는데, 정말 그런 게 필요하죠. 무엇보다 6mm 카메라로라도 자꾸 찍어보면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구요.
류승완 감독의 열렬한 팬입니다.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액션을 자랑하시는데 배우로 전향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웃음) 저는 가이 리치와 타란티노도 좋아하는데, <피도…>가
그 감독들 영화와 비슷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요, 사랑합니다.(순간
객석엔 약간의 긴장감 흐름. 질문자는 남자였음)
제가 치질이 있어서 격렬한 사랑행위는 못하거든요. (웃음) <피도…>가 네오누아르랑 비슷할 거라는 건 저는 찍기 전부터 얘기했었어요.
제가 네오누아르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했죠. 더 잘 만들 자신은 없고, 큰 틀은 유지하되 디테일을 바꾸는 방식을 택했어요. 팜므 파탈이 아닌, 스스로 중심이 되는 여자인물을 설정했고, 쿨한 대신, ‘감정의 끈적거림’을 대결의 무기로 선택했죠.
심리적 충돌로서의 액션이요. 근데 보는 사람들이 그 차이를 못 느끼고, 심지어 표절이라고까지 하기도 하더라구요. 그게 장르영화 만드는 어려움인 것 같아요. 여기 계시지만 김봉석 기자한테 ‘과잉’이라는 지적도 받았고. 저는 제 욕망을 충실히 따르며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없어요.
신인배우 캐스팅하는 기준이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대화가 되는 사람인가, 하는 걸 봐요. 표면적 이미지나 기본적인 재능도 보지만. 제일 두려운 부류는 너무 강렬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에요. 목숨이라도 걸 듯한…. 그런 사람들은 까딱하면 무수한
상처를 받고 말거든요. 영화현장에서는 그런 과도한 열정보다는 릴렉스하게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피도…>에서 여주인공 2명도 있지만 저는 독불이 역이 더
인상적이었거든요. 그것에 대해 얘기해주시구요, 필생의 프로젝트가 있다면 어떤 게 있는지 얘기해주세요.
많이들 독불이 캐릭터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피도…>에서 제가
남자 캐릭터들에 힘을 실은 건, 주인공인 여자들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을 강하게 그려서, 과연 저 여자들이 저 인물들한테서 탈출할 수
있을까, 싶게 하려 한 거예요. 그냥 강한 여자들이라기보다는 주변 상황들 때문에 강해진 여자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인물 많은 영화가 처음이라 제 생각에도 드라마 장악력이 떨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면서도 저 자신 여성을 잘 모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여배우와 표면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저도 사람이라 진행하다가 애정 가는 쪽에 더
힘을 싣게 됐던 것 같아요. 독불이라거나 백일섭 선생님 캐릭터가 그런 경우예요.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는, 아니 필생의 프로젝트는…. (웃음) 다음 게 언제나 필생의 프로젝트죠. 저는 무성영화에 가까운 활동사진을 만들고 싶어요. 버스터 키튼의 슬랩스틱코미디 같은 흥분이
살아 있는 영화요. 또 뮤지컬도 해보고 싶어요.
<죽거나…>에서 식당에서 가족들이 말다툼하다가 딸이 심하게 뺨 맞는 장면을 보면서 상처를 받았어요. 혹시 여성에 대한 부당한 생각을 갖고 계신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는데.
여성을 혐오한다거나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딸도 있고, 참고로 제 와이프도 여자거든요. (웃음) 다만, 저는 강한 여자를 좋아하는 건 있어요. 와이프가 결혼 전에 저한테 이런 얘기를 했죠. 적들에 둘러싸였을
때 ‘피해!’ 그래서 여자가 등 뒤로 숨는 게 아니라, 같이 등을 맞대고 싸우는 사이가 되자고. 지금은 제가 숨는 처지가 됐지만. (웃음) 하여튼 얘기하다가 따귀 때리고 그런 거는, 저는 현실에서는 많이 봤어요. 룸살롱 여자들이 싸우는 걸 보면 장난이 아니에요. 하이힐로 찍고…. 현실이 더 영화적이죠. 그걸 일부 차용한 것 뿐이에요.
이소룡을 꿈꾸던 류승완, 영화를 쫓아온 삶을 털어놓다 (2)
“일단 뭐든 해봐요, 사는게 공부잖아요”
감독은 체력, 그리고 냉정함
<오아시스>에 출연하고 계신데,
본인 영화와는 아주 다른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는
기분이 어떠세요?
저는 <초록물고기>가 제대로 된 필름누아르여서 좋았어요.
<박하사탕>도 젠체하지 않으면서 장르 냄새가 나서 좋았고. 감독마다 장르가 정해져 있다는, 말씀하신 식의 선입관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영화에 올바로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창동 감독님 영화와 제 영화는 장르보다는
스타일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영화에 출연한 제 심리상태를 말씀드리죠. 저는 배우를 ‘야매’로만 해봤지(웃음) 디렉션을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한수 배우자는 심정으로 나갔는데 디렉션을 받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제 작품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느낀 것 중에 하나를 얘기하자면, 현장에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감독의 아주 원초적인 핵에 해당하는 무엇이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저는 불쌍한 영화광들 중 한명입니다. 공대에서 정보통신을
공부하고 있고 지금 3학기를 남겨놓았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주위에서는 졸업해서 전자회사나
들어가라고 합니다. 감독님은, 제도교육을 받지 않고 감독이
되신 과정이 감격적인데요. 동생이랑 고구마 장사하면서 힘들게 살 때 도움이 됐던 이야기가 있다면 저도 듣고 싶군요.
제가 최근에 <황혼에서 새벽까지> DVD를 봤는데요, 거기 이런 장면이 있어요. 타란티노랑 조지 클루니가 복도를 걸어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포스터를 들고 달려들면서 ‘저, 감독님 광팬입니다. 감독님 때문에 고등학교도 자퇴했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타란티노가 어떻게
하냐면, 그 사람 머리를 확 때리면서 ‘내가 언제 학교를 그만두라고
했어!’ 그래요. (웃음) 이게 제 대답의 프롤로그구요.
이런 질문엔 참 답하기 어려운 게, 그렇게 학교도 관두고 하다가 잘되면 모르는데 망가질 수도 있거든요. 물론 영화판이 예전보다 상황이 좋아지긴 했지만. 적어도 <선물>에서처럼 ‘너 직업 뭐야?’, ‘감독이요’, ‘백수구만’ 이러지는 않으니까요. (웃음) 이무영 감독은 이런 경우에 이렇게 얘기한대요. ‘딴 사람 말 듣지 마라.’ 근데 ‘딴 사람 말 듣지 마라’라는 그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 아닌지…. (웃음) 사실은 자기가 제일 잘 알고 있어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렇지, 자기가 잘할지 아닌지는 자기가 제일 잘 알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 하나는, 그거예요. 일단은 해보는 게 중요하다. 권투 신인왕전을 보면, 맞는 게 두려워서 때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실패하더라고 행동하고 실패해야지 그냥 혼자 방구석에서 고민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패싸움> 전까지는 모든 영화제, 모든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죄다 떨어졌었어요. 주위에서 ‘포기하라’는 말들을 많이 했죠. 정말 비참했어요. 박찬욱 감독님이 고등학교 때까지 제 우상이었는데, 박찬욱 감독 밑에서 연출부로 있다가 영화 엎어지는 것도 보고. 근데 사람인생이 어떻게 풀릴지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던 양반이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들었으니. 물론 <복수는 나의 것>도 만들었지만. (웃음)
제가 드리는 이 말이, 쌈마이 화장실 벽에 있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같은 거는 아니에요. (웃음) 저는 예전에 돈이 없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 시나리오 써서 장편 시나리오 3개를 썼는데요, 물론 팔지는 못했지만. 그럼 어떤가요. 사는 게 공부잖아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하면, 그게 다 공부가 되는 것 같아요. 타란티노는 그랬어요. 돈이 생길 때마다 ‘16mm 필름을 사서 냉장고에 넣어둬라. 나중에 먹을 것을 넣어놓으려는데 자리가 없어지면, 필름을 꺼내서 그걸로 영화를 찍어라.’ 무엇보다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해요.
일상의 모든 경험을 내 걸로 저장하기
감독 지망생입니다. 시나리오를 써보려고 해도 경험도 별로 한 게 없고 책도 많이 안 읽어서 그런지 어려워요. 감독님 시나리오를 보면
책도 많이 읽고 경험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책이나 경험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나요.
조지 루카스가 <스타 워즈> 시나리오 썼을 때, 프랜시스 코폴라가 앞에 앉혀다놓고 그랬대요. ‘시나리오 좀 제대로 써라. 16페이지가 뭐냐, 16페이지가.’
(웃음) 근데, 재밌으면 장땡이에요. 이상하게 쓸데없는 책들 읽을 필요
없어요. 시나리오 쓰는 건 말 배우는 과정하고 비슷하거든요. 첫 작품으로 성공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실패를 당연시하면서 일단 써보세요. 점점 쓰면서 아이가 말을 배워나가듯이 시나리오 쓰는 법도 알게
될 거예요.
이야기 구상은 보통 어떻게 하시는지.
불현듯 드는 생각을 포함한 모든 경험을 동원해요. 이를테면, 예전에
호텔에서 일할 때, 동해에 북한 잠수함이 나타났거든요. 근데 그 2∼3일 후 탈영사건이 있었어요. 만약 그 탈영병이랑 무장공비가 만나면
어떨까, 재밌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어서 메모했어요. 그런 식이에요.
일상생활에서 명대사를 만나면 기억하고, 영화건 책이건 만화건간에
어떤 강한 이미지 하나가 있으면 그걸 확장해서 상상해요. 주인공들보다는 서브캐릭터들의 인생을 궁금해하는 습관도 있어요. <게임의
법칙>에서 ‘용대 쏴 죽이는 꼬마가 나중에 뭐하고 살까’, 생각한다든지, <매트릭스>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공중부양을 하는 걸 보면서,
‘아, 저게 중력 이기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동작이라면’, 한다든지, 모든 것을 제 걸로 저장해놓아요.
내가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있으신가요?
저는 <사망유희>를 리메이크하고 싶어요. <사망유희>는 반쪽짜리의
불완전한 영화예요. 하지만 저는 거기서 강렬한 매력을 느껴요. 제가
이소룡이 죽은 해에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한때는 아주 심각하게 내가 이소룡의 환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웃음) 내가 30살
되는 해, 그러니까 이소룡이 죽은 지 30년 되는 해, <사망유희>를 리메이크하겠다고 중학교 때부터 생각했었어요. 또, <증오>나 거친 10대 청춘 영화들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같은 뮤지컬로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자칫하면 애정가는 신을 길게 간다든지, 객관성을 잃을 수 있잖아요. 그런 건 어떻게 조절하시나요?
쓰다가 (자세를 바꿔서) 이렇게 본다든지(웃음), 농담이구요. 굉장히
취향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게 모니터링을 받아요. 말도 안 되는 반응도 나오지만, 사실 그런 게 영화가 나오면 받을 수 있는 반응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게 도움이 되죠. 저는 요즘은 시나리오의 분량 문제를 공부하고 있어요. 할리우드 시나리오는 놀라울 만큼 정형화된
체계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행간과 띄어쓰기, 글씨 크기 같은
걸 규격에 맞게 하면 대부분 할리우드영화의 시나리오가 90∼100페이지로 나오죠. 근데 한국영화 시나리오는 이상하게 영화화한 후에
보면 시간이 초과돼서 편집 때 애를 먹어요. 그냥 들으면 너무 기술적인 문제이고 예술과는 거리가 먼 것 같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예요. 할리우드영화가 몇 십년 동안 사람들을 지배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사람들이 버티고 흥분하고 이완되고 하는 감정의 시간적 수치를 노하우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다음 영화 <마루치 아라치>에서,
한번 그걸 실험해보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