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스티븐슨 카사트 Mary Stevenson Cassatt 는 미국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성공적인 주식 중개인이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부유한 은행 가문에 속했다. 카사트 가족은 1851년부터 1855년까지 프랑스와 독일에서 살았기 때문에 어린 메리는 어렸을 때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웠고, 유럽 예술과 문화에 일찍 적응했다. 10살 무렵 1855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구스타브 쿠르베, Gustave Courbet,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외젠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같은 고전주의 미술에서 처음으로 격렬한 충격을 받았다.
메리 카사트(Mary Stevenson Cassatt 메리 스티븐슨 커샛, 1844년 ~ 1926년)는 미국의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이다. 그녀는 인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에드가 드가를 만나 친분을 쌓게 되며 이후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갖게 된다.
매리 카사트의 작품들은 대다수가 여성들의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일상생활을 담고 있으며 어머니와 자식들, 특히나 모녀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다.
1860년, 16세의 나이에 카사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에서 2년간의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에 미국에서 여성들이 미술을 한다는 것이 제약이 많았다. 1865년, 그녀는 부모에게 파리에 가서 미술 공부를 하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했다. 마침내 그녀는 파리로 건너가 장 레옹 제롬과 함께 공부했다. 1870년부터 미국으로 잠시 귀국한 후, 1870년대 초 그녀는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를 여행하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 페테르 폴 루벤스 Peter Paul Rubens, 안토니오 다 코르레지오와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관람석에서
In the Loge (1878)
파리의 유명한 코미디 프랑세즈 Comedie-Francaise 극장 특별관람석에 앉은 한 여성이 오페라 스코프로 무대를 바라보는 낮 공연 모습. 어떤 평론가는 코미디 프랑세즈 극장이 아니고 오페라 가르니에 Garnier Opera라고도 말합니다. 어쨌든 검은 드레스 정장을 입은 그녀와 박스 시트 관람석의 빨간색 벨벳과 금색 장식이 그림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고, 누군가 멀리에서 오페라 스코프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남성 관람객 모습이 숨어있습니다. 1878년 카사트가 보스턴에서 이 그림을 전시했을 때, 한 비평가는 이 작품이 '비슷한 그림을 그렸던 대부분 남성들의 유사한 그림의 힘을 능가한다'라는 글을 써서 그녀를 칭찬했다 한다.
캔버스에 유채 - 미국 보스턴 미술관 Museum of Fine Arts, Boston
호화스런 여느 관람석의 여인들과는 다르게
무대에 열중인 검은 드레스의 여인,
그 시절 유행했다는 고급스런 검은 드레스에
검은 보닛으로 머리를 감싸고,
잠자리 날개같은 얇은 장갑을 낀 손엔
아마도 비쌌을게 분명한
오페라 글래스를 들고있다
그래도 포인트!는 진주귀걸이^^
점 하나 콕! 찍었을뿐인데
부티 귀티 완전 정복한 진주귀걸이
사실 19세기에 절정을 이뤘다는 극장에서의 공연관람은 문화고 예술이고는 뒷전이고
사교가 목적이어서 당시 노동자의 한달월급에 맞먹는 비싼가격이었던 특별관람석에는
부를 과시하고 이성의 관심을 받기위해 불나방처럼 모여든 상류층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관람석에서 In the Box
메리 카사트 Mary Cassatt, 1879, 캔버스에 유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