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5가해29-1-1.zip
圭峰:第六은 斷嚴土違於不取疑니라 論에 云하되 若法不可取라면 云何諸菩薩이 取莊嚴淨土며 云何自受法王身이라하다 此中에서 且斷嚴土之疑니라 斷之文이 三이니 一은 擧取相莊嚴問이니라
규봉:6.(疑斷)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취함이 없다는(의심) 것을 어긴다는 의심을 끊은 것이다. 論에 이르되 “만약 법을 취하지 않을진대 어찌하여 모든 보살이 정토를 장엄하는 것을 취하며, 어찌하여 스스로 法王身을 받는가?” 했다. 이 가운데서 또 불국토 장엄에 관한 의심을 끊은 것이다.
끊어준 글이 셋이니 (1)은 相을 들어 취하여 장엄 한다는 것을 물은 것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인가 菩薩이 莊嚴佛土不하느냐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한다 하겠느냐?”
圭峰:佛意가 欲明法性眞土이니 故問取形相莊嚴土不인가하니라 二는 釋離相莊嚴答이라
규봉:부처님의 뜻이 일체의 근본 성품인 참 바탕(法性 眞土)을 밝히고자 함이니, 그러므로 물으시길 형상을 가지고 불토를 장엄하느냐? 고 하시었다.
(2)는 相을 떠난 장엄을 해석하여 답한 것이다.
不也이니다 世尊이시여 何以故하면 莊嚴佛土者는 卽非莊嚴으로 是名莊嚴이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국토를 장엄 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라 이름이 장엄인 것이옵니다.”
淸峯:장엄이라는 것은 형상을 지어 만든다는 것이니, 곧 상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본래 실상은 모양을 갖춘 바 없이 깨끗하며 내외가 명철하니, 차별상은 인연에 의하여 허상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따로이 장엄할 것이 없는 본래 그대로가 참으로 불국 정토이다.
따라서 정, 혜로 미혹을 거두면 청정함을 요달하리니 말하자면(이름이) 장엄이라 하는 것이다.
곧 “눈을 비비면 허공 꽃이 생기는 것이다.”
장엄이라 하는 것을 형상이 있는 것과 형상이 없는 것으로 나누어 설명한다면 세간의 불국토 장엄은 형상 있음이니 절을 짓고, 경을 펴고, 보시 공양하는 등 일체 모든 이를 널리 공경하는 것이요, 형상 없는 장엄은 마음이 깨끗한 것이 곧 불국토가 깨끗함이고 생각 생각에 항상 집착함이 없는 것을 인하여 장엄이라 하는 것이나 실상으로 보면 이 또한 이름인 것이다.
마음이 청정하면 마음의 그림자인 세계가 바로 정토가 되는 것이므로 온종일 국토를 장엄한다 해도 실제 취할 만한 장엄의 차별적인 형상이 없고 집착할 만한 장엄의 법도 없는 것이다. 집착이 없다 한 것은 모든 유위법의 경계에 집착심(끄달림)으로 안주하지 않음이며, 마음을 낸다하는 것은 육도 만행의 마음을 나툰다 하는 뜻이다.
본래의 마음은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것이다. 마음 밖에 국토가 없음을 요달하여 마음이 깨끗하면 마음의 그림자로 생긴 세계가 곧 깨끗한 정토이므로 국토를 장엄 한다는 것은 차별적인 장엄의 모습도, 집착할 장엄의 모든 것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진여의 세계인 부처의 세계(佛國土)를 장엄 한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차별 현상인 육진 경계는 성주괴공하는 환일 뿐, 참으로 장식하는 것이 되지 않는 것이다. 집착함이 없이 청정한 생각을 내기 때문에 마음의 그림자로 나타난 육진 경계의 모습에 집착하여 끄달리지 않게 된다. 색, 성, 향, 미, 촉, 법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체에 끄달리지 않고 모든 유위법의 모습에 집착하여 안주하지 않음이며, 마음을 낸다는 것은 육도 만행의 생각을 낸다는 뜻인 것이다.
소승인은 마음과 지혜를 불 꺼진 재처럼 아예 생명 없이 끊어 버리나 이것은 변견에 치우친 것으로 아견에 집착하는 것이므로 옳지 않는 것이다.
또 차별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에 집착하여 일체의 상을 떠난다 하여 아예 없는 단멸한 공을 취하는 변견에 떨어져 생멸에 따르는 인과법을 무시하려 하는 삿된 소견을 짓게 되면 크게 그르치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존께서도 “차라리 수미산 같은 유상(有相)에 집착하여 있다고 생각하는 유견(有見)을 일으킬지언정 겨자씨만큼도 모든 상을 일체 부정하는 공견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실상은 일체 환망인 상을 집착으로부터 여의되 실상의 자체 성품은 단멸의 공(空)이 아닌 묘유공(妙有空)인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