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은 고생이다. 어린 시절, 명절 때마다 끝없이 휘고 또 휘어진 대관령을 넘는 동안 멀미로 생사를 넘나들었다. 대관령 때문에 명절이 싫었던 3040세대 여럿 될 테다. 터널로 편하게 영동지방을 갈 수 있게 되면서 멀미나는 꼬불도로는 추억이 됐다. 당시의 추억을 곱씹으며 구 영동고속도로(지방도 456호선)를 타고 대관령마을 휴게소에 도착했다.
대관령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남다른 고개다. 백두대간의 진고개, 진부령, 댓재, 한계령, 미시령 등 고갯길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이 대관령이다. 강원도 영동지방 사람에겐 영서로 가는 대표적 관문으로 통했다. 율곡 이이는 대관령을 넘어가며 굽이를 넘을 때마다 곶감을 한 개씩 먹었는데, 대관령을 넘고 보니 100개 중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관령을 아흔아홉 굽이의 고갯길이라 한다.
대관령마을휴게소
대관령 옛길은 구 영동고속도로의 대관령 휴게소에서 시작한다. 유명한 양떼목장도 휴게소와 가까워 주말이면 많은 인파가 모인다. 이 중 어디로 향하는지 겉모습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양떼목장으로 향하는 길목, 사람들은 가벼운 복장인 반면, 옛길로 향하는 사람들은 등산복과 장비를 철저히 챙겼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이다. 공기도 상쾌하다. 산바람이 부는데, 세차지 않다. 아마 고개를 넘다가 지친 산바람이 머무는 듯하다. 강원도의 백두대간에서는 서 있기만 해도 심신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왼쪽,가운데]대관령마을휴게소에서 북동방향이 대관령 옛길로 향한다 / [오른쪽]옛길을 찾는 산악인의 발길이 늘고 있다고 한다
선자령과 대관령 옛길 관련 표지판을 따라 발길을 옮긴다. 양떼목장 방향과 다르니 주의하자. 이번에 소개하는 코스는 대관령 옛길을 기본으로 하면서 중반에 선자령을 보고 다시 옛길에 합류하는 구성이다. 중반까지는 잔잔한 흙길이라 걷기 좋다. 급경사는 길게 돌면서 지날 수 있도록 조성돼 가족단위로 찾아도 좋겠다.
옛길의 풍경과 알찬 코스가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이가 느는 추세다. 그렇다고 사람이 붐비는 일이 없고, 너무 썰렁하지도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30년 된 구 영동고속도로는 지방도로 변해 추억의 고속도로가 됐고, 수백년이 된 옛길은 재조명받아 전국의 산악인 발길을 모으고 있다.
동서남북, 사면의 제각각 매력
[왼쪽]작은 계곡, 물방울이 튀어 천태만상의 얼음작품을 만들었다 / [가운데,오른쪽]겨울이 되면서 흙 속 수분이 수염처럼 얼었다
고즈넉한 산속 분위기는 계절마다 깊은 향내를 내뿜는다. 산새가 지저귀고, 계곡물이 흐르고, 잎이 떨어지는 소리 등이 고요함 속에서 뚜렷이 울린다. 빛이 들지 않는 길옆에 하얀 무엇이 기묘한 모습이다. 흙의 단면에서 수염 같은 것이 났는데, 만져보니 녹는다. 흙 속 수분이 겨울이 되자 수정 같은 긴 모양의 얼음 형태로 삐져나왔다. 흙이 만든 작품, 얼음수염이라 불러본다.
대관령 옛길은 숲의 여러 모습도 드러난다. (왼쪽)겨울에도 푸른 숲, (오른쪽)거센 바람에 잎 하나 남지 않은 숲
산의 동서남북, 사면을 두루 걷다 보면 녹음 짙은 침엽수 숲을 지나가고, 바람이 거세 낙엽 하나 남지 않아 가지만 앙상한 숲을 지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 전환이 대관령 옛길을 두고두고 생각케 한다.
휴게소에서 출발해,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이 지나면 양떼목장을 그물망 너머로 볼 수 있다. 양떼 목장의 푸근한 둔지 모습이 동떨어진 공간처럼 철망으로 분리된 풍경이다. 이 부근부터 능선을 타기 시작한다. 주위로 더 높은 산세가 펼쳐져 탁 트인 풍경은 아니지만 멀리 산골마을이 소박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전한다.
[왼쪽부터]양떼목장이 보이는 구간, 능선을 타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 기분 좋은 냉기가 무겁게 가라앉았고 피톤치드 향이 진하게 고였다
양떼목장이 보이는 구간을 지나면 작은 침엽수림에 당도한다. 침엽수를 제외한 잡목이 거의 없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간격이 일정한 편이다. 이곳에 감도는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숲의 상부는 햇빛도 뚫지 못할 정도로 울창한 반면, 땅에서 2미터 높이까지는 잔가지 없는 나무줄기가 기둥처럼 규칙적으로 박혔다. 기분 좋은 냉기가 무겁게 가라앉았고 피톤치드 향이 진하게 고였다. 발걸음이 느려지고 있는 힘껏 들숨을 마셔본다. 듣는 이도 없는데 “아 좋다”가 절로 흘러나온다. 기지개 한번 켜고 발걸음을 이어간다.
영험이 신통하다 ‘국사성황당’
[왼쪽]풍해조림지, 2007년 3월에 강풍으로 이지역 잣나무가 도복돼 잣나무를 다시 심었다고 한다
[오른쪽]풍해조림지를 지나면 국사성황당까지 걸어서 약 15분 거리
풍해조림지를 지나면 국사성황당이 가깝다. 우리나라 곳곳의 산신 중 지존을 모시는 곳이다. 대관령에서 무술을 연마했으며 삼국 통일에 큰 영향을 끼친 김유신 장군이 대관령의 산신이다. 그리고 국사성황신은 임진왜란을 당시 왜군으로부터 강릉을 지켰다고 전해지는 설화의 주인공 고승 범일이다. 그래서 이곳은 영험한 기운이 충만하다 전해지며, 날마다 무속인의 굿판이 벌어진다고 한다. 곳곳에 손을 모아 기도 중인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왼쪽,가운데]국사성황당 / [오른쪽]콘크리트를 따라 올라가는 방향이 선자령과 이어진다
국사성황당 어귀, 주차장 입구 반대편으로 길이 이어진다. 곧이어 나타나는 갈림길에서 콘크리트길을 따라 오르는 것이 선자령을 향하는 방향이다. 선자령은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가 아들을 데리고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대관령과 바다, 풍광명미(風光明媚)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쪽 풍경
선자령으로 가는 길 중간에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길을 이용하자. 전망대를 경유할 수 있는 방향이다. 물론 멋진 풍경이 기다린다. 강릉시와 동해 그리고 강릉을 품에 안은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해의 거친 파도가 여기서는 잔잔할 뿐이고 구름 한점 없는 하늘과 바다 사이 경계는 느슨하다. 대관령의 동쪽 산세가 동해로 손바닥을 넣는 듯한 내리막 능선들은 장관 중 장관이다. 전망대 바로 아래로 제왕산이 솟았다. 곳곳에 계곡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강원도 영동지방을 지리적으로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전망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서쪽 풍경, 백두대간의 솟음이 이어진다
대관령을 지나면서 태어난 작품도 여럿이다.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으로, 김홍도는 그림으로 대관령의 아름다움을 다뤘다. 신사임당은 강릉의 어머니를 그리며 사천시를 지었다. 수많은 묵객이 대관령을 지나며 큰 영감을 받았으리라.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안정수 취재기자(3Dahn856@gmail.com">ahn856@gmail.com)
TIP | 대관령마을휴게소 가는 방법
<자가용>
서울방향
영동고속도로 횡계톨게이트(출구에서 우회전 900m진행) →삼거리(영동고속도로 육교 아래) 좌회전 → 구·영동고속도로(5km진행) → 대관령하행휴게소
속초·삼척방향
동해고속도로 강릉톨게이트 → (약 400m진행) → 금산IC에서 우회전 → 구·영동고속도로(서울방향 20km진행) → 대관령하행휴게
<대중교통>
강릉시내버스(503-1번 / 토·일요일만 운행)
* 강릉 → 대관령휴게소(08:35분 출발 / 1회운행)
안목 - 이마트 - 교보생명 - 강릉의료원 - 대관령박물관 - 어흘리 - 반정 - 대관령휴게소
* 대관령휴게소 → 강릉(09:45, 15:30분 출발 / 2회운행)
대관령휴게소 - 반정 - 어흘리 - 대관령박물관 - 강릉의료원 - 신영극장
직행버스(동서울터미널 - 횡계)
* 동서울터미널 → 횡계 : 06:32 07:10 08:15 09:00 09:35 10:10 10:50 11:25
* 횡계 → 동서울터미널 : 배차간격 35분
횡계터미널 033-335-5289
(횡계 - 대관령휴게소 간 택시이용)
주변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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