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글쓰기
평소 책읽기를 즐기지만 사실 에세이나 회고록 같은 글에는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었다. 그것은 내게 남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이었고, 그런 관음증적 행태는 나의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비비언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는 나의 그런 편협한 사고를 단숨에 깨뜨려버렸다. 저자는 이 책에 대해, 15년간 예술대학 석사 과정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농축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결론은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재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회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글쓰기를 가르치기보다 글을 읽고 평가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글을 읽고 평가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 되는 셈이다. 그 말을 역으로 생각해보면 결국 좋은 글로 귀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 나의 편협한 사고를 건드렸다는 말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어느 의사의 추도사를 대상으로 글의 짜임을 알뜰하게 설명하고 있다. 즉, 추도사는 선배 의사의 가르침을 받던 시절의 자신을 떠올린다. 이 기억은 추도사의 구조를 결정하는 구성 원리로 작용한다.
구조는 질서를 부여하고, 질서는 문장의 모양새를 다듬는다. 그리고 다듬어진 모양새는 언어의 표현력을 더욱 높인다. 그리고 마침내 농밀해진 표현력은 연상에 깊이를 더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여 멋진 드라마가 짜이는 것이다. 이러한 짜임새가 결texture이다.
결은 글에 대한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과정 내내 서술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망각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말하는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즉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관심 또한 잃지 않는 자아가 명확할 때 글을 생명력을 얻는다.
이 책은 특히 에세이와 회고록, 자전적 글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글은 자신의 경험이거나 자신의 이야기이므로 쓰는데 별 문제가 없을 듯 보이지만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남이 쓴 글을 읽을 때는 나도 쓸 것 같은데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막막해지기 일쑤다. 대부분은 이야기가 평범함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부족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저자는 공감의 부족을 말한다.
자신에 대한 글쓰기를 자신을 진솔하게 돌아보게 한다. 혹시라도 자신의 글을 쓰고 싶다며 이 책은 상당한 도움일 될 것이다. 블로그에 올린 내 글이 형편없음을 이 글을 통해 새삼 느낀다. 차분히 돌아봐야 할 것이다.
나. 글쓰기 지도
저자는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극적 표현력, 구조를 이해하는 본능적 감각, 서술의 표면 아래 언어를 가라앉히는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말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한 마디로 말해 나는 글쓰기의 재능이 없는 것이다. 블로그에 올려놓은 글들이 모두가 허접한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은 저자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재능이 없음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글을 읽고 평가하는 법은 가르칠 수 있다고 한다.
“한 덩어리의 소재 속에 묻혀 있는 경험을 발견하고 그것이 글로 잘 빚어지고 있는지 어떤 알아내는 방법, 서사의 줄기와 이를 진전시키는 지혜의 연결 고리를 찾아내는 방법, ‘누가 말하고 있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를 묻는 방법”(160쪽) 이다.
저자는 내게 글을 읽는 방식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말하자면 글을 읽을 때는 내적 맥락을 찾아가는 것이다. “내적 맥락은 글을 현재 상황 너머로 확장해주고,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밝혀주며, 형태를 부여하고 내밀한 목적을 드러내준다.”(161쪽)
저자는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란 곧 작가를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 또렷이 보일 때까지 계속 읽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한다. 바로 이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를 ‘움직이는 동력’을 뚜렷이 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작가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는 더 큰 생각은 무엇인가? 진정한 경험은“ 진짜 주제는? 과 같은 질문을 꾸준히 해봐야 한다. 글쓰기의 기교에 집중하는 것은 현대 문학에 독이 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자전적 글쓰기를 할 때 어떻게 하면 따분하고 불안정한 자아로부터 진실한 서술자를 끌어내어 필요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항상 염두에 두고,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편협하면서도 명확한 필요에 따라 글을 읽음으로써 글 쓰는 법을 깨칠 수 있다고 것이다. 이 역시 그가 말한 내적 맥락을 찾아가는 것에 가 닿은 말일 터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이 책에서 수많은 에세이며 회고록을 사례로 하나씩 분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