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꽉 물어 참으려 했으나
당신과 함께 해 온 이제는 아픔의 재산으로만 축적된 추억이
눈물로 흐르며 내 영혼을 소멸시킨다
우리가 함께 해 온 것은 문장이다
편지의 문장들, 엠에센의 문장들, 메일의 문장들, 발성된 문장들...
때로 문장의 기억은 실체가 누린 육체의 동작보다 강하게 각인되어
남는다
나는 우리가 함께 한 문장들을 기억하고 있다
당신이 가버리면
이제 나는 빈집이다
빈집에 누워본 적이 있는가
가구도 없고
온기도 없는
그 싸늘한 과거로서의 벽에 누워본 적이 있는가
한때 이러저러했던 기억만이 쓸쓸하고 낮은 비행을 하면서
남은 자의 영혼을 갉아먹어 버리는 빈집
가만히 얼굴의 윤곽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눈물처럼
당신은 내 존재를 없던 허구로 지워간다
플라토닉에 늘 가산점을 얹어주는 당신에게
나는 수치스런 존재일 수도 있었으리라
사랑은 목적지에 이르는 것이다
늘 걸어온 사랑을 인정하는 당신은
이제 막 뛰어온 내가 이상하다
정말 그 길로 왔는지
오는 길에 못보고 놓쳐버린 것은 없는지
끝없이 나를 의심하며 돌아보게 한다
나는 할 말이 없다
늘 겁많던 내가 당신을 볼 수 있었던 것
사랑한다라고 내 입으로 발성하며 선반 위의 사랑을 끄집어 내어
현실에 붙여본 것은
내가 두려운 만큼 당신도 두려울 거란 계산이었고
내가 당신을 나의 시행착오에서 건지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 당신은 내 계산이 틀렸다고 말하지만...
한시간을 정성 들여 쓴 멜이 순간의 실수로 날아가 버려
나는 다시 썼다
너무 속상해서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이런 일들도 운명이라고 치부하기엔
내가 너무 노력하지 않고 게으른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
굳이 더듬더듬 다시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이 메일을 썼다
물론 내가 처음에 했던 말들의 느낌과 어휘들의 단정함을
반도 복원시키지 못했다
그래도 두 가지를 아파하며 썼다
한가지는 반복되는 아픔의 기억이고
다른 한가지는 회복되지 않은 문장에 대한 실망이었다
그래도 굳이 쓴 것은
당신 때문이다
그 따위 아픔보다
내 기억에 대한 배신보다
당신이 소중하기 때문이고
당신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완벽한 삶을 지향하는 당신에게
내가 보여준 사랑은 기초가 없이 지어진 집이나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명제가 사랑이라면
기초는 무의미하다
당신이 학습해 온것과 다르게 사랑은 그저 느껴지는 것이다
내 목소리에 반응하던 당신의 심장이고
당신의 목소리에 행복하던 나의 얼굴이다
당신이 바라는 결론도 해피마인드였고
그것은 일반적인 결론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정반대이어서 더 의미있는 일이기 쉽다
어떤 사랑이라할지라도
당신이 꿈꿔왔던 그 사랑이라할지라도
해피마인드는 당신의 결론을 빗겨갈 수 있다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대로 우리 사랑을 방치하여 이르게 될 결론을 물었다
사랑은 결론을 짓고 난 후 무엇이었다 정의하는 것일까?
나는 순간순간 느껴지는 모든 해피마인드라고 하고 싶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어느 한 시점을 예습하며
아파할 필요가 없고
그렇게 된다할지라도 모든 과정을 통해 그것은 이미
해피 마인드이다
사랑이 아름답다는 두 가지다
서로 이마를 맞대고 남은 세월을 함께 하는 것
또다른 하나는 비록 그런 날이 이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어느 시점에서도 후회없어서 아파서 오히려 아름다운 것
비가 그렇게 와서 아침은 올 수 없을 것 같은 데도 날이 밝았다
불면의 고통을 가져다 준 당신이 오히려 고맙다
그 고통을 통해 나는 키가 자랐다
당신의 밤은 어떠했는가
한가지 결론에 몰두하며 힘들어하지 말자
선택은 늘 두가지를 전제하는데
될 수 있으면 그 장점을 보자
그리고 이렇게 시시하게 아프지 말자
당신은 아직 젊고 당신 영혼에겐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젊은 날 아프지 않은 것 아니고
사랑한다고 젊은 날 의미없이 소모되지 않는다
삶은 이미 존재함으로 아픈 것이고
존재하는 동안 아픈 것이고
해피앤드같은 해피앤드는 누구에게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피앤드는 드러나지 않게 감수했다는 뜻일 것이다
상실의 시대에서 만나진 우리...
상실할 것이 있다는 건 아직 행복하다는 것이다
아직 젊다는 것이다
짧은 생이라 그나마 내일 일을 알 수 있다면 좋을 것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시시하게 살고 싶지 않고
그러니 사랑하지 않고 소멸하고 싶지 않다
결론을 맺는다는 것이 두렵다
1001야화처럼 계속 당신에게 말할 수 있어서
불확실한 내일을
보상받고 싶고 보장받아 유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