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러 가지 방법들
작년에 주말농장을 하면서 상추와 파를 심었는데 같이 심었던 다른 사람들의 밭은 벌써 파랗게 싹이 오르고 있는데도 우리 밭은 몇 개만 듬성듬성 싹이 올라왔을 뿐이었습니다. 물도 몇 번 주고 돌보았는데 한달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었습니다. 거의 포기하고 다른 것을 심으려고 올라갔을 때 제 눈을 의심하였습니다. 한달이 지나서 먼저 싹이 난 것은 뜯어 먹을 만큼 크게 되었는데 이제 흙을 비집고 여기저기서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씨앗이 깊이 심어져 있어서 흙 위까지 올라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동안의 흙과 태양과 수분이 마침내 흙 위로 얼굴을 내밀게 하였던 것입니다. 제가 태희에게 썼던 방법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안에 쭉 쌓여서 어느날 바깥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게 되는 어떤 것. 아직 언어가 미숙하지만 한평도 안되는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고안된 책상에 앉아 언어를 배우는 언어치료실과 같은 상황을 거부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말이란 안에서 어떤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찼을 때 튀어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겉으로 터져나올 만큼의 힘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들이 필요했습니다.
- 자연을 몸으로 느끼기
자연은 그 자체를 느끼는 것 만으로도 정서를 순화시켜서 자폐의 콘크리트 같은 경직성과 규격화된 반복성향을 부드럽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주 계곡을 찾고 등산을 했습니다. 계곡의 돌은 어느 하나 똑같이 생긴 것이 없기에 계곡의 돌과 바위를 밟고 오르는 것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똑같은 길로 가야하고 거기서 한발자국만 벗어나도 발작하는 이 아이에게 다양성의 세계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음악속으로
음악은 자연과는 다른 방법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부분을 건드립니다. 그리고 거기서 어떤 것을 끄집어 냅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노래하며 악기로 연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물놀이는 유치원때부터 지금까지 특활반에서 계속 배우고 있는데 그것이 소리에 특별히 민감한 거부반응을 보이던 자폐의 틀을 깨게 하고 다른 사람과 조화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했습니다.
- 공연장을 누비며
연극과 춤과 연주회 공연 및 전시회 관람 등을 가능한 한 많이 데리고 다녔습니다. 6살 때 어느날 폐쇄공포증이 있는 태희를 파랑새극장에 데려갔는데 목표는 내용파악과 관계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온몸에 비오듯이 땀을 흘리며 울면서 두려움에 떠는 아이를 안고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내며 견디었습니다. 끝까지 깜깜한 이 공간을 버티었다는 자신감과 어둠과 좁은 공간에서 아무도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안녕이란 말이 나오고 불이 켜졌을 때 벌겋게 부어오른 태희의 얼굴에서 슬쩍 웃음이 스쳐갔습니다. 그 다음부터 두려움이 조금씩 완화되어가서 작년에 바이올린 독주회를 갔을 때는 움직이기는 해도 소리내지 않고 끝까지 연주를 들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 스스로 하기
장애아를 키우다보면 알게 모르게 엄마와 주위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해주게 됩니다. 잘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혼자하도록 시키는 과정이 전쟁을 방불케하는 경우가 많아서 차라리 해주는 것이 속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스스로 하게 하는 것이 잘 안되고 있었는데 어떤 계기로 인하여 아이에게 혼자서 앞길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꼭 해주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자기에게 필요한 일은 자기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되게 유도해 갔습니다. 예를 들면 식사준비에 참여하도록 하면서 다른 반찬준비를 다해놓고 저는 자리에 앉습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태희는 식탁에 앉은 후 수저가 없음을 깨닫고 수저를 가져오는 식입니다. 요즘은 하루 한끼씩은 뷔페 형태로 바꾸었습니다. 조리대 위에 밥과 반찬을 통째로 놓고 접시에 먹을 만큼 덜어먹도록 하고 남기지 않고 한가지씩 골고루 담아야 한다는 규칙을 세웁니다. 그러면 주는대로 먹는 것과 달리 자기가 자신을 조절하는 법을 생활 속에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학교에서 끝나면 태희놀이방까지 혼자서 혹은 친구들이랑 걸어오도록 하게 합니다. 점점 혼자올 수 있는 길을 늘리고 눈비가 와도 아무리 춥고 더워도 데리러 가지 않습니다. 살다보면 더운날 추운 날이 있게 마련인데 지금 안스러워서 자기극복의 기회를 빼앗으면 나중에는 억만금으로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 생길 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 다른 방법들
그외에도 생활속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이 있었는데 놀이와 운동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고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도하였던 많은 방법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조화를 이루어 결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