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타의 집에서 바라본 두브로브닉 항구의 전경
피곤함과 고단함에 절어있던 나를 깨운 것은 한 무리의 새들이었다. 수분씩 계속되는 '합창 소리'에 일어나보니 아직 창밖은 어스름했지만 새들은 창공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하루의 시작을 기쁜 노래로 알리고 있었다. 나는 까치머리를 한 채로 잠시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다가 정말 뷰 하나는 기가 막히다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다시 침대로 스멀스멀 기어들어갔다. 상쾌한 아침 공기가 나를 깨우는 게 싫었다. 침대로 내 피곤한 기운이 쪼옥 빠져 내려갔으면. 마치 돌판에 굽는 삼겹살에서 기름 빠지듯이.
하지만 더 이상 잠을 청할 수는 없었다. 아침에 일찍 성벽을 둘러보고 11시 정도까지는 와서 체크 아웃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는 마린이 그토록 갈망하던 두브로브닉의 오성 호텔 'villa argentina'로 옮기게 될 것이다. 짐을 싸놓고 아침을 먹으러 나섰다.
햇살이 성벽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진다.
집을 나서는데 좌측 작은 광장에 펼쳐진 시장에 들러 말린 무화과를 한 봉지 샀다.
거리는 전날 밤 넘쳐나던 관광객들은 온데간데 없고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거리를 조금 걷다가 중앙로 초입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투나 샌드위치 등으로 아침을 떼우기로 했다.
앉아서 식사를 기다리는데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고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우리 테이블의 네 시 방향으로는 한 일본인 커플이 앉았는데 좀 전에 중앙로를 가로질러 갔던 이들이었다. 저들은 덥지도 않냐, 섭씨 30도를 육박하는 지역에서 검정 긴팔 티셔츠를 왜 입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라고 말했던 바로 그들. 그런데 여기 와서 앉았네. 아침을 먹기 위해서 식당을 물색하다가 우리 옆에 앉은 모양이었다.
나는 같은 동양인이어서 조금 친밀감도 느끼고, 그들에게 우리의 사진도 한 장 부탁할 겸 해서 슬쩍 말을 걸어보았다. 그랬더니 의외로 선선히 부탁도 들어주고 은근히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지 이것저것 묻기도 한다. 우리는 금새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일본인으로서 '크루즈'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와, 크루즈 정말 비쌀텐데. 가격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둘이 연인이냐고 묻자 그들은 손사래를 치며, 'Just friend'임을 강조했다. 그들이 탄 크루즈는 어제 밤에 들어왔는데 하루를 보내고 오후에 이태리로 떠날 거라고 했다. 나는 두브로브닉이 이렇게 좋은데 하루만 보내고 바로 떠나게 되어 아쉽겠다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같이 기념촬영까지 하고는 헤어졌다.
...
성벽을 오르기 위해서는 중앙로의 맨 끝으로 와서 계단을 오르면 되었다. 성벽은 바다와 나란히 건설되어 있는 sea-view 구간과 좀 더 육지쪽에 건설된 대신 지대가 높아 도시 전망이 좋은 내륙 구간으로 임의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는 sea-view 구간을 먼저 둘러보기 시작했다. (입장료 30 KN[쿠나], 약 5400원)
구시가지 성벽걷기 해설도. A가 sea-view 구간, B가 내륙구간이다.
성벽위에서 바라본 큰 오노프리오 샘
사실 여행을 오기 전에 잡지에서, 또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 비행기 안에서 두브로브닉 구시가지의 전경을 보기는 했지만, 막상 성벽에 올라 도시의 전망을 둘러보자니 살짝 흥분도 되고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것은 첫째는 1300년을 이어온 기념비적인 역사 도시에 대한 찬탄이며 둘째로는 도시의 아름다운 색감에 대한 매혹이었다.
실제로 두브로브닉은 그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서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지금도 한 해 천만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라고 한다. 또한 두브로브닉은 베이지 색 벽돌과 주황색 지붕과 푸른 하늘과 바다로 이루어진 색감을 보여주는데 그 주된 색상인 주황과 파랑은 서로 보색관계이다. 이렇게 두 색상이 '보색대비 [補色對比]'를 이루게 되면, 주황과 파랑은 서로의 영향으로 더욱 뚜렷하게 보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두브로브닉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느끼는 이유이다.
보색대비가 강렬한 도시, Dubrovnik.
나는 성벽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광경을 카메라에 정신없이 담았다.
중앙로와 종루의 모습
돌 액자 안에 두브로브닉 담기
같은 듯 서로 다른 지붕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성벽에서 바다 내려다보기
두브로브닉은 관광지이기 이전에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두브로브닉 엿보기
한편 바다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카약을 즐긴다. 바다는 눈이 부시다.
성벽 아래에는 파라솔이 펼쳐진 카페가 있어 뜨거운 태양에 지친 관광객들이 쉬어갈 수 있게 한다.
주황색 지붕 사이에 홀로 선 회색 돔.
1991년 보스니아 침공으로 두브로브닉은 심한 폭격을 받았지만 대부분 복구되었다. 일부를 제외하고.
이렇게 sea-view 구간이 끝나고 우리는 내륙구간으로 접어들었다. 사실 요금을 다시 내야 하나 하고는 입장을 망설였지만 혹시나 하고 끊어놓은 티켓을 보여주니 그것으로 입장은 오케이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요트들.
내륙 성벽이 지대가 더 높은 관계로 더욱 한눈에 올드 타운을 조망할 수 있다.
보색 대비의 도시, 두브로브닉.
첫댓글 뷰 진짜 좋네요~나중에 갈때 어딘지 물어봐야겠어요~눈부신 바다 사진 넘 예쁘고...언젠가 꼭 가봐야겟어요!
자세한 방법은 나중에 물어보시면 알려드릴께요. 꼭 다녀오세요~
제가 갔을때보다 지붕이 많이 수리가 된것 같아요..사진상으로는~~ 저 돌액자에 담은 두브로브닉 사진과 빨랫줄 사진은 저도 찍었더랬죠.. 글구, 저도 일본인 친구를 두브로브닉 가는 중에 사귀었는데, 나츠코라고..그 친구도 9개월간 세계일주를 하고 있던중이었고, 나중엔 한국에도 와서 두 번이나 다른 장소에서 만났었어요...두브로브닉..사람들이 돈맛을 알아서 좀 까칠하긴 하지만, 날씨와 경치만 놓고 보면 어디 하나 흠잡을데 없는 곳!! 그나저나 마린 언니가 갈망하던 그 특급호텔 사진은 언제 나오는거죠?
특급 호텔 사진은 다음 편에~ ^^
페리가 아니고 크루즈죠, 대형 선박을 타고 먹고 자고 놀면서 유람하는거~ ^ ^;;; 일케 또 좋은 사진 다 갖다 써버리니 난 무슨 밑천으로 장사를 하나~~~ ㅠㅠ;;;
수정했습니다. --;;; 아직 사진 많아요 ^^;
우와... 사진때문에 소년님의 글솜씨가.... 보이지 않아요.ㅠ_ㅠ 사진 넘 멋져요...
사과야, 글도 봐줘야지. 힘들여 썼는데... --;; ^^
진짜....두브로브닉의 매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일본사람들은 지중해크루즈를 한거네요.베니스를 출발해서 바리,그리스,터키,두브로브닉까지 가서 다시 베니스로 돌아오는....저거 함 타고 싶던데...ㅋㅋㅋ
넹, 잘 알고 계시네요. 엄청 좋다나봐요.
답글일등이 되구 싶었는데 ㅋㅋ 6등이네요 ㅎㅎ 사진 너무너무 멋져요~~~ 무거운 카메라 가지고 간 보람이 10000000% 있는듯해요!! 담엔 마린언니 차례네요 ㅋㅋ 언니 홧팅!! 언니에게 럭셜호텔사진 기대하겠어요!!
다음에는 꼭 일등 하세용~ ^^
소년님의 글중에서 "두브로브닉은 관광지이기 이전에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이말에 갑자기 제가 여행했던 나라의 그곳들은 전 정말로 관광지에 온 사람의 시선으로만 보고온게 아닌가 싶어지네여... 이젠 북유럽에 도전해야겠다고 맘먹었었는데 1순위가 자꾸 두브로브닉으로 바뀌려고 하고 있음돠... 다음에 이어질 마린이의 다른시각 여행기가 기둘려지네여
정말 좋지요? 다녀오셔도 후회는 안하실거예요.
두브로브닉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인지도 몰랐다는....정말 아름다운 도시군여~
석굴암보다 훨씬 좋져? ^^
꺄~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빨래 색깔도 저렇게 주황색,푸른색이래요.. 빨래가 아니라 염색천 널어놓은것처럼 비현실적으로 이쁘다 ㅠ.ㅠ
그러게요. 저도 빨래가 너무 예뻐서 순간적으로 셔터를 눌렀었더랬죠.
지금 이곳과는 너무도 판이한 날씨이군요. 정말 가고 싶다. 요즘 병이 넘 심해졌어요. 사진만 봐도 그 곳에 가고 싶어지는 병~
불치병이네요. 하지만 클럽 내에 대다수가 이 병에 걸려 있다는거~
전 색깔중에 주황색을 제일 싫어하는데...이렇게 유럽에서 보는 지붕색은 어찌그리도 이쁜지 모르겠어요....오늘같이 추운날씨에 따스한 두브로브닉 사진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참 좋아져요...
주황색을 싫어하는구나. 잘만 쓰면 멋진 색이야. 특히 지붕 주황은 정말 아름답지??
보색대비효과를 의도하고 지붕색을 통일한것인지...?? 암튼 넘 강렬하고 짐 여기 날씨와는 넘 다른 느낌이라 정말 좋네요~~정말 셔터누를떄 마다 다 작품이 되는군여^^ 그나저나 저 긴 빨래는 어케 널었데요?? 갑자기 궁금..ㅋ
빨래 도르레로 널어요.
바다색깔 너무 예쁘고, 사진과 글 다 환상적이에요. 다음편 호텔 사진두 기다려지네요!
냉면이 좋아님, 오래간만여. 새해 복많이 받아요~ 고마워요~
블루와 오렌지의 보색대비~~ 넘 멋쪄!! 저 아름다운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빨래너는 아주머니가 왤케 부러워지는지^^;; 아참, 저스트 프렌드인 일본인 커플 사진이 궁금 ㅋㅋ
ㅋ 저도 부러웠어요, raindrops. 님. 일본인 커플 사진은 아마 블루마린님이 올려주지 않을까 싶네요.
두분은 카약이나 요트는 안타셨나요? 사진 보니 정말 입이 떡 벌어집니다~너무 멋지네요~그런데 얼(몸)짱 부부의 사진이 빠지니 왠지 섭섭해요 ^^ 담부턴 신경좀 써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