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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하피스를 두고 말하면 축복이, 괴테를 두고 말하면 명랑함이 될 것이다. - 니체
「시인 시편」, 「하피스 시편」, 「줄라이카 시편」 등 열두 시편과 「유고 중에서」로 구성된 『서동 시집』은 시인 하피스가 보여 준 문학적 이상향에 경탄하며 보내는 괴테의 화답이다. 괴테는 하피스가 즐겨 사용한 ‘사랑’, ‘시인으로서의 자세’ 등의 주제를 차용, 발전시켜 동방의 전설적인 시인과의 정신적 교감을 노래하는 한편, 동방의 시 형식인 가젤의 운율을 독일어로 재현하며 새로운 시 세계를 보여 주었다. 헤겔은 『서동 시집』이 괴테의 작품 가운데 가장 완성된 작품이라고 평하였으며, 훔볼트와 하이네 등 괴테를 잇는 독일 지성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타문화를 단순히 동경하고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세계에 자연스럽게 녹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괴테의 시도는 오늘날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번에 나온 『서동 시집』은 초판본에 실린 열두 시편과 괴테가 이후에 추가한 「유고 중에서」로 구성되어 있다. 열두 시편에 대한 설명은 물론, 각각의 시편에 포함된 개별 시의 배경까지 자세히 설명한 번역자의 주석과 하피스의 초상화, 대표 시 「은행나무」의 원본 사진, 괴테가 인용한 동방의 전설을 담은 이슬람 세밀화 등 화보가 함께 실려 있어, 괴테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특히 어려운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 시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민음사는 1997년부터 10년 간 괴테전집 발간을 목표로 『파우스트』,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친화력』, 『색채론』등을 펴냈다. 앞으로 『시 전집』, 『예술론』, 『시와 진실』, 『잠언과 성찰』 등의 작품들이 출간될 예정이다.
■ 괴테 사상의 결정체 『서동 시집』
『서동 시집』은 여러 형상과 무늬가 혼합된 풍부하고 다채로운 양탄자라 할 수 있다. 동방을 새롭게 발견하여 그 가치를 인식하고 함빡 자극받아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문학을 만들어 낸 괴테의 시집은 다른 문화를 창조적으로 수용한 훌륭한 예다. 다른 문화의 산물을 단순히 번역하거나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 그 문화를 자신의 문화 속에 비추어 보고, 그 문화의 전통과 양식을 받아들여 마침내 최고의 경지에서 두 문화가 하나 되는 예를 보여 주고 있다. -「작품 해설」에서
▶ 노시인에게 다가온 운명 같은 인연
인생과 문학의 의미를 함께 논하던 실러가 죽고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으로 유럽이 혼란에 빠진 19세기 초반, 괴테는 창조력의 소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나폴레옹 전쟁이 막을 내린 1814년, 스스로 “돌아온 사춘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괴테는 창조력이 새롭게 분출하는 것을 경험하는데, 당시 만난 두 사람이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페르시아의 시인 하피스와 괴테가 사랑하게 될 마리안네 융(결혼 후 마리안네 폰 빌레머가 됨)이 그들이다. 요제프 폰 함머(Joseph von Hammer)의 번역을 통해 하피스의 시를 처음 접한 괴테는 신비로운 동방의 시인에게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하피스는 14세기 페르시아에서 활동한 전설적인 시인으로 현세적인 것에서 신적인 것을 간구하는 내용의 시를 주로 썼다.
안식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 소중한 충고를 따르게나
사랑스러운 것을 찾고 싶다면
세상에서 벗어나 세상을 그대로 내버려 두게나
하피스가 노래한 사랑 시는 지금까지도 아랍 지역에서 즐겨 암송되고 있다.
이와 같은 하피스의 시들은 동방을 넘어서 서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낭만주의가 싹을 틔우던 19세기에 그 빛을 발하였다. 함머가 번역한 하피스의 시집은 독일의 괴테뿐 아니라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 러시아의 푸슈킨, 영국의 바이런, 미국의 에머슨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서양 문화가 근대화되는 데 주된 역할을 한 낭만주의 사조의 한가운데에 동방의 시인 하피스가 있었던 것이다.
온 세상이 가라앉아 버린다 해도
하피스여, 나는 그대와, 오직 그대와
겨뤄 보고 싶습니다! 기쁨과 고통은 우리에게
우리들 쌍둥이에겐 똑같은 것!
그대처럼 사랑하고 그대처럼 술 마시는 것
그것은 나의 자랑, 나의 삶이 되리라.
이제 스스로 타오르는 노래를 부르라!
그대는 옛 시인이자 새 시인이니. -「하피스 시편」에서
한편, 괴테는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하던 중에 은행가 야콥 폰 빌레머(Jakob von Willemer)의 집에서 그의 약혼녀 마리안네 융을 만나게 된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괴테와 마리안네는 이후에 하피스의 시로 암호를 만들어 편지를 주고받는가 하면 직접 지은 시도 서로 교환했다.
그러니 그대, 활달한 노인이여,
슬퍼하지 말게나
머리가 곧 허옇게 세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으리. -「시인 시편」에서
세속적 욕망(이상적 사랑)과 정신적 욕망(문학적 이상향)을 실현시켜 줄 인도자를 만난 괴테는 정열적으로 시를 써 내려갔고, 이 열정은 괴테라는 한 인간을 완성시킨 이상적 문학 작품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
▶ 동방과 서방이 만나 이룩한 세계문학의 표본
괴테는 하피스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고 느꼈으며 하피스가 다루는 주제에 깊이 공감하였다. 중앙아시아 티무르 제국의 건설자 티무르 렝의 지배를 받았던 당시 페르시아는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은 독일과 연결되었고, 그 혼돈 속에서도 고양된 정신을 추구한 하피스는 보편주의적 인간을 추구하는 괴테와 닮아 있었다.
그대는 전쟁의 신 화성이고 나는 대지의 신 토성이다.
무서운 작용을 하는 별들,
우리가 짝을 이루면 가장 무서운 별들이 된다. -「티무르 시편」에서
하피스의 시집을 읽고 난 뒤 괴테는 동방에 관한 서적을 탐독하며 동방 세계에 점점 빠져들었다. 『서동 시집』 첫머리에 수록된 시「헤지라」에서 말하듯 시인은 “북과 서와 남이 갈라지”는 혼돈의 시대에 ‘순수한 동방’으로 도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의 도피는 현실을 회피하려 함이 아니다. 오히려 괴테는 ‘열린 태도’로 동방과 서방을 넘어서 새로운 세계를 모색했다. 동방의 시성 하피스와 정신적 합일을 이루려는 서양 대문호는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시적 유토피아를 그려 냈다.
그러면 삶의 지고한 울림이
영혼을 뚫고 울려 퍼지리라!
시인은 가슴에 불안을 느껴도
시로써 화해를 이루리라. - 「시인 시편」에서
괴테는 주제뿐 아니라 형식적인 면에서도 동방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독일어를 아랍의 시 형식인 가젤 형식에 담아 그 운율을 그대로 살려내는 한편, 하피스가 즐겨 사용하던 대화 시 작법을 통해 하피스와 괴테 자신인 시적 화자와의 교감을 표현하고 연인 마리안네와의 사랑도 담아냈다.
▶ 정신적 교감으로 승화된 세속의 사랑
하피스와 괴테의 만남이 『서동 시집』의 한 축을 이루는 한편, 괴테와 그의 연인 마리안네 사이의 사랑 이야기도 시집의 중심을 이룬다. 괴테와 마리안네는 하피스의 시를 암호로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둘은 사랑을 노래하는 시도 교환했는데, 실제로 『서동 시집』의 「줄라이카 시편」에는 마리안네가 직접 쓴 시가 실려 있다. 하지만 시편 안에서는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각 시들의 수준에 편차가 없다. 괴테의 수정이 더해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마리안네의 시적 재능이 대문호 못지않게 뛰어났음을 짐작하게 한다.
시편 중 작품 수도 가장 많고 시집의 핵심을 담고 있는 「줄라이카 시편」은 사랑을 종교에 귀의하는 것으로 승화시킨 페르시아의 전설 속 주인공 ‘줄라이카’와 역시 동방에서 널리 회자되는 노시인 ‘하템’ 간의 대화 시로 구성되어 있다. 노시인 하템과 아름다운 여인 줄라이카의 대화는 괴테와 마리안네의 대화를 연상시킨다. 이 연인의 대화는 하나의 목소리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애를 담은 노래로 나아간다.
두 쪽으로 갈려 있는
이 잎은 본래 한 몸인가?
사람들에게 하나로 보이는
이것은 본래 두 개 인가?
이런 물음을 궁리하다가
나 그 참뜻을 깨달았다.
그대는 내 노래에서 역시
내가 하나이며 또한 둘임을 느끼지 않는가? -「줄라이카 시편」에서
▶ 조화를 통한 이상향의 실현
서로 다른 제목을 가진 시편들은 열두 시편은 각각의 제목을 소재로 ‘조화를 통한 유토피아의 실현’을 노래한다. 노시인의 지혜가 담긴 「성찰 시편」과 「격언 시편」, 세속적 사랑을 정신적 교감으로 승화시키는 「사랑 시편」과 「줄라이카 시편」, 비평가들에게 자신의 시적 이상을 고하는 「불만 시편」, 동방 문화의 배경을 알려 주는 「배화교도 시편」, 이슬람과 기독교의 종교관이 서로 통함을 보여 주는 「천국 시편」 등 각 시편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씨줄과 날줄을 이루며 『서동 시집』을 엮는다. 동양과 서양, 사랑과 종교, 전쟁과 평화, 신과 인간, 시인과 비평가까지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이 조화롭게 짜인 이상적 세계가 완성된 것이다.
지은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1749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황실 고문관인 아버지와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라틴어, 희랍어 등을 배웠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문학과 성경 등을 읽어 8세 때 조부모에게 신년시를 써 보낼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18세 때 첫 희곡 『연인의 변덕』을 썼고 1772년(23세)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일약 유명해졌다. 1775년(26세) 카를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50여 년간 머물면서 바이마르를 문화의 중심지, 고전주의의 꽃으로 부각시켰다. ‘보편주의’를 주창한 괴테는 문학뿐 아니라 식물학 ․ 해부학 ․ 광물학 ․ 지질학 ․ 색채론 등, 인간을 설명하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괴테의 보편주의적 입장은 ‘세계 문학’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지며,『서동 시집』은 그의 이런 사상을 총체적으로 집약한 책이다. 경계를 넘어 통합의 장을 만들어 낸 괴테의 시도는 낭만주의로 이어졌으며 훔볼트, 헤겔, 니체 등 19세기 유럽의 지성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4세 때 구상하여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집필한 역작『파우스트』외에『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이탈리아 기행』을 남겼다.「파우스트」 2부를 완성한 이듬해인 1832년 83세로 생을 마쳤다.
* 아내 불피우스가 죽은 뒤에 알게 된 빌레머 부인과의 사랑으로, 그녀를 사모하여 읊은 《서동시집(西東詩集)(Westöstlicher Divan)》(1819)이 간행되었다
괴테의 서동시집
박설호 한신대 교수
괴테는 "서동 시집"에서 페르시아 시인 하피스 (1317/ 25 - 1389/ 90)의 시를 읽고 오리엔트의 세계를 작품화했다. 당시 1814년 요젭 폰 함머-푸르크슈탈의 하피스의 독일어 번역 작품이 괴테에게 감동을 주었다. "서동 시집"은 東西의 문화 그리고 두 시인의 交感을 형상화시키고 있다. (당시 이미 신대륙의 삶이 전해졌으나, 유럽인들은 페르시아 지역을 여전히 동방이라고 믿고 있었다.) 괴테는 스스로를 하피스의 쌍둥이 동생이라고 간주하고, 자신의 고유한 모방시를 하피스보다 더 탁월하게 창조하려고 했다.
괴테는 하피스의 시를 읽고,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젊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1814년 라인 강 마인 강 그리고 네카 강변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때 “동방의 세계는 인류의 근원적 고향”이라는 영감이 노시인의 뇌리를 스치게 된다. 1814년 8월 노시인은 「디반 연작시」에 나오는 이상적 여인 술라이카 (Suleika)를 실제로 만나게 된다. 아름다운 젊은 여인은 마리안네 융으로서, 나중에 괴테의 옛 친구이자 프랑크푸르트 은행가인 요한 야콥 빌레머의 부인이 되는 다재다능한 여성이었다. 그미는 빌레머의 초청으로 프랑크푸르트 극단, “Gerbermühle”의 무희로 일하고 있었는데, 1815년 가을을 괴테와 함께 보냈다. 대부분의 시는 1815년 가을 하이델베르크에서 집필되었다.
대학 시절의 괴테
"서동 시집"은 도합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수의 書」에서는 서방 세계의 시인이 영혼을 일깨우는, 동시에 정치적 혼란으로부터 도피하게 하는 동방의 문화와 만난다. 가령 「축복받을 동경」이라는 시에는 신비적 종교적 내용, 즉 사랑을 통한 자기 헌신으로 인해 새로운 존재가 탄생될 수 있다는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 「하피스의 書」에서는 동방 예술의 특수성, 예술적 대상과 형식이 표현되어 있다. “이제 노래는 고유한 불과 함께 소리를 내는구나! 그대는 훨씬 나이 많고, 그대는 신선하도다. Nun töne Lied mit eigenem Feuer!/ Denn du bist älter, du bist neuer”. 「사랑의 書」는 나중의 「술라이카의 書」와는 달리 한쌍의 연인에 관해 묘사하지 않고, 신화와 문학에 나타난 인간의 보편적 사랑에 관한 유형을 다루고 있다. 「관조의 書」, 「불쾌함의 書」, 「격언의 書」는 나중의 디반 시가 형성될 무렵의 격언과 교훈시를 담고 있다. “선을 위해서 선을 행하는 일. Gutes tun um des Guten willen”. 「티무르의 書」는 두개의 시대적 배경 (하피스의 현실과 괴테의 현실)을 유사성을 표현하고 있다. 유명한 시 「겨울과 티무르」에서 페르시아의 영웅 티무르는 겨울에 중국으로 진군하는데, 이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술라이카의 書」는 가장 방대한데, 괴테가 주로 1814년 1815년에 집필한 것들이다. 여기서는 하템과 술라이카 사이의 사랑의 대화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년과 청춘,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암호 해독과 공적인 알림 사이의 긴장 관계이다. 하템과 술라이카는 사랑의 유형적인 인물로 다루어지고 있다. 「선물의 書」에서도 주가 되는 테마는 사랑이다. 나이든 하피스는 실제로 미소년을 사랑했는데, 괴테는 이를 약간 뒤집어 두 사람 사이의 교육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늙은 시인 하피스는 포도주를 마시면서, 모든 요소에 신의 현존을 인식하도록 고결한 아이에게 가르치고 있다.
(필주첨가 참고:
줄라이카, 그녀는 Schubert, Mendelssohn(Felix), Mendelssohn(Fanny), Schumann 등등 - just to name a few - 많은 작곡자의 곡에 인용된 "Suleika" 의 모델이자 이 시의 저자이기도 한데 그녀의 약 15편의 시들은 괴테의 시집 Westöstlicher Divan (서동시집)에 ...
독일 문학의 거장 괴테도 엄밀한 의미에서 표절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괴테는 1819년에 발행한 ≪서동시집 West-ostlicher Divan≫에, 자신과 가까이 지내며 문학적인 교류를 가졌던 마리안네 폰 빌레머의 시 일부를 ‘술레이카(Suleika)’라는 여인의 이름으로 실었기 때문이다. 마리안네는 그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가 괴테가 죽은 지 15년쯤 지난, 1840년대 말 독문학자이자 문화사가인 헤르만 그림에게 알려준다. 그림은 마리안네가 죽은 지 9년 뒤인 1869년 ≪프로이센 연감≫의 <괴테와 술레이카>라는 글에서 그러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오히려 마리안네라는 한 여인의 인내와 괴테에 대한 예의를 느낄 수 있다. )
1819년에 간행된 서동 시집의 초간본
마지막 세권은 종교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다. 「우화의 書」에서는 인간의 상태를 원용하여, 윤리적 요소와 종교 정신이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다. 인간은 보다 높은 전체를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하고 제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화려한 장시 「고대 페르시아 신앙의 유언」은 「배화교도의 書」에 실려 있는데, 여기서 죽어가는 배화교도가 그를 둘러싼 신도들에게 신앙에 관한 마지막 경고를 전하고 있다. 아리만을 물리치고 오르무츠드를 선택하려면, 어떠한 신앙적 신념이 필요한지 들려주고 있다. 「천국의 書」는 지상의 사랑과 천상의 사랑 사이의 가교를 잇는다. 괴테는 우선 이슬람의 천국을 묘사한다. 신앙의 영웅 곁에 네 명의 선택받은 여인과 네 마리의 짐승이 서성거리고 있다. 서양의 시인 역시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그곳에는 “후리”라는 여인이 지키고 있다. 후리는 술라이카의 모습을 드러내며, 시인에게 사랑의 시편들을 집필케 할 뿐 아니라, 그를 천국 안으로 들어서게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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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서동시집 중에서
Suleika
술레이카
이 움직임은
무슨 의미일까?
동쪽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걸까?
신선한 동풍이
마음 속 깊은 상처를
식혀 주는구나.
달콤하게
먼지들과 어울리고
가볍게 살짝
구름들을 밀어내며
포도가지에 붙어
즐거워하는 곤충들을
몰아내는 동풍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열기로 뜨거운
나의 뺨을 식혀 주고,
들과 언덕에 풍요로운
포도나무에 간청하듯
입맞춤 하네.
그리고 내게는
그의 기쁨에 찬
천만번의 사랑을
조용한 속삭임으로
전해 준다네.
그리고
어두워지기 전
천만 번의
입맞춤을 보내지.
그런 후
그대는 멀리 가지.
친구들과
근심 있는 자에게
찾아간다네.
그 곳,
높은 성벽이
끓어오르는 곳,
곧 그 곳에서
내기 너무나
사랑하는 이를
찾을 수 있다네.
아, 진실한 마음과
사랑의 숨결
신선한 삶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의 숨결만이
줄 수 있다네.
Suleika sqeiter Gesang
술레이카의 두 번 째 노래
아, 그대의 촉촉한 움직임, 서풍이여,
얼마나 내가 이별로 슬퍼하는지
그에게 소식을 전 할 수 있는
그대를
내가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그대 날개의 움직임은
가슴의 조용한 그리움을
깨우는구나.
눈물 속
꽃, 들, 숲 그리고 언덕은
그대의 숨결로
가득 하다네.
그래도 그대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미풍은
나의
눈꺼풀의 상처를 식혀주고
고통을 이길 수 있게 하며
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없애 준다네.
줄라이카는 괴테가 1819년에 발표한 <West-östlicher Divan 서동시집>에 등장하는 여인인데, 실제 모델은 마리안네 폰 빌레머(Marianne von Willemer, 1784-1860)입니다. 괴테는 마리안네를 1814년 8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당시 괴테는 65세였고 마리안네는 30세였습니다. 괴테가 소녀, 처녀, 유부녀를 가리지 않고 연령을 초월하여 인연 맺기를 즐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마리안네는 그로부터 약 한 달 후인 9월에 결혼을 했지만, 괴테와 마리안네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갑니다. 두 사람은 때로는 시로 애정을 표시하고, 또 때로는 남들이 읽어도 알 수 없도록 암호를 사용하여 편지를 교환했다고 합니다.
마리안네의 모습입니다. 몇 살 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30살 전후이겠죠?!! | 1814년 65세의 괴테입니다. |
<서동시집>에는 괴테와 마리안네가 주고받은 시들이<Buch Suleika 줄라이카의 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괴테는 작품 속에서 마리안네를 줄라이카라는 이름으로 묘사하고 자기 자신은 하템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서동시집> 속에는 괴테의 시가 아닌 마리안네의 시도 실려 있었는데, 그러한 사실은 마리안네가 세상을 떠나고 거의 10년이 지난 1869년에야 비로소 구전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마리안네가 그 비밀을 헤르만 그림(빌헬름 그림의 아들이며 야콥 그림의 조카)에게 생전에 털어놓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줄라이카의 노래의 가사하나를 올려보겠습니다.
방금 설명했듯이 괴테의 <서동시집>에 실려 있는 마리안네의 시이며, 슈베르트 곡입니다.
괴테의 여인들 중에서 가장 문학성이 뛰어났었다고 전해지는 마리안네의 괴테에 대한 애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소프라노 Dawn Upshaw, 피아노 Richard Goode
Was bedeutet die Bewegung?
Bringt der Ost mir frohe Kunde?
Seiner Schwingen frische Regung
Kühlt des Herzens tiefe Wunde.
이 움직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동풍이 내게 기쁜 소식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그의 날개의 상쾌한 움직임이
마음의 깊은 상처를 식혀주네.
Kosend spielt er mit dem Staube,
Jagt ihn auf in leichten Wölkchen,
Treibt zur sichern Rebenlaube
Der Insekten frohes Völkchen.
동풍이 먼지와 애무하듯 놀다가,
그것을 가벼운 구름 속에 날려 보내고,
안전한 포도잎으로 몰아간다
즐거운 벌레 떼를.
Lindert sanft der Sonne Glühen,
Kühlt auch mir die heißen Wangen,
Küsst die Reben noch im Fliehen,
Die auf Feld und Hügel prangen.
태양의 불꽃을 부드럽게 가라앉히고,
내 달아오른 볼도 식히고,
지나가면서 포도덩굴에 입맞춘다,
들과 언덕을 화려히 장식하는 (포도덩굴에).
Und mir bringt sein leises Flüstern
Von dem Freunde tausend Grüße;
Eh' noch diese Hügel düstern,
Grüßen mich wohl tausend Küsse.
그리고 나에게 그 나직한 속삭임은 전해 준다
그 친구의 수많은 인사를;
언덕이 어스름해지기 전에
아마도 수많은 입맞춤이 나에게 전해지겠지.
Und so kannst du weiter ziehen!
Diene Freunden und Betrübten.
Dort, dort, wo hohe Mauern glühen,
Dort find' ich bald den Vielgeliebten.
그리고 너는 계속 불어가도 좋아!
친구와 슬픈 이들을 돌보거라.
높은 담이 빛나고 있는 그곳, 그곳에,
그곳에서 곧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리라.
Ach, die wahre Herzenskunde,
Liebeshauch, erfrischtes Leben,
Wird mir nur aus seinem Munde,
Kann mir nur sein Atem geben.
아, 진정한 마음이 담긴 소식,
사랑의 숨결, 생기 있는 삶은
나에게 오직 그의 입을 통해서만 나오고,
나에게 오직 그의 숨결만이 줄 수 있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
스티그마 안수현 faithfulone@paran.com
http://www.cyworld.com/stigma
군의관 / 한국누가회 (CMF)
그제 풍월당에 막 입고되자마자 첫 테이프를 끊은 바렌보임 /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음반의 음반과 DVD를 죽 훑어보았다. [코다] 지난 달 호와 이번 달 [그라모폰]에서 약간의 정보를 접한 터라 궁금하기도 했고, 게다가 내가 천착하는 레퍼토리인 차이코프스키 5번이라는데야. 이번 달에 내한공연을 하는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에도 이 5번이 포함되어 있다.
West-Eastern Divan Orchestra /
Daniel Barenboim, Conductor
2005 Warner Classics (CD+DVD)
2564 62190-2
Recoded live at the Victoria Hall, Geneva, on August 6, 2004
직접 실황을 보게 되면서 이들이 거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최고령자가 26세이다) 으로 구성된 유스 오케스트라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CD로 들었을 때 느꼈던 아쉬움 - 게르기에프나 므라빈스키 등의 여타 대표적인 음반들에 비해 세밀한 디테일이 부족한 데 대한 - 은 상당부분 상쇄되었다. 아마 그래서 비평가들도 그들에게 훈훈한 격려의 시선을 보내주었을 것이다. 이들이 보여준 합주력은 비록 세밀한 부분은 약간 부족하다 해도 차이코프스키의 관현악을 포르테에서 피아니시모까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두터운 음색과 다이나믹한 흐름이 있다. 간간히 단원들이 긴장한 채 연주에 임하는 모습에서 엿보이는 풋풋함은 기존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익숙해지면서 어느새 잊고 있었던, 음악 자체에 대해 가슴 떨렸던 첫사랑의 옛 기억을 되살려준다.
후반부 연주에 베르디의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 서곡이 담긴 것도 자못 의미있게 느껴진다. 이 곡은 예전에 프랑스 영화 [마농의 샘] 에서 테마로 사용되면서 대중들에게도 익숙해진 곡인데,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합주력은 여타 유명 오케스트라에 뒤지지 않음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앵콜 곡으로 연주된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 역시 내가 아끼는 곡이어서 반가웠다. (DVD에는 앵콜 곡은 빠져있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유태인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 기독교인인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 두 공동설립자의 협력을 통해 지난 99년 시작되었다. 단원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각각 절반씩이라는 다분히 실험적이고도 이상적인 구성을 가졌다. 99년에는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독일 바이마르에서, 2001년에는 무슬림과 기독교인, 가톨릭교도가 공존하고 있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워크숍을 가졌던 지정학적인 의미도 의미있게 다가온다. 팔레스타인 피아니스트와 이집트인 바이올리니스트, 그리고 이스라엘인 첼리스트가 생전 처음 서로를 접하면서 한 그룹으로 묶여 음악을 연주하면서 의견을 조율하고 한 팀이 되어갔다. 요요마 같은 세계적인 첼리스트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기꺼이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주었다.
함께 브람스 첼로 소나타 1번을 맞춰보는 요요 마와 바렌보임.뒷자리에 앉아있는 사이드 역시 클래식에 깊은 탁견을 가졌으며,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꾸었으나 굴렌 굴드의 연주를 듣고 꿈을 접었다고 한다.1999, 독일 바이마르
컬럼비아 대학 교수로서 <오리엔탈리즘> 등의 저서를 통해 팔레스타인 민족의 입장을 세계에 대변하는 '소리'로 자리매김했던 공동설립자 사이드는 그토록 바랬던 라말라 (팔레스타인 반군의 중심지)에서의 공연을 보지 못하고 2003년 9월에 지병인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올해 8월에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라말라 공연을 가짐으로서 그 꿈을 이루었다.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W. Said, 1935~2003)
팀의 설립과 걸어온 길을 조망할 수 있었던 3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Lessons in harmony]는 팀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보너스 영상이다. 99년 설립 당시 공동설립자인 故 에드워드 사이드와 다니엘 바렌보임, 그리고 함께 초청된 요요마가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모인 청년들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토론하며 음악을 공유하는 모습은 이 복잡하고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가득한 중동의 현 상황에서 음악이 열어보일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똘레랑스(tolerance)를 보여준다. 재작년에 읽었던 바렌보임과 사이드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 (Parellels & Paradoxes)] 책 내용이 아련히 떠오른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고민을 공유화는 친한 친구로서,
우리의 삶이 가지고 있는 역설뿐 아니라 평행까지도 함께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자의식을 털어버린 채 그렇게 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겠습니까?"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서, 정체성을 타자의 편에 두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역사관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고
서로 다른 상태로 유지한다는 것은 분명 가치있는 일입니다.
나는 서로 다른 견해에서 오는 긴장이 오히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 [평행과 역설 (생각의 나무)]
에드워드 사이드, 다니엘 바렌보임, 요요 마
1999, 독일 바이마르
아울러 라말라를 비롯한 아랍권에서 연주회를 가지기 위한 첫 발걸음으로 바렌보임이 포연 자욱한 라말라 시가를 둘러보며 그곳의 음악학교를 방문하여 독주회를 가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과연 그 곳에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라말라에서 마스터 클래스 중인 바렌보임
팀이 걸어왔던 6년간의 상세한 여정은 [Knowledge is the beginning]이라는 한시간 반 분량의 DVD(Euroarts)에서 보다 상세히 만날 수 있으며, 이외에도 2004년 제네바에서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실황과 2005년 라말라에서의 공연실황이 각각 DVD로 선보였는데, 모두 아직 국내에는 들어와 있지 않다.
60대에 들어선 바렌보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 일은 나의 삶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풍성하게 해주었다"고 역설하면서 열정을 쏟는 모습은 그간 바렌보임에 대해 그닥 애착을 가져보지 않았던 내게도 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여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이스라엘과 아랍 양 진영으로부터 쏟아지는 온갖 위협과 엄청난 반대에 대해 그라모폰(Gramophone) 지 기사 마지막을 장식하는 바렌보임의 일갈(一喝)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그러나 양쪽 모두를 불쾌하게 하는 것이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음악은 숨겨진 사회의 본질이며 예술은 지배적인 실천보다 더 나은 실천의 대리자일 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것을 위한 폭력적인 자기 유지인 지배로서의 실천에 대한 비판이다" -아도르노- 팔레스타인이 낳은 세계적인 인문학자이자 문예비평가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하는 음악과 사회의 유기적인 관계이자 음악에 대한 다채로운 사유. 저자는 글로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이 왜, 어떻게 사회적이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간에게 음악은 무엇인지 설명하며 사회적인 것과 연결시키고 있다. |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글을 쓸 수 있는 자신감과 내공, 행복을 향유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자신만의 사연이 담긴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지극히 개인적이며 애처로운 체험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음악은 듣는 각자의 마음에 다르게 작용하고 무한한 연상과 해석이 뒤따르지만 우리들 각자가 공동체와의 굳건한 연대 속에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게오르그 루카치도 음악으로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맞서지 못했지만 사이드는 이 책에서 음악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아도르노의 음악 비평을 끌어다 쓰며 프루스트의 문학작품에서 보고 느낀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설명한다. |
저자 소개 |
에드워드 사이드 1935년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이집트 카이로의 빅토리아 대학교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를 거쳐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컬럼비아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와 하버드대학교 비교문학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문예비평가이자 사상가로 이름을 높였다. |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 장호연 옮김 | 마티
사이드는 백혈병에 맞싸우다가 세상을 떴다. 그래서 그가 마지막에 한 작업들에는 고통스러운 호흡이 느껴진다. 그 대표적인 책이 이 책이다. 사이드는 말년의 베토벤을 비롯해서 아도르노, 슈트라우스, 쇤베르크, 비스콘티, 글렌 굴드, 장 주네, 그람시 등을 살피면서 노년에 이르러 어떤 완전성에 도달하는 잘 익은 과일 대신 세계와 끝내 부조화를 이룬 긴장과 파국의 형식을 찾아나선다. 모순 덩어리인 삶을 어떤 ‘깨달음’으로 포장하거나 근사한 언어로 위로하는 게 아니라 모순 그 자체를 냉엄히 들여다보고 만년임에도 다시 그 모순의 빈 틈으로 들어가 이 세계의 분열적인 전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들을 사이드는 추적한다. 조화로운 말들에 현혹되지 않고 끝까지 모순과 갈등에 맞서 비타협적 지적 작업을 생의 마지막까지 치러냈던 그 자신의 삶처럼.
(출처:http://blog.ohmynews.com/booking/217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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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께, 친구의 전시 오프닝에서 만난 한 여학생이 내게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를 열띠게 언급한 적이 있었다. 어제, 내가 즐겨 찾는 이웃인 '람혼' 님의 블로그에서 역시 이 책에 대하여 심도있는 글을 읽게 되었다. <파국의 해석학: 말년의 양식이란 무엇인가?>라는 포스트였는데, 늘상 그랬듯이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관심있는 사람은 : http://blog.naver.com/sinthome?Redirect=Log&logNo=40038177514 )
그러다 지난 날짜의 경향신문에서 다음 기사와 위 사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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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인문학은 실천이다 지식인이여, 일어나라
기사입력 2008-06-13 17:46
▲저항의 인문학…에드워드 W 사이드 | 마티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주둥이가 노란 미숙아다. 좀더 성숙한 사람은 모든 곳을 고향처럼 느끼는 코스모폴리턴이며, 궁극의 성숙한 모습은 모든 곳을 타향이라고 생각하는 이방인이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인 문예비평가이자 사상가인 에드워드 W 사이드가 이따금 인용하던 12세기 철학자 생 빅토르 후고(1096~1141)의 명구다.
비서구문화권에서 자란 뒤 40년간 미국 땅에 거주하면서도 평생 고향을 두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는 경계인(境界人)으로 살았던 사이드에겐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구절이었음에 틀림없다. (...)
등록상표처럼 된 ‘오리엔탈리즘’과 그의 실천성 때문에 마치 사회과학자처럼 느껴지는 착각이 들 때도 적지 않지만 사이드는 오롯이 인문학자로 살았다. 그것도 ‘치열한 실천인으로서의 인문주의자’였다.
도서출판 마티가 ‘에드워드 사이드 선집’의 두번째 책으로 펴낸 ‘저항의 인문학(원제 Humanism and Democratic Criticism)’은 사이드의 인문학 정신을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이드의 컬럼비아대 철학과 동료 교수이자 헤이먼 인문학연구소장인 아킬 빌그라미가 “인문주의는 아마도 사이드가 타협 없는 이상을 품고서 받아들인 유일한 주의(ism)일 것”이라고 한 서문이 이를 한 마디로 대변한다. ‘저항의 인문학’은 지병인 백혈병 말기에 접어들어 힘겨운 투병 중에도 컬럼비아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오가며 행한 강연을 토대로 완성한 책이다. 그가 생전에 마무리한 마지막 저서이기도 하다.
사이드에게 인문주의는 곧 비판정신이었다. 인문주의는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이며 모든 종류의 진부함과 부주의한 언어에 반대한다는 그 나름의 규준이 웅변한다.
그는 인문학자가 이 세계를 정치인들에게 위임하고 텍스트로 돌아가라는 목소리를 과감하게 차버린다. 늘 실천을 부르짖는 그는 인문주의의 실천과 시민 참여의 실천 사이에 모순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강조한다. “인문주의는 철회나 배제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요. 인문주의의 목적은 해방과 계몽에 쏟은 인간 노동과 에너지의 산물들, 더 중요하게는 집합적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인간의 오독이나 오해 등을 비판적 검토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인문주의의 이름으로 인문주의에 비판적일 수 있다는 열린 자세를 중시한다. 인문주의는 드러냄의 형태여야지 비밀이나 종교적 계시 형태여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그는 심지어 애국적으로 국가를 ‘긍정’하거나 비애국적으로 국가에 대해 ‘의문’을 던지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주저없이 의문을 던지는 역할을 택하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사이드는 인문학의 범주를 제한하는 것에도 단호히 반대한다. 얼핏 사회과학 영역으로 여겨지는 이슈도 인문학이 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1999년 11월 시애틀에서 일어난 반세계화 시위사건이나 미국 의료시스템 폭동과 같은 문제도 당연히 인문학이 다루어야 하는 과제로 불러들인다. 미국의 대학들이 대기업화되고, 인문학보다 변호, 의학, 생명기술, 기업적 관심사 같은 재정에 도움이 되는 자연과학 프로젝트에 더 몰두하고 있는 조류도 강한 어조로 꼬집는다.
일관된 서구중심주의 반대 입장은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여성학과 젠더, 역사와 노동,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고 서구의 고전만 진정한 인문학으로 취급하는 미국 신인문주의자들의 행태에 회초리를 들이댄다. 왜곡과 편견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채찍이 이 책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것이다.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는 자기이해와 자기실현의 과정임을, 그리고 이것이 백인, 남성, 유럽인이자 미국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인문주의의 본질임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실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셈입니다. 지구상에는 또 다른 지적 전통이 있고 또 다른 문화가 있으며 특유의 신들이 있습니다.” 그는 “모든 문명의 역사가 야만의 역사”라는 발터 벤야민의 언명을 인문주의자들이 잊지 말라고 각별히 부탁한다. 새뮤얼 헌팅턴으로 대표되는 문명의 충돌이니 문화의 갈등이니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이지 말라는 당부인 셈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에게 인문주의는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이자 시민 참여의 실천이었다.
(...)
사이드의 마무리 말은 그가 좋아하던 후고의 명구를 상기시켜 주는 듯하다. “지식인이 임시로 거하는 집은 유감스럽게도 그 안에서 누구도 후퇴하거나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긴급하고 저항적이며 비타협적인 예술의 영역이라는 생각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평생 정착할 고향을 두지 못했던 사이드가 ‘임시적으로 거한 곳’은 예술이었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결어이다.
지난 1월 에드워드 사이드 선집 1권으로 본격적인 비평서이자 유고작인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를 펴낸 마티는 앞으로 ‘권력, 정치 그리고 문화’ ‘시작: 의도와 방법’ ‘망명에 관한 숙고’를 차례로 출간할 예정이어서 기대해 봄직하다. 김정하 옮김. 1만5000원
<김학순 선임기자 hskim@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중동에 평화의 꿈을 심는 청소년 교향악단
타계한 팔레스타인 출신의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Said)와 유대계 명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Barenboim)이 처음 마주친 곳은 1990년대 초 런던의 한 호텔 로비였다. 둘은 1995년 미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열린 대담을 통해 서로의 차이와 공통점, 음악과 정치·종교의 관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둘의 협력은 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괴테 탄생 250주년을 맞아 1999년 바이마르에서 아랍과 이스라엘의 18~25세 음악가들을 초청해서 음악을 연주하고 함께 토론했다. 아랍과 이스라엘의 젊은 음악가들을 모아서 새로운 악단을 만든다는 '서동시집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의 출발점이었다.
2005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극심한 분쟁 지역인 라말라에서 이 악단의 콘서트가 열렸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연주가 끝난 뒤 바렌보임은 이렇게 말한다. "음악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건,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이해와 끈기, 용기와 호기심입니다."
예술이란 하피스를 두고 말하면 축복이, 괴테를 두고 말하면 명랑함이 될 것이다. - 니체
「시인 시편」, 「하피스 시편」, 「줄라이카 시편」 등 열두 시편과 「유고 중에서」로 구성된 『서동 시집』은 시인 하피스가 보여 준 문학적 이상향에 경탄하며 보내는 괴테의 화답이다. 괴테는 하피스가 즐겨 사용한 ‘사랑’, ‘시인으로서의 자세’ 등의 주제를 차용, 발전시켜 동방의 전설적인 시인과의 정신적 교감을 노래하는 한편, 동방의 시 형식인 가젤의 운율을 독일어로 재현하며 새로운 시 세계를 보여 주었다. 헤겔은 『서동 시집』이 괴테의 작품 가운데 가장 완성된 작품이라고 평하였으며, 훔볼트와 하이네 등 괴테를 잇는 독일 지성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타문화를 단순히 동경하고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세계에 자연스럽게 녹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괴테의 시도는 오늘날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번에 나온 『서동 시집』은 초판본에 실린 열두 시편과 괴테가 이후에 추가한 「유고 중에서」로 구성되어 있다. 열두 시편에 대한 설명은 물론, 각각의 시편에 포함된 개별 시의 배경까지 자세히 설명한 번역자의 주석과 하피스의 초상화, 대표 시 「은행나무」의 원본 사진, 괴테가 인용한 동방의 전설을 담은 이슬람 세밀화 등 화보가 함께 실려 있어, 괴테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특히 어려운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 시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민음사는 1997년부터 10년 간 괴테전집 발간을 목표로 『파우스트』,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친화력』, 『색채론』등을 펴냈다. 앞으로 『시 전집』, 『예술론』, 『시와 진실』, 『잠언과 성찰』 등의 작품들이 출간될 예정이다.
■ 괴테 사상의 결정체 『서동 시집』
『서동 시집』은 여러 형상과 무늬가 혼합된 풍부하고 다채로운 양탄자라 할 수 있다. 동방을 새롭게 발견하여 그 가치를 인식하고 함빡 자극받아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문학을 만들어 낸 괴테의 시집은 다른 문화를 창조적으로 수용한 훌륭한 예다. 다른 문화의 산물을 단순히 번역하거나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 그 문화를 자신의 문화 속에 비추어 보고, 그 문화의 전통과 양식을 받아들여 마침내 최고의 경지에서 두 문화가 하나 되는 예를 보여 주고 있다. -「작품 해설」에서
▶ 노시인에게 다가온 운명 같은 인연
인생과 문학의 의미를 함께 논하던 실러가 죽고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으로 유럽이 혼란에 빠진 19세기 초반, 괴테는 창조력의 소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나폴레옹 전쟁이 막을 내린 1814년, 스스로 “돌아온 사춘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괴테는 창조력이 새롭게 분출하는 것을 경험하는데, 당시 만난 두 사람이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페르시아의 시인 하피스와 괴테가 사랑하게 될 마리안네 융(결혼 후 마리안네 폰 빌레머가 됨)이 그들이다. 요제프 폰 함머(Joseph von Hammer)의 번역을 통해 하피스의 시를 처음 접한 괴테는 신비로운 동방의 시인에게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하피스는 14세기 페르시아에서 활동한 전설적인 시인으로 현세적인 것에서 신적인 것을 간구하는 내용의 시를 주로 썼다.
(안식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 소중한 충고를 따르게나/
사랑스러운 것을 찾고 싶다면/
세상에서 벗어나 세상을 그대로 내버려 두게나)
하피스가 노래한 사랑 시는 지금까지도 아랍 지역에서 즐겨 암송되고 있다.
이와 같은 하피스의 시들은 동방을 넘어서 서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낭만주의가 싹을 틔우던 19세기에 그 빛을 발하였다. 함머가 번역한 하피스의 시집은 독일의 괴테뿐 아니라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 러시아의 푸슈킨, 영국의 바이런, 미국의 에머슨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서양 문화가 근대화되는 데 주된 역할을 한 낭만주의 사조의 한가운데에 동방의 시인 하피스가 있었던 것이다.
온 세상이 가라앉아 버린다 해도
하피스여, 나는 그대와, 오직 그대와
겨뤄 보고 싶습니다! 기쁨과 고통은 우리에게
우리들 쌍둥이에겐 똑같은 것!
그대처럼 사랑하고 그대처럼 술 마시는 것
그것은 나의 자랑, 나의 삶이 되리라.
이제 스스로 타오르는 노래를 부르라!
그대는 옛 시인이자 새 시인이니. -「하피스 시편」에서
한편, 괴테는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하던 중에 은행가 야콥 폰 빌레머(Jakob von Willemer)의 집에서 그의 약혼녀 마리안네 융을 만나게 된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괴테와 마리안네는 이후에 하피스의 시로 암호를 만들어 편지를 주고받는가 하면 직접 지은 시도 서로 교환했다.
그러니 그대, 활달한 노인이여,
슬퍼하지 말게나
머리가 곧 허옇게 세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으리. -「시인 시편」에서
세속적 욕망(이상적 사랑)과 정신적 욕망(문학적 이상향)을 실현시켜 줄 인도자를 만난 괴테는 정열적으로 시를 써 내려갔고, 이 열정은 괴테라는 한 인간을 완성시킨 이상적 문학 작품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
▶ 동방과 서방이 만나 이룩한 세계문학의 표본
괴테는 하피스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고 느꼈으며 하피스가 다루는 주제에 깊이 공감하였다. 중앙아시아 티무르 제국의 건설자 티무르 렝의 지배를 받았던 당시 페르시아는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은 독일과 연결되었고, 그 혼돈 속에서도 고양된 정신을 추구한 하피스는 보편주의적 인간을 추구하는 괴테와 닮아 있었다.
그대는 전쟁의 신 화성이고 나는 대지의 신 토성이다.
무서운 작용을 하는 별들,
우리가 짝을 이루면 가장 무서운 별들이 된다. -「티무르 시편」에서
하피스의 시집을 읽고 난 뒤 괴테는 동방에 관한 서적을 탐독하며 동방 세계에 점점 빠져들었다. 『서동 시집』 첫머리에 수록된 시「헤지라」에서 말하듯 시인은 “북과 서와 남이 갈라지”는 혼돈의 시대에 ‘순수한 동방’으로 도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의 도피는 현실을 회피하려 함이 아니다. 오히려 괴테는 ‘열린 태도’로 동방과 서방을 넘어서 새로운 세계를 모색했다. 동방의 시성 하피스와 정신적 합일을 이루려는 서양 대문호는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시적 유토피아를 그려 냈다.
그러면 삶의 지고한 울림이
영혼을 뚫고 울려 퍼지리라!
시인은 가슴에 불안을 느껴도
시로써 화해를 이루리라. - 「시인 시편」에서
괴테는 주제뿐 아니라 형식적인 면에서도 동방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독일어를 아랍의 시 형식인 가젤 형식에 담아 그 운율을 그대로 살려내는 한편, 하피스가 즐겨 사용하던 대화 시 작법을 통해 하피스와 괴테 자신인 시적 화자와의 교감을 표현하고 연인 마리안네와의 사랑도 담아냈다.
▶ 정신적 교감으로 승화된 세속의 사랑
하피스와 괴테의 만남이 『서동 시집』의 한 축을 이루는 한편, 괴테와 그의 연인 마리안네 사이의 사랑 이야기도 시집의 중심을 이룬다. 괴테와 마리안네는 하피스의 시를 암호로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둘은 사랑을 노래하는 시도 교환했는데, 실제로 『서동 시집』의 「줄라이카 시편」에는 마리안네가 직접 쓴 시가 실려 있다. 하지만 시편 안에서는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각 시들의 수준에 편차가 없다. 괴테의 수정이 더해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마리안네의 시적 재능이 대문호 못지않게 뛰어났음을 짐작하게 한다.
시편 중 작품 수도 가장 많고 시집의 핵심을 담고 있는 「줄라이카 시편」은 사랑을 종교에 귀의하는 것으로 승화시킨 페르시아의 전설 속 주인공 ‘줄라이카’와 역시 동방에서 널리 회자되는 노시인 ‘하템’ 간의 대화 시로 구성되어 있다. 노시인 하템과 아름다운 여인 줄라이카의 대화는 괴테와 마리안네의 대화를 연상시킨다. 이 연인의 대화는 하나의 목소리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애를 담은 노래로 나아간다.
두 쪽으로 갈려 있는
이 잎은 본래 한 몸인가?
사람들에게 하나로 보이는
이것은 본래 두 개 인가?
이런 물음을 궁리하다가
나 그 참뜻을 깨달았다.
그대는 내 노래에서 역시
내가 하나이며 또한 둘임을 느끼지 않는가? -「줄라이카 시편」에서
▶ 조화를 통한 이상향의 실현
서로 다른 제목을 가진 시편들은 열두 시편은 각각의 제목을 소재로 ‘조화를 통한 유토피아의 실현’을 노래한다. 노시인의 지혜가 담긴 「성찰 시편」과 「격언 시편」, 세속적 사랑을 정신적 교감으로 승화시키는 「사랑 시편」과 「줄라이카 시편」, 비평가들에게 자신의 시적 이상을 고하는 「불만 시편」, 동방 문화의 배경을 알려 주는 「배화교도 시편」, 이슬람과 기독교의 종교관이 서로 통함을 보여 주는 「천국 시편」 등 각 시편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씨줄과 날줄을 이루며 『서동 시집』을 엮는다. 동양과 서양, 사랑과 종교, 전쟁과 평화, 신과 인간, 시인과 비평가까지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이 조화롭게 짜인 이상적 세계가 완성된 것이다.
■ 지은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1749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황실 고문관인 아버지와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라틴어, 희랍어 등을 배웠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문학과 성경 등을 읽어 8세 때 조부모에게 신년시를 써 보낼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18세 때 첫 희곡 『연인의 변덕』을 썼고 1772년(23세)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일약 유명해졌다. 1775년(26세) 카를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50여 년간 머물면서 바이마르를 문화의 중심지, 고전주의의 꽃으로 부각시켰다. ‘보편주의’를 주창한 괴테는 문학뿐 아니라 식물학 ․ 해부학 ․ 광물학 ․ 지질학 ․ 색채론 등, 인간을 설명하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괴테의 보편주의적 입장은 ‘세계 문학’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지며,『서동 시집』은 그의 이런 사상을 총체적으로 집약한 책이다. 경계를 넘어 통합의 장을 만들어 낸 괴테의 시도는 낭만주의로 이어졌으며 훔볼트, 헤겔, 니체 등 19세기 유럽의 지성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4세 때 구상하여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집필한 역작『파우스트』외에『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이탈리아 기행』을 남겼다.「파우스트」 2부를 완성한 이듬해인 1832년 83세로 생을 마쳤다.
* 아내 불피우스가 죽은 뒤에 알게 된 빌레머 부인과의 사랑으로, 그녀를 사모하여 읊은 《서동시집(西東詩集)(Westöstlicher Divan)》(1819)이 간행되었다
괴테의 서동시집
박설호 한신대 교수
괴테는 "서동 시집"에서 페르시아 시인 하피스 (1317/ 25 - 1389/ 90)의 시를 읽고 오리엔트의 세계를 작품화했다. 당시 1814년 요젭 폰 함머-푸르크슈탈의 하피스의 독일어 번역 작품이 괴테에게 감동을 주었다. "서동 시집"은 東西의 문화 그리고 두 시인의 交感을 형상화시키고 있다. (당시 이미 신대륙의 삶이 전해졌으나, 유럽인들은 페르시아 지역을 여전히 동방이라고 믿고 있었다.) 괴테는 스스로를 하피스의 쌍둥이 동생이라고 간주하고, 자신의 고유한 모방시를 하피스보다 더 탁월하게 창조하려고 했다.
괴테는 하피스의 시를 읽고,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젊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1814년 라인 강 마인 강 그리고 네카 강변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때 “동방의 세계는 인류의 근원적 고향”이라는 영감이 노시인의 뇌리를 스치게 된다. 1814년 8월 노시인은 「디반 연작시」에 나오는 이상적 여인 술라이카 (Suleika)를 실제로 만나게 된다. 아름다운 젊은 여인은 마리안네 융으로서, 나중에 괴테의 옛 친구이자 프랑크푸르트 은행가인 요한 야콥 빌레머의 부인이 되는 다재다능한 여성이었다. 그미는 빌레머의 초청으로 프랑크푸르트 극단, “Gerbermühle”의 무희로 일하고 있었는데, 1815년 가을을 괴테와 함께 보냈다. 대부분의 시는 1815년 가을 하이델베르크에서 집필되었다.
대학 시절의 괴테
"서동 시집"은 도합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수의 書」에서는 서방 세계의 시인이 영혼을 일깨우는, 동시에 정치적 혼란으로부터 도피하게 하는 동방의 문화와 만난다. 가령 「축복받을 동경」이라는 시에는 신비적 종교적 내용, 즉 사랑을 통한 자기 헌신으로 인해 새로운 존재가 탄생될 수 있다는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 「하피스의 書」에서는 동방 예술의 특수성, 예술적 대상과 형식이 표현되어 있다. “이제 노래는 고유한 불과 함께 소리를 내는구나! 그대는 훨씬 나이 많고, 그대는 신선하도다. Nun töne Lied mit eigenem Feuer!/ Denn du bist älter, du bist neuer”. 「사랑의 書」는 나중의 「술라이카의 書」와는 달리 한쌍의 연인에 관해 묘사하지 않고, 신화와 문학에 나타난 인간의 보편적 사랑에 관한 유형을 다루고 있다. 「관조의 書」, 「불쾌함의 書」, 「격언의 書」는 나중의 디반 시가 형성될 무렵의 격언과 교훈시를 담고 있다. “선을 위해서 선을 행하는 일. Gutes tun um des Guten willen”. 「티무르의 書」는 두개의 시대적 배경 (하피스의 현실과 괴테의 현실)을 유사성을 표현하고 있다. 유명한 시 「겨울과 티무르」에서 페르시아의 영웅 티무르는 겨울에 중국으로 진군하는데, 이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술라이카의 書」는 가장 방대한데, 괴테가 주로 1814년 1815년에 집필한 것들이다. 여기서는 하템과 술라이카 사이의 사랑의 대화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년과 청춘,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암호 해독과 공적인 알림 사이의 긴장 관계이다. 하템과 술라이카는 사랑의 유형적인 인물로 다루어지고 있다. 「선물의 書」에서도 주가 되는 테마는 사랑이다. 나이든 하피스는 실제로 미소년을 사랑했는데, 괴테는 이를 약간 뒤집어 두 사람 사이의 교육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늙은 시인 하피스는 포도주를 마시면서, 모든 요소에 신의 현존을 인식하도록 고결한 아이에게 가르치고 있다.
(필주첨가 참고:
줄라이카, 그녀는 Schubert, Mendelssohn(Felix), Mendelssohn(Fanny), Schumann 등등 - just to name a few - 많은 작곡자의 곡에 인용된 "Suleika" 의 모델이자 이 시의 저자이기도 한데 그녀의 약 15편의 시들은 괴테의 시집 Westöstlicher Divan (서동시집)에 ...
독일 문학의 거장 괴테도 엄밀한 의미에서 표절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괴테는 1819년에 발행한 ≪서동시집 West-ostlicher Divan≫에, 자신과 가까이 지내며 문학적인 교류를 가졌던 마리안네 폰 빌레머의 시 일부를 ‘술레이카(Suleika)’라는 여인의 이름으로 실었기 때문이다. 마리안네는 그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가 괴테가 죽은 지 15년쯤 지난, 1840년대 말 독문학자이자 문화사가인 헤르만 그림에게 알려준다. 그림은 마리안네가 죽은 지 9년 뒤인 1869년 ≪프로이센 연감≫의 <괴테와 술레이카>라는 글에서 그러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오히려 마리안네라는 한 여인의 인내와 괴테에 대한 예의를 느낄 수 있다. )
1819년에 간행된 서동 시집의 초간본
마지막 세권은 종교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다. 「우화의 書」에서는 인간의 상태를 원용하여, 윤리적 요소와 종교 정신이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다. 인간은 보다 높은 전체를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하고 제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화려한 장시 「고대 페르시아 신앙의 유언」은 「배화교도의 書」에 실려 있는데, 여기서 죽어가는 배화교도가 그를 둘러싼 신도들에게 신앙에 관한 마지막 경고를 전하고 있다. 아리만을 물리치고 오르무츠드를 선택하려면, 어떠한 신앙적 신념이 필요한지 들려주고 있다. 「천국의 書」는 지상의 사랑과 천상의 사랑 사이의 가교를 잇는다. 괴테는 우선 이슬람의 천국을 묘사한다. 신앙의 영웅 곁에 네 명의 선택받은 여인과 네 마리의 짐승이 서성거리고 있다. 서양의 시인 역시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그곳에는 “후리”라는 여인이 지키고 있다. 후리는 술라이카의 모습을 드러내며, 시인에게 사랑의 시편들을 집필케 할 뿐 아니라, 그를 천국 안으로 들어서게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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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서동시집 중에서
Suleika
술레이카
이 움직임은
무슨 의미일까?
동쪽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걸까?
신선한 동풍이
마음 속 깊은 상처를
식혀 주는구나.
달콤하게
먼지들과 어울리고
가볍게 살짝
구름들을 밀어내며
포도가지에 붙어
즐거워하는 곤충들을
몰아내는 동풍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열기로 뜨거운
나의 뺨을 식혀 주고,
들과 언덕에 풍요로운
포도나무에 간청하듯
입맞춤 하네.
그리고 내게는
그의 기쁨에 찬
천만번의 사랑을
조용한 속삭임으로
전해 준다네.
그리고
어두워지기 전
천만 번의
입맞춤을 보내지.
그런 후
그대는 멀리 가지.
친구들과
근심 있는 자에게
찾아간다네.
그 곳,
높은 성벽이
끓어오르는 곳,
곧 그 곳에서
내기 너무나
사랑하는 이를
찾을 수 있다네.
아, 진실한 마음과
사랑의 숨결
신선한 삶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의 숨결만이
줄 수 있다네.
Suleika sqeiter Gesang
술레이카의 두 번 째 노래
아, 그대의 촉촉한 움직임, 서풍이여,
얼마나 내가 이별로 슬퍼하는지
그에게 소식을 전 할 수 있는
그대를
내가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그대 날개의 움직임은
가슴의 조용한 그리움을
깨우는구나.
눈물 속
꽃, 들, 숲 그리고 언덕은
그대의 숨결로
가득 하다네.
그래도 그대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미풍은
나의
눈꺼풀의 상처를 식혀주고
고통을 이길 수 있게 하며
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없애 준다네.
줄라이카는 괴테가 1819년에 발표한 <West-östlicher Divan 서동시집>에 등장하는 여인인데, 실제 모델은 마리안네 폰 빌레머(Marianne von Willemer, 1784-1860)입니다. 괴테는 마리안네를 1814년 8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당시 괴테는 65세였고 마리안네는 30세였습니다. 괴테가 소녀, 처녀, 유부녀를 가리지 않고 연령을 초월하여 인연 맺기를 즐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마리안네는 그로부터 약 한 달 후인 9월에 결혼을 했지만, 괴테와 마리안네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갑니다. 두 사람은 때로는 시로 애정을 표시하고, 또 때로는 남들이 읽어도 알 수 없도록 암호를 사용하여 편지를 교환했다고 합니다.
마리안네의 모습입니다. 몇 살 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30살 전후이겠죠?!! | 1814년 65세의 괴테입니다. |
<서동시집>에는 괴테와 마리안네가 주고받은 시들이<Buch Suleika 줄라이카의 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괴테는 작품 속에서 마리안네를 줄라이카라는 이름으로 묘사하고 자기 자신은 하템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서동시집> 속에는 괴테의 시가 아닌 마리안네의 시도 실려 있었는데, 그러한 사실은 마리안네가 세상을 떠나고 거의 10년이 지난 1869년에야 비로소 구전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마리안네가 그 비밀을 헤르만 그림(빌헬름 그림의 아들이며 야콥 그림의 조카)에게 생전에 털어놓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줄라이카의 노래의 가사하나를 올려보겠습니다.
방금 설명했듯이 괴테의 <서동시집>에 실려 있는 마리안네의 시이며, 슈베르트 곡입니다.
괴테의 여인들 중에서 가장 문학성이 뛰어났었다고 전해지는 마리안네의 괴테에 대한 애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소프라노 Dawn Upshaw, 피아노 Richard Goode
Was bedeutet die Bewegung?
Bringt der Ost mir frohe Kunde?
Seiner Schwingen frische Regung
Kühlt des Herzens tiefe Wunde.
이 움직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동풍이 내게 기쁜 소식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그의 날개의 상쾌한 움직임이
마음의 깊은 상처를 식혀주네.
Kosend spielt er mit dem Staube,
Jagt ihn auf in leichten Wölkchen,
Treibt zur sichern Rebenlaube
Der Insekten frohes Völkchen.
동풍이 먼지와 애무하듯 놀다가,
그것을 가벼운 구름 속에 날려 보내고,
안전한 포도잎으로 몰아간다
즐거운 벌레 떼를.
Lindert sanft der Sonne Glühen,
Kühlt auch mir die heißen Wangen,
Küsst die Reben noch im Fliehen,
Die auf Feld und Hügel prangen.
태양의 불꽃을 부드럽게 가라앉히고,
내 달아오른 볼도 식히고,
지나가면서 포도덩굴에 입맞춘다,
들과 언덕을 화려히 장식하는 (포도덩굴에).
Und mir bringt sein leises Flüstern
Von dem Freunde tausend Grüße;
Eh' noch diese Hügel düstern,
Grüßen mich wohl tausend Küsse.
그리고 나에게 그 나직한 속삭임은 전해 준다
그 친구의 수많은 인사를;
언덕이 어스름해지기 전에
아마도 수많은 입맞춤이 나에게 전해지겠지.
Und so kannst du weiter ziehen!
Diene Freunden und Betrübten.
Dort, dort, wo hohe Mauern glühen,
Dort find' ich bald den Vielgeliebten.
그리고 너는 계속 불어가도 좋아!
친구와 슬픈 이들을 돌보거라.
높은 담이 빛나고 있는 그곳, 그곳에,
그곳에서 곧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리라.
Ach, die wahre Herzenskunde,
Liebeshauch, erfrischtes Leben,
Wird mir nur aus seinem Munde,
Kann mir nur sein Atem geben.
아, 진정한 마음이 담긴 소식,
사랑의 숨결, 생기 있는 삶은
나에게 오직 그의 입을 통해서만 나오고,
나에게 오직 그의 숨결만이 줄 수 있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
스티그마 안수현 faithfulone@paran.com
http://www.cyworld.com/stigma
군의관 / 한국누가회 (CMF)
그제 풍월당에 막 입고되자마자 첫 테이프를 끊은 바렌보임 /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음반의 음반과 DVD를 죽 훑어보았다. [코다] 지난 달 호와 이번 달 [그라모폰]에서 약간의 정보를 접한 터라 궁금하기도 했고, 게다가 내가 천착하는 레퍼토리인 차이코프스키 5번이라는데야. 이번 달에 내한공연을 하는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에도 이 5번이 포함되어 있다.
West-Eastern Divan Orchestra /
Daniel Barenboim, Conductor
2005 Warner Classics (CD+DVD)
2564 62190-2
Recoded live at the Victoria Hall, Geneva, on August 6, 2004
직접 실황을 보게 되면서 이들이 거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최고령자가 26세이다) 으로 구성된 유스 오케스트라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CD로 들었을 때 느꼈던 아쉬움 - 게르기에프나 므라빈스키 등의 여타 대표적인 음반들에 비해 세밀한 디테일이 부족한 데 대한 - 은 상당부분 상쇄되었다. 아마 그래서 비평가들도 그들에게 훈훈한 격려의 시선을 보내주었을 것이다. 이들이 보여준 합주력은 비록 세밀한 부분은 약간 부족하다 해도 차이코프스키의 관현악을 포르테에서 피아니시모까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두터운 음색과 다이나믹한 흐름이 있다. 간간히 단원들이 긴장한 채 연주에 임하는 모습에서 엿보이는 풋풋함은 기존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익숙해지면서 어느새 잊고 있었던, 음악 자체에 대해 가슴 떨렸던 첫사랑의 옛 기억을 되살려준다.
후반부 연주에 베르디의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 서곡이 담긴 것도 자못 의미있게 느껴진다. 이 곡은 예전에 프랑스 영화 [마농의 샘] 에서 테마로 사용되면서 대중들에게도 익숙해진 곡인데,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합주력은 여타 유명 오케스트라에 뒤지지 않음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앵콜 곡으로 연주된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 역시 내가 아끼는 곡이어서 반가웠다. (DVD에는 앵콜 곡은 빠져있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유태인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 기독교인인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 두 공동설립자의 협력을 통해 지난 99년 시작되었다. 단원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각각 절반씩이라는 다분히 실험적이고도 이상적인 구성을 가졌다. 99년에는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독일 바이마르에서, 2001년에는 무슬림과 기독교인, 가톨릭교도가 공존하고 있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워크숍을 가졌던 지정학적인 의미도 의미있게 다가온다. 팔레스타인 피아니스트와 이집트인 바이올리니스트, 그리고 이스라엘인 첼리스트가 생전 처음 서로를 접하면서 한 그룹으로 묶여 음악을 연주하면서 의견을 조율하고 한 팀이 되어갔다. 요요마 같은 세계적인 첼리스트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기꺼이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주었다.
함께 브람스 첼로 소나타 1번을 맞춰보는 요요 마와 바렌보임.뒷자리에 앉아있는 사이드 역시 클래식에 깊은 탁견을 가졌으며,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꾸었으나 굴렌 굴드의 연주를 듣고 꿈을 접었다고 한다.1999, 독일 바이마르
컬럼비아 대학 교수로서 <오리엔탈리즘> 등의 저서를 통해 팔레스타인 민족의 입장을 세계에 대변하는 '소리'로 자리매김했던 공동설립자 사이드는 그토록 바랬던 라말라 (팔레스타인 반군의 중심지)에서의 공연을 보지 못하고 2003년 9월에 지병인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올해 8월에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라말라 공연을 가짐으로서 그 꿈을 이루었다.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W. Said, 1935~2003)
팀의 설립과 걸어온 길을 조망할 수 있었던 3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Lessons in harmony]는 팀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보너스 영상이다. 99년 설립 당시 공동설립자인 故 에드워드 사이드와 다니엘 바렌보임, 그리고 함께 초청된 요요마가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모인 청년들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토론하며 음악을 공유하는 모습은 이 복잡하고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가득한 중동의 현 상황에서 음악이 열어보일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똘레랑스(tolerance)를 보여준다. 재작년에 읽었던 바렌보임과 사이드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 (Parellels & Paradoxes)] 책 내용이 아련히 떠오른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고민을 공유화는 친한 친구로서,
우리의 삶이 가지고 있는 역설뿐 아니라 평행까지도 함께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자의식을 털어버린 채 그렇게 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겠습니까?"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서, 정체성을 타자의 편에 두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역사관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고
서로 다른 상태로 유지한다는 것은 분명 가치있는 일입니다.
나는 서로 다른 견해에서 오는 긴장이 오히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 [평행과 역설 (생각의 나무)]
에드워드 사이드, 다니엘 바렌보임, 요요 마
1999, 독일 바이마르
아울러 라말라를 비롯한 아랍권에서 연주회를 가지기 위한 첫 발걸음으로 바렌보임이 포연 자욱한 라말라 시가를 둘러보며 그곳의 음악학교를 방문하여 독주회를 가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과연 그 곳에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라말라에서 마스터 클래스 중인 바렌보임
팀이 걸어왔던 6년간의 상세한 여정은 [Knowledge is the beginning]이라는 한시간 반 분량의 DVD(Euroarts)에서 보다 상세히 만날 수 있으며, 이외에도 2004년 제네바에서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실황과 2005년 라말라에서의 공연실황이 각각 DVD로 선보였는데, 모두 아직 국내에는 들어와 있지 않다.
60대에 들어선 바렌보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 일은 나의 삶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풍성하게 해주었다"고 역설하면서 열정을 쏟는 모습은 그간 바렌보임에 대해 그닥 애착을 가져보지 않았던 내게도 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여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이스라엘과 아랍 양 진영으로부터 쏟아지는 온갖 위협과 엄청난 반대에 대해 그라모폰(Gramophone) 지 기사 마지막을 장식하는 바렌보임의 일갈(一喝)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그러나 양쪽 모두를 불쾌하게 하는 것이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음악은 숨겨진 사회의 본질이며 예술은 지배적인 실천보다 더 나은 실천의 대리자일 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것을 위한 폭력적인 자기 유지인 지배로서의 실천에 대한 비판이다" -아도르노- 팔레스타인이 낳은 세계적인 인문학자이자 문예비평가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하는 음악과 사회의 유기적인 관계이자 음악에 대한 다채로운 사유. 저자는 글로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이 왜, 어떻게 사회적이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간에게 음악은 무엇인지 설명하며 사회적인 것과 연결시키고 있다. |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글을 쓸 수 있는 자신감과 내공, 행복을 향유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자신만의 사연이 담긴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지극히 개인적이며 애처로운 체험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음악은 듣는 각자의 마음에 다르게 작용하고 무한한 연상과 해석이 뒤따르지만 우리들 각자가 공동체와의 굳건한 연대 속에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게오르그 루카치도 음악으로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맞서지 못했지만 사이드는 이 책에서 음악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아도르노의 음악 비평을 끌어다 쓰며 프루스트의 문학작품에서 보고 느낀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설명한다. |
저자 소개 |
에드워드 사이드 1935년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이집트 카이로의 빅토리아 대학교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를 거쳐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컬럼비아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와 하버드대학교 비교문학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문예비평가이자 사상가로 이름을 높였다. |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 장호연 옮김 | 마티
사이드는 백혈병에 맞싸우다가 세상을 떴다. 그래서 그가 마지막에 한 작업들에는 고통스러운 호흡이 느껴진다. 그 대표적인 책이 이 책이다. 사이드는 말년의 베토벤을 비롯해서 아도르노, 슈트라우스, 쇤베르크, 비스콘티, 글렌 굴드, 장 주네, 그람시 등을 살피면서 노년에 이르러 어떤 완전성에 도달하는 잘 익은 과일 대신 세계와 끝내 부조화를 이룬 긴장과 파국의 형식을 찾아나선다. 모순 덩어리인 삶을 어떤 ‘깨달음’으로 포장하거나 근사한 언어로 위로하는 게 아니라 모순 그 자체를 냉엄히 들여다보고 만년임에도 다시 그 모순의 빈 틈으로 들어가 이 세계의 분열적인 전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들을 사이드는 추적한다. 조화로운 말들에 현혹되지 않고 끝까지 모순과 갈등에 맞서 비타협적 지적 작업을 생의 마지막까지 치러냈던 그 자신의 삶처럼.
(출처:http://blog.ohmynews.com/booking/217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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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께, 친구의 전시 오프닝에서 만난 한 여학생이 내게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를 열띠게 언급한 적이 있었다. 어제, 내가 즐겨 찾는 이웃인 '람혼' 님의 블로그에서 역시 이 책에 대하여 심도있는 글을 읽게 되었다. <파국의 해석학: 말년의 양식이란 무엇인가?>라는 포스트였는데, 늘상 그랬듯이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관심있는 사람은 : http://blog.naver.com/sinthome?Redirect=Log&logNo=40038177514 )
그러다 지난 날짜의 경향신문에서 다음 기사와 위 사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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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인문학은 실천이다 지식인이여, 일어나라
기사입력 2008-06-13 17:46
▲저항의 인문학…에드워드 W 사이드 | 마티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주둥이가 노란 미숙아다. 좀더 성숙한 사람은 모든 곳을 고향처럼 느끼는 코스모폴리턴이며, 궁극의 성숙한 모습은 모든 곳을 타향이라고 생각하는 이방인이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인 문예비평가이자 사상가인 에드워드 W 사이드가 이따금 인용하던 12세기 철학자 생 빅토르 후고(1096~1141)의 명구다.
비서구문화권에서 자란 뒤 40년간 미국 땅에 거주하면서도 평생 고향을 두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는 경계인(境界人)으로 살았던 사이드에겐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구절이었음에 틀림없다. (...)
등록상표처럼 된 ‘오리엔탈리즘’과 그의 실천성 때문에 마치 사회과학자처럼 느껴지는 착각이 들 때도 적지 않지만 사이드는 오롯이 인문학자로 살았다. 그것도 ‘치열한 실천인으로서의 인문주의자’였다.
도서출판 마티가 ‘에드워드 사이드 선집’의 두번째 책으로 펴낸 ‘저항의 인문학(원제 Humanism and Democratic Criticism)’은 사이드의 인문학 정신을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이드의 컬럼비아대 철학과 동료 교수이자 헤이먼 인문학연구소장인 아킬 빌그라미가 “인문주의는 아마도 사이드가 타협 없는 이상을 품고서 받아들인 유일한 주의(ism)일 것”이라고 한 서문이 이를 한 마디로 대변한다. ‘저항의 인문학’은 지병인 백혈병 말기에 접어들어 힘겨운 투병 중에도 컬럼비아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오가며 행한 강연을 토대로 완성한 책이다. 그가 생전에 마무리한 마지막 저서이기도 하다.
사이드에게 인문주의는 곧 비판정신이었다. 인문주의는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이며 모든 종류의 진부함과 부주의한 언어에 반대한다는 그 나름의 규준이 웅변한다.
그는 인문학자가 이 세계를 정치인들에게 위임하고 텍스트로 돌아가라는 목소리를 과감하게 차버린다. 늘 실천을 부르짖는 그는 인문주의의 실천과 시민 참여의 실천 사이에 모순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강조한다. “인문주의는 철회나 배제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요. 인문주의의 목적은 해방과 계몽에 쏟은 인간 노동과 에너지의 산물들, 더 중요하게는 집합적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인간의 오독이나 오해 등을 비판적 검토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인문주의의 이름으로 인문주의에 비판적일 수 있다는 열린 자세를 중시한다. 인문주의는 드러냄의 형태여야지 비밀이나 종교적 계시 형태여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그는 심지어 애국적으로 국가를 ‘긍정’하거나 비애국적으로 국가에 대해 ‘의문’을 던지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주저없이 의문을 던지는 역할을 택하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사이드는 인문학의 범주를 제한하는 것에도 단호히 반대한다. 얼핏 사회과학 영역으로 여겨지는 이슈도 인문학이 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1999년 11월 시애틀에서 일어난 반세계화 시위사건이나 미국 의료시스템 폭동과 같은 문제도 당연히 인문학이 다루어야 하는 과제로 불러들인다. 미국의 대학들이 대기업화되고, 인문학보다 변호, 의학, 생명기술, 기업적 관심사 같은 재정에 도움이 되는 자연과학 프로젝트에 더 몰두하고 있는 조류도 강한 어조로 꼬집는다.
일관된 서구중심주의 반대 입장은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여성학과 젠더, 역사와 노동,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고 서구의 고전만 진정한 인문학으로 취급하는 미국 신인문주의자들의 행태에 회초리를 들이댄다. 왜곡과 편견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채찍이 이 책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것이다.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는 자기이해와 자기실현의 과정임을, 그리고 이것이 백인, 남성, 유럽인이자 미국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인문주의의 본질임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실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셈입니다. 지구상에는 또 다른 지적 전통이 있고 또 다른 문화가 있으며 특유의 신들이 있습니다.” 그는 “모든 문명의 역사가 야만의 역사”라는 발터 벤야민의 언명을 인문주의자들이 잊지 말라고 각별히 부탁한다. 새뮤얼 헌팅턴으로 대표되는 문명의 충돌이니 문화의 갈등이니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이지 말라는 당부인 셈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에게 인문주의는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이자 시민 참여의 실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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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의 마무리 말은 그가 좋아하던 후고의 명구를 상기시켜 주는 듯하다. “지식인이 임시로 거하는 집은 유감스럽게도 그 안에서 누구도 후퇴하거나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긴급하고 저항적이며 비타협적인 예술의 영역이라는 생각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평생 정착할 고향을 두지 못했던 사이드가 ‘임시적으로 거한 곳’은 예술이었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결어이다.
지난 1월 에드워드 사이드 선집 1권으로 본격적인 비평서이자 유고작인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를 펴낸 마티는 앞으로 ‘권력, 정치 그리고 문화’ ‘시작: 의도와 방법’ ‘망명에 관한 숙고’를 차례로 출간할 예정이어서 기대해 봄직하다. 김정하 옮김. 1만5000원
<김학순 선임기자 hskim@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중동에 평화의 꿈을 심는 청소년 교향악단
타계한 팔레스타인 출신의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Said)와 유대계 명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Barenboim)이 처음 마주친 곳은 1990년대 초 런던의 한 호텔 로비였다. 둘은 1995년 미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열린 대담을 통해 서로의 차이와 공통점, 음악과 정치·종교의 관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둘의 협력은 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괴테 탄생 250주년을 맞아 1999년 바이마르에서 아랍과 이스라엘의 18~25세 음악가들을 초청해서 음악을 연주하고 함께 토론했다. 아랍과 이스라엘의 젊은 음악가들을 모아서 새로운 악단을 만든다는 '서동시집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의 출발점이었다.
2005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극심한 분쟁 지역인 라말라에서 이 악단의 콘서트가 열렸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연주가 끝난 뒤 바렌보임은 이렇게 말한다. "음악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건,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이해와 끈기, 용기와 호기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