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기우 언론인] 국민의힘이 ‘이준석 리스크’라는 블랙홀에 빠져들었다. 여당 대표가 윤리위원회 심의에 오르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 윤리위원회는 지난 22일 저녁 성 상납 무마를 위한 증거인멸 교사 의혹으로 윤리위에 회부된 이준석 대표 징계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2주 뒤인 다음달 7일로 징계 심의를 미루기로 했다. 이 대표의 징계 여부가 판가름 나는 다음 달 7일까지 당내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차기 당권 경쟁과 맞물려 당내 주도권 다툼은 갈수록 격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윤리위 심의 결과에 따라 국민의힘은 극심한 후폭풍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 차기 당권.대권경쟁 맞물려 당내 주도권 다툼 ‘희생량’?
- ‘이준석 중도하차’시 공천권 없는 안철수 잔여임기 채울수도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지난 22일 이준석 대표의 성 상납 관련 증거인멸교사 의혹에 대한 징계 심의를 2주 뒤로 미뤘다. 다만 이 대표의 최측근인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에 대한 징계는 개시했다. 김 실장은 지난 3월 이 대표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장 모씨를 만나 7억원의 투자 각서를 써준 사실이 확인돼 윤리위에 회부됐다. 윤리위가 김 실장 징계를 개시하며 적시한 혐의는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관련된 품위유지의무 위반’이다. 증거인멸 ‘교사’의 주체는 이 대표여서, 김 실장이 징계를 받게 되면 ‘윗선’인 이 대표도 징계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대표의 경우 최소 ‘당원권 정지’, 김 실장은 최대 ‘제명’까지 징계가 가능하다는 얘기가 국민의힘 내에서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윤리위 2주 연기, 뒤숭숭한 국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내 혼란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대표는 윤리위가 자신의 징계 결정을 2주 미룬 것에 대해 “기우제식 징계냐”며 “경찰 수사 결과든지 뭐든지 간에 2주 사이에 뭔가 새로운, 본인들이 참고할 만한 게 나오길 기대하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대표는 “우리 혁신위가 출범해서 당 개혁을 준비하고 이렇게 한다고 했는데 (윤리위 징계 때문에)벌써 한 달 가까이 동력을 갉아먹고 있다”며 “윤리위가 그런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하는 건 아니겠지만 굉장히 정치적으로는 아쉬운 시기들이 흘러간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당내에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현 의원 주도의 ‘혁신24 새로운 미래’가 출범한 상태고,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모임 논란으로 제동이 걸렸던 ‘민들레’(민심 들어볼래)도 재가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장제원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는 의회연구단체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도 활동에 나선다. 단순 공부 모임이라고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차기 당권을 위한 세 확산 작업에 돌입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 당권을 바라보는 친윤계의 공격은 산발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배현진 최고위원이 공개 회의석상에서 이 대표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또 조수진 최고위원은 “조국 수호로 상징되는 팬덤 정치와 내로남불, 각종 성범죄에 대한 무분별한 용인이 더불어민주당의 패착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 역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윤리위가 이 대표의 징계와 관련해 원칙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의원들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의원들은 친소관계에 따라 삼삼오오 모여 이번 사태의 전망을 예측 공유하고 있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 대표의 징계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 대표를 둘러싼 갈등은 당내 권력다툼 그 자체인 만큼, 의원들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경찰조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징계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과 품위 유지 위반 등을 거론하며 징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석發 개혁이냐, 불명예 퇴진이냐
당이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당 윤리위가 다음달 7일 이 대표의 거취 부분을 어떤 식으로든 매듭 지을 공산이 크다. 이는 당 역학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관심사는 당 윤리위원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다. 국민의힘 당규에 따르면 윤리위가 내리는 징계 수위는 제명·탈당 권고·당원권 정지·경고 등 4단계다.
우선 이 대표가 징계를 받지 않을 시 이준석 체제는 공고해지면서 당 혁신 작업에도 탄력이 붙을 수밖에 없다. 이 대표가 윤핵관 핵심축인 권성동 원내대표와 투톱 체제 하에 당 혁신, 공천권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당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징계 리스크가 당 쇄신 작업에 걸림돌로 작용해 혁신위원회 출범 시기가 지연되는 등 상당한 차질을 빚었던 만큼 혁신위를 본궤도로 올려 최우선 과제로 당 혁신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당 쇄신의 방점을 공천 개혁에 두고 있는 만큼 특정 계파의 입김이 작용하는 공천 구조를 허물고 ‘이준석표 개혁’의 색채를 더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 윤리위가 징계 결정을 경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로 무기한 미룰 수 있다. 이 대표로선 내년 6월까지인 임기를 채울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고’라는 경징계를 받을 경우에도 이 대표가 정치적 상처를 입겠지만 대표직 수행에는 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원권 정지’ 이상의 징계를 받을 경우 이준석 리더십은 큰 타격을 받게 되고 당내 권력지형도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당원권 정지는 최소 1개월부터 최대 3년까지 내릴 수 있다. 당원권 정지가 내려진다면 이 대표 혐의가 “중하다”고 볼 수 있다. 정지 기간이 짧을 경우 이 대표가 사퇴를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당원권 정지를 수용한 뒤 대표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다만 사퇴를 거부하는 건 명분이 없다는 당내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윤리위 규정 30조(당 대표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최고위 의결을 거쳐 징계처분을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다)를 들어 이 대표가 자신에게 징계가 내려질 경우 이를 취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이 대표가 본인에게 이 규정을 적용할 경우 또다른 논란이 불가피하다. 오히려 당대표의 리더십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이 대표는 사실상 불명예 퇴진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다. 당내에선 조기 전당대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통상 전당대회를 치르는 기간이 한 달 정도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의힘도 민주당과 비슷한 시기인 8월 전후로 조기 전대를 치를 수도 있다.
잔여임기 남을 시, 安을 당대표로?
조기 전대가 개최되더라도 차기 당대표 임기 문제를 놓고 당내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국민의힘 현행 당헌에 따르면 궐위된 당대표의 잔여 임기가 6개월 미만일 경우 원내대표가 그 직을 승계하고, 6개월 이상이면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당대표를 뽑되 임기는 전임 대표의 잔여 임기만 맡기로 돼 있다. 따라서 이 대표가 7월 징계를 받고 직에서 물러난다면, 새로 뽑힐 지도부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새로 뽑힌 당대표는 핵심인 2024년 4월 치러지는 22대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친윤계가 안철수 의원을 내세워 전임 대표의 잔여임기를 맡기는 시나리오가 흘러나오고 있다.
반대로 전국위원회 등을 열어 당헌을 바꿔 새로운 지도부 임기를 2년으로 맡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럴 경우 당대표로 친윤계가 인사가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 당 권력구도는 친윤(親尹) 쪽으로 쏠림이 심화되면서 사실상 '윤석열 친위정당'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민들레’ 출범 과정에서 친윤계 안에서도 입장을 달리하면서 갈등 조짐을 보였던 만큼 친윤계의 결속력이 약할 경우 여권 내 권력 싸움이 치열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기사 원문 보기]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