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매일 강 건너 가덕도 긴 능선을 바라보며 출퇴근을 한다.
피안의 섬
그곳은 늘 가보고싶은 섬이었다.
배에서 내려 곧장 연대봉을 오르는 밍숭 밍숭한 코스가 아니라
종주를 하듯 봉우리 봉우리를 돌아 걸어 보고 싶었던 그런 섬이었다.
선창을 지나 천가동 동선 마을로 접어들자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미로 속에 빠져 들기라도 한듯
길없는 길들이 어지럽게 우리를 맞았다.
일방 통행로를 따라 빙글 빙글 돌아 보지만 차 하나 돌리기 조차 만만치 않다.
겨우 미로를 빠져 나오기는 했지만 농로를 겉포장한 좁은 외딴길이 또 우리를 맞았다.
한적한 바다길을 달려
산행 기점인 동선 새바지에 겨우 도착 했다
가락지 모양의 눌차항에 걸친 건강한 해송의 푸른 빛이 하늘과 바다에 어울려 싱그럽기 그지없다.
샛바람이 무시로 넘나드는 동선 새바지.
활주로 처럼 이어진 긴 방파제가 늦가을 하늘 아래 눈부시다.
새바지에서 강금봉을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급한 경사길이라
워밍업이 덜된 상태의 몸으로 오르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30분쯤 걸어 능선에 오르고 나면 비교적 걷기가 수월해진다.
산을 오르며 벌써 옷은 땀에 젖었다.
물기에 몸이 싸늘해 오며 바다를 느끼게 했다
견딜만 한 추위였다.
섬 산행의 초미는 이렇게 청량했다.
귀신의 발톱같은 모래톱이 보이고
내 삶의 터전인 다대포도 마주 보인다.
세상을 반대 편에서 바라보는것은 늘 색다른 즐거움이다.
고도를 높일수록 바다 건너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따라 고양된다.
자그마한 세상.
그 작은 세상이 나에게 뜻모를 안도감을 주었다.
세상이 다 평안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살던 세상처럼 나도 잘있다라는 안도감.
바다는 그 기분을 잘도 실어 날랐다.
응봉산 봉우리의 멋진 자태
제1봉인 연대봉만을 늘 염두에 둔터라 미끈한 바위 암봉인 응봉산의 자태는 의외였다.
연한 핑크색을 머금은 저 봉우리가
아침 햇살아래 갓 나온 아기의 젖니처럼 반짝이던 바로 그 봉우리다.
그 상상의 봉우리에 올라선다는 사실 만으로도 은근한 즐거움이었다.
산을 오를수록 구름을 지워낸 하늘과 한을 다 토해버린 바다가 마주보며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를 닮아가듯 이어졌다.
눌차 너머로 강서구의 공단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측으로 진우도 모래톱이 낙동강 하구에 걸려있다.
바람이 구름을 연신 북쪽으로 밀어내고 있다.
구름에 가려졌던 먼 풍경들이 마치 해방을 맞이한것처럼 하나 둘 나타난다.
가을은 이렇게 시야가 멀어지는 계절이다.
세상이 아스라이 깊어지기에
그리움 또한 깊어가는것이 가을이다.
뚜우 하고 먼 곳에서 혼의 저음이 들려 오는듯 했다.
내해처럼 편안한 이 바다를 이순신은 어찌하지 못했다.
이순신도 어찌하지 못한 바다를 원균이 이어받아
왜적을 공격했으나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하고 만다.
그때 가덕도로 피신한 군사들은 가덕도에 숨어 있던 왜병들에 의해 몰살 당하였다.
그 바다이다.
내가 바라보는 이 바다가.
분노가 절절 피처럼 끓어 오르는 그 바다이다.
선량한 백성들이 개처럼 끌려가고
소금에 절인 귀와 코가 건너갔던 바다이다
나라의 보물이 털려가고
한 시대가 결단났던 그 참혹한 바다이다.
저 낮은 습지에 빼곡이 들어선 아파트는 보면 볼 수록 신기하다.
훈족에 쫒겨 바다에 도시를 세운 베네치아처럼
바다를 연해 자그만한 도시가 들어 앉았다.
매미와 같은 태풍을 어찌 이길려고 저렇게 바다를 맞대어 집을 지은걸까
자연을 일구어 삶에 이용하는것이야 인간 지혜의 결과이지만
저렇게 자연에 대적하듯 바다를 마주하니 오히려 오만한 인간의 의지가 느껴진다.
탕수구미와 정거말의 하얀 단애를 따라 새바지로 이어지는 방파제가 살짝 보인다.
상흔처럼 흰 물길을 만들며 지나가는 배의 뒷모습이 오늘 따라 유난히 시리다
유리처럼 잔잔한 외해에
화장기없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그 햇살이 연분홍 바위들을 깨워 암능이 분홍 장미처럼 아름답다.
속을 다 허물어내듯 세상을 향한 내 마음 구석이 허물어져 내린다.
그 마음으로 바다가 쏟아져 들어와
나는 익수하듯 자유에 취해 본다.
이렇게 바다를 가까이 산행해 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발아래의 고생을 채 느낄 여유도 없이
바다가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처럼 내 가슴을 마구 두드린다.
기도원
기도를 통해 얻을수 있는 구원이란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에서 조차 없다.
나는 기도를 통해 신에 다가가지 않는다.
다만 신으로 다가가는 나 스스로를 낮출 뿐이다.
내 마음으로 부터 요동치는악마의 내재율을
신의 목소리에 조율해갈 뿐이다.
통천문
떠나간 자의 길
떠나간 자의 길을 내가 이어서 걸어봅니다.
꽃의 생애가 순간이듯
세상은 이미 다 태워버린 검뎅이처럼
알 수 없는 수수께끼들로 가득합니다.
그래도 나는 길을 걷습니다.
피속 깊이 유전자처럼 박힌 역마살을 이기며
걷는것 또한 삶이기에
그대를 따라갑니다.
이렇게 따라가다보면
문득 내 생애 또한 그대를 닮아
분별없는 향기를 남길지도 모를 일입니다.
붉디 붉은 갈망이
까마귀처럼 내려 앉는 그 암향의 숲을 닮은.
기를 쓰며 살아 남으려는 이 가을의 잔광을
나는 쓰러져가는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다.
내 삶도 마찬가지리라
이제 남은 삶이 가을처럼 쇠락으로 향한 길이기에
소중히 여기는 바가 더 크다.
뜻밖에 서어나무의 건강한 군락을 만난다
서어 나무는 천이의 마지막 주자처럼 굵고 의연한 몸으로 가을을 맞았다.
서어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소리님의 힘찬 발걸음 또한 건강해 보인다.
다시 가을로...
언어가 떨어져 나간 고요한 숲에
따뜻한 햇살이 넘실댄다.
그 가을 햇살이 아쉬워 아직 흙이 되지 못한 낙엽들이
홍조 띈 얼굴로 길손을 배웅한다.
죽어있는것들이 살아나
생명의 불씨를 지핀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나무 그늘.
헨델의 오페라 세라세가 떠오른다
ombra mai fu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세라세에게 세상에서 가장 감미로운 푸른 나무그늘을 선물한
느티나무는 아닐지라도
주단을 깔아놓은듯 편안한 숲길을 걷는것 또한 감미롭다.
숲을 걸어며 말을 죽인다는것은
오감을 오롯이 깨워내는 일이다.
언어가 죽은 자리에
마치 봄날의 새싹처럼 감각이 살아날 때
나는 비로소 형언 할 수 없는 평화를 느낀다.
오!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매봉 너머 응봉산은 이미 저 멀리 멀어졌다.
매번 산을 오를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산을 걷는 한발작 한 발작이 얼마나 큰 힘을 지니는지는
내가 걸으며 밀어낸 내 등 뒤의 풍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무심코 걸은 걸음이 이미 되돌아 갈 수 없는 길을 만들었다
연대봉이 눈 앞에 가파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 현해탄
얼마나 처절한 수탈의 역사가 숨쉬는 바다인가.
그럼에도
바다는 역사에 중립인지
아니면 영원히 승자의 편인지
바다는 진중한 평화로 가득하다.
저 평화는 평화를 지키는 자의 것,
힘이 있는 자가 주인이다.
잘못 달고 나온 손가락처럼
연대봉의 원경은 언제나 어색하다.
이제 저 봉을 넘으면 가덕도의 웬만한 산봉우리는 다 넘은 셈이지만
내가 정작 가보고싶은 곳은 대항동 끝머리의 가덕도 등대이다.
다대포에서 보면 멀리서 반짝 반짝
어린시절의 동요를 떠올리는 외로운 등대불.
외로움의 실체를 안다는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은
가덕도 등대는 서정성을 넘어 아득한 시절의 원초적 꿈과 같은 동경의 장소였다.
가고싶은 곳은 역시 가보고 싶은 대로 남겨두는것이
어쩌면 상상을 키우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리라.
어짜피 군부대에 막혀 갈 수 없는 길이지만.
앞으로 부산의 명물이 될 침매 터널과 거가 대교.
섬과 육지가 물수재비를 뜨듯 이어져 있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내년 봄에는 저 터널을 지나 다리를 건너
거제 망산에나 다녀와야겠다.
마치 바이킹 배처럼 쑥 튀어 오른 이 바위를 뭐라 부르는지 아직 나는 모른다.
하지만 가덕도 제일봉인 연대봉의 상징으로서는 손색없이 보인다.
대항동 국수봉에서 새바지 고개 넘어 이어지는 소박한 능선길에
무언가 부족하다는듯 용틀임하며 솟아 오른 이 바위의 기상이 자못 신령스럽다.
연대봉에서 새바지 선착장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방재기간 동안 패쇄!!
풍경의 요체는 그리움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사진 속에 그리움을 겨우 담아내는 일이다.
풍경 속의 사람이나 나무나 돌등은 그리움의 장치요 나레이터인 셈이다.
온통 그리움인 가을 바다를 바라보며
조근 조근 그리움을 풀어내는 저들의 사연은 무엇일까.
나는 그들을 또 빌어 그리움을 풀어낸다.
쫑긋한 두개의 귀를 가진 토끼 머리처럼
대항동 쪽 풍경이 드러난다.
땅값이 어마 어마하게 올랐다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그렇고 그런 어촌이다.
이 자그마한 어촌에 개발 바람이 불어 뽕나무 밭이 벽해가 된다한들 내게 무슨 소용이랴만은
돈에 눈 어두운자들은 여기에 거금을 쏟아부어 투기를 이미 끝낸 모양이다.
토끼의 목을 죄는 저 작은 뙤기밭을
사람들은 또 얼마나 괴롭히게 될지.
세월이 그 다음 세상을 알려주리라.
땅을 파서 길을 만들고 나니 이런 형태의 예술이 탄생된다.
듣도 보도 못한 삼단 구조의 집이 그나마
개발 이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단서를 준다.
독보적 구조물이다
한 점의 조각 작품이다.
저 등대 아래에서 바람을 피해 점심을 먹었다.
물빛이 푸르다 못해 자못 서글프다.
도무지 범접을 허락하지 않는 푸름이다.
저 하늘과 바다가 만든 푸름 위로 넘쳐 흐르는 차가운 기운에 기가 죽어
바다를 바다로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싸늘하다.
늦가을의 바다란 이런거구나.
나는 옷깃을 여미며
마음의 문을 닫아 잠근다.
마음을 닫음으로 나는 비로소 내 마음의 열림을 알아차렸다.
마음이 바람부는 날의 미닫이 문처럼 흔들거린다.
열림도 닫힘도 없는 경계는 무엇일까
하늘과 바다의 구별이 수평선 끝에서 사라지듯
분별이 없는 세상에 놓여진 기분이다.
분별이 사라지고 세상을 크다란 느낌으로 맞이하는 기분이다!
아주 큰 느낌이다!!
가덕도 둘레길이라 이름지어진 과거 해안 초소를 연결한 산길을 걸어간다.
해안길이라 짐작했던 안도감은 해안 초소 올라가는 비탈길에서부터 산산 조각 나버렸다
점심을 너무 과하게 먹은 탓인지
반주로 마신 두잔의 막걸리 때문이었는지
부른 배가 산행을 불편하게 했다.
둘레길은 부침이 있는 산길이었다.
바다를 끼고 도는 한없이 호젓한 산길.
소리없이 오가는 계절을 몸소 느끼기에 좋은 세상의 뒤란이었다.
나는 이 깊고 그윽한 길에 홀로 놓이며
흘러간 존재인 과거에 힘을 다해 매달린다.
기억은 늘 존재하는것인가.
과거는 기억일 뿐이라는 오쇼 라즈니쉬의 말을 떠올리며
왜 괴로움의 뿌리는 이렇게 강건한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물고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어음포.
여기서 누릉령으로 이어지는 길이 연결된다.
곧 가덕도 숭어 잡이가 한창일 계절이다
알을 실하게 밴 대구도 돌아오리라.
우리 식탁을 풍성히 할 귀한 이 바다의 산물들을 생각하니
어음포 포구야 말로
과거에도 지금도 바다의 어미라는
풍족한 기분이 들었다.
가을 바다는 온통 그리움이다
바위 하나
물빛 조차 그리움 아닌것이 없다.
원경은 먼 그리움인채
근경은 근심인 채 다 그리움이다
그리운 남빛이다.
기도원 지나면 해안 길이다.
다 왔다는 뜻이다.
걸음을 정리하고 숨을 편히 내려 놓는다.
이제 바다가 발 아래 넘실댄다.
돌이켜 보면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리움의 타령도 어지간히 끝이 났는지
마음이 달뜬다.
색과 공이 몸과 마음의 萬法인것처럼
바다와 하늘이 萬法이다.
실체도 없는 세상 속을 나는 바람에 떠도는 낙엽처럼 흘러 왔다.
바람이 잠잠한 터라 마음은 이내 고요해졌다.
말을 닫고 감각을 열어 오늘 하루를 즐겼다.
이제 그 감각을 닫아 고요를 얻을 시간이다.
숲을 만나면 푸른 나무 그늘에서 쉬고 싶고
바다를 만나니 저 바다에 누워 쉬고 싶다.
하늘은 또 어떠한가.
나는 쉬고 싶다.
깊은 평화와 안식을 갈망한다.
이것이 겨우 내가 나를 괴롭혀 얻은 오늘의 결론인가.
나는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길을 걸으며 나는 위안을 얻는다.
길을 걸으며 나는 죄를 사한다.
걸음이 평화요 안식이다.
이런 평화로운 포행이야말로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것이다.
참 멋진 하루였다.
새바지 저무는 항구에 오늘은 샛바람도 잠을 자는지 고요할 따름이다.
귓전에 느린 라르고가 따라다닌다.
비할바 없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산행 끝에 이렇게 큰 고요함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 자유란 이런것이다.
모처럼 내 자신이 어딘가로부터 놓여난 기분이 들었다.
이런 홀가분함 끝에 내 삶의 터전이 의연히 놓여있다면
아! 나는 조심스럽게
꺼지기 쉬운 호롱불을 가슴에 품은듯
거기로 돌아갈것이다.
그리하여 고요한 불빛처럼 살아가고 싶다.
- 후 기 -
물이며 바람이며 온통 비어있는 하늘 조차 나를 붙들지 말기를.
모든 법이 마음이니
나는 마음에 형체의 그늘을 지우고 싶다.
구할 수 없는 바를 지우고
붙들 수 없는 것에서 벗어 나고 싶다.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아주 벗어버린것이되어
오늘의 이 긴 산길을 마감하고 싶다.
마음을 닫을수록 사위는 차가와 졌다.
바람을 한아름 안은 섬의 저녁이 성큼 다가왔다.
차갑기는 해도 샴페인처럼 상쾌한 시원함이었다.
Cello
~글,그림/poll님~
첫댓글 한편의 서정시를 읽어가듯 잔잔한 그리움 속에 바다와 산들을 그려낸 구성이 돋보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함께 걸었던 느낌을 받아봅니다^^
네 poll님의 산행기가 늘 그래서 마음에 평안을 주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션~~ 한 바다그림에 잔잔한 음악이 기분을 맑게 해주네요 ~~
감사합니다
"가덕도 둘레길" 평안한 맘으로 걸어보고 싶어집니다
이곳을보니 며칠전에 읽었던 정채봉작가에 푸른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가 생각이 나는군요...잃어버린 조용하고 아름다운 바닷가마을에 꿈을 꾸집어내어 부활시킨 작품인데 동요에 마음입니다...
제목부터 멋찐 작품일것 같습니다
아마도 영화 "라벤더의 연인들" 과 닮지 않았을까 합니다
시간이 되면 한번 읽어보구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