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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수필】
‘루틴’에 관한 질문을 받고 원로 시인과 웃었던 사연
― 수필 『단조로움과 반복에 대한 명상』에서 답을 찾다
윤승원 수필가
■ 필자의 말
“요즘 ‘루틴’이란 말이 너무 자주 쓰이는 걸 봅니다. 외래어도 시류인가요? 유행인가요? 루틴을 한국말로 쓸 순 없나요? 우리말로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데 꼭 ‘루틴’이라고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문인단체에서 만난 한 시인이 내게 물었다. ‘한말글 사랑’에 앞장서 온 원로 문인이다.
‘루틴(routine)’이란 말이 어떤 뜻인지 살펴보았다. 국어사전엔 『특정한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명령. 프로그램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이르는 경우에 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식검색을 해보니 더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루틴’은 영어 원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어로는 상황에 따라 ‘일상’, ‘습관’, ‘반복행동’, ‘일의 순서’처럼 번역해 쓰는 편입니다.
다만 ‘루틴’은 단순히 반복되는 일만이 아니라, 목표를 위해 꾸준히 반복하는 행동 패턴(예: 운동, 명상, 업무 루틴)이라는 뉘앙스가 강합니다.
- 일상: ‘루틴’이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 가장 흔한 번역입니다.
- 습관: ‘루틴’이 ‘자주 반복해 몸에 배는 행동’으로 느껴질 때 ‘습관’으로 바꾸어 말하기도 합니다.
- 반복행동: ‘루틴’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처럼 부정적 뉘앙스일 때 ‘반복행동’처럼 구체화해 말할 수 있습니다.
- 일의 순서: ‘루틴’이 ‘하루를 채우는 일들의 순서·방법’처럼 쓰일 때는 ‘일의 순서’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루틴’이 단순히 지루한 반복인지, 목표를 위해 꾸준히 하는 행동인지에 따라 번역이 달라집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루틴’은 ‘일상’보다 더 의도적이고 지속 가능한 행동 패턴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아, 그대로 ‘일상’으로 바꾸면 의미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루틴’이 지루함을 강조하는 맥락이면 ‘반복행동’처럼 부정적 뉘앙스를 살려 번역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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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 공부했으니, 그 뜻을 웬만큼 알았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한 문학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
다른 유명 작가의 문학작품을 알아보기 전에 문득 나의 졸고 수필이 떠올랐다. 「단조로움과 반복에 대한 단상」 제목의 수필이다.
지난 2000년 ‘공무원문예대전’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상을 받은 작품이다. ‘한말글 사랑’에 앞장서온 원로 시인과도 나누었다.
시인은 나의 수필에서 ‘일상의 반복’에 방점을 찍고 크게 웃었다. 현직 경찰관 시절에 쓴 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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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조로움과 반복에 대한 단상』 - 과거 형(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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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단조로움과 반복에 대한 단상 윤승원 대덕경찰서 정보과 택시기사에게 미안하다. 승차하자마자 “○○까지 가시죠.”라고 하니까, 대답 대신 힐끗 한 번 쳐다본다. 그리고는 이내 무반응이다. 그렇다고 안 가겠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자동차는 굴러간다. 그러나 운전자의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듯하다. 웬만큼 눈치로 살아온 사람에게 잡히는 감이라고나 할까? 기사의 표정을 정면으로 읽을 수는 없어도 뒤통수만 보고도 감지할 수 있는 어떤 불만스러운 느낌 같은 것.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나 싶어 조심스럽게 물으니, “방금 갔다 온 길을 또다시 가자고 하는 승객을 만났을 때 솔직히 맥이 빠진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가야 할 때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신께서 점지했다고 하지 않는가. 삶이 내 의지대로 핸들 돌리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길이 있고, 내키지 않지만 가야 하는 길이 있다.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승객에게 다른 택시를 이용하라고 할 수도 있다. 승차 거부가 아니라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사는 그런 구차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양심적인 직업의식, 그 신뢰감이 우리를 안도케 한다. 직장에서는 정례 교육이 있다. 전 직원을 집합시키면 민원인에게 불편을 주게 되고 업무에도 공백이 생기므로 갑·을 반으로 나누어 실시한다. 어쩌다 을 반에 편성된 나는 조금 싱거운 생각을 하게 된다. 강단에 선 강사가 왠지 딱해 보이는 것이다. 엊그제 갑 반에서 한 말을 앵무새처럼 똑같이 되풀이하는 그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질리겠다!’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에 이르면 더욱 진지하게 경청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 청중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강단의 외래강사는 오늘이 두 번째가 아닌 처음인 것처럼 열강한다. 고마운 일이다. 강연 도중에 몇 차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갑 반 직원들도 요런 대목에서는 틀림없이 손뼉을 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을 반 직원들은 갑 반 직원들보다 더 열렬히 손뼉을 쳐줘야 하는지 모른다. 수고하는 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요 보답이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곧잘 들려준다. 그중에서 선생님들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1반에서 한 이야기를 2반에서 해야 하고, 작년에 3학년생들에게 한 이야기를 올해 또 3학년에 올라온 학생들한테 똑같이 되풀이하는 선생님들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늘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선생님인들 직업에 대한 권태를, 그 단조로움을 왜 느끼지 않으실까? 아이들 앞에서 늘 새로워지려고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든다. 지난해 지역 방송국의 요청으로 TV 생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생방송이란 것도 사전에 ‘입을 맞추는’ 예행연습이라는 게 있었다. 구성작가가 써준 대로 미리 한 번 실습을 해보는 것이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의당 하게 되어 있는 연습이지만 그 반복의 시간이 왠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 하느님, 제 생에서 이런 연습의 시간은 부디 계산하지 말고 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였더니, 제작진들이 웃으면서 더는 되풀이하지 않고 단 한 번으로 끝내주었다. 요즘 영화관에 가려면 예측 가능한 몇 가지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이른바 ‘야한 장면’에 대한 심적 대비다. 흥행에 성공했다고 하는 영화라면 그런 장면이 양념처럼 몇 차례 나오기 마련이다. 본래 단조로운 것을 싫어하는 관객의 심리를 제작자들은 잘도 간파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 같다. 관객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렇고 그런 싱거운 장면들뿐이라면 굳이 돈과 시간을 낭비하면서 영화관에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온 가족이 모처럼 영화나 한 편 보자고 나설 때는 그런 장면이 어느 정도 진하게 나오는 영환지 미리 정보를 알고 가야만이 민망함을 모면할 수 있다. 얼마 전에 기회가 있어 문인들과 함께 화제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런 야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젊은 남자들은 애써 태연함을 가장해야 한다. 아무리 예술성이 뛰어난 영화일지라도, 인간의 말초와 관능을 최대한 자극하여 어떤 극한 상황에까지 이끌어 가고야 말겠다는 제작자의 강렬한 의지가 화면에 드러난다. 이때 관객들은 앉은자리를 추슬러 보려고 하지만, 다리조차 꼬기 어려운 영화관의 비좁은 의자가 원망스러워지는 것이다. 이런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면 옛 어른들은 ‘어∼ 흠!’ 하고 헛기침으로라도 긴장을 해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 같이 숨죽이고 있는 공간에서는 무엇보다 공중예절이 더 중요하므로 그저 꾹 참아야 할 도리밖에 없다. 더구나 옆자리에는 점잖은 여성들이 함께하고 있질 않은가.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시인은 내게 말했다. “남녀 간의 우정은 노년에 가서야 가능하다는 걸 보여 주는 영화군요.” 갑작스러운 시인의 관람평에 나는 그만 당황하여 이렇게 동문서답을 하고 말았다. “임자 있는 여자는 호랑이도 안 물어 간다는 옛말도 있잖습니까? 옛 어른들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불행을 자초하는 일은 없을 텐데……” 그러자 시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영화를 보고 나올 때마다 언제나 궁금한 게 있어요. 영사기 돌리는 저분들 말이에요. 이렇게 여러 날, 길게는 한 달 넘게 연속 상영하는 영화를 질리게 볼 거 아녜요? 얼마나 권태로울까 싶어요. 본 걸 또 보고, 본 걸 또 보고……” 순간, 나는 점잖지 못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걱정도 팔자시네요! 영사기 돌려놓고 한숨 졸면 되지, 본 걸 또 보고 본 걸 또 보고 하겠어요?” 내 말에 어처구니가 없는지 시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까요? 참 재미있는 답변이네요. 윤 선생님은 세상을 참으로 편하게 생각하셔요.” ‘편하게 생각한다’라는 시인의 말은 틀렸다. 나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내가 얼마나 엉뚱한 생각을 잘하는 사람인지 모르고……. 모처럼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으면서 오늘은 이발사가 몇 명의 머리를 깎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열 분 정도 깎은 것 같아요.” “힘드시겠어요. 그런데 실례의 말씀이지만, 온종일 남의 머리를 만진다는 거, 질리지는 않으세요?” “왜 안 질려요, 지겹지요. 그런데 이 세상엔 두상 스타일이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지겨운지 모르고 해요.” 놀라운 사실이었다. 일상 반복되는 일이지만 ‘두상이 똑같질 않아서 지겨운지 모른다’라는 이발소 주인의 말이 내겐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택시기사가 방금 다녀온 길을 또 가게 되었다고 잠시 우울해하지만, 아까 모셔다드린 손님과 나는 그 얼굴이 다르지 않은가! 온 길을 다시 되짚어갔다가 혹시 아는가! 다음번 손님은 임산부라도 태워 병원에 당도하기 전에 자동차 안에서 순산이라도 하게 될지? 그리하여 좋은 일 했다고 회사 사장님으로부터 격려받고, 길조(吉兆) 명목의 금일봉이라도 받게 될지? 비약이 아니라, 건강한 상상이길 바란다. 단조로운 가운데서도 미지의 시간에 대한 예측할 수 없는 기대감으로 일상의 권태를 잠시라도 극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웃음이 묻어 나는 편지’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가끔 듣게 된다. 이 프로를 듣고 있노라면, 편지 내용보다도 ‘까르르’를 연발하며 편지를 읽어주는 여성 진행자의 독특한 웃음소리에 매료되어 덩달아 웃게 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날이면 날마다 되풀이 읽다 보면 지겨울 법도 하다. 그러나 전혀 그런 빛이 없이 매일같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댄다. 조금은 허풍스러워 보이지만, 청취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애써 특유의 웃음을 아끼지 않는 진행자도 이 시대의 몇째 안가는 ‘투철한 직업인’이 아닌가 싶다. 나의 직장 역시 오늘도 변함없이 무미건조하고 피곤한 삶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수사과 직원들은 인생을 한순간에 망쳐버린 고개 숙인 피의자들과 온종일 대좌하면서 그들의 온갖 험악한 말들을 들어야 한다. 반복되는 일상이다. 또 날이면 날마다 매연과 소음의 도로를 누비며 와장창 부서진 자동차와 삿대질이 오가는 인간들의 살벌함을 보고 돌아오는 교통사고 조사반 직원들의 피곤함에 지친 얼굴도 본다. 역시 반복되는 일상이다. 어디 그뿐인가. 험악한 욕설과 때로는 발길질이 난무하는 집단 시위 현장에서 방패 하나로 버티다가 무사히 돌아온 대원들의 안도와 지친 표정도 만난다. 내일 또 그런 일들은 어김없이 되풀이되지만, 정말 아무 걱정도 없는 사람들처럼 오늘의 표정은 그저 태연하고 담담하게만 보인다. 미지의 시간이여! 비록 단조로움과 반복의 연속일지라도, 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의 소박한 희망을 부디 저버리지 말기를……■ (윤승원, 2000년 ‘공무원문예대전’ 입상작) =============== |
▲ 『단조로움과 반복에 대한 단상』 - 현재 진행 형(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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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이 수필의 핵심은 ‘루틴’이라는 외래어를 둘러싼 언어적 문제를 넘어, 반복되는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라는 훨씬 근원적인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는 데 있습니다.
윤승원 수필가는 이를 관념으로 풀지 않고, 생활의 결 속에서 길어 올린 장면들로 독자를 끌어당깁니다. 그 힘의 중심에는 분명히 ‘재미’가 있습니다.
우선 이 작품의 재미는 낯익은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택시기사의 “방금 갔다 온 길을 또 간다”는 푸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반복의 권태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그 순간을 단순한 공감에서 멈추지 않고, ‘뒤통수만 보고도 느껴지는 감정’이라는 섬세한 관찰로 확장합니다. 여기서 독자는 “맞다, 나도 그런 적 있다”는 공감의 웃음을 짓게 됩니다.
이어지는 장면들은 마치 짧은 콩트처럼 이어집니다.
강사가 같은 내용을 반복 강의하는 모습, 선생님이 해마다 같은 수업을 반복하는 상황, 방송 출연 전의 예행연습까지—모두 ‘루틴’의 변주입니다.
그런데 이 반복은 지루함으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필자는 그 속에서 직업인의 성실성과 보이지 않는 윤리를 발견합니다.
여기서 생기는 재미는 ‘아이러니’입니다. 지루할 법한 상황에서 오히려 감동이 솟아나는 역전의 순간이죠.
특히 작품의 백미는 이발사의 한마디입니다.
“이 세상엔 두상 스타일이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이 문장은 이 수필 전체를 떠받치는 축과도 같습니다. 반복되는 일 속에서도 매번 다른 세계가 있다는 깨달음, 즉 루틴 속의 비루틴을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독자는 여기서 무릎을 치며 웃기보다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이 ‘잔잔한 깨달음의 웃음’이야말로 이 작품의 고급스러운 재미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필자의 유머 감각입니다.
영사기사 이야기를 하며 “돌려놓고 한숨 자면 되지 않겠느냐”는 대목은 전형적인 윤승원식 유머입니다.
이 유머는 상대의 질문을 비틀면서도 공격적이지 않고, 오히려 인간적인 허점을 드러내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원로 시인이 웃음을 터뜨린 이유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즉, 이 작품의 재미는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사유를 동반한 웃음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글은 점점 깊이를 더합니다.
경찰관으로서 마주하는 피의자, 교통사고, 시위 현장—이 모든 것은 반복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현실입니다.
여기서 ‘루틴’은 더 이상 자기계발적 습관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견디는 방식으로 전환됩니다.
그럼에도 글은 침잠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미지의 시간”을 향해 건네는 호소는, 반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정리하자면, 이 작품의 ‘재미’는 세 층위에서 작동합니다.
첫째, 공감의 재미: 누구나 겪는 반복의 경험
둘째, 발견의 재미: 반복 속의 차이와 의미 포착
셋째, 사유의 재미: 웃음 뒤에 남는 삶의 성찰
그래서 이 수필은 단순히 ‘단조로움’을 말하는 글이 아니라, 단조로움을 견디고, 해석하고, 끝내는 따뜻하게 전환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됩니다.
‘루틴’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대에, 이 작품은 조용히 말합니다.
루틴은 지루함이 아니라,
매번 다르게 살아내는 반복의 기술이라고.
◆ 덧붙이는 말
무엇보다 이 작품 자체가 이미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기에, 그 결을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짚어보았습니다.
수필 곳곳에 배어 있는 생활의 숨결과 사람에 대한 연민, 그리고 미소를 머금은 시선이 읽는 이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열어 주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 윤승원 수필가께서 보여주신 일상의 태도가 인상 깊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을 단순히 견디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고, 다시 한번 살아볼 만한 하루로 바꾸어 내는 시선 말입니다.
그런 시선이 있기에 독자도 자신의 ‘루틴’을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
📚 (雲峯,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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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원로 시인의 소감
주로 짧은 글을 선호하는 풍조와 세태에서 원고지 20장 분량의 다소 긴글을 정밀하게 살펴주셔서 감동합니다. 감사합니다. ㅡ 윤승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