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의 주얼리브랜드 기행 34. 영국의 아스프리(Asprey)
오늘은 두 세기를 거치는 동안 독자적인 ‘브리티시 스타일’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브랜드를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파인 주얼리뿐 아니라 시계, 가죽 제품, 실버 웨어, 도자기, 크리스털, 맞춤 서비스 등으로 유명한 영국의 아스프리가 그 주인공이다. 1781년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왕실 보증서(Royal Warrant)를 수여 받은 뷰티 케이스 전문 회사로 출발, 현재는 런던의 뉴 본드 스트리트(New Bond Street)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로 궁극의 힘을 자랑하고 있다.
아스프리의 200년이 넘는 역사 중에서 우리는 1920년대 ‘데코 아스프리(Deco Asprey)’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Modern’, ‘Jazz Modern’이라 불리던 아르데코 스타일로 독창성을 발휘한 아스프리의 황금기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아스프리는 미국의 백만장자 제이 피 모건(J. P. Morgan)을 비롯 인도의 마하라자(Maharajah) 같은 유명인들로부터 연달아 주문 제작 의뢰를 받으며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곧 이어 세계 2차 대전이라는 또 한 번의 중요한 기회가 찾아오는데, 전쟁은 아스프리에게 에티오피아 국왕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와 노르웨이 국왕 하콘(Haakon) 부자(父子) 등 수많은 상류층 고객을 안겨주었다.
전쟁 후에도 링고 스타(Ringo Starr)의 체스 세트와 피크닉 트레일러 등의 맞춤 제작 의뢰가 물밀 듯 밀려와 공방은 뉴 본드 스트리트 상점의 위층으로 확장 이전된다. 이때부터 액자에서 주얼리까지 실버 제품의 성장이 이어졌으니 글로벌 브랜드로 우뚝 선 오늘날에도 뉴 본드 스트리트 부티크가 여전히 그들의 고향인 이유다. 이 공방에서는 주얼리 외에도 시계, 핸드백 등 회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대표하는 광범위한 제품들이 제작된다.
전통적으로 아스프리는 정원에 만발한 갖가지 꽃을 모티브로 Crown Daisy, Rose, Calla Lily 등의 주얼리 컬렉션을 개발해 왔다. 그러나 2012년부터는 영국의 유명 주얼리 디자이너 숀 린(Shaun Leane)과의 협업을 통해 기존의 아스프리 스타일과 차별화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Woodland Collection을 통해 이들은 마로니에 열매, 구스베리, 블랙 커런트 모티브를 파베 다이아몬드 참나무 잎과 함께 세팅한 참 브레이슬릿, 귀고리, 칵테일 링, 펜던트를 선보였다.
그 결과 숀 린의 컨템포러리 디자인과 아스프리의 전통적인 장인정신의 완벽한 시너지 효과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또 다른 컨템포러리 라인인 Daisy Heritage 컬렉션에서는 선명한 색의 옐로 사파이어와 자수정, 청량감이 풍부한 아쿠아마린 등 알록달록한 유색석을 통해 아스프리의 전통인 데이지 꽃에 현대적 감성까지 더했다. 광채를 극대화한 61면의 아스프리 컷 다이아몬드의 개발로 스톤까지도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스프리는 공방과 제품의 품질로 차별화되고 있다. 뉴 본드 스트리트의 최신식 공방에서는 수리나 리폼 등을 요청했을 때 현장에서 완료할 수 있게끔 고객 중심의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스터 장인들에 의해 수공으로 선별된 최상급의 보석만 사용하는 것은 물론 끊임없는 모니터링을 통해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제품만 출고시키는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
200년 이상의 역사를 통해 아스프리는 가장 전통적인 브리티시 장인정신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독특한 심미성으로 왕실을 비롯 최고의 안목을 가진 고객들을 만족시키며 그 이름을 지켜왔다. 전통과 관록은 예술성이 깃든 모험 정신과 만나 현대 디자인을 통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으니, 타협하지 않는 장인정신이 살아있는 아스프리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