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앙고등학교 숙직실 터
3.1 운동 당시에 중앙학교 교사 숙직실로 사용됐던 건물로 3.1 운동의 지도자들이 모여 회의하였던 곳이다. 원래의 위치는 현재의 강당 정문 바로 앞이었는데 강당을 지으면서 없어졌다가, 이후 지금 위치에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원래의 위치에는 숙직실의 터를 알려주는 표지판을 남겨두었다.
1919년 1월 일본 동경유학생 송계백은 학교 숙직실에서 일본 유학생들의 거사계획을 알리고 <2∙ 8 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모임은 3∙1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그날을 기념하기 당시의 숙직실 터에는 ‘3∙1운동 책원비’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숙직실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 아담한 한옥에는 ‘삼일기념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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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고등학교 숙직실 터는 가는 길도 예쁘고 구경거리도 많다. 중앙고등학교 개방시간을 꼭 참고하세요. 토요일 1, 3, 5주 13:00-18:00 /2, 4주 9:00-18:00 (토, 일 공휴일 휴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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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고등학교로 올라가는 길. 가게마다 사람들의 흑백사진이 걸려있어서 참 아름다운 거리. |
2. 탑골공원 (중앙고등학교에서 도보로 20분)
탑골공원은 국내 최초의 도심 내 공원으로 1919년 일제에 항거하는 3·1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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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탑골공원 입구는 특히 삼일문이라고 적혀있는데 우리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떳떳하게 밝히고 나섰던 역사적 정취가 느껴지는 곳이네요. |
| | 탑골공원으로 가는 길에 운현궁을 만나볼 수 있어요. 운현궁은 쇄국정치로 유명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집이라고 해요. 일제의 침략 직전 19세기 말의 조선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한 번 들러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
3. 종로 보신각, 종로 일대 (탑골 공원에서 도보로 5분)
3월 1일 종로 보신각 앞에 집결한 군중들은 보신각 타종을 시작으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보신각 앞 정원 일각에는 ‘3∙1 독립운동 기념터 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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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공지보기▶ | | 학생단의 거점이 된 YMCA 국내에서 3·1운동과 관련하여 학생단의 독립운동이 처음 조직화되기 시작한 것은 1919년 1월 하순이었습니다. 즉 기독교청년회 청년부의 회원모집을 협의한다는 명목으로 모임을 하게 된 것이죠. 기독교 학생회가 나라의 해방을 위해서 애썼던 흔적을 보며 새로운 다짐을 갖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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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승동교회 (탑골 공원 맞은편, 보신각에서 도보로 5분)
승동교회(勝洞敎會)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에 속한 개신교회이다.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짙은 교회로 출발하였으며, 민중 교우들이 많아 민중교회로도 여겨졌다. 승동교회는 서울 및 경기도 내 장로교회의 모교회적(母敎會的)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교회 건물이 2001년 4월 6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되었다. 1919년 2월 20일 이 교회 지하에서는 당시 경성의 각 전문학교 대표자 20여명이 모여 3ㆍ1운동의 지침과 계획을 논의한 바 있다. 또 이 교회에서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WCA)가 창립되어 여성들의 사회활동과 봉사에 일익을 담당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3.1운동때 독립선언문이 이 교회 지하실에서 극비리에 인쇄가 되어 당시 당회장 차상진 목사가 일경에 의해 고초를 겪었다. 이렇게 승동교회는 일제 때의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에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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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깊은 교회인만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특별예배를 계획하고 있었어요. 여기저기 3.1운동 관련한 기념물들이 있어서, 승동교회가 3.1운동 당시 얼마나 헌신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답니다. |
5. 서대문 형무소(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에서 승차 독립문에서 하차 )
독립 운동가들의 수난사를 돌아보는 현장,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인 1908년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1945년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기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족지도자들이 수난을 당했던 곳이다. 희생자들 중에는 유관순 열사, 강우규 의사 등을 들 수 있다. 현재 100주년 기념으로 10옥사~12옥사 까지 3.1운동 100주년 특별전이 한참이다. 안창호, 윤봉길, 유관순, 김마리아 등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신상 카드 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지역 3.1운동 수감자와 여성운동가들에 대한 설명 등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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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사용되었던 태극기들이 전시되어있고, 각 옥사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설명과 내용들이 담겨있었어요. 특히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그의 유품등이 특별전시되어 있어 매우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특히 이곳은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고민하고 생각하며 오늘 우리의 책임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특별전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일시: 2019. 2.19~4.21
장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6. 독립공원
자주독립정신의 상징, 독립문& 독립관 독립문은 민족의 기금으로 세워졌다. 1898년 조선 독립협회는 중국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어버린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문 현판을 걸었다. 독립문 뒤에는 독립협회를 결성하고 독립신문을 발간한 서재필박사 동상이 세워져 있다. 서대문독립공원 내에는 3. 1독립 선언 기념탑과 독립관도 조성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모화관이라 불렸다. 중국 사신 접대용이었다. 서재필 박사는 이곳을 독립관이라 부르며 독립운동의 기지로 사용했다. 일제에 의해 헐린 것을 1997년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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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박사님 동상과 함께 3.1운동을 기념하는 3.1 독립선언문기념탑이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가득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외국인들도 많고, 역사 공부를 하러 나온 학생들도 참 많아서 더 뿌듯하고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
사실 우리 민족은 참으로 힘든 시간들을 견뎌왔습니다.
3.1운동 당시 개신교인들은 한국 사회에서 매우 작은 종교 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제국주의의 불의한 침략과 대우에 대항하여 나라의 해방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안위 만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힘으로 사회와 나라에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이자, 역사의 모범이 되는 분들은 고귀한 정신과 행동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어떻게 사회 가운데 다시 한 번 빛과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세상의 신음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