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찰(韓國寺刹) 편액(扁額) 사진모음 (4)§
- 편액[扁額 : 현판(懸板)] 이란? -
널빤지나 종이 또는 비단 등에 글씨나 그림을 그린 것이다.
대부분 가로로 길죽하여 횡액(橫額)이라고도 하고, 보통은 현판(懸板)이라고 부른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글씨의 경우 대개 대형이므로 대자(大字)라는 별칭도 있다.
편(扁)은 서(署)의 뜻으로 문호 위에 제목을 붙인다는 말이며,
액(額)은 이마 또는 형태를 뜻한다.
즉,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 사이에 붙여서 건물에 관련된 사항을 알려 주는 것이다.
중국 진(秦)나라 때 건물 명칭을 표시한 것을 서서(署書)라고 한 것이 편액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쓰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 건물은
물론 도성과 문루, 궁궐 전각, 지방관아와 향교·서원·일반주택에까지 붙여졌다.
여기에 쓰이는 한자는 전서와 예서·해서·행서·초서 등 매우 다양하며,
요즘에는 한글로 된 편액도 많아졌다.
건물의 얼굴이므로 건물 격식에 어울리는 글씨와 장식을 더한다.
글씨의 경우는 당대 명필과 고승·문인의 것이 대부분이나,
더러는 옛 선현의 글씨를 모아 만들기도 하고 활자체나 특별히 만든 글씨로 장식하기도 한다.
글씨는 금니와 은니·먹·분청·호분 등으로 쓰고,
틀은 무늬와 색채를 넣어 주련(柱聯)과 함께 건물의 중요한 장식 수단이 된다.
이렇게 편액은 건물에 멋을 내는 수단임과 동시에 건물 명칭과 내력,
역사와 인물, 일화 등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현대불교
공작산 수타사(孔雀山 壽陀寺) 대적광전 (大寂光殿)
수타사의 주 건물인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호 대적광전은 중심 법당으로, 앞면과 옆면이 3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수타사 대적광전 편액
수타사 원통보전
한국 100대 명산 공작산 끝자락에 자리한 천년 고찰 수타사는 신라 33대 성덕왕 7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대적광전 팔작지붕과 1364년 만든 동종, 3층석탑이
보존되어 있고 보물 제745호 월인석보를 비롯한 대적광전, 범종,
후불탱화, 홍우당부도 등 수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영서내륙 최고 고찰이다.
수타사 원통보전 편액
수타사 편액
삼성동 봉은사
삼성동 봉은사 법왕루
서대문 봉원사
봉원사[奉元寺]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奉元洞) 안산(鞍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태고종(太古宗)의 총본산이다.
889년(진성여왕 3)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반야사(般若寺)라고 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지인(智仁)이 크게 중창하였다.
1748년(영조 24)에 찬즙(贊汁) ·증암(增巖) 두 대사가 현위치로
이전 중건하면서 ‘봉원사’라 개칭하였다.
서대문 봉원사 명부전(冥府殿)
이 건물 전면에는 명부전 편액과 4개의 주련이 있는데
편액은 600년전 유학자 정도전의 친필이고 주련은 친일파로 지탄받는 이완용의 친필이다.
내부에는 지장보살을 주불로하고 협시불로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봉안하였으며
십대왕이 좌, 우에 모셔져 있고, 내부에 불상 및 십대왕은 목조각품(木彫刻品)으로
빼어난 형상과 가치가 보물급 수준으로 평가된다.
서대문 봉원사 미륵전
서대문 봉원사 대웅전 편액
서대문 봉원사 삼천불전
삼각산 삼성암 일주문
삼각산 삼성암 대웅전편액
삼각산 화계사 대웅전현판 근세의 명필 몽인 정학교 필체
대웅전의 네기웅에 있는 주련과 보화루의 현판은
추사의 수제가 위당 신헌(신관호 1810~1898)의 글씨이다.
또한 보화루의 화계사 현판 학서루 명부전 현판은 흥선 대원군의 글씨이다.
삼각산 화계사 대적광전 편액
1991년에 주지 정수스님에 의하여 조성된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포 4층 건물이다.
1층은 공양간, 2층은 요사, 3층은 대적광전 법당, 4층은 국제선원 선방으로 사용한다.
법당안에는 석가모니, 비로자나, 노사나, 삼존불을 본존으로 하고
관음, 대세지, 보현, 문수보살을 협시로 모셨다.
삼존불의 뒷면에는 각각의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고 그 위로는 닫집을 마련하였다.
그 외에 지장 보살상과 지장탱화,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다
삼각산 화계사 천불오백성전
화계사 편액
보화루에 화계사란 편액 2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그 중 하나이다.
화계사 편액
보화루에 화계사란 편액 2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그 중 하나이다.
삼각산 화계사 명부전
삼각산 화계사 명부전 편액 흥선 대원군 글씨
1878년(고종 15)에 초암스님이 화주가 되어 조대비의 도움으로중건하였다.
원래 황해도 백천군 강서사에 있던 지장보살상과 시왕상을
18877년 옮겨와 봉안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지장보살 후불탱화는 1815년에 그려젔고, 시왕각부탱화는 1878년에 조성되었다.
삼각산 화계사 화장루편액
삼각산 화계사 보화루편액
추사의 수제가 위당 신헌(신관호 1810~1898)의 글씨이다
운악산 봉선사 일주문
봉선사 초입에 있는 정면 4칸짜리 일주문으로 철안스님이 2005년에 신축한 건물이다.
건물은 장방형으로 치석한 낮은 화강암을 기단 삼아 그 위로 석주를 세워 두리기둥을
받친 모습으로, 창방ㆍ평방 위로 외4출목의 다포를 올인 모습이다.
건물은 교종 수사찰의 위엄을 보여주듯 금단청으로 장엄하고,
어칸에 운악산 봉선사 편액과 교종본찰봉선사라는 편액을 봉안하였다.
운악산 봉선사 일주문 편액
운악산 봉선사 일주문 뒤면 편액
어칸에 운악산 봉선사 편액과 교종본찰봉선사라는 편액을 봉안하였다.
운악산 봉선사 개건당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봉선사를 창건하여 開山한 개산대공덕주 정희왕후 윤씨와,
중건공덕주인 戒敏선사, 鄭文殊行을 모시기 위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조사전을 건립하면서 이곳은 스님 외의 인물들을 모시는 전각으로 바꾸었고,
현재는 봉선사의 중건공덕주인 鄭文殊行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다.
운악산 봉선사 개건당 편액
전면 중앙에 개건당(開建堂)이라 붙었으니 청남(菁南) 오제봉(吳濟峰) 선생의 글씨이다.
운악산 봉선사 관음전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1999년 건립하였다.
관음전은 원래 노전 스님이 머무는 노전채였는데, 한국전쟁으로 전소된 후
정부의 지원으로 발굴조사를 거쳐 복원하여 관음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관음전 내부에는 닫집을 갖춘 감실형의 불단이 있으며,
불단 내부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과 1999년에 금어 하정(霞亭) 박정원(朴貞元)이 조성한 관음탱이 있다.
운악산 봉선사 관음전 편액
운악산 봉선사 방적당
운하당 맞은편에 있는 정면 5칸, 측면 8칸의 팔작건물로, 1
973년에 만허스님이 주지일때 정씨문수행의 도움으로 신축된 건물이다.
'ㅁ'자형의 건물로, 구조는 철조콘크리트이며, 규모는 48평이다.
현재 스님들이 수행하는 큰방과 스님들의 수행을 지도하는 스승의 거처인 조실스님이
주석처로 알려 져 있다.
운봉(雲峰) 금인석(琴仁錫) 書(1921~1992)본 관은 봉화이며, 호는 운봉이다.
1921.7.19 포항시 남구 장기면 방산리에서 태어났다.
저서로는 당시선, 삼체천자문, 추사소전 등이 있다.
평생을 공부하는 관료로서, 자신에게 엄정하였고,꾸준히 노력한 이름높은 서예가였다.
운악산 봉선사 방적당 편액
방적(放跡)이란 발걸음을 좀 자유롭게 놓아준다는 뜻으로서
스님들이 첫 단계의 수행을 마치고 다시 다듬는 분들이 사는 곳이란 뜻을 담고 있다.
편액은 건물 서쪽에 방적당(放跡堂)이라 쓰였다.
운악산 봉선사 설법전
설법전은 최근에 새로 지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120평에 달하는 커다란 누각이다.
앞에는 김응현(金鷹顯)이 쓴 '청풍루(淸風褸)',
뒤에는 배길기(裵吉基)가 쓴 '설법전(說法殿)'현판이 걸려 있다.
안에는 석가여래좌상과 후불탱을 모셨고, 매년 방학을 이용해
절을 찾는 청소년들의 수련대회 장소로 사용한다
운악산 봉선사 설법전 편액
설법전 뒤에 걸린 현판으로 '설법전(說法殿)'이라 적혀 있다. 배길기(裵吉基)가 쓴 것이다.
운악산 봉선사 조사전 편액
조사란 석가모니불 이래로 불법을 전승하여온 스님들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조사전에는 각 종파의 개조와
그 절을 창건한 고승조사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안치한 건물을 말하게 된다.
운악산 봉선사 지장전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1999년 건립하였다.
이 건물은 원래 어실각(御室閣)으로서 세조대왕과 정희왕후의 위패를 모셨던 건물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전소된 후 정부의 지원으로 발굴조사를 거쳐 복원하여 지장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내부에는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도명존자·무독귀왕·시왕 등
명부권속과 1999년에 금어 박정원씨에 의해 조성된 지장탱을 봉안하였다.
운악산 봉선사 지장전편액
운악산 봉선사 큰 법당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0년 운허스님에 의해 건립되었다.
일반적으로 석가여래를 모신 전각을 ‘대웅전’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불교대중화에 盡力하신 운허 스님의 뜻에 따라 '큰법당'이라 이름하였다.
내부에는 금동석가여래좌상과 문수·보현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석가모니후불탱, 신중탱, 반자를 봉안하였다.
그리고 3면 벽에는 한글 화엄경 동판(銅版)125매, 한문 법화경 동판(銅版) 227매를
부착해 놓아 교학(敎學)의 봉선사가 산실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었다.
운악산 봉선사 큰 법당 편액
운봉(雲峰) 금인석(琴仁錫) 書(1921~1992)본 관은 봉화이며, 호는 운봉이다.
1921.7.19 포항시 남구 장기면 방산리에서 태어났다.
저서로는 당시선, 삼체천자문, 추사소전 등이 있다.
평생을 공부하는 관료로서, 자신에게 엄정하였고,꾸준히 노력한 이름높은 서예가였다.
삼각산 삼성암 독성각편액
삼성암(三聖庵)은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1동 488번지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1교구인 조계사의 직할사찰이다.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와 소나무 같은 침엽수가 어우러져 경내를 에워싼 삼성암.
나반존자(독성)기도 도량으로서는 청도 운문사 사리암과 쌍벽을 이루는 도량이다.
나반존자는 독성(獨聖)이라고도 하는 데 부처님으로부터 혼자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수기(授記)를 받고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하는 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부터 이러한 나반존자(독성)를 위해 따로 전각을 마련하여 섬겨왔다.
그러나 나반존자를 섬기고 기도를 하기 위해 절이 창건된 것은 삼성암이 유일한 예일 것이다.
삼각산 삼성암 칠성각편액
대웅전 오른쪽 뒤편에 자리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청기와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칠성각(七星閣), 성모각(聖母閣)이라는 두 편액이 걸려 있다.
그리고 4개의 정면 기둥에는 4개의 주련이 걸려 있다.
삼각산 삼성암 성모각편액
건물의 바깥쪽에는 삼면 돌아가면서 다양한 내용의 벽화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자의 엄지손가락을 자르는
'천룡(天龍)화상의 법손과 구지화상(俱胝和尙)'이야기, 솥을 아홉 번이나 바꾸어 걸었다는
'구정(九鼎)스님의 구도'이야기, '선학(仙鶴)이 들은 현벽(玄壁)스님의 법문'이야기 등이 있다.
삼각산 삼성암 명부전편액
명부란 염마왕이 다스리는 유명계 또는 명토(冥土)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고,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기능을 하는 전각이다.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곳이므로 지장전이라고도 하며,
지옥의 심판관 시왕을 모시 곳이므로 시왕전[十王殿],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전각이므로 쌍세전(雙世殿)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은 도리천에 살면서 미륵불이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용화삼회를 열 때까지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고, 시왕은 128개 지옥을 나누어 다스리는 명계의 왕이다.
본래는 지장전과 시왕전이 각각 독립된 전각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豫修十王生七經)》이 편찬된 이후 종래의 현세 기복신앙이
내세 구원신앙으로 바뀌면서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고려말 이후 지장전과 시왕전이 명부전으로 결합되었다.
운길산 수종사 일주문
일주문(一柱門)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다.
원래 지붕을 가진 일반적인 건축물이라고 하면 사방에 네 개의 기둥을 두어
지붕의 하중을 지탱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일주문은 한 줄로 나란한 두개의 기둥만으로 지붕을 지탱하며 서 있는 건축물이다.
일주문이란 명칭은 바로 이런 건축적인 특징에서 붙여지게 된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모습에 비추어 일심(一心)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즉 신성한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일주문의 경지는 아직 무언가를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는 위치이다.
다만 단호한 결심과 실천 의지를 보이면서 구도자로서의 길을 시작하는 단계일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주문을 기준으로 중생이 사는 세상인 세간(世間),
그리고 속계(俗界)와 생사 번뇌에서 해탈한 깨달음의 세계인 출세간(出世間),
즉 진계(眞界)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운길산 수종사 일주문편액
수종사 해탈문편액
해탈문이란 말 그대로 모든 괴로움과 헛된 생각의 그물을 벗어나
아무 거리낌이 없는 진리의 깨달음을 얻는 문이다.
이 문은 정진(精進)을 촉진시키는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수종사 종각
수종사 종각편액
운길사 수종사 대웅보전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도 한다.
'대웅'이란 부처의 덕호(德號)이다. 항상 사찰의 중심을 이룬다.
중앙에 불단을 설치하고 그위에 불상을 모시는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 봉안한다.
그러나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할 때는 석가모니불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며,
각 여래상 좌우에 협시보살을 봉안하기도 한다.
또 삼세불(三世佛:석가모니불·미륵보살·갈라보살)과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하기도 하는데,
삼신불은 대개 법신인 비로자나불, 보신(報身)인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대웅전에는 선종의 삼신설을 따라 비로자나불·노자나불·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수종사 대웅보전편액
수종사 산신각
한국의 불교사찰에 있는 산신각은 고유신앙의 수용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민간의 신앙이 두터운 칠성(七星)도 같이 모셔졌다.
그 명칭은 산신각·칠성각(七星閣)·삼성각(三聖閣) 등 일정하지 않다.
현재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外護神)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대부분의 사찰에는 산신각이 갖추어져 있으며,
자식과 재물을 기원하는 신신기도가 많이 행해지고 있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閣)이라 하는데, 이는 한국 불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 한국 불교의 토착화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수종사 산신각편액
수종사 선불장
선불당(選佛堂), 선불장(選佛場)이라고 함.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당(堂)을 열어서 계(戒)를 설하신 곳을 이름한다.
흔히 선당(禪堂), 승당(僧堂), 좌당(坐堂)의 다른 이름이며
이곳에서 계율을 일러주고 선법(禪法)과 교법을 닦는 곳이다.
또 계를 설하는 곳엔 금강계단(金剛戒壇)이라 현판하는데 통도사 큰 법당의
금강계단이라 현판한 것이 그 대표적 예다.
수종사 선불장편액
수종사 약사전편액
수종사 응진전
나한 중에서도 16나한을 모시는 건물로 나한신앙을 배경으로 조성된 것이다.
대개 응진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난(阿難)과 가섭(迦葉)을,
그 주위에 16나한을 배치하고 끝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을 봉안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수종사 응진전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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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온갖 절의 고색창연한 현판들이 다 모여 있군요...단청이 없는 건물도 있는데..제가 보긴 더 깔끔하여 좋아 보입니다만...ㅎ
현판구경 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