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쥬신'이라는 단어가 나타납니다. 책방과 도서관, 인터넷을 헤집고 다녀도 보일까말까 했던 단어입니다. 저도 이렇듯 가끔씩만 들어본 말인데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은 오죽했겠습니까. 쥬신에 대해 생소했던 시청자들은 당연히 쥬신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였고, 쥬신은 <광대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고조선)의 옛 발음>으로 결론지어지게 됩니다.
[그림 ①] 환웅시대의 쥬신(mbc, '태왕사신기')
『대쥬신을 찾아서』를 서술한 동양대 김운회 선생의 의견을 보면, '쥬신(Jusin)'은 조선(朝鮮)의 순우리말을 연구한 결과 중 하나이고, 숙신(肅愼)의 원음이라고 합니다. 또한 예맥, 동호, 숙신의 다른 말이기도 하고, 코리족(Kohri-族:Korea)와도 바꿀 수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또한, 몽골-만주-요동-한반도-일본 열도에 퍼져 있는 같은 계통의 민족들을 '범 쥬신(凡-Jusin)'이라는 단어로 총칭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림 ②] 상고시대의 쥬신(김운회, 『대쥬신을 찾아서』)
저는 개인적으로 김운회 선생의 의견에 지지를 표합니다. 쥬신이란 토대가 구성된 시기가 환웅시대이고, 그리고 그것이 부족연맹으로 발전한 시기가 바로 단군의 시대라는 것이죠. 김운회 선생은 만주지역에서의 집권국가 출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품고 있지만, 그렇다고 국가 출현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김운회 선생은 단군과 주몽을 민족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집단 무의식의 일부로 보고 있습니다. 풀어 말하자면, 신화적인 인물을 쥬신의 '공동의 조상'으로 섬겨서 같은 아버지를 가진 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단군과 주몽을 일부러 민족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신화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쥬신은 농경민의 집권국가가 아닌 기마민족의 연맹체로서 조상의 신격화(神格化)가 자주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왜, 흔히 제사를 지낼 때 모시는 조상님들을 신으로 여기지 않습니까?
(1) 쥬신과 주신
그럼, 우리 조상들과 우리들을 포괄하는 명칭인 '쥬신'은 왜이리 우리에게 생소하게 들릴까요?
자, 제가 여기서 문제를 내겠습니다. 현대 한국어의 '쥬신'이 처음 등장한 것이 언제일까요? 놀라지들 마세요. 바로 1994년 김산호 화백의 회화역사 『대쥬신제국사』입니다. 그 뒤에도 쥬신은 2001년 윤인완이 스토리를 쓰고 양경일이 작화한 만화책 『신암행어사 1』에서 극화되어 부활합니다. 그리고 2002년에 만화책 『쥬신』에서 다시 한번 극화하지요. 그리고 2003년에 소설 『신쥬신건국사』에서도 나온 후 2005년 김운회 선생이 연재한 『대쥬신을 찾아서』에서 그 정체성을 정립하게 되는데, 문제는 위에서 말한 『신암행어사』나 『쥬신』, 『신쥬신건국사』에서는 모두 쥬신을 모두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변형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쥬신은 단군조선과 관련이 깊지, '새끼 중국인'이던 조선왕조와는 거리가 무지막지한데도 말입니다.
[그림 ③] 쥬신의 강역(김산호, 『대한민족통사-치우천황』)
비록 '부도지(符都志)'와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지나치게 편중되어서 방향이 비주류 문헌사학에 치우치긴 했지만, 최초로 쥬신이라는 용어를 도입한 점에서 그 의의가 큰 김산호 화백은 무슨 근거로, 어떻게 쥬신이라는 용어를 쓰게 된 것일까요?
『청태조실록(淸太祖實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본래 만주에 있었는데, 이따금씩 주신(珠申)이라 하였다> 바로 여기에서 '쥬신'과 비슷한 '주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다음을 봅시다. 『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篇)』의 기록입니다. <여진의 본 이름은 주리진(珠里眞)이며, 점차 와전되어 여진이 되었다> 여기서는 '주리진'이라고 합니다. 민족을 봐도 내용을 봐도 주리진이 주신이 같은 말이 와전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사연구초'에서 『만주원류고(滿州源流考)』를 인용하면서, <만주원류고에 숙신의 본음은 주신(珠申)이라 하였으니>라 저술하였습니다. 여기서도 주신이 나옵니다. 또한, 『오월춘추(吳越春秋)』에서는 현이(玄夷)의 창수사자(蒼水使者)가 내린 가르침을 받은 우(禹)임금이 주신(州愼)의 은덕을 기렸다고 하여 현이를 주신과 동일시(또는 상위 단계)로 봅니다.
게다가, 허광웨(何光岳)가 쓴 ‘여진원류사(女眞源流史)’를 살펴보면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은 ‘주신(珠申)’ 또는 '제신(諸申)'. 즉, '즐셴' 또는 '쥬션', '쥬선', '쥬셴' 이라 합니다.
또한, 김운회 선생은 조선과 숙신, 주신의 연계관계로 여진=숙신=주신=쥬신을 주장했는데, 조선(朝鮮)은 현대 중국어로 '짜오썬' 또는 '쭈썬'이나 '쟈오시엔'이라 하고, 주신(珠申)은 '쭈셴'이나 '주우셴'으로 발음합니다. 숙신=여진=주신은 학계의 정설이니 일단 이것들을 '조선'과 '주신'으로 합쳐서 비교하겠습니다.
이를 상고시대의 음으로 보면 조선은 tew-sen으로서 '튜센' 또는 '쑤센'이 되며, 주신은 Jur-chen이 되어 '즐첸' 또는 '즐쎈'으로 발음됩니다. 겉보기에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지 몰라도, 첫머리부터 따져보자면, ㄷ(ㅌ)과 ㅈ이 치환됩니다. 이 둘이 치환되는 예는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실마릴리온'이라는 책에서는 '싱골'을 '딩골'로 번역해놓아서 필자를 애먹인 사례도 있지요. 그리고, '즐첸'에서 ㄹ받침의 강세를 혀끝을 살짝 굴리는 정도로 약화시킵니다.(중국어에서 이런 경우 많죠) 그러면, '쥬센'과 '즈첸'으로 이 둘이 상당히 비슷해지네요.
(어느 홈페이지에서는 tew-sen과 Jun-chen의 차이를 근거로 주신=조선설을 반박하고 있는데, 이 반박자는 분명 영어로 써놓기만 했지 한국어로서 읽어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실, 이 점에서는 김운회 선생도 한국의 한자음이 옛 중국음에 가까우며, 상고 중국음을 몽땅 추적할 수는 없다며 슬그머니 발을 빼기도 했죠.)
이러한 면에서 볼때 쥬신이란 단어는 김산호 화백이 처음으로 씁니다. 반면에 주신이라는 단어는 역사적으로 그 근거와 신빙성이 있지요. 따지고 보자면 이것들은 정확한 뜻은 추측할 수 없지만 [자음 ㅌ, ㄷ, ㅈ, ㅅ, ㅆ]+[모음 ㅡ, ㅗ, ㅜ, ㅠ]+[받침 ㄹ:대개 생략]+[자음 ㅅ, ㅆ]+[모음 ㅣ, ㅔ, ㅕ, ㅖ]+[받침 ㄴ]으로 구성된 단어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쥬신'과 같은 경우는 이 조합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저는 이러한 면에서 속칭 '쥬까'들에게 까이면서 '쥬신'이라는 단어를 고집할 거라면 차라리 역사서에서 인정받고 있는 '주신', 또는 '줄신(주-ㄹ 신)'이나 한족에게 그 역사를 인정받은 '조선'을 쓰시길 권장합니다. 일본에서는 '죠센'이라고 하는데, 중국어의 '쥬센', '즈첸', '쑤센', '튜센' 등과 함께 보면 '신'을 '센'으로 치환해 읽는 것도 생각해볼만 하군요.
결론하겠습니다. 김산호 화백의 '쥬신'사용은 원래 쓰던 발음인 '쥬센(또는 쥬선)'과 한문 발음인 '주신'을 합한 '쥬(Jus)'+'신(申)'으로 중국어와 한자의 조합이라는 취약점은 있으나, '주신'에서 첫머리를 살짝 강하게 굴린 말으로서 충분히 근거 있는 가설입니다.
'조선'과 '주신' 및 '숙신' 등, 범(凡) 천손족을 가리키는 단어의 어원을 찾는 이러한 가설들 중 근래 들어오면서 '쥬신(김운회, 대쥬신을 찾아서)'과 '주신(이우혁, 치우천왕기)'의 두 가설이 널리 알려져 몽골-만주-한반도-일본에 걸친 범 천손족을 가리키는 명사로 널리 알려졌으므로 일단 이 두 가설은 그대로 용인하되, '쥬신'이라는 단어보다는 '주신'이라는 단어가 더욱 문헌적 근거가 깊으며, '주신'보다는 '쥬신' 또는 '쥬선' 및 '쥬센'이 본래 천손족이 쓰던 발음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사실, 쥬신 중 뒤의 '신(선, 션, 셴, 첸, 썬)'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뒤에 해석하겠지만, '신'은 어미의 음을 빌려왔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지요. '신'이 어미라면 그것을 어떻게 발음하든간에 '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쥬신의 '신'은 대개 申 또는 鮮(조선의 경우)으로 기록되었으므로 한자 어미를 합쳐서 대개 쥬신(Jus+申)으로 읽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