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월) 우연히 알게 된 J3 클럽에 가입한 쌩초보인 제가 가입한 지 딱 1주일만인 지난 7월 5일(월) 무박왕복종주를 하겠다고 제 분수도 모르고 덤볐습니다.
제가 왜 그런 무모한 짓을 강행 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일주일 동안 틈틈이 강호 고수님들의 휘황찬란한 종주산행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나도 할 수 있겠지 착각을 했었겠지요.
어쨌거나 그 흔한 인증샷 한 장 찍어오지 않은 산행이었지만 저의 행적을 가급적 자세히 수첩에 기록하려고 하였고, 그것을 정리하여 일차적으로 저 자신의 교재로 삼고 이차적으로는 저와 같은 무모한 산행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쪽팔림을 무릅쓰고 글을 올립니다.
[산행기록 요약]
● 2010년 7월 5일(월) 03:00 시작 ~ 6일(화) 13:00 종료
● 코스 : 성삼재 ~ 천왕봉 ~ 성삼재, 반야봉 왕복 포함 약 58km
● 총소요시간 : 34시간(연하천대피소 11시간 포함)
● 총산행시간 : 23시간(상행 9시간 30분 + 하행 13시간 30분/반야봉과 노고단 다녀온 시간 포함)
[시간대별 산행기록]
2010년 7월 5일 03:00 성삼재 출발, 날씨는 깜감해서 모르겠다. 차는 일단 성삼재 주차장에 모셔놓고 베낭 메고 랜턴 하나로 앞길을 밝히며 걷기 시작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이렇게 깜깜한 산길을 홀로 걷는다. 5분도 채 지나기 전에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추워지기 시작한다. 마누라 말을 들을 껄, 내가 왜 이런 모험을 하나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약해진다. 그러나 할 수 없다. 이렇게 된 것, 일단 질러보자.
2010년 7월 5일 03:30 노고단 대피소를 지난다. 올라오느라 땀을 좀 흘렸더니 목이 말라 수통에 들은 것 아끼려고 취사장 들어가서 한 바가지 마시고 나온다.
2010년 7월 5일 03:40 노고단 고개다. 머리 들어 하늘을 보니 약간 씹힌 반달이 구름 사이로 언듯언듯 지나간다. 여기서부터 천왕봉 25.5km, 수 많은 고수님들이 마음을 다잡던 팻말을 보며 나도 심호흡 한 번 하고 내달린다.
2010년 7월 5일 04:15 피아골 삼거리 당도, 랜턴을 입에 물고 수첩에 메모하는데 모자에서 땀이 뚝뚝 수첩 위로 떨어진다.
2010년 7월 5일 04:25 임걸령 당도, 무서워서 샘터에 가서 물 마시는 것도 생략한다.
2010년 7월 5일 04:50 노루목 도착, 작년 여름에 아들래미와 같이 왔었을 때 여기서 쉬면서 쵸코파이를 먹었던 생각을 한다. 어스름하게 날이 밝기 시작한다. 내려오는 길에 반야봉에 들러봐야지 생각하며 간다. 과연 그게 니 마음대로 될까 모르겠지만……
2010년 7월 5일 05:00 삼도봉 도착, 날카로운 삼도봉 표식 한 번 쓰다듬고 길을 재촉한다.
2010년 7월 5일 05:15 화개재 도착, 처음으로 베낭 풀고 앉아서 간식을 먹는다. 건빵과 두유 그리고 슬라이스 치즈 2장을 먹고 05:30에 출발
[2010년 7월 5일 06:40] 연하천대피소에 당도하여 드디어 사람 구경을 한다. 대피소에서 묵었던 산객이다. 인사하고 물 한 바가지 들이키고 계속 걷는다. 아직까지는 기분 좋게 걷는다. 초짜지만 무박왕복종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겠다는 자만심까지 든다. 곧 디질 줄도 모르고……
2010년 7월 5일 07:40 벽소령 대피소 도착, 도중에 내리기 시작한 가랑비가 어느덧 베낭 속까지 젖힐 정도로 꽤나 내렸다. 산행 시작한지도 5시간 가까이 되어 배도 고프고 다리도 서서히 피곤하여 쉬기도 할 겸 어설프지만 가랑비 그대로 맞으면서 혼자 도시락을 까먹는다. 월요일이라서 그런지 이 시간이 되었는데 대피소에서는 인기척 하나가 없다. 처량하다. 인생이란 게 원래 이런 맛일까?
2010년 7월 5일 08:45 선비샘, 시원한 물 마시고 또 걷는다. 비옷을 입었으나 몸은 이미 비에 젖고 땀에 젖어서 더 이상 젖을 것도 없다.
2010년 7월 5일 09:10 천왕봉을 찾아보세요. 야속한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냥 간다.
2010년 7월 5일 10:00 세석, 오랜만에 보는 탁 트인 풍경이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세석대피소, 그냥 통과한다. 비는 개고 간만에 햇볕까지 비춰준다. 반갑다.
2010년 7월 5일 10:15 촛대봉 오름길이 벅차다. 땀과 비에 젖은 몸이 햇볕을 쪼이니 그야말로 찜통이 따로 없다. 왼쪽 무릎 뒤 오금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여기 아프기 시작하면 약도 없는데……, 주위에 지나가는 산객도 없으니 이 참에 젖은 옷이나 갈아입으며 쉬었다가 가기로 한다. 한적한 바위 위로 가서 젖은 옷을 벗고 햇볕에 몸을 말려보지만 쉽지 않다. 행여 누군가 나를 보기라도 한다면 바바리맨 아닌가 생각하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런 것 괘념할 때가 아니다. 그냥 고추말리고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간식도 챙겨 먹고 베낭을 메니 한결 가볍다.
2010년 7월 5일 11:30 장터목이다. 산객들이 몇몇 보인다. 지금부터 가파르게 오를 천왕봉길이 아픈 다리를 더욱 힘들게 하겠지. 불과 다섯 시간 전만 해도 왕복종주 자신하며 기고만장 하더니 지팡이에 의지해서 다리 쩔룩거리며 끌고 가는 꼬라지라니…… 그래도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걷자. 또 걷자.
2010년 7월 5일 12:30 아! 천왕봉이다. 먼저 올라온 산객들은 연신 사진도 찍고 집에 전화도 하며 천왕봉에 오른 기쁨을 전하는데 나는 카메라도 없고 밧데리 아끼려고 꺼두었던 핸펀 꺼내기도 귀찮아 기냥 접었다. 그저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아가기로 한다. 기억을 보존하고 꺼내어 즐기는 것에 꼭 물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 관심이 있고 정성이 있으면 어찌 잊고 살까.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도 잠시, 이제 돌아갈 길을 바라보니 까마득하다. 언제 또 저 먼 길을 돌아갈꺼나.
2010년 7월 5일 13:05 장터목대피소, 오금이 아프면 오름길 보다 내림길이 더 힘들다. 송곳으로 찌르는듯한 통증에 일단 점심 먹으며 쉬어가기로 한다. 식수대 내려가는 것도 두려워서 매점에 가서 식수를 사려하니 큰 병은 떨어지고 작은 병밖에 없단다. 그거라도 하나 사서 그 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등산화도 벗고 양말도 벗어서 발도 좀 숨을 쉬게 해주면서 밥을 먹고 나니 하늘은 다시 어두워지면서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화장실에도 가고 식수대에도 내려가서 물 보충 하고 13:40 장터목을 출발했다.
2010년 7월 5일 14:40 촛대봉, 장터목에서 쉬어 준 덕분인지 다리가 한결 나아졌다. 촛대봉 오름길에 좀 힘겨웠지만 그 대신 물맛이 꿀맛이라 손해 본 것 같지는 않다. 날씨는 다시 화창해졌다. 아까 고추 말린 것 본 사람은 없었겠지 하면서 혼자 웃고 내려온다.
2010년 7월 5일 15:00 세석에서 물 보충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걷는다.
2010년 7월 5일 16:30 선비샘, 갈 때는 물만 마시고 갔으나 이제는 좀 쉬어가자. 등산화를 벗고 족욕을 한다. 발이 얼얼하니 아플 만치 차가운 선비샘의 물, 서울 가면 참 그립겠지?
2010년 7월 5일 17:30 벽소령, 밥 먹고 갈까 그냥 갈까 잠시 주춤대다가 그냥 지난다.
2010년 7월 5일 19:00 연하천대피소, 다리 통증이 다시 심해져서 연하천 오는 길이 참 멀게 느껴졌다. 대피소에는 산객들이 모여 부산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나도 일단 주저 앉아 라면 끓여 저녁 먹을 준비를 하는데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안개는 더욱 짙어지면서 시야를 좁힌다. 이런 밤에는 랜턴도 소용없을 것 같고, 더 이상 갈아입을 마른 옷도 없다.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머리 속에서는 자기합리화 구실이 수도 없이 맴돈다. 결국 J3 첫 종주, 무박왕복종주의 꿈을 여기서 접고 연하천대피소에서 하루 밤 묵었다.
2010년 7월 6일 06:00 연하천 출발, 오늘도 안개길이다. 어제 저녁 대피소 매점에서 사 둔 황도캔 하나를 뜯어서 건빵 몇 알과 함께 먹고 길을 나섰다.
2010년 7월 6일 07:50 화개재 도착해서 잠시 숨 고르기. 어제 올라갈 때의 속도보다 2배는 늦는 것 같다. 551계단 올라가기가 아뜩하다.
2010년 7월 6일 08:20 삼도봉
2010년 7월 6일 08:30 반야봉 갈림길, 고민한다. 분명히 올라가는 길에 내려올 때는 반야봉에 들러볼 거라고 마음 먹었었기에 그냥 지나치기가 걸린다. 아픈 다리가 걱정되지만 올 때마다 외면하던 반야봉이라서 이번에도 그냥 가면 내가 또 언제 다시 와볼까 하는 생각에 좀 무리해서라도 다녀가기로 한다.
2010년 7월 6일 09:00 반야봉 정상,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발 아래로 펼쳐져 있다. 반야봉에서 심원, 쟁기소로 이어지는 구간은 2017년 2월 28일가지 자연휴식년제란다. 내려오는 길에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파와서 다리쉼을 하며 간식을 먹었다.
2010년 7월 6일 10:00 노루목 통과
2010년 7월 6일 10:30 임걸령, 물통에 식수 보충하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본다.
2010년 7월 6일 10:40 피아골 삼거리, 왼쪽 무릎에 압박붕대를 감아본다.
2010년 7월 6일 11:55 드디어 노고단고개, 노고단 문이 열렸길래 내친 김에 다녀온다.
2010년 7월 6일 12:05 노고단, 이제서야 날씨가 맑아져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쨌거나 저 길을 이 두발로 다녀왔다니 가슴 벅차다. 파란 하늘에 깃털 같은 흰구름, 녹음 짙푸른 나무와 풀, 모두 아름답다. 천국에라도 온 것 같다.
2010년 7월 6일 12:30 노고단대피소 할머니께 인사하고,
2010년 7월 6일 13:00 성삼재, 산행종료! 이 번 산행에서 배운 것 한 가지! '저질체력 보강해서 다음에 제대로 한 번 해보자!' <끝>
처음부터 왕복종주에 나서신 그 자신감과 용기를 배우고 싶습니다.
다음번엔 꼭 좋은 기록으로 멋지게 완주하시길~~~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말씀 감사하고 담번엔 멋진 글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