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즈 마을에서의 고 이태석 신부님의 생전 모습
K씨에게
고 이태석 신부님의 헌신적인 삶과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 파일을 얻게 되어
어제 밤 시청하였습니다.
고 이태석 신부는 1962년 부산광역시의 산동네에서
10남매 중 9째로 태어나
의과대학을 거쳐 군의관으로 복무를 마치고
의사로서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천주교의 신부가 되어
평생을 아프리카 수단의 헐벗고 병들은 이들을 위하여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대장암으로 마흔 여덟의 나이로
올해 1월 14일 짧은 생을 마감한 분입니다.
어제 본 다큐는 그가 헌신적인 삶을 살다 떠난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과
그의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생전의 이태석 신부의 생애가 담겨진 영상을 담은 영화였는데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다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 수단의 자랑인 톤즈 브라스 밴드가 마을을 행진합니다.
선두에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고 있었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한 남자…
고 이태석 신부....
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딩카족입니다.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의 오랜 내전 속에서
그들의 삶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졌습니다.
목숨을 걸고 가족과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딩카족.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종족 딩카족에게
눈물은 가장 큰 수치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울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이 메마른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故 이태석 신부입니다.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던 쫄리 신부님, 이태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온몸 다해
그들을 사랑했던 헌신적인 그의 삶이 스크린에서 펼쳐졌습니다.
울지마 톤즈를 시청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 궤적이
이태석 신부의 삶과 비교해 볼 때
한없이 초라하고 추했음을 절감하였습니다.
앞으로 남겨진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감동 깊은 영화였습니다.
이태석 신부님!
정말 감사합니다.
고히 잠드소서......
고 이태석 신부님의 생전의 애창곡
윤시내의 <열애>를
바칩니다.
열애
처음엔 마음을 스치며
지나가는 타인처럼
흩어지는 바람인줄 알았는데
앉으나 서나 끊임 없이 솟아나는
그대 향한 그리움
그대의 그림자에 쌓여
이 한세월 그대와 함께 하나니
그대의 가슴에 나는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
그리고 이생명 다하도록
이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