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와 클라라 vs 시몽과 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민음사. 2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프랑수아즈 사강이 24세에 쓴 작품이다. 사강의 첫 작품은 <슬픔이여 안녕>으로 열아홉에 썼다. 이때부터 사강은 프랑스 문단의 커다란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1959년에 출간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사강은 당시 파리의 아이콘이 된다. 사강은 필명인데 프루스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사강 아주머니’에서 따왔다. 사강은 프루스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가 지상에 다녀간 이후에는 어떤 것들을 단순히 다시 한다는 게 불가능해져 버렸다. 그는 우리 재능의 한계를 그어 준다.”라고 하면서, “예술의 환상은 우리로 하여금 위대한 문학이 삶과 밀착되어 있다고 믿게 하지만, 진실은 그 정반대이다. 삶이 무정형적이라면, 문학은 형식적으로 잘 짜여 있다.”(p.152) 프루스트 작품에 영향을 받은 사강은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끝까지 가볼 기세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은 그녀의 삶과 닮아 있다. 젊은 나이에게 소설을 써 버리고 10대 후반부터 카페와 클럽을 들락거리며 골루아즈 담배와 커피 한 잔이 아침식사 전부였다. 위스키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카지노를 들락거리며 인세를 탕진한다. 재규어, 애시튼 마틴, 페라리, 마세라리를 바꿔 가며 속력을 즐기다 교통사고를 당해 3일 간 의식 불명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피임약, 술, 코카인에 중독된 사강. 연애, 섹스, 도박에도 중독된 그녀는 인생의 끝자락에선 소니 녹음기 하나 살 돈이 없었으며 친구 집에 얹혀사는 빈털터리가 신세가 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음악가 브람스와 클라라의 사랑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작품은 열네 살이나 연상이었던 클라라 슈만을 평생 마음에 품었던 요하네스 브람스를 떠올리게 된다. 소설은 영화 <굿바이 어게인>으로도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선 <이수>로 번역되어 상영되었다. 잉그리트 버그만(폴), 이브 몽땅(로제), 안소니 퍼킨스(시몽)가 주연을 맡았다. 실제 브람스는 스승이었던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만난 후 평생 순정을 받친 음악가다. 브람스가 스무 살 때 슈만 부부는 앞에서 연주를 하고 격찬을 받는다. 슈만 부부에게 브람스는 광채였다. 브람스는 당시 34세였던 클라라의 미모와 재능에 감탄하며 연정을 품게 된다. 브람스와 클라라는 소설 속 폴과 시몽의 나이차와 똑같다.
한편,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도 유명하다. 클라라는 당시 여자 베토벤으로 불릴 정도로 장래가 촉망된 인재였다. 괴테, 파가니니, 멘델스존, 리스트는 클라라의 연주를 듣고 극찬한다. 9살 연상이었던 슈만과 결혼한 클라라는 7명의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도 피아노 연습을 소홀하지 않는다. 클라라의 명성은 빛나고 슈만은 클라라의 남편으로 알려진다. 슈만은 피아니스트에서 작곡가로 전향하지만 음악계에선 유명한 바람둥이였다. 적잖은 스캔들과 염문설, 음주벽, 우울증, 매독,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슈만은 결혼 14년 만에 라인강 다리 위에서 투신한다. 다행히 목숨은 부지했지만 정신병원으로 이송되고 만다. 이후 슈만은 식음을 전폐하고 세상을 떠나는데 당시 46세였다. 클라라는 헌신적으로 남편을 알리려고 노력했고, 남편을 위한 연주회도 열었다. 클라라가 77세에 남편 옆에 묻힌다. 클라라 옆엔 늘 브람스가 서성이고 있었다. 브람스는 14세 연상이었던 클라라를 끝까지 지켜준다. 슈만에겐 오직 클라라뿐이었다. 그러나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는 브람스에게 ‘모성적 우정’만을 줄 수 있었을 뿐이다. 브람스는 클라라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다. 클라라가 죽자 브람스는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며 그녀의 죽음을 노래한다. 다음해 브람스도 사망한다. 브람스의 선율에는 사랑을 예술로 승화시킨 처절한 몸부림이 들어 있다. 그의 음악이 슬픈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사연들은 소설 속 폴과 시몽, 로제와 오버랩 되는 부분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좋아하세요?”라고 묻지는 않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이유가 있는데 브람스 음악은 호불호가 나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대부분 좋아해서 연주회 초대 시 물어보지 않지만 브람스는 꼭 물어봐야 한다. 연주회에 초대할 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고 묻는 건 필수라고도 한다. 시몽은 폴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편지로 말이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p.56) 편지를 받은 사강은 이런 상념에 빠진다. 자기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말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에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p.57)
편지는 옷감 견본이나 늘 부재중이었던 남자에게만 신경 썼던 그녀를 환기시키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렇지만 선뜻 연주회 초대에 응하기가 어렵다며 자신을 합리화 시킨다. 그녀는 시몽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뭐라고 대답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마도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라고 대답하리라. 자신이 그 연주회에 가려는 것인지 아닌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전화를 받은 시몽의 말, 시몽의 목소리에 따라 달라지리라.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고 자신의 그런 망설임을 기분 좋게 음미했다.” (p.58) 그녀는 자신을 점검하게 된다. 로제에 대한 사랑도 함께 말이다. 자기만을 바라보는 한 남자. 시몽을 받아들일지 망설인다. 다시 또 폴은 이런 생각을 다진다. “내가 만나러 가는 것은 시몽이 아니라 음악이야. 오늘 오후에 가 봐서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면 어쩌면 매주 일요일마다 갈지도 모르지. 그건 혼자 사는 여자에게 좋은 소일거리야.”(p.58)라고 말이다. 시몽은 연주회장 앞에서 폴을 기다린다. 폴은 시몽을 만나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시몽은 “저는 당신이 오실지 안 오실지 확신할 수 없었답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제겐 큰 상관이 없어요.” (p.59)라고 한다. 시몽과 폴은 2000명의 청중과 함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다.
영화 <굿바이 어게인>에는 이 부분이 잘 조망되어 있다. 폴은 연주회에 가기 전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을 듣는다. 겨울바람이 연상되는 쓸쓸한 가을날이 연상되는 곡이다. 음악은 충분히 슬프다. 사랑하지만 사랑을 전하지 못하는 우수어린 브람스의 마음이 녹아있다. 시몽도 마찬가지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들으며 시몽은 두 눈을 감는다. 폴은 그가 음악광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연주회에 오기 전 시몽은 로제가 다른 여자와 있는 것을 목격하고 온 길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폴이 안쓰러운 시몽이다. 시몽은 폴에게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안게 된다. 폴의 고통만을 생각하는 시몽. 브람스 저음의 멜로디 선율이 시몽의 마음을 울린다. 시몽과 폴이 브람스곡을 듣는 부분은 소설에서 중요한 장치로 보여진다. 클라라와 슈만처럼 폴과 시몽도 비슷한 사랑의 형태댜. 소설의 모티브가 된 브람스와 클라라. 사랑은 덧없다는 것을 사강은 강조한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그럼에도 순간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작품은 어떤 이념적 장치도 없이 가볍게 스토리를 끌고 가지만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있다.
<3일 1서평-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