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녀일등(貧女一燈)의 고사를 통해 인등의 유래를 살펴보고,
어떤 마음으로 등불공양을 해야 진실로 큰 공덕이 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마가다국에 '난다'라는 한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난다는 어느 날 온 성안이 떠들썩하게 북적거리며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그 중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성안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아자타사투 왕이 오늘밤에 부처님을 위해서
수천 개의 등불을 켜 부처님께 바친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난다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왕은 큰복을 짖는구나. 그렇지만 나는 부처님처럼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분이 오셨는데도,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공양할 것이 없으니 참으로
한심하구나, 나도 등불을 하나 켜서 부처님께 공양하고 싶은데............'
이런 생각을 한 난다는 길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여
가까스로 동전 두 닢을 얻어 가지고 기름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가난에 찌든 여인이 기름을 사려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기름집 주인이 물었습니다.
"난다여, 당신은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처지가 아니오.
어찌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않고 기름을 사려고 하시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난다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처님을 만나 뵙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
그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과 한 세상에 살면서도
너무 가난하여 지금껏 아무 것도 공양할 수 가 없었습니다.
거리에서 들으니 오늘 저녁, 마침 임금께서 많은 등불을 밝혀
부처님께 올린다고 하더군요. 나도 등불 하나를 밝혀
부처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기름집 주인은 참으로 기특한 생각이 들어
기름을 곱절이나 더 되게 주었습니다.
난다는 기뻐하며 그 기름으로 등불을 밝혀
부처님 계시는 절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기원했습니다.
"가난한 제가 이 조그마한 등불을 부처님께 공양하오니 받아 주옵소서,
만약 제가 후세에 도를 얻게 된다면 이 불이 밤새 꺼지지 않으리!"
그날 밤 사바티에는 강한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쳐서
초저녁에 켜 놓았던 등불은 모두 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다음날 새벽까지 작은 등불 하나 만은 세차게
휘몰아치는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어둠 속에서
더 밝은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여인 난다가 켜 놓은 작은 등불이었습니다.
다음날 부처님의 십대 제자 가운데 한 분인 목련존자가 이 등불을
손으로 끄려고 하였으나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사 자락으로 끄려고 했지만 역시 꺼지지 않았고.
부채로 끄려고 했으나 여전히 꺼지지 않았습니다.
끝으로는 신통력으로 등불을 끄려고 했지만
그래도 작은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시던 부처님은
목련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만 두어라, 그것은 가난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착한 여인의
등불이다. 그 등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공덕으로
그 여인은 오는 세상에 반드시 성불하여 이름을 수미등광여래라 하리라."
한편 부처님의 이 말씀을 전해들은 왕은 신하를 불러 물었습니다.
"나는 부처님과 여러 스님들에게 큰 보시를 했고
수천 개의 등불을 켰다. 나는 이렇게 많은 공덕을 지었는데도
부처님께서는 어째서 나에게는 칭찬을 하시지 않고
작 작은 등불 한 개를 바친 난다에게는 장차부처가 되리라는
수기까지 한시는가?"
이 말을 들은 신하는 언제인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은바있는 법문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르시길, 착한 업적을 이룩한다고 하는것은
사람들의 평범한 생각으로는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조그만 보시로도 얻을 수 있지만 수 많은 보시로도
얻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왕께서 하신일이
비록 크기는 하지만, 마음은 한결같이 착하거나 정성스럽지 못햇습니다.
자기가 행 한 착한일을 내세우거나 자랑한다면
그 값어치는 그만큼 작아지고 맙니다."
왕은 신하의 이 말을 듣고서 착한일의 참뜻을 깨닫고 참으로 부끄러워
하였습니다. <근본설일체유무·현우경>
우리는 해마다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이 되면
불전에 등불을 밝히고 소원성취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초파일이 아닌 평상시에도
법당에 인등을 켜거나 장명등을 켜 소원을 빕니다.
인등(引燈)이란 말의 뜻은 '부처님 전에 등을 켠다.' 는 뜻입니다.
그 유래는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한 가난한여인의 거룩한 신심이 그 어떤 화려한 등보다도
더 큰 공덕을 이루었다는 고사(故事)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인등을 연등이라고도 하는데
연등은 연등회, 연등절을 의미하는 경우와 그냥
등불 자체를 연등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강연등제니 하는 경우와 같이
대규모의 등불공양 행사를 말할때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 등 불을 올리는 경우는
인등 공양이라고 하는것이 더 합당 할 듯 싶습니다.
왜냐하면 인등이란 부처님께 인도한다. '부처님께로 나아간다' 는
뜻이 있기 때 문에 단순히 등불을 의미하는
연등보다는 인등이 종교적인의미가 더 강하다 고 보기 때문입니다.
인등불사는 부처님 당시부터 시작된것입니다.
사실 그 시원(始原)은 아득한 과거세로부터 올라갑니다.
석가모니부처님에게 수기를 주신 부처님 이름이
연등(燃燈)부처님이신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과거 세상에서
선헤보살로 수행 하실 때, 이 부처님을 만나
다섯송이의 연꽃을 공양하고, 또한 머리털을 부처님앞에
진흙길에 깔아서 연등부처님이 밟아 건너시게 하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연등' 이란 부처님의 이름은
이 부처님의 몸이 마치 등불과 같았기 때문이라고 하므로
비록 이 부처님께 등불을 공양 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없지만 연등의 기원은 이 부처님의 이름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잇습니다.
그러면 등불 공양은 어떤 공덕이 있을까요?
첫째, 성불의 씨았이 됩니다.
가난한 여인 난다는 부처님께 작은 등불을 올리고 그 공덕으로
부처님으로 부터 '30겁 후에 수미등광여래가 되리라' 는 수기를 받았습니다.
이는 어찌 난다라는 여인에만 국한되는 일이겠습니까?
누구든 그와 같은 그와 같은 공덕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등불 공양은 성불의 씨았이 됩니다.
둘째, 지혜의 눈을 얻게 됩니다.
등불은 어둠을 물리치는 빛이요.
지혜는 무명(마음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그러므로 등불을 밝히는 진정한 의미는
세간의 어둠을 밝히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어둠, 탐진치 삼독심으로 엉킨 어둠
즉 무명(無明)을 없애는데 있습니다.
셋째, 재앙을 물리치고 소원을 성취시킴니다.
재앙은 어둠속에서 일어납니다.
진리에대한 어둠, 인과에 대한 어둠이 온갖 악업을 짓게되고,
그결과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소원이 이러한 악업의 징애가 되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지혜의 등불을 밝히면 재앙은 스스로 물러가고,
쟁애도 스스로 사라지므로 소원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등불만 켠다고 그런 공덕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등불만 켠 다고 그런 공덕이 모두다 이뤄진다면
세상에 등불을 켜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해마다 수많은 불자들이 등불공양을 올리고
절마다 수많은 인등이 밤낮으로 빛을 내고 있는데
등을 켠 분들이 한결같이 큰 지혜를 얻고,
모두다 소원을 이루었다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등불을 켜는 마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등불을 켜는 마음입니다.
'난다'는 비록 작은 등불 한 개를 켰지만
밤새 빛을 내고 아침이 되어도 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사자수투왕의 등불은 화려하고 거창했지만
밤새 다 꺼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꺼지고 안 꺼지고는 단지 우리 눈에 보이는 불빛만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불빛, 바로 신심의 불빛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전에 등불을 켜기에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하고,
바른소원을 가져야 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거져야 합니다.
남이야 어찌되든 나만 잘 되면 그만 이라는 소원은
이루어지지도 않지만 그런 소원을 갖는다는 것은
불자의 도리가 아님니다.
타인에게 내 얼굴을 내기 위해 등을 켜서도 안됩니다.
초파일에 보면 등불을 좋은 자리에 켜겠다고
신도님들 끼리 서로 다투는 일도 있는데
등불을 켜는데 좋은자리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화장실 앞이 라도 정성스러운 마음,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등을 켜면 그곳이 좋은 자리요,
설사 부처님의 얼굴 앞이라도 탐욕스런 마음으로
등불을 켜면 아무런 공덕도
되지 않습니다.
≪열반경≫에
"자기 자신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며,
남에게 귀의하지 말라.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되 남을 등불로 삼지 말라."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때 보다도 법의등불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등(法燈)은 먼데 있지도 않고
겉모습의 화려함에도 있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의 진실한 마음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본래부터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와 자비의 법등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다같이 마음속에 간직된, 보이지는 않지만 영원히 꺼지지않는
이 마음의 법등에 불을 붙입시다.
그리고 그 밝은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나아가
갖가지 모습의 장엄한 등에 불을 밝힘으로써
밝은 사회, 인정이 넘치는 세상이 되도록 부처님께 발원하고,
이 인등공덕으로 함께 수기를 받아 다함께 성불합시다
------선림스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