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을 다니다 보면 뜻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창 버스터미널에서 선운사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웬 젊은 외국인 한 명이 나타난다.
서로 배낭을 맨 사이라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알고 보니 이 외국인 친구 역시 선운사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 워싱턴이 고향이라는 브래드(28세)라는 이름을 가진 이 외국인 친구는
서울에서 영어강사를 하면서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온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는데 우리말로 대화를 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을 정도다.
선운사행 버스에서도 우리는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계속한다.
"미국에서도 산에 많이 다녔어요?"
"한국에 와서 산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한국에 와서 다닌 산 중에서 기억나는 산은?"
"부카안산(북한산), 서라아산(설악산), 소오리산(속리산)...
그런데 한국의 산을 너무 아름다워요."
주말이면 산을 많이 찾는다는 브래드는 내가 광주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고는 "오, 오리탕!" 하고 외친다.
작년 추석 때 부산을 경유하여 광주를 왔었는데, 그때 오리탕을 먹었단다.
"맛있었어요?"
"예, 오리탕 맛있어요."
"한국음식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 뭐예요?"
"불고기, 삼겹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선운사가 가까워지고 있다.
"나하고 같이 산행할까?"
"선운사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국인 친구가 있어요."
선운사 주차장에서 내린 우리는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만남이지만 헤어짐을 아쉬워한다.
선운사 시설지구 뒤편 '경수봉 2km' 라 쓰인 이정표를 따라 조그마한 개울을 건넌다.
길가에는 쑥을 비롯한 각종 풀들이 푸릇푸릇하다.
산행은 민가 뒤로 나 있는 산길에서 시작된다.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찔레나무다.
잎이 활짝 핀 찔레는 곧 꽃을 피울 태세를 갖추고 있다.
단아한 춘란과 고고한 적송 그리고 분홍빛 진달래
잘 자란 소나무 숲 속에서는 진달래가 활짝 피어 온 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여기에 수줍은 듯하면서도 고고하게 꽃을 피운 춘란(春蘭)이 선운산의 봄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한 점 흐트러짐이 없는 적송(赤松),
거짓 없는 진실함에 변화의 이미지까지 갖고 있는 분홍빛 진달래
그리고 절제되어 단아한 아름다움을 갖춘 춘란의 자태는 어쩌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마치 동네 뒷산과 같은 친근하고 포근한 야산이 이어진다.
고사리 하나가 삐쭉 고개를 내밀고 나오다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춘란의 물결 속에 진달래로 만든 마차를 타고 달리다보니 주능선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왼쪽으로는 선운사와 주변 계곡이, 오른쪽으로는 곰소만(灣)과 변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끔씩 나타나는 비탈진 바위에는 바위솔이 덮여 바위의 딱딱한 성질을 누그러뜨리고 있다.
경수산에 도착한다.
흙이 다 씻겨간 묘지 하나가 외롭게 지키고 있다.
주위에는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자리잡고 있다.
선운사의 고즈넉한 로습이며 광활하게 펼쳐지는 서해바다의 모습이 더없이 평화롭게 다가온다.
동쪽으로 멀리 내장산 서래봉에서부터 백암산, 입암산, 방장산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제법 위용을 갖추고 있다.
경수산에서부터 능선의 방향은 남쪽으로 바뀐다.
왼쪽으로는 산과 평야를, 오른쪽으로는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몇 번,
석상암과 고창군 심원면 연화리 마을을 이어주는 마이재에 도착하니 커다란 묘 두 기가 나에게 쉬어가라고 손짓한다.
묘지의 잔디 위에 앉아보니 개미 발자국 소리까지 들릴 만큼 고요하다.
고요함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다.
이런 조용함 속에서는 나의 마음도 평온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평온한 마음이 지속되면 평상심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은 최고의 수도처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도솔산이다.
전망이 시원하다.
먼저 선운사의 평화로운 모습이 저 밑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선운사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석가가 구제하지 못한 중생까지 마저 구제한 후 도솔천에서 용화세계를 이룬다는 미륵보살.
선운사에서는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고 있고,
이곳 도솔산에서는 미래불인 미륵보살이 땀 흘리고 올라온 나그네를 교화하고 있는 것 같다.
대웅전 뒤편의 동백나무 숲이 진록색을 띠고 선운사의 봄을 장식하고 있다.
오른쪽 산비탈에는 산골마을이 소박하게 앉아 있다.
낮은 야산 너머로 서해바다의 망망함이 있다.
바다 안개에 떠 있는 위도가 아스라이 다가오기도 한다.
북쪽으로는 그동안 지나왔던 봉우리들 너머로 곰소만과 변산이 손짓한다.
동쪽으로는 내장산을 비롯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가르는 여러 산들이 펼쳐지고 그 아래로 넓은 들판이 앉아 있다.
남쪽의 저 들판 위에 자리잡은 고창읍에는 조선 초기에 축조된 고창읍성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원형을 잘 간직한 채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있다.
성의 외형뿐만 아니라 고창읍성에는 여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으면
무병장수하고 죽어서 극락에 간다는 전설과 함께 성밟기라는 독특한 풍속이 지금까지도 전해져 온다.
도솔암 마애불에 얽힌 전설
고창읍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우리나라 최대의 고인돌 유적인 상갑리가 있다.
비옥한 땅을 가진 이 지역에 터를 잡고 살던 청동기시대 족장들의 가족묘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의 고인돌은 무려 500여 기에 이른다.
도솔산을 출발하여 내리막길로 조금 내려가니 50명 이상은 족히 앉을 수 있는 커다란 너럭바위와
마치 스님의 머리 같은 모양의 대형 바위가 눈길을 끈다.
소위 포갠바위라 불리는 바위다.
건너편으로 국사봉이라 불리는 개이빨산과 장군봉이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여기에서 10여 분 내려가니 참당암으로 가는 신작로다.
참당암은 도솔산을 등뒤로 하고 장군봉과 개이빨산을 바라보는 그야말로 포근한 자리에 대자대비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장군봉과 개이빨산 사이의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제법 시원하다.
완만한 계곡을 잠시 올라서니 앞이 훤히 트이면서 일대의 바위군(群)이 등장한다.
그동안 사람 얼굴보기가 힘들었는데 여기에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등산코스보다는 선운사와 저 밑으로 보이는 도솔암과 마애불, 용문골을 거쳐
낙조대와 천마봉까지만 왔다가 바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낙조대로 오른다.
선운산 최고의 비경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우선 낙조대 바로 위에 오르니 칠산 앞바다가 또다시 인사를 한다.
끝없이 넓게 펼쳐지는 칠산 앞바다와 포근한 곰소만
그리고 바다 안개에 가려질 듯하면서도 살포시 고개를 내민 위도가 장관으로 펼쳐지는
낙조대에서의 석양과 노을은 한마디로 환상적이다.
도솔암과 마애불이 가깝게 다가선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 기둥을 뒤로하고,
마치 말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한 천마봉(天馬峰)을 바라보며 서 있는 도솔암과 마애불
그리고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는 바위 위에 성스럽게 앉아 있는 내원궁의 모습은 바로 압권이다.
마애불에는 예로부터 전설 하나가 전해 내려왔다.
마애불의 배꼽에는 신기한 비결이 들어있어서 그것이 세상에 나오는 날에는 한양이 망하는데,
비결과 함께 벼락살도 들어있어 거기에 손을 대는 사람은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것이다.
1820년에 전라감사로 왔던 이서구라는 사람이 마애불의 배꼽을 떼고 그 비결을 꺼내보려는데,
그때 마침 벼락이 내려치는 바람에 비결의 첫머리에 쓰여 있는 '이서구가 열어본다' 는
대목만 얼핏 보고 다시 넣었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여러 사람이 열어보고자 하였으나 벼락이 무서워서 못 열었는데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기 1년 반 전인 1892년 8월 어느 날,
동학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손화중의 접(接)에서 그 비결을 꺼내보자는 말이 나왔다.
모두들 벼락살을 걱정하고 있는데 오하영이라는 도인이 말하기를
'이서구가 열었을 때 이미 벼락이 일어나 벼락살은 없어졌다' 고 하였다.
이리하여 동학도들이 마애불 속에 있는 비결을 꺼내가기에 이르렀다.
이 일이 있은 후 농민 수백 명이 무장현감이 잡혀들어가 가져간 비결을 내놓고 두령이 있는 곳을 대라는 취조를 당했다.
여기에서 주모자 세 명은 사형을 받았으며, 나머지는 무수한 매를 맞고 풀려났다.
망해가는 나라의 쇠운과 일어서는 민중의 힘과 의지가 서려 있는 얘기다.
낙조대에서는 멀리 선운사와 도솔계곡이 내려다보인다.
천연의 요새 같은 도솔계곡에서는 갑오농민전쟁 때 관군에 포위된 수많은 농민들이 희생되었다.
도솔계곡에는 유난히 상사초가 많이 자란다고 한다.
동학군의 영혼들이 상사초로 환생하여 꽃을 피운 것이리라.
낙조대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탄다.
길이 좁아진다.
배맨바위가 지척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남쪽으로 고창군 해리면 소재지 일대가 너른 들판과 함께 펼쳐진다.
배맨바위는 커다란 맘모스 같기도 하고 거북이가 짐을 가득 지고 고개를 쭉 내밀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선운사에 얽힌 창건설화가 떠오른다.
죽도포(竹島浦)에 돌배가 떠와서 사람들이 끌어올리려 하였으나 자꾸 바다 쪽으로 떠나갔다.
소문을 들은 검단선사가 바닷가로 가니 배가 저절로 다가왔다.
배 안에는 삼존불상, 탱화, 나한상, 옥돌부처, 금옷 입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의 품안에서
'이 배는 인도에서 왔으며 배 안의 부처님을 인연 있는 곳에 모시면 길이 중생을 제도, 이익케 하리라' 고
쓰여 있는 편지가 나왔다.
이에 검단선사는 본래 연못이었던 지금의 선운사터를 메워 절을 세웠고,
여기에 통일신라의 진흥왕은 재물을 하사하고 장정 100명을 보내 공사를 돕게 했다.
그래서 선운산에는 검단선사와 진흥왕에 얽힌 지명이 많다.
선운사와 도솔암 중간에 있는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이 그렇고,
마애불에서 낙조대로 올라가는 길목에 검단선사가 연못을 메울 때 쫓겨난 이무기가
다급하게 서해로 도망가느라고 뚫어놓았다는 용문굴이 바로 그러하다.
배맨바위는 이때 인도에서 온 배를 매었던 바위였을 것이다.
동백의 화려함 속에 숨은 처연함
선운산 줄기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청룡산에 도착한다.
남쪽으로는 고창에서 영광으로 이어지는 널따란 황토빛 들판이 봄기운에 꿈틀거리고 있다.
청룡산에서 바다와 아쉬운 이별을 고한다.
청룡산을 벗어나지 그동안 남쪽으로 뻗어왔던 산줄기가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반갑습니다."
"어디서 오는 길이어요?"
"구황봉, 병풍바위, 비학산을 거쳐오는 길입니다."
낙조대 이후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다.
이 분은 마산에서 선운사 동백과 벚꽃 개화시기에 맞춰 왔다는 것이다.
암봉 하나를 넘으니 돌로 쌓아놓은 조그마한 돌탑 10여 기가 정답게 맞이한다.
그리고 도솔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이 갈리는 안부를 만난다.
여기에서 봉우리 하나를 오르니 사자암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희어재를 거쳐 비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갈린다.
사실 여기에서 비학산, 구황봉을 거쳐 선운사까지 주파를 해야 완전 종주가 되는데 아침 출발시간이 늦은 데다가
오늘은 차분하게 선운사 동백꽃을 감상해야 하기에 사자암 능선을 타기로 한다.
여기에서 방향을 북쪽으로 튼다.
낙조대에서 청룡산으로 이어지는 왼쪽의 능선과 비학산에서 구황봉으로 이어지는 길다란 오른쪽 능선을 바라보며 걷는다.
왼쪽에는 배맨바위, 천마봉, 도솔암, 마애불이, 오른쪽으로는 병풍처럼 펼쳐진 병풍바위, 말안장 같이 생긴 안장바위,
우뚝 선 선바위 등 독특하게 생긴 바위들이 멋진 풍경을 만들어 준다.
평범한 능선길을 걷다가 사자암을 만난다.
암릉에 가까울 정도로 바위가 워낙 커서 사자암이라 한 모양이다.
참당암과 그 뒤로 곰소만도 보인다.
오른쪽 밑 저수지의 군청색 물결이 밝은 햇살에 잔잔하게 부서진다.
나무가 어느새 활엽수로 바뀌더니 마치 투구를 세워놓은 것 같은 바위 두 개가 가로막고 나선다.
투구바위다.
좁은 바위 사이에 앉으니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투구바위와 양쪽 벼랑에는 암벽등반 루트가 개발되어 있다.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가는 신작로가 지척이다.
앞으로 다람쥐 한 마리가 지나간다.
지난 가을에 만난 이후 처음으로 보는 다람쥐라 반갑기 그지없다.
산줄기는 학생야영장 앞 계곡 속으로 빠져 들어가버린다.
야영장에서 선운사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호젓한 오솔길이다.
느티나무, 참나무 등 아름드리 나무들 밑에 단풍나무가 작은 잎을 내밀어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젊은 부부의 발길에서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본다.
보고 있어도 그리움이 사무칠 연인들의 발걸음도 아름답다.
계곡가에서는 다섯 살 가량의 꼬마아이가 아빠가 만들어준 버들피리를 불고 있다.
'도솔산 선운사' 라 쓰인 일주문을 통해 선운사 경내로 들어선다.
관음전에서 금동보살좌상을 뵙고 대웅보전 뒤편의 동백나무 숲으로 간다.
동백나무 자생지의 북방한계선상에 있는
이곳 동백나무 숲은 수령 500년으로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될 만큼 기품을 자랑하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아직 꽃이 피기에는 이르지만 올해는 봄이 빨리 찾아와 한참 피기 시작했다.
진록색 잎 위에 붉게 피어 있는 동백꽃은 열 아홉 처녀의 순정과도 같이 순수하다.
강렬한 듯 하면서도 어딘가에 수줍음이 스며 있고, 화려한 듯 하면서도 어딘가 처연함이 숨어 있다.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라는 시를 음미한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