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예전부터 추천한 쭈꾸미집을 얼마 전에야 가봤습니다. 용신동(용두동+신설동의 새이름) 주민센터 길건너편에 위치한 '나정순할매쭈꾸미'집입니다. 친구가 그 집 근처에 서식하고 있거든요. 아, '쭈꾸미'의 바른 표기가 '주꾸미'죠. 알고는 있는데, 어감상으로도 '맛'이 좀 떨어져서 그냥 간판대로 버릇대로 '쭈꾸미'라고 적겠습니다. 양해를... ^^a;;
토요일 오후 5시에 방문했는데, 본관은 물론이고 뒷편 별관까지 자리가 거의 다 찼더군요. 친구의 권유로 별관쪽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본관의 경우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하는데 이때 비닐봉지에 넣어서 올라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서 별관을 권유하더군요. 또 하나의 이유는 본관에 있으면 뒤늦게 와서 줄지어 서있는 다른 분들과 가끔 눈이 마주치게 되는데, 그러면 빨리 먹고 나가야 할 듯한 영양가없는 의무감(?!)이 들기도 해서 별관쪽을 선호하더군요.
별다른 메뉴판을 주지도 않습니다. 그냥 벽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주문하면 되고... 먹을 것은 오로지 '쭈꾸미' 하나 젹혀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주류'더군요. 결국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고 결정할 것은 '주류'란 야그겠죠. 4명(남자2, 여자2)이 3인분을 주문했는데, 가져오는 '양'이 만만치 않더군요. 불에 달군 철판에 가득 올렸는데, 여전히 많은 양이 남아있는 형국이었습니다.
이 집이 예상밖으로 '양'으로 승부하는 집인가.. 했는데 익어가는 모습을 보니 이내 그 생각이 달아나더군요. 약간의 버섯과 함께 거의 다 쭈꾸미로만 이루어진 주물럭 형태인데 쭈꾸미도 신선해보이고, 익어가면서 풍기는 양념 냄새가 입맛을 확 당기더군요.
자글자글 익어가고 있습니다. 너무 익히면 쫄깃함이 없어지므로 적당히 익혀서 먹어야겠죠. 꿀꺼덕!
양념의 매운맛이 초반부터 입안을 자극하는 싸구려가 아니라, 뒤늦게 몸 깊숙한 곳에서 땀을 빼는 맛이었습니다. 첨엔 멋모르고 와사비 푼 간장에 찍어먹다가 곧바로 '쌈'으로 바꿨습니다. 깻잎을 제공하는데 쌈장 바르지 않고 그냥 쭈꾸미만 올려서 싸먹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깻잎향과 매운양념, 쭈꾸미의 쫄깃함이 조화를 이룬 맛, 뭐... 말이 필요없더군요.
쭈꾸미 대가리입니다. 제가 간 날은 알이 차 있진 않았는데 그래도 맛이 괜찮았습니다. 조금만 일찍 방문했다면 알이 꽉 찬 대가리를 먹을 수 있었을 거라며 친구가 아쉬워하더군요. 나중엔 날짜를 좀 맞춰봐야겠습니다.
머리도 깻잎에 쌈으로 싸서 먹어봅니다. 생각보다 깻잎 소모량(?!)이 많은데 바로 바로 리필해주더군요.
미처 쭈꾸미를 다 먹지 못한 상태에서 밥을 볶았습니다. 맛도 좋은데 양이 정말 꽤 많아요. 하긴 매운 맛이기 때문에 오버해서 먹기도 힘들긴 하겠지만요. 사진 보시면 위쪽에 쭈꾸미가 남아있습니다. 볶음밥은 남아있는 쭈꾸미를 사용하지 않고 극히 일부의 양념장만으로 볶아주더군요. 살짝 싱겁게 만드는거죠. 그전까지 호호~ 불어가며 매운 거 먹었는데 볶음밥까지 매우면 속이 쓰릴 터이니 올바른 선택인 듯 합니다.
볶음밥을 그냥 먹다가 남아있는 쭈꾸미와 깻잎으로 쌈도 싸먹어봤는데, 이 맛이 또 일품이더군요. 해서 거의 대부분을 쌈싸서 먹었습니다. 볶음밥 쭈꾸미 쌈이라... 명칭이 쓸데없이 길지만 좌우간 맛있습니다. ^^
6시쯤 나와서 보니 과연 사람들이 줄을 서있더군요. 확실히 용신동 근방에서는 이름을 날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주변의 쭈꾸미집은 그냥 파리가 손님인척 왔다갔다하는 분위기인데 말이죠.
'나정순할매쭈꾸미'집 또한 '서비스'면에서는 지적하시는 분들이 있을 듯 합니다. 저는 크게 불편함까지는 겪지 않았는데, 일단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가방을 가져왔을 땐 비닐봉투에 넣어서 바닥에 놓는데 더러워질 일은 없겠지만 아름다워보이진 않죠. 서빙하는 아주머니들의 경우는 확 친절하지도, 쌀쌀맞지도 않은데 많이들 지쳐보이더군요. 인력이 모자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죠. 그 와중에 사장님은 아주머니들을 독려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가끔 시끄럽기도 하더라고요. 손님을 받드는 서비스 수준은 절대로 기대할 수 없지만, 불친절하다고 딱지를 붙일만하진 않은 듯 합니다.
근처에 사는 친구의 경우는 줄서기가 싫어서... 주로 테이크아웃(!)을 해 간다고 하더군요. 하긴, 쭈꾸미를 숯불에 구워먹는 것도 아니고 철판에 올려서 먹는 방식이므로, 집에서 성능좋은 후라이팬 사용하면 맛이 달라질 이유가 없겠죠. 친구가 그날 먹은 쭈꾸미를 계산하면서 1인분을 포장해서 선물로 주었습니다. 친구 잘 뒀죠?
그러지 않아도 마눌님이 한달 전부터 쭈꾸미 타령을 하시었는데, 친구 잘 둔 덕에 맛있게 양념된 쭈꾸미를 가져올 수 있었죠. 채소나 쌈장은 집에서 준비한 겁니다. 포장은 오로지 쭈꾸미만 들어있더군요.
꽤 큰 냄비인데 쭈꾸미 1인분이 가득 채웁니다. 채소는 전날 맛들인 깻잎 외에도 상추와 오이를 준비했습니다. 이 녀석들이 매운맛을 살짝 가려줘서 좋더군요. 특히 아~ 맵다~ 싶을 때 오이 한 조각 먹어주면 상쾌함 그 자체에요.
그리고 집에서 먹는 만큼 백반에 쌈을 싸먹을 수 있어 좋더군요. 워낙 양념 자체가 맛있으므로 볶음밥보다 백반에 먹는 것이 더 궁합이 좋은 듯 합니다. 첨엔 쌈장을 넣다가, 이내 쭈꾸미 양념장을 넣어서 싸먹었습니다. 아주 주금이더군요.
여기에 디저트로 수박(!!!)을 먹어주니 참으로 행복하더군요. 솔직히 용신동이 멀지만 않다면 저도 친구처럼 테이크아웃을 주로 이용할 듯 합니다. 디저트까지 준비해서 마음 편하게 먹어주는 거죠. 하지만 집이 멀어서리... 흑...
매콤한 쭈꾸미 타령하던 마눌님이 며칠이 지나도 맛이 잊혀지지 않고 침이 고인다고 할 정도로 중독성이 있습니다. 저도 포스팅하면서 다시 생각하니 빨리 핑계를 만들어 다시 가고 싶어지더군요. 지금까지 먹어본 매운맛 중 가장 짜릿하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