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기자_몽골기행 “초원이 가르쳐준 삶”
몽골의 초원은 풍경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경계와 소유의 언어가 닿지 않는 곳, 바람이 길을 만들고 구름이 시간을 재는 곳에서 나는 오래 잊고 지냈던 삶의 속도를 다시 배웠다.
테를지 국립공원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시화전을 열고 풍물을 울렸다. 낯선 땅에 우리의 시와 가락이 번져 나가는 모습은 문화의 교류라기보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의 언어를 알아보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초원은 말없이 우리를 받아들였고, 우리는 그 적막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자 세상은 한순간에 수평선으로 열렸다. 끝이 없는 초원 위를 소와 말, 양과 낙타가 유유히 흘러갔다. 그들의 눈빛은 아무것도 증명하려 하지 않는 생명의 순결을 품고 있었다. 인간은 끊임없이 경쟁하며 살아가지만, 그들은 그저 살아 있음만으로 완전했다. 나는 그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오래전 잃어버린 내 안의 순수를 더듬었다.
어워 앞에서는 작은 돌 하나에도 간절한 소망이 깃든다는 사실을 배웠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는 일은 신에게 비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다시 다짐하는 의식이었다. 관광객들이 번갈아 독수리를 팔에 올리는 모습을 따라 해 보았지만, 거대한 날갯짓 앞에서 나는 끝내 팔을 들지 못했다. 그 순간 알았다. 인간의 힘은 자연을 들어 올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야생화는 이름을 묻지 않았고, 민들레 홀씨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다. 바람이 시키는 대로 날아가는 홀씨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시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디에 닿을지 몰라도 끝내 자신을 놓아주는 일. 그래서 초원은 풍경이 아니라 한 편의 시였다.
승마 트레킹에서는 문명 속에서 잊고 살던 몸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말의 등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동안 나는 기마민족의 후예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러나 마부가 "말의 뒷발을 조심하라."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말이 갑자기 몸을 틀며 뛰어오르는 바람에 거의 떨어질 뻔했다. 초원은 인간에게 자유를 허락하지만 방심은 허락하지 않았다. 자연은 언제나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함께 품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게르 뒤편 산등성이로 올랐다. 나는 장난처럼 늑대의 하울링을 흉내 냈고, 메아리는 산을 넘어 초원으로 번져 갔다. 그때 눈앞에 잠수함을 닮은 바위 하나가 나타났다. 언젠가 이곳도 바다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수억 년의 시간이 바다를 초원으로 바꾸고, 파도를 바위로 남겨 놓았다는 사실 앞에서 인간의 일생은 한 줄기 바람보다도 짧게 느껴졌다.
언덕을 구르며 웃었다. 어린 시절의 흙냄새가 되살아났고, 오래전 가슴 한편에 묻어 두었던 첫사랑도 함께 굴러 내려왔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바람을 만나면 다시 피어나는 씨앗이었다.
밤이 되자 모닥불이 타올랐다. 양고기의 구수한 냄새와 맥주의 거품, 노래와 춤이 초원의 어둠을 환하게 밝혔다. 사람들은 서로의 언어를 다 알지 못했지만 웃음만큼은 번역이 필요 없었다. 우리는 불꽃을 사이에 두고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별을 보기 위해 나섰지만 하늘은 끝내 비를 내렸다. 기대했던 별똥별도, 오로라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문득 깨달았다. 여행은 원하는 것을 모두 보는 데 있지 않았다. 보지 못한 빈자리까지도 기억으로 품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 밤은 별이 없었지만 오히려 더 오래 남았다.
이튿날 아침, 이슬을 머금은 야생화는 짧은 생을 가장 찬란한 향기로 증명하고 있었다. 거북바위를 지나 엉거츠산을 오르며 자작나무 숲과 기암괴석 사이를 걸었다. 산속의 작은 절에서는 마니차를 천천히 돌렸다. 바람도, 기도도, 침묵도 모두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오래 절뚝이던 다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치유된 탓인지도 몰랐다.
돌아보면 몽골의 초원은 내게 여행지를 넘어 하나의 스승이었다. 꽃은 짧은 생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바위는 수억 년의 시간을 침묵으로 견뎠으며, 바람은 누구의 것도 되지 않은 채 모든 생명을 품었다. 그곳에서 나는 삶과 죽음이 서로 등을 맞댄 형제이며, 그리움은 지나간 시간을 붙드는 일이 아니라 지금을 더 깊이 사랑하게 만드는 힘임을 배웠다.
내일은 톨강을 건너 다시 울란바토르로 향한다. 나담축제의 함성과 말발굽 소리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내 안에서는 이미 다른 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내 마음 한가운데 들어와 조용히 풀을 키우고 있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오래 바라본 풍경을 닮아 간다. 몽골을 떠나도 내 안의 초원은 오래도록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