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가난한 마음으로 가난한 곳에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데 천사가 목동들에게 가서 “오늘밤 너희 구세주께서 다윗 고을에 태어나셨다”하고 알려줍니다. 다윗 고을은 베들레헴이며 베들레헴은 다윗의 출생지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당시 유다는 약소국의 미미한 존재였으나 골리앗 장군을 돌팔매로 잡은 소년 다윗은 통일 국가를 이룩하였고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으며 겸손하고 신앙 깊은 임금이었기에 뛰어난 임금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이스라엘에서는 다윗 왕을 자신들의 가장 자랑스러운 임금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 후대의 임금들은 무능하고 부패하였으며 솔로몬마저도 타락하고 교만하였기에 그의 자식 대에 이르러 나라는 두 동강이 나고 결국 로마의 식민지가 되고 맙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다윗과 같은 임금을 바라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메시아 신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메시아를 기다렸고 수 백 년이 지난 후 천사가 목동들에게 알렸습니다. “오늘 밤 너희 구세주 메시아께서 다윗 고을에 태어나셨다” 얼마나 듣고 싶고 기다렸던 복음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요한사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지만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놀라운 것은 하느님께서 차기의 하느님임을 내려놓으시고 부족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석가모니처럼 왕궁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누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시어 보드라운 요람이 아닌 말 먹이통에 누워 계셨습니다. 유다인들은 현세적인 의미의 임금인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알아보질 못했습니다. “어떻게 메시아가 마구간에서 말 먹이통에 누워계시느냐?” 강력한 권력을 쥔 왕이기를 원했고 지금도 그런 메시아를 그들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제자인 베드로마저도 예수님을 이런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순명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세 번이나 하셨는데도 그 때마다 “안됩니다. 안됩니다.”했습니다. “우리 유다인들은 그런 메시아를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자신의 수제자에게 “사탄아, 물러나라. 너는 어찌 인간의 생각만 하며 하느님 생각은 하지 않느냐?”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때 베드로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당이 꽉 차있지만 우리 중에는 이러한 베드로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베드로들 때문에 성당이 시끄러워집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교회여야 하는데 자기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예수를 생각하기에 이 교회가 시끄럽고 이 교구가 시끄럽고 온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예수님은 작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작고 겸손한 이의 마음 한 가운데에서 태어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서 태어나시지 않는다면 매년 열리는 이 성탄 미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1985년도에 독일을 갔고 1995년 말에 돌아왔습니다. 85년도에는 산타란 말을 하지 않고 산타클로스라고 했는데 돌아와 보니 산타, 산타 합니다. 산타는 이탈리아말로 ‘거룩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럼 산타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명사인지 알고 있는데 산타는 형용사입니다. 빨간 모자에 흰 수염 기른 그분을 왜 12월 25일에 생각하시나요? 12월 25일은 예수그리스도 아기예수가 중심입니다. 그런데 전부가 산타클로스를 산타할아버지라 하면서 왜 성탄 때 그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왜 그러시죠? 모르세요? 예수님이 산타할아버지인가요?
현대 크리스마스는 미국 상업주의에 의해서 전혀 다르게 퇴색되었고 그리스도인마저 상업주의에 물들어 성탄, 예수님의 생일날 산타클로스 빨간 모자 장사꾼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타클로스 성 니콜라우스(Saint Nicholas)는 12월 6일이 축일입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12월 6일에 행사가 있습니다. 성 니콜라우스는 터키 지방의 주교님이에요. 그래서 제가 독일에 있을 때 저보고 주교 노릇해 달라는 부탁받아서 중 고등학교에 주교 복장하고 교실마다 찾아다니면서 행사를 했었습니다. 성탄 때 산타클로스는 없고 예수님이 중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양말주머니를 걸어놓고 산타가 선물 준다고 말하죠. 그것은 그리스도 정신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중심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들 모르고 계십니다. 성탄절이 선물 받는 날, 절대 아닙니다. 선물 받고 놀러가고..... 저희 학생 학부형이 전화를 하고 성탄 때 놀러간다고 예약했다 하더라구요. 미사도 안보고 놀러 간다구요? 그럼 학생 쫓겨난다고 했습니다. 실컷 놀고먹고 어디 놀러가고 하는 날이 성탄이 아닙니다. 자신이 먼저 할 것 하고 난 뒤에 하는 것이죠. 산타의 빨간 색은 코카콜라를 의미하는 것이고 하얀 수염은 콜라 거품을 나타내는 것이랍니다. 아시나요? 여러분은 코카콜라 팔아주는 사원이신가요? 안됩니다. 나부터 고쳐 나가야 합니다.
점이 모여서 선이 되는 것입니다. 나부터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 공동체가 우리나라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탄이고 부활이고 다 쓸데없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실컷 자고 실컷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최고죠. 그것이 더 현명한 것입니다. 무엇하러 여기까지 와서 앉아 있어요?
예수님이, 하느님이 “허허허”하시는 넋빠진 할아버지인줄 아세요? 예수님은 자비로우시면서도 무서우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비유하실 때 혼인잔치로 비유하시면서 문이 다 잠겼다고 똑똑 두들기니 예수님께서 “그래”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으시고 “나 너희를 모르노라”하십니다. 예수님은 기다리다 기다리다 안 오면 딱 끊어버리십니다. 이제는 끝이죠. 예수님께서 “그렇게 여러 번 여러 번 30년 40년 60년 죽을 때까지 기회를 주었는데 너는 나를 모른다고 네 멋대로 살다가 이제 와서? 나 너 모른다.”하고 문 안 열어주십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끝인거죠.
오늘 주님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회개하는 자 안에서 특별하게 태어나십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 작은 고을 베들레헴이 되고 우리 모두 낮은 자, 마굿간에 돌아 갑시다.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라 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내가 보기에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맞이하듯이 잘해줍시다. 그렇게 예수님은 내 마음 안에서 태어나시고 나는 그분 안에서 행복감을 느낍니다. 죽은 다음에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으면서 그런 행위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쫓아가며 예수님을 만나면서 한 발자국씩 한 발자국씩 예수님이 여러분이 사시는 그곳으로 우리가 나가는 것...... 아기 예수님, 오늘 오시는 하느님을 참되게 맞이합시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여러분과 함께 축하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