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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께서 부르시면
신 석 정(辛夕汀)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파아란 하늘에 백로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0 주제 : 목가적인 전원생활에 대한 그리움
0 형식 : 4연의 자유시
0 경향 : 서정적, 목가적
0 표현상의 특징 : 자유시이기는 하나 각 연의 끝을 "그렇게 가오리다 / 임께서 부르시면 ……"의 2행으로 맺음으로써 정형시와 같은 구성으로 되어있다. 또한 경어체나 설의법(說疑法)으로 시의(詩意)를 강조하여, 자연을 찬미하는 한국 최초의 전원시인 신석정의 시풍(詩風)을 짐작할 수 있다.
0 감상 : 이상적 전원 세계의 동경이 자연스러운 발상에 의거, 환상적으로 엮어진 초기작품의 걸작이다. <동광> 제24호(1931. 8)에 발표되고 시집 <촛불>(1939)의 허두를 장식한 이 작품은 각 연마다 아주 신선한 이미지가 제시되고, 쉽고 평이한 시어의 선택이 한결 무리없는 시적 가락을 느끼게 한다. '은행잎', '초승달', '물', '햇볕'으로 상징되는 자연의 은혜 속에서 보람있는 삶을 얻고자 하는 소망이 새로운 감각과 인상적 수법으로 참신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홍윤기<시창작법> 1993, 한림출판사 pp. 468-470.
홍윤기 교수가 쓴 <시창작법>에 쓰인 시 감상법이다. 먼저 주제를 알고 형식과 경향을 알고 표현상의 특징을 알고 나서 감상을 적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느낀 것이 아니라 필자가 느낀 것을 이처럼 느끼라고 강요한다고나 할까? 지식은 있어도 느낌이 없다. 감상은 지식이 아님을 알면서 모든 시 감상을 이렇듯 재단(裁斷)하고 있다. 마치 고등학교 참고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임께서 부르시면 가겠다'고 분명히 몇 번씩 외치고 있는대도 주제는 '전원생활에 대한 그리움'으로 적고 있다. 목가시인이기에 그의 시를 전원생활과 연결 짓다보니 나타난 잘못이다. 조용히 자연의 삶대로 순리대로 살다가 님이 부르시면 나도 님이 계신 곳으로 은행나무 잎이 떨어져 가듯, 초승달이 서산으로 사라지듯 삶의 순리를 쫓아가겠다는 삶에의 순응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도식적이고 기계적 시 감상은 올바른 감상이 아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먼저 작품의 외적인 상황들, 예컨대 작품이 쓰여진 문 학적 배경을 모두 제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품에 대한 이해로 들어가는 정형화되고 일 반적인 접근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작품의 배경 지식을 동원한 접근 방법이 작품에 대한 보다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감상에 오히려 역효과를 줄 수도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전자의 방법보다는 개별적인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감상을 통해 작품의 배경과 상황을 유추하는 귀납적 접근이 문학을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문학을 즐기는방법이 된다.
시를 감상할 때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이상화(1901∼1943)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나타나는 '들'은 터전, 또는 좀더 의미를 확장시켜서 현실일 텐데, '빼앗긴'이란 수식어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의지와 다르게 잃어버린 터전. 어두운 상황이다. 봄은 우선 계절로서의 봄인데 여기서 의미를 확장시켜 보면 봄은 어떤 속성을 갖는가? 겨울을 지내고 오는 봄. 절망 속의 희망. 아마도 '어두운 현실 속의 생명 같은, 희망 같은 봄'을 꿈꾸는 시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장승진)
문학작품의 접근 방법은 크게 내재적 접근 방식과 외재적 접근 방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2분법은 편의적 구분일 뿐이며, 별개의 것이 아니다. 앞서 이해한 방법은 내재적 접근을 통해 제목을 이해한 것이지만, 외재적 접근을 병행해 이해할 때 그 의미가 보다 더 분명해지는 것이다. 즉, 이상화의 살던 시기는 일제 치하이며,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빼앗은 자는 일제요, 봄은 광복이란 등식이 성립된다. 그러나 이상화가 초기에는 낭만적 기질과 감상적인 풍조를 가진 <백조파>의 대표적 시인이라는 점, 후기에 와서 신경향파의 영향으로 퇴폐적, 탐미적 세계에서 벗어나 경향성이 드러나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와 같은 시를 썼다는 사실을 동시에 이해해야만 한다. 1920년대의 대표적 저항시로 꼽히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바로 이러한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을 느껴야하기 때문이다. '식민지 현실을 낭만적인 가락에 실어 정감 넘치게 노래함'이라는 다소 알쏭달쏭한 감상이 그것이다.
둘째, 작품 속 시적 화자의 정서를 읽을 수 있는 중심 시어를 만나 보자.
도시 문명에 대한 현대인의 절망과 비애를 노래한 김광균의 시 <와사등(瓦斯燈)>의 시어들은 '차단-한 등불, 비인 하늘,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 사념(思念) 벙어리, 공허한 군중, 슬픈 신호' 등으로 한결같이 부정적인 수식어들의 꾸밈을 받고 있다. 여기에서 '슬픈 신호'와 '비인 하늘'이 각각 두 번씩 첫 연과 마지막 연에 쓰이고 있다. 이른바 수미상관의 기법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부정성은 시인이 속한 시대와 개인적 심리의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시어의 연결만으로도 시적화자의 정서는 절망과 비애 속에 있으며, 부정적 상황 속에서 어쩌지 못하는 암담함을 공감할 수 있다.
와사등(瓦斯燈)
김광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인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셋째, 중심 시어에서 전체로 정서적 흐름을 확장시키자.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글은 기승전결의 구성법을 따르는데, 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연 나누기를 자유로이 하고 있을 뿐, '감정의 도입, 감정의 발전, 정점, 맺음'으로서의 변화 과정은 일반적 글쓰기와 다를 게 없다. 따라서 시를 감상할 때도 이와 같은 발전 단계에 맞는 감상이 필요하다. 시적화자의 감정을 따라 자신의 감정을 동화시켜 발전시키다 보면 , 작품 속의 주된 정서와 시적 화자의 현실 인식의 변화 등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시적 화자의 현실 인식의 을 간파하여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한 바의 현실 인식의 단면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시인이 말하고자 한 바의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공감대의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자의 체험 세계와 시인의 체험 세계가 공유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의 진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원작에는 연 구분이 없으나 편의상 필자가 4연으로 연 나눔을 함)
넷째, 시인의 문학적 입장과 그 변화 과정을 이해한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하려는 노력과 관심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흔히 내·외적인 접근을 통한 종합적 접근 방식을 사용한다.
<작품에 대한 종합적 접근 방법>
내적인 접근(개별 작품에 대한 내용적 이해와 감상) → 외적인 접근(외적 상황과의 연결 짓기)
① 작가(시인)의 삶과 사상, 문학적 입장과 연결짓는 과정
② 시대적 상황과 연결짓는 과정을 통해 작품의 배경 이해
③ 독자의 삶과 연결짓는 과정으로 자신의 삶 속으로 보다 주체적인 입장에서 '문 학적 체험 끌어 들이기'
신동엽(1930∼1969)은 4.19 혁명에 대하여 남다른 집념을 보인 시인이다. 그를 흔히 [60년대의 대표시인]으로 꼽고 있는 이면에는 4.19 정신의 문학적 성과라는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는 바로 4.19 정신의 정수로부터 획득한 이념적 힘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여기 <껍데기는 가라>는 4.19혁명의 정신을 왜곡하는 모든 세력을 거침없이 질타한다. 이 꾸짖음은 결국 분단극복의 의지로 확장되고 있다.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시집 {52인 시집}, 신구문화사, 1967)
이 시는 우리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여러 의미 있는 사건들을 바라보던 화자가 허위적인 것이나 겉치레는 사라지고, 순수한 마음과 순결함만이 그것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동일한 시어를 반복 구사함으로써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한편, 행간(行間) 걸림의 수법이나 쉼표의 적절한 사용을 통해 시상이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화자가 없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은 '껍데기'이다. 그런데 화자는 마지막 연에서 '쇠붙이' 하나만을 화두(話頭)처럼 던져 놓고 있을 뿐,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쇠붙이'와, 그와 상반되는 어휘들의 의미를 통해 그것을 추출해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4월 혁명의 '알맹이', 동학 혁명의 '아우성', 혼례청에서 맞절하는 아사달 아사녀의 '부끄러움', '향그러운 흙가슴' 등과 상반되는 개념일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이 작품에서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4월 혁명의 민주화 열망이 퇴색해 가고, 동학 혁명의 민중적 열망도 소진되어 가고 있는 현실적 여건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아울러 부끄러움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원시인 같은 순수한 마음의 회복과 그 같은 삶을 추구하는 순수성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현실에 대한 거부이다. 그런 화자에게 '껍데기'는 사라지기를 소망하는 대상일 뿐이지만, 17행 중 6행에서 '껍데기는 가라'고 소리칠 정도로 껍데기는 현실 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4월이나 동학의 본래 이념과는 다르게 변모해 있는 현실 상황에 대해 화자는 강력한 거부의 몸짓을 '껍데기는 가라'라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마지막 연은 이런 상징적 의미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 주는 부분이다. 즉, 우리의 국토를 '한라에서 백두까지'라고 말함으로써 분단의 비극적 현실 상황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이것은 동서 냉전의 부산물로 시작된 분단의 비극이 결국은 동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거쳐 고착화되었음을 상기시켜 주는 한편, 반드시 극복해야 할 민족적 과제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아울러 '모오든 쇠붙이'라는 표현을 통해 현실 상황을 힘의 논리를 앞세운 무력으로 규정함으로써 4월 혁명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군사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한편,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은 참다운 의미의 '인간 세상'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다섯 째, 문학적 체험을 자신의 삶과 밀착시키기
자신의 삶에서 얻은 체험의 시적 승화는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좌우한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대체로 엇비슷한 삶을 살고 있기에 타인의 삶을 마치 나의 삶처럼 공감하게 되고, 독서를 통해 작가나 시인이 설정한 삶에 공감하며 감동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특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사랑에 대한 정서는 우리의 보편적 정서로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민족적 정서로 연결된다.
다음의 박재삼 시인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강>에서 보이듯 친구의 사랑이야기가 곧 시적화자 자신의 사랑이야기로 대치되고, 이는 다시 독자들의 보편적 사랑의 정서를 일깨우게 된다. 누구나 경험함직한 사랑이 이야기가 인생의 이야기로 전이되면서 어느덧 황혼기에 다다른 시적화자는 해저물녘의 가을 강을 보면서 삶의 회한에 젖게 되는 것이다.
울음이 타는 가을강
박 재 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겄네.
({사상계}, 1959.)
김혜순 시인의 <서울의 밤>은 서울이란 대도시가 가지는 물신주의의 삭막함을 살아가는 도시인의 외롭고 버거운 삶을 불개미에 비유하고, 끝없는 욕망으로 인해 자신의 모두를 소진(消盡)시키는 인간을 한 마리의 나방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서울이란 도시에서의 시인이 체험은 플라스틱 장미, 몇십 계단, 혼자 불켠 엘리베이터, 가로등에 달라 붙은 나방으로 묘사되고 있다.
서울의 밤
김 혜 순
몇 개의 산맥을 타 넘어야
네게 이를 수 있니
불개미 한 마리가
플라스틱 장미 꽃잎을
한 잎 한 잎 타넘어 가고 있다 몇십 개의 계단을 올라야
잠든 너를 깨울 수 있니
저 혼자 불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온 몸으로 두근거리는 네가
잠든 너의 몸 속을
한밤중 소리도 없이 오르고 있다
어떻게 등불을 빨아 먹을 수 있니
나방이 한 마리
혓바닥을 비늘처럼 곤두세우고
한밤 내 가로등을 찔러보고 있다.
<강철 새 잎>은 노동자 시인인 박노해의 시이다. 고목나무에 새로이 돋는 연약한 잎새를 보면서, 그 잎새가 굳은 나무껍질을 뚫고 돋아나는 장면을 마치 엄혹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 하나되어 자신들의 권리를 찾으며 힘 있는자 앞에서 결코 굴하지 않는 노동자의 삶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육사의 <절정>에서 보이는 '강철 무지개'와 또 다른 세계이다.
강철 새잎
박 노 해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
아가 손마냥 고물고물 잼잼
봄볕에 가느란 눈 부비며
새록새록 고목에 새순 돋는다
하 연둣빛 새 이파리
네가 바로 강철이다
엄혹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제 힘으로 뚫었으니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 돋는구나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하게
오 눈부신 강철 새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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