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도로 가는 길>
-에이미 스탠리 지음/유강은 譯/생각의힘 2023년판/333page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한 필력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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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센지에 아기 선물이 도착한 때는 1804년 봄으로 이시가미 마을을 관통하는 길이 진창이 된 이른 해빙기였다. (본문중)
로 시작하는 이 책은 쓰네노라는 일본의 평범한 여성의 일생을 시대의 변천사와 더불어 논픽션으로 소개한다.
쓰네노는 지방 사찰의 주지의 딸로 태어나 어릴 적 한문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12살 때부터 시작된 결혼시절부터 여러 번의 이혼과 결혼을 거치며 에도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신의 고향에 남아있던 가족, 특히 오빠와 오랜 시간 서신을 왕래하는 기록을 남겼다.
특히 쓰노네의 가족이 운영하던 절은 당시 사회의 관습상 마을의 문화를 주도했고 기록물을 잘 관리한 탓에 후일 일본의 문화재를 관리하는 기관에서 그 기록물을 수집해서 보관해오고 있었던 것이고, 이 책 <에도로 가는 길>을 저술한 미국의 역사학자인 ‘에이미 스탠리’ 교수에 의해 발견되며 19세기 일본의 역사와 문화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복원된 것이다.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하는 것은 사진, 필름 혹은 역사적 유물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이 책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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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른 각도에서 볼 때 중세 일본 사회의 전통적인 관습과 인습에 얽매여 동시대 남성들과 비교하여 부자유스럽게 산 보편적인 여성들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역사적 환경은 동시대 동아시아의 대부분 여성들이 살아간 삶과 무관하지 않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순종하고, 복종하며 자식을 낳고 기르며,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며 바느질을 하는 등 집안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 여성의 길로 어릴 적부터 교육되고 인식되어 자신의 세계를 집 울타리 안으로만 한정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인 쓰네코는 당시 태반의 여성이 걸어간 삶과는 다소 달랐다. 그녀는 글을 쓸 줄 알았고, 읽을 줄 알았으며,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 중에서 자신의 의지를 길어 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살아간 여성들과는 달리 꿋꿋하게 원하는 삶을, 비록 에도에서의 비참하고 어려운 삶을 편지에 호소하긴 했지만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치고 끝내 자식을 낳지는 못했지만.
여담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쓰네코가 에도에서 고생 끝에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동화적인 결말을 얼마나 염두에 두었는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는 못했지만 한 여성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내는 처절한 의지에 슬픔과 잔잔한 감동을 얻은 것은 숨길 수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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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러 면에서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책 전체에서 전해지는 역사적 인간들의 생생한 삶의 의지와 투쟁에 가까운 일상은 상대적으로 모든 것이 편리하고 풍부해진 현대 사회와 비교되며 아련한 향수를 소환해내기도 한다.
모든 것을 자연의 환경에 의지하고 자연을 기반으로 생각하던 시절은 지금처럼 인공적이고 획일적이며 비인간적이기도 한 도시적인 삶과는 다른 세계를 드러냄으로서 인간적으로 바람직한 삶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쇼군과 사무라이가 통치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중세 일본 사회, 가부키, 게이샤, 사찰 등이 지배하는 문화, 지방의 마을 단위로 이뤄지는 관습, 당시 사회의 여행과 결혼 풍습, 집안에서 살림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행위 등은 찬찬히 읽으면 재미있는 풍경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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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에이미 스탠리 교수의 장시간 자료 발굴과 정리과정에서 보여주는 무한한 인내심과 책을 저술하고 편집해 나간 창의력과 상상력에 대해 경의를 표해주고 싶다.
또한 논픽션인 이 책이 주는 감동은 수많은 고전문학 작품이 주는 감동 못지않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책상의 스탠드 불빛아래 차분하게 읽다보면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