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사랑 시선 242
<<나르시스 건져 올리기>>
김태숙 지음
2021년 11월 29일 초판 1쇄 발행
규격 : 국판 130x225mm (무선제본)
정가 : 10,000원
도서 출판 지혜
주소 34624 대전광역시 동구 태전로 57, 2층 도서출판 지혜
전화 042-625-1140
팩스 042-627-1140
카페 http://cafe.daum.net/ejiliterature
이메일 ejisarang@hanmail.net
이 책에 대하여
이른 봄 붙잡고 앉아 물가에 캔버스 편다
색의 채도와 빛의 파장으로 심상의 깊이 재고 있는
물에 잠긴 수선화
어떻게 건져 올릴까 고민하는데
바람이 먼저 손 뻗어 팽팽하게 둑 당긴다
순간, 햇살 아래 몇 개의 붓이 물속에 익사하고
가라앉은 꽃 그림자 맑거나 노랗지 않아
나르시스 되는 연습한다
심 진한 4B 연필 들어 물 깊숙이 휘젓는다
너울이 물보라로 피어오르고
펜 끝에선 유년의 강물 출렁인다
마음 가라앉히자 서서히 화폭으로 옮겨지는 꽃
그림 속으로 점점 물 차오른다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그림에 비친 슬픔 묽어져 무채색 되고
물에 덴 상처 어느새 푸르다
알량한 자존심으로 나비 애간장 녹이던 나
언제 그림 속에 빠져들었는지
나르시스가 캔버스 밖에서 웃고 있다.
----[나르시스 건져 올리기] 전문
김태숙 시인의 시 편을 읽으며 ‘외로움’과 ‘그리움’ 외에 주목한 또 한 가지는 반쪽에 대한 ‘사랑’이다. 이 시 편에 등장하는 반쪽의 대상은 대체로 ‘너’나 ‘그’로 명명되어 있다.
걷다가 한 번쯤 그리웠다/ 말을 해도 좋으련만// 기다릴 줄 모르는/ 그래서 붙잡을 수 없는,// 떠나가는 너를 수없이 보냈다/ 햇살 얼기설기 내려앉은 연산역 벤치에서// 비 오다 갠 파란 하늘/ 꽃도 피고 지는 건 시 같아/ 너 안에 꽃 피어, 나도 따라 핀다/ 물에서 건져낸 나르시스/꽃들이 지나간 숲에 우거졌을 기억// 기다리지 않을 너에게 간다/ 언 땅 바람이 할퀸 연둣빛 자리/ 노란 꽃 얼룩 지우며/ 지고 말 그 길/온몸으로 간다.
―「수선화」 전문
인간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인생을 산다. 그러나 찾고 나면 그것을 잃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이런 역설적 상황 앞에서 존재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시인은 시 「수선화」에서 “기다리지 않을 너에게 간다/ 언 땅 바람이 할퀸 연둣빛 자리/ 노란 꽃 얼룩 지우며/ 지고 말 그 길/ 온몸으로 간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너’를 붙잡을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고, 그리하여 떠나가는 ‘너’를 수없이 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너’는 타자인 동시에 ‘자아’인 ‘나르시스’이기도 한 것이다.
입술과 입술/ 들숨과 날숨에 피었다 사라지고/ 잠시, 칼디의 가슴 촉촉이 적시다/ 전설 속에 묻어둔 사랑/ 혀끝에 말려 올려진 시간만큼/ 향기로 되살아나는 문양(文樣)이여.
―「커피의 문양」 전문
‘자아’인 나르시스는 “들숨과 날숨”으로 피었다 사라진 전설 속에 묻어둔 사랑을 자맥질하여 건져 올리지만 향기로 되살아날 뿐 사랑의 실체는 부재 상황이다. 시인은 이렇듯 만나고 이별하는 과정에서 얻음은 잃어버림을 전제로 해야 함을 체득하게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비극이지만 비극을 피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비극을 직시하고 “노란 꽃 얼룩 지우며 / 지고 말 그 길/ 몸으로 간다.”라며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한다. 아래 시 「수요일엔 기차를 타요」에서도 사랑에 대한 시인의 적극적인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일기예보의 표정을 살펴요// 노란 장화 신은/ 기상 캐스터는 비 부르고/ 촉촉이 젖는 그리움은 한 뼘이나/ 자라 플랫폼 서성이죠// 미쳐야 살 수 있다면, 불나방처럼 모든 걸 걸고/ 불에 뛰어들 자신감으로 용기 꿈꾸는/ 어쩌면 한 번쯤 가슴 뛰는 사람이 되어/ 신발 끈 묶어요// 기차는 숲으로 들고/ 그가 울고 간 터널의 깊이와/ 한세월 푸르게 기록된 사연을/ 난 어찌 다 읽어 낼 수 있을까요/ 오래도록 땅속에 잠겨있던/ 저 속울음의 마디마디를// 은밀하게 속내 열어/ 이정표 없는 쓸쓸한 숲 끌어안고/ 우린 서로 다른 생각으로/ 긴 하루를 차창 밖에 흩뿌려요.
―「수요일엔 기차를 타요」 전문
수요일은 비가 오는 날이고, 그리움은 촉촉이 젖어 한 뼘이나 자라 플랫폼을 서성인다. 기차를 타고 ‘그’를 찾아 나서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쳐야 살 수 있다면, 불나방처럼 모든 걸 걸고/ 불에 뛰어들 자신감으로 용기 꿈꾸는/ 어쩌면 한 번쯤 가슴 뛰는 사람이 되어/ 신발 끈 묶”자고 적극적인 어조로 스스로에게 말한다. 하지만 사랑의 대상은 언제나 어긋난다. “너의 육체는 팔월의 붉은 장막 밀고/ 내 영혼은 밤마다 너의 담장 넘는다.”(「사랑은 떠난 뒤에 온다」)는 것이다. 이렇듯 시인의 사랑은 다가서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그리운 상사화 같은 어긋난 사랑이라서 애틋하다.
바람의 근원지 찾으러
북쪽으로 뿌리내린 것들 이정표 삼아
마닐라에서 열두 시간 달려 도착했을 땐
이미 바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오후의 햇살이 집요하게 따라오던 구름 밀자
날아오르는 새의 종아리 사이로
부산하게 펼쳐지는 길고 좁다란 협곡
칭얼대던 새의 울음조차 둥글게 말리는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곳엔 바람도 신이 된다
신들의 근간은 사랑이었을까
지상의 낮은 시간 속에 살다 신이 된 여인 흠모하여
피었다 지고 지었다 피었을 이고로트족의 시신들
벼랑에 둥그렇게 걸린 풍경 위태롭다
숨길 사연 무엇 그리도 많아
깊은 곳에서 자란 솔향까지 바람의 무게로 견뎌야 했던,
떠남과 돌아옴이 하나인 에코밸리
떨어진 꽃잎에도 메아리 투명하게 쌓이는 곳
손 내밀어 바람의 기억 들추는 여인들의 눈빛에
산 그림자 그득히 고여있다.
―「에코밸리」 전문
시인은 이렇듯 애절하고, 애틋한 사랑의 근원지를 찾아 떠나지만 마음에 사랑을 불어넣었던 “바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손 내밀어 바람의 기억 들추는 여인들의 눈빛에/ 산 그림자만 그득히 고여있”을 뿐이다. 사랑의 실체는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것이어서 허허롭다. 허허롭기에 더욱 아프다.
----김태숙 시집 {나르시스 건져 올리기},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
저자 소개
김태숙
김태숙 시인은 충북 괴산에서 출생했고, 2018년 월간『문학세계』로 등단했다. 현재 월간문학세계 회원, 시와달빛문학작가협회 사무국장, 대전문인총연합회 회원, 계룡문인협회 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태숙 시인은 첫 번째 시집인 {나르시스 건져 올리기}에서 투사投射와 동화同化의 방법으로 시 창작의 자맥질을 끊임없이 해오고 있다. 꽃을 건져 올리기 위해서 나르시스가 되기도 하고, 꽃이 되어 나르시스를 건져 올리기도 한다. 시적 대상은 무수히 많은 것이어서 또 다른 나일 수도 있고, 나 이외의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
이메일 : cindyk122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