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다윗과 골리앗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3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아제카”(1사무 17,1)에서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골리앗은 필리스티아의 장수였지요. 필리스티아는 기원전 12세기경 에게 해 방향에서 배를 타고 들어온 이주민인데, 옛 이스라엘 해안가에서 “가자, 아스돗, 아스클론, 갓, 에크론”(여호 13,3)이라는 다섯 성읍을 차지하고 살았습니다. 이 가운데 갓이 골리앗의 고향입니다(1사무 17,4). 사울 시대만 해도 필리스티아는 이스라엘보다 우세하였습니다. 청동기를 쓰던 이스라엘에 비해 그들이 철기술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사무 13,22에 따르면, 사울과 요나탄을 제외한 이스라엘 군사들은 칼도, 창도 지니지 못하였습니다. 백성이 농기구를 벼리려 해도 필리스티아까지 가야 하였습니다(13,19-20). 이런 상황은 다윗 시대에 역전되는데,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 필리스티아로 은신한 적이 있었고(21,11-16), 그때 그곳의 생활 방식과 습성을 익힐 수 있었던 까닭인 듯합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지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1사무 17장에 나옵니다. 그에 따르면 당시 필리스티아는 소코와 아제카 사이에 진을 쳤고, 사울은 엘라 골짜기에 군사를 집결시켜 두고 있었습니다(1-2절). 이때 골리앗이라는 거구의 장수가 일대일로 겨루자고 나섭니다. 전체 군사가 맞붙지 않고 일대일 승부를 내는 건 필리스티아의 출신지로 추정되는 그리스 지역에서 자주 사용하던 방식이었습니다(『일리아스』 3권: 트로이아 장군 파리스와 헬레나의 전 남편 메넬라오스의 대결 참조). 이는 군사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이때, 다윗이 등장합니다. 그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장에 나간 세 형의 안부를 살피러 고향 베들레헴에서 아제카까지 꽤 먼 거리를 아침 일찍부터 출발해온 터였습니다(20절). 그러다 한 필리스티아 장수가 하느님의 전열인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걸 듣고(26절) 자기가 나가 싸우겠다고 자원합니다. 사울이 다른 장정을 제치고 다윗을 내보낼 결심을 한 건, 양을 칠 때마다 맹수를 막아냈다는 그의 말을 높이 샀기 때문입니다(34-36절). 하지만 골리앗은 소년이 다가오자 업신여깁니다. 자기는 완전 무장하고 방패병의 호위까지 받고 있는 반면(41절), 막대기와 양치기 가방 주머니, 무릿매 끈을 든 다윗이 너무 우습게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골리앗에게 약점이 됩니다. 방심한 골리앗의 이마를 다윗이 무릿매질로 명중시켰기 때문입니다. 무릿매질은 당시 전장에서도 쓰이던 기술로서 (판관 20,16) 표적을 정확히 겨누려면 상당히 숙련된 솜씨를 필요로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도 보잘것없던 조선 수군의 힘으로 막강한 전력의 왜군을 격파하였습니다. 적함에 접근하지 않고도 총통을 쏴 침몰시켰듯이, 다윗도 골리앗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약점을 공략하여 그를 쓰러뜨렸습니다. 이는 말콤 글레드웰의 말처럼 “강해 보인다고 해서 강한 것이 아니며, 약해 보인다고 해서 약한 것이 아님”을 가르쳐주는 예입니다. 또한 보잘것없는 마구간에서 태어나는 한 아기가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성자시라는 사실도 이를 알려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12월 11일(가해)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