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행7:54-60)
2021.5.30 성결교회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중략)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중략)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구절들이다. 시 구절처럼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우리나라, 우리교회 그리고 우리지역과 가정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수천 개의 잎을 이끄는 하나의 담쟁이 잎처럼 누군가의 선구자적인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찍이 예수님도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다.
오늘은 성결교회주일이다. 성결교회주일은 김상준, 정빈 두 분이 일본 동경에 있는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해서 종로 염곡에서 전도하기 시작하면서 성결교회가 시작된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그날이 1907년 5월 30일 이었다.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온 이후로 어느 교단을 막론하고 수많은 고난의 역사를 지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성결교회는 극심한 수난의 과정 속에서도 성결한 믿음을 지키면서 민족의 아픔과 함께해 왔다. 일제 강점기 때는 교단적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그래서 이로 인해 일제에 의해 교단이 강제해산 되었고, 교회가 폐쇄되고,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극심한 고난을 겪었다. 한국전쟁 중에는 문준경전도사를 비롯한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다(논산 병촌교회 -66명 순교, 신안 진리교회-이판일 장로 등 43명의 성도가 생매장 순교, 정읍 두암교회- 김용은목사의 일가 23명 순교, 이외 다수). 그래서 성결교회를 상징하는 교단마크에는 가시밭의 백합화가 그려져 있다(사진). 교단 마크에 새겨진 가시와 백합화는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의미하는 동시에 가시밭의 백합은 그 상처로 인해 더 진한 향기를 내듯이, 모든 성도들이 가시밭과 같은 세상에서 더욱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자는 의미이다.
이 모든 과정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오늘 우리 사회와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어둠이 빛을 공격하고, 불의(不義)와 의(義)가 뒤집힌 혼돈의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굴 때, 선두에선 담쟁이 한 잎처럼, 한 알의 밀처럼 그리고 가시밭의 백합처럼 복음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혀야 한다. 고난 중에 더 반짝이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오늘 이렇게 결심하는 이 시간이 되자.
사도행전 7장에 보면, 가시밭의 백합화처럼 한 알의 밀알처럼 초대교회 당시에 첫 번째 순교의 제물이 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스데반(Stephen) 집사이다. 오늘 본문은 스데반 집사의 순교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스데반이 죽음 직전에 했던 말을 보면, 마치 예수님의 가상칠언(架上七言)을 연상시킬 만큼 놀라움을 넘어 숭고하기까지 하다. 다 같이 읽어 보자.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59-60)
스데반 집사는 초대교회 당시에 한 알의 밀알과도 같은 사람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스데반이 순교한 이후에 성도들은 핍박을 피해서 로마제국 각처에 흩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흩어진 성도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를 세웠다. 이것이 스데반 집사의 순교가 갖는 중요한 의미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깊이 묵상해 보면,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통해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또 하나의 숨은 뜻이 계셨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사울이라는 청년을 처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무대에 등장시키는 것이다(행8:58).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행7:57-58)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 등장한 사울이라는 청년이 후에 기독교 역사상 가장 탁월한 선교활동을 했던 사도 바울이 된다. 결국 스데반은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시키고, 사도 바울이라는 불세출의 선교사를 등장시키기 위해 썩어졌던 한 알의 씨앗이었다. 이것이 그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였고,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들의 교회나 가정에도 스데반처럼 죽어지는(충성, 헌신) 한 알의 밀알이 될 사람을 찾으신다. 구역이나 기관이나 또는 가정에서 직장에서도 그곳을 위해 목숨을 거는 한 사람만 있어도 그 공동체는 살아나게 되어 있다. 우리들도 스데반처럼 고난 중에 더욱 반짝이는 밀알 성도들이 되자
이처럼 고난 중에 더 반짝이는 별과 같은 믿음을 가졌던 분들이 한국교회나 우리교회 역사에도 많이 있다. 그중에서 이 시간에는 한국전쟁 중에 순교를 당했던 정읍 두암교회 윤임례집사와 김용은 목사 그리고 성도들의 순교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사진).
전라북도 정읍시 소성면에 있는 두암성결교회는 한국전쟁 중에 23명이 순교를 당했다. 이들 중에도 가장 눈에 띠는 분은 윤임례 집사이다. 윤임례 집사는 1894년 정읍에서 태어났다. 남편은 그녀가 32세 때 4남1녀의 자녀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홀몸으로 다섯 자녀를 잘 양육하는 중에 장남 김용은이 기장 먼저 예수를 영접하여 전도사가 되었고, 이후 온 가족이 믿게 되었다. 윤임례 집사의 아들인 김용은 전도사가 고향인 두암마을에 교회를 개척한 것이 1947년 1월 초였다(본 설교자는 서울신학대학교에 입할 당시에 군산중동교회에서 목회하셨던 김용은 목사님께 추천서를 받았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에 두암마을에도 공산군들이 들어왔다. 공산군과 빨치산들은 합세해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김용은전도사와 두암교회 교인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습격했다. 1950년 9월 초 윤임례 집사의 아들이자, 김용은 전도사의 동생인 김용채 집사가 가장 먼저 총에 맞아 순교했다.김용채 집사의 죽음 이후에도 두암교회 성도들은 더욱 뜨겁게 모이고 기도했다. 그러다 9월 10일~10월 26일 사이에 윤임례 집사를 비롯해서 23명의 순교를 당했고, 예배당과 교인들의 집은 불에 태워졌다.
당시 윤임례 집사는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중에 칼과 몽둥이로 공격받고, 대창으로 여러 번 찔렸지만 움츠러들지 않았다. 공산군은 윤임례 집사에게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 줄 것이라고 회유했지만, 윤임례 집사는 오히려 “나는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으니 죽는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당신들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요” 라고 전도했다. 그러자 공산군들은 화를 이기지 못하고 윤임례 집사가 예배당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다가와서 칼로 목을 쳐서 죽이고, 예배당에는 불을 질러 버렸다. 후에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윤임례 집사는 강대상 아래에서 목에 칼이 꽂힌 채 무릎 꿇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세 명의 손주는 빈 우물에 생매장 당했으며, 김용은 전도사의 아들은 몽둥이로 타살 당했다. 박호준 집사와 김용술 청년은 항문에 말뚝을 박아놓고 칼질을 해서 죽였고 김정두 성도 가족과 김환두 성도 가족은 죽창과 칼로 찔러 죽인 후 불로 화형 시켜 버렸다. 이들은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다.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국군이 정읍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을 때, 김용은 목사는 국군과 두암마을에 들어와 가해자들을 만났다. 그때 김용은 목사는 공산당에 합류해서 가족과 성도들을 죽인 사람들에게 복수대신 용서의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가해자들 중 여러 명이 회개하고 두암교회에 입교하여 세례를 받았다. 이후 순교의 피는 복음의 열매로 이어져 윤임례집사의 후손들 중에 교단 총회장 등 30여명의 목회자가 나왔다.
** 정읍 두암교회 선교 이야기 동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vXzWxuxQVyo&t=943s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그러므로 우리들도 스데반 집사와 윤임례 집사의 순교의 믿음을 본받아서 우리들도 고난 중에 더 반짝이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자. 한 뼘이라도 함께 손을 잡고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올라간다는 시구처럼 다 같이 믿음의 손을 잡고 이 땅에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기까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한 걸음씩 쉬지 말고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