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오늘은 용화 부부와 함께 빠이 2박 3일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처음에는 치앙마이 근처 몇 도시를 돌아볼 계획이라 했었는데, 일정이 쨟아지면서 람빵과 빠이 중 한 군데만 갈 수 있게 되었단다. 며칠 전 카톡으로 둘 중 하나를 추천해 달라기에 우리도 빠이 안 가봤으니 이번 기회에 같이 가자고 넙죽 대답을 했는데, 사실 별로 준비를 안 했다.
예전에는 빠이 갈 때는 아야서비스라는 업체의 롯뚜를 타는 게 국룰이었는데... 하면서 검색해 보니 지금도 롯뚜가 다니는데 예약이 필수가 되었다고들 한다. (예전에도 그랬나?) 일인당 150밧의 차비에 예약 수수료를 합치면 200밧 정도가 든다길래, 그렇다면 넷이서 택시 타고 가도 가성비 나오겠다 싶어서 (옆지기가 멀미를 많이 하기 때문에 좀 편히 가고 싶었다. 치앙마이 - 빠이 사이는 고갯길이 700개일 정도로 길이 험해서 심한 멀미를 했다는 얘기가 많다.) 차표를 예매하지 않았고 숙소도 현지에 가서 잡을 생각이었다.
아침을 먹고 용화 숙소로 가서 택시를 불러 보니, 그랩이든 볼트든 맥심이든 1,000밧 내외로 금방금방 잘 잡힌다. 문제는 기사들이 다들 흥정을 해 온다는 것. 짠 것처럼 다들 3,500밧을 달라고 한다. 저쪽은 3,500을 부르고 우리는 2,000을 고집하고, 차이가 커서 협상이 계속 결렬되다가 드디어 (1시간 가까이 지나서) 2,200에 가겠다는 기사가 나타났다. 특이하게도 도요다 픽업트럭이 왔는데 (그래서 가격이 쉽게 내려간 걸까?) 멀미가 두려운 옆지기는 승용차보다 낫다고 좋아했다. (2,000밧으로 더 깎아서 탔지만 내릴 때 팁으로 100밧을 얹어 주었다.)
과연 빠이 가는 길은 구불구불 고갯길의 연속이다. 그래도 좋은 (?) 차를 탄 덕분에 그리고 멀미약을 먹은 덕분에 순탄하게 빠이에 도착했다. 2시간 반 정도 걸렸나.
기사에게 호텔 아는 데 있냐고 했더니 (거꾸로 뒤집힌 집으로 유명한 하트 오브 빠이 바로 옆에 있는) 피콕 데 빠이라는 호텔로 데려갔다. 방이 있다고는 하는데 기사가 따라 들어와서 도와줬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방값이 2,500밧이라는 건 알겠는데, 남은 방이 하나뿐라서 안 된다는 건지, 큰 방이라 하나만 잡고 넷이서 잘 수 있다는 건지 그게 안된다는 건지, 영어로도 태국어로도 확실치가 않았는데, 적극적으로 잡지 않는 분위기로 보아 안된다는 걸로 이해하고 물러났다. 기사를 돌려보내고 근처 숙소들을 둘러보는데 모두 만실이란다.
방이 없네? 그렇다고 설마 아주 없기야 하겠어? 일단 점심부터 먹고 찾아보자고.
길가 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아고다를 열어 적당한 숙소를 예약하고
지도를 보고 찾아갔는데...
여권을 받아든 호텔 직원이 예약 안 되었다고 한다. 그럴리가있나, 금방 아고다 통해 예약했는데, 하면서 아이폰을 들이밀었더니,
아이고, 아저씨~ 예약 날짜가 2월 22일이잖아요? 다음 달.
구글맵과 아고다앱을 오가며 검색을 하던 중에 (아마 어제부터) 날짜가 2월 22일로 세팅이 되었나 보다. 멍청하긴. 그나마 환불불가 옵션이 아니라서 (당일 예약이라 생각했으니 신경도 안썼는데, 다행히도) 바로 취소-환불은 되었다.
날짜를 제대로 맞춰서 구글맵에서 검색해 보니 빈 방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걸어가면서 보이는 숙소들도 모두 full.
그러다가 어렵사리 부킹닷컴에서 방을 하나 발견하고 (리조트? 2박에 5,000밧인데 방은 하나뿐이고, 4인 숙박은 될지 안될지 확실치 않은 상태) 결제를 하고 10분을 넘게 걸어 찾아갔는데,
이번에도 예약이 없단다. 아예 오늘 빈방이 없었단다. 그제서야 폰을 확인해 보니 (걸어오는 도중에) 부킹닷컴에서 연락이 와 있었다. 예약이 실패했으니 다른 방을 찾거나 환불 신청을 하라고... 아니 왜 방도 없는데 결제까지 되어서 고생을 시키냐고?
고생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방이 없는 게 문제다. (구글맵에 12,000밧짜리 방과 7,000밧짜리 방이 보이긴 하지만 그건 너무 비싸서...) 비상 상황이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골목골목 숙소를 찾아 다니던 중 용화가 어느 호스텔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 거기도 방 없다고 했는데 뭐하지? 혹시나 하고 들어가 봤더니, 호스텔 여사장님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다른 집에 방이 있는지 알아봐 주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빈방은 없었고, 우리는 빠이를 포기하고 매홍손으로 가기로 했다.
호스텔 여사장님이 여기저기 전화를 하더니 2,000밧에 매홍손 가는 택시를 (2,500밧 달라는 택시는 거절하고 몇 번을 더 전화하더니 2,000밧짜리 택시를 찾아주었다.) 불러 주었고, 그 동안에 우리는 매홍손의 저렴한 숙소 분디하우스BoonDee House를 예약했다. 하나 남은 싼 방(570밧)과 조금 큰 방(690밧).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1시간 반 정도 시간이 남았다.) 빠이 여행자 거리를 둘러보았다.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몰리는 걸 보면 뭔가 좋긴 좋은 모양인데 오늘의 짧은 경험으로는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좋았던 기억이라면 자기 고객도 아닌 우리를 위해 열심히 전화를 걸어 방과 택시를 알아봐 주신 호스텔 여사장님 정도.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라는 빠이 여행은 이렇게 한나절의 방구하기 소동으로 끝이 났고, 우리는 다시 택시를 타고 고갯길이 1,500개라는 빠이 - 매홍손 길을 달렸다. 2시간 40분.
매홍손의 분디 하우스에는 전형적인 옛날 스타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계셨다. 체크인을 마친 사장님은 직접 그려서 복사해 놓은 지도를 나눠주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친절하게 설명을 하신다. 새벽에 여기 올라가서 일출을 보고, 아침은 저쪽 새벽 시장에서, 여기 저기에 이런 저런 구경거리가 있고... 저녁은 호숫가 야시장에서 먹으면 되고... 9시에 퇴근해야 한다고 하길래 (택시 타고 가는 도중에 전화가 왔었다.) 조금 늦을 거라고 양해를 구하고 9시 10분 쯤 도착했는데, 이렇게 길고 친절하게 설명를 해 줄 줄이야. 마지막으로 배고프냐고 묻고는 (배고프다 했더니) 저쪽으로 우회전 한 번 좌회전 한 번 하면 밤새 여는 국수집이 있다고 알려준다. 똑 떨어지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다.
1월 23일
새벽에 일어나서 일출 명소라는 왓프라탓도이꽁무를 찾아나섰다. 숙소 사장님이 준 지도를 보면서 갔으면 좋았을 걸, 구글지도만 보고 따라갔다가 길도 없는 산비탈을 기어 올라갔다. 언덕 위에는 화려한 사원이 있는데 사방에 구름이 가득해서 전망이 하나도 안 보이고 일출도 기대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앉아서 '토함산 일출을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더라'는 둥 잡담을 하던 중에, 갑자기 용화가 '저기 산 보인다'고 하길래 고개를 들어서 보니
운해 건너편으로 산맥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와, 멋지다.
그리고 해가 떠올랐다.
기대 이상의 멋진 일출을 보고 잔뜩 신이 나서 사진을 찍고 놀다가,
산을 내려와 매홍손 거리를 구경하며 새벽 시장으로 걸어갔다.
시장 안에서 아침을 먹고...
용화가 검색해서 추천한 카페로 가서 커피도 마시고. (기껏 예쁘다는 카페를 찾아가서는, 커피를 어디서 마실거냐고 물어볼 때까지도 카페 뒤편에 예쁜 장소가 따로 있는 줄은 몰랐다. 여자들이 화장실에 다녀와서 화정실이 엄청 예쁘다고 나가자고 하는 바람에 잔을 들고 따라 나가서 비로소 예쁜 카페를 즐김)
작은 생활사 박물관을 구경한 다음에
치앙마이로 돌아갈 차편을 예약하려고 버스터미널까지 제법 먼 길을 걸어갔는데, 창구에 사람이 없다. 12시반에 온다는 팻말이 있으니 점심 시간인가 보다. 우리도 점심 먹으며 기다리자 - 근처 식당을 찾아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도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직원이 왔는데, 내일 버스표 남은 게 없단다. 허걱. 택시 알아봐야겠네.
점심을 먹으러 오가는 중에 터미널 근처에서 대기중인 뚝뚝 기사들에게 수떵뻬 대나무 다리 갔다오는 요금을 물어보았는데, 네 명이면 뚝뚝 두 대가 가야 한다며 대기 시간 포함해서 대당 500밧을 달라고 한다. 너무 많이 부르는 것 같아 흥정을 시도했지만 실패.
숙소로 돌아와서 사장님을 찾으니 외출중이시다. 전화를 연결해서 내일 치앙마이 가는 택시편을 부탁했더니 알아보고 나서 4시반에 숙소에서 만나 답을 주겠다고 한다. 내친 김에 수떵뻬 관광을 문의하니 역시 뚝뚝 2대에 1,000밧을 얘기한다. 바가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 4시 반에 출발하게 뚝뚝을 예약해 달라 하고 방에 들어가서 씻고 휴식을 취했다. (더운 날에 많이 걸어다녔다.)
4시 반에 사장님 만나서 4,500밧에 택시를 예약하고 (빠이로 데리러 오기로 했던 기사가 매홍손까지 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해서 사정을 알리고 취소함. 여기서 새벽 출발하려면 치앙마이에서 12시에 떠나 밤을 새워 와야 하잖아)
뚝뚝 두 대에 나눠타고 수떵뻬 다리로 출발했다.
논 위로 길게 이어지는 대나무 다리의 끝에 부처님이 기다리고 있는 이런 형태의 관광지가 빠이에도 (두 군데나) 있다고 한다. (어디가 원조인지는 모름) 계절 탓인지 논에 벼가 없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재미있게 구경하고 돌아왔다.
저녁은 예정대로 총캄 호수 주변에서 열리는 야시장에서.
사진도 많이 찍고,
고기도 많이 먹고,
얘기도 많이 나누고,
아름다운 매홍손의 밤을 즐겼다.
1월 24일
치앙마이로 돌아가는 날이다.
택시를 기다리며 숙소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는 중에
예상치 않게 탁발 스님들을 만나서
시주 몇 푼 하고 축복의 염불(?)을 들었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 구불구불 고갯길을 돌다 보니 차창으로 멋진 경치가 스쳐간다. 기사에게 사진 찍자고 하니 조금 더 가다가 차를 멈춘다. 내려 보니 그냥 길가가 아니라 휴게소 (딸랏무쓰담) 겸 전망대였다. (가게에서 떵콩 몇 봉지를 구입함). 운해와 그 너머로 보이는 산이 아름답다.
빠이에서 운전사가 (차도) 바뀌었고,
차앙마이 도착하기 전에 간이 휴게소 같은 데서 점심을 먹고, 용화 공항 가기 넉넉한 시간에 잘 도착했다.
조금은 밋밋해지고 있던 치앙마이 생활에서 화라락 신나게 보냈던 2박 3일의 빠이, 매홍손 여행 - 숙소 구한다고 몇시간을 허비하면서도 불안하거나 짜증나지 않았고 오히려 다들 즐거워했던 행복한 여행이었다.
고맙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