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월4일 금요일 평일산행일이다.
서울근교지 산행을 주로 해온 탓으로 다소 변화를 했으면 해 고심끝에 내린 산행지가 경기도 양평
부용산芙蓉山이었다.서울시계를 벗어나고 맑은 공기,물이 넘친다는 두~물머리라고도 하고 양수리兩水里라고도 한다는 곳이다.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진 곳, 그래서 예부터 이런 정겨운 이름으로 이 나라 백성들에게 회자되어 온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산행지 안내는 일주일 전에 내 보냈고 후에 한번 더 안내 메시지를 띄우긴 했지만,"경의 중앙선 양수역 1번 출(입)구 10시" 라는 말은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므로 부담스럽기도 하겠다는 속마음도 들었다.
한편 산행기를 쓰기에 앞서 산행 중 들은 바도 있어 우리 카페 ※산악회에 들어가 양평 부용산,청계산 및 형제봉 등 이쪽으로 산행했던 기록을 살폈더니 이미 모두 네번이나 다녀 온 것을 알았다.
지난2010년 10월1일 부용산 산행 이후,또 산행기록이 있는 2008년11월21일 일산 정발산 산행 이후 산행일지山行日誌를 살피며 불과 7~8년 전 영상 속의 동기들 얼굴,그 표정,자세,웃음띤 모습하며,산행을 마치고 음식점에서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모습,심지어 그새 저승으로 가버린 영상 속의 활기에 찬 얼굴 표정을 대하고 보니 아연실색하기도 했다.10년도 채 안된 세월에 세상은 무던히 우리가 의식하든 안하든 변화의 줄을 타고 무한히 가고 있구나.....
양수역에 좀 이른 시각에 김희중 장군과 함께 닿았지만 오다보니 우리 보다 더 일찍 와 기다리고 있는 동기도 있었고,모이는 장소를 헷갈려 한참을 더 기다리게 하는 동기도 있었다.
오고있는 동기들을 양수역 들머리 광장에서 기다리며 환담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아래 영상은 주변을 살피며 오늘 산행에 참고가 될 듯도 싶어 여유로운(?)시간에 돌아다니며 찍은 거다.특히 맨 아래 사진은 양평군 관내 양서고등학교 출신 학생들의 금년도 서울 주요 대학 합격자를 다수 낸 사실을 알리는 홍보물 플래카드다.한 지역사회 고등학교에서 위와 같이 서울의 '유명대학'에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는 게 예사 일이 아니라는 동기들의 찬사도 있어 영상으로 올렸다.
좀 늦게 온 동기들과 함께 산행길을 막 시작, 바쁘다? 싶을 정도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여덟 명의 동기들 모습이다.(10시35분) 지나간 시간을 벌충이라도 하겠다는 듯....
양수역 들머리를 조금 벗어나니 바로 남한강의 본·지류가 우리 일행을 반기는 듯 맑은 날씨와 함께 맞아 준다.
오늘 우리 동기 일행이 산행지로 잡은 부용산芙蓉山(365.9m) 주변지에 대해 알아봤다.부용산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 소재한 산으로 주변에는 양평 청계산(656m)과 형제봉(507m),하계산(326m) 등이 있으며,용문사 사찰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용문까지 경의중앙선 전철이 연결돼 있어 서울에서 멀고도 가까운 '이웃' 쯤으로 여기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또한 1945년 해방 정국에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기 전 혼미한 시기 일제의 조선총독부로부터 "우리는 패망했으니 당신이 정부를 인수해 주시요...."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의 신망이 드높았던 건국준비위원장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의 출생지이기도 해 역사적 발자취가 스며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부용산의 부용芙蓉은 연꽃이 피워져 있는 모습 같다 해 지어진 이름이라하며,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연꽃 모양으로 둥구스럼한 모습이 마치 연꽃을 닮은 듯도 하다고 한다.
양수역으로부터 1.3km지점.이정표가 세워져 있다.부용산 정상을 거쳐 신원역까지 6.4km를 더 걸어야한다.동절기라 더욱 그러기도 하겠지만 주변엔 푸른 빛을 띤 사철나무는 드물고 오로지 잡목군락지를 이루고 있어,봄 여름에 오면 삼림 터널 속을 지나는 산림욕장으로는 그만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한편 산행의 길은 거므스레한 토질로 등산화 밑바닥의 감촉이 부드럽고 등산지팡이를 꽂으면 막힘없이 땅 속으로 쑥~쑥 들어가 넘어질 염려는 없었다.
자잘한 봉우리를 두세개 넘어오고 경사진 비탈길을 올라 "힘이 좀 드네"하며 앞쪽을 살피니 일행이 앉아 쉬기 알맞은 평상이 놓인 쉼터가 우리를 맞는다."어이 ~ 쉬어 가세!"하며 모두 의견일치다.
배낭을 풀어 준비한 갖가지 간식꺼리를 꺼내 놓는다.막걸리는 '필수'과목이요,비주류파를 위한 삼육두유,사과 등 과일,과자 등등이다.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끙끙거리며 오를 일은 아닌지라 있는 거 없는 거 다 선보인다.(11시25분)
한참을 걸어 오다보니 전망대다.어언 오늘 산행도 절반을 지나왔다.앞으로 걸어야할 거리 2.4km라고
이정표는 알려주고 있다.
드디어 정상에 닿았다(12시45분).헬기장 모습도 보이고 부용산,청계산 등산 안내도도 설치돼 있다.
안내도를 눈빠지도록 쳐다보는 세명의 동기들 모습이 정물화된 그림처럼 정겹게 보이기도 한다.
왼쪽부터 農老 조영래,노의영,정동수 동기들이다.걸어왔던 길이 아스라해서 일까.앞으로 다시 걸어가야할 길이 더 팍팍한 느낌으로 다가와서 일까.
그래서 길이길이 오래 기억해 둬야할 기념사진 한장을 남겨두지 않을 수 없어 "잠깐 일렬 횡대'하고 찍은 영상물이다.맨 아래 쪽 사진-깊은 골짜기일 거 같은데 거기에도 '개발귀신'이 잠입했는지 마을 주변이 파헤쳐져 있는 모습이 멀리 왠지 처연하게 보인다.가는 곳 마다 지구는 상처투성이다.
정상에서 하산할 무렵 여기저기 길이 널려있어 묻고 또 물어 허둥지둥 하산 하는 바람에 꼭 봐 둬야할 곳을 지나치고 말았다.
"←부인당,신원리→"라 쓰인 위 표지판을 보고 "아~ 여기가 그곳이구나" 하고 짐작이 갔으나 동기 일행은 벌써 '십리 밖'에 내달리 듯 멀찍이 앞서 걸어가고 있다.약 5~6m 높이의 부인무덤 또는 부인당이라는 전설이 얽혀져 내려온 곳을 올라가지는 못하고 아쉽게 사진으로만 남겨 올려놨다.
고려왕조 어느 황후가 결혼 첫날 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어 조심스러운 자리에서 그만 방귀가 나와 뿡! 하고 소리가 나니 "어디 임금 앞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방귀를 뀌어"하고 호통을 치고 쫓아내니,쫓겨와 이곳에서 살게 되었는데,임금과 한번 정을 주고받은 게 임신이 되었던지 후에 혼자 천신만고 끝에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장성한 아이가 "왜 나는 아버지가 없어요?"하고 물어 어머니로부터 이런 사연을 듣고 안타까운 나머지 왕실 주변 골목을 오가며 "저녁에 심어서 아침에 따먹는 오이 사세요,~ ~ ~"하고 웨며 다닌 게 소문이 나 하루는 임금이 불러오도록 해 물으며,"야 이 엉터리 같은 녀석아 이 세상에 그런 오이가 어데 있냐?"하자,아이가 정색을 하며 "네~,방귀를 한번도 안 뀐 사람이 심으면 분명히 아침에 오이를 딴답니다요"하니 "허허 이놈아! 세상에 방귀를 안 뀌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그러자 아이가 다시 정색을 하며 "그런데 왜 우리 어머니를 쫓아내신 거지요?" 하고 되물었다.임금은 아이가 자기가 쫓아낸 아내가 낳은 아들임을 알고,그 영특함에 산속에 살고있는 예전의 아내를 다시 불렀으나 여인은 돌아가지 않고 살다가 죽어서 부인당 자리에 묻혔다는 얘기다.참 호랭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이지만,예나 지금이나 여성에 대한 편견,폄훼 등 여성의 인권유린이 극에 달했던 사례를 '전설'이란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다 하겠다.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정상에서 한참을 비탈길로 조심조심 내려와 완만한 지대에 당도하니 원통형 돔으로 사찰의 지붕을 만든 보기에 흔치않은 건물이 보인다.알아보니 대한불교 법화종法華宗 부용사芙蓉寺라 한다.
일행 몇몇이 산자락을 막 내려가자마자 "들어와 쉬어가세요,예~ "하며 오래 전부터 아는 사람 대하듯 친절하게 대응해준 바람에 거절할 수도 없어 종무소 들머리에 가 원통형 나무의자에 앉으니,시원한 약수물을 종이컵에 한잔 씩 채워 권한다.애초 월계사月溪寺라 했다가 사찰 이름을 바꿨다고 하며 약 50년 전에 종법을 개종開宗했다고 했다.합장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종무소로 들어오려는 듯한 젊은 보살이 예쁜 미소를 지으며 "안녕히 가세요,다음에 또 들려 주세요"하며 아름다운 인사말을 하기도 했다.(오후 1시25분)
앞서 간 노의영 동기가 찍어 카톡으로 보내준 전 등산대장 이종주 동기의 부용사 들머리 기념사진을 올렸다.
참 깜박 잊을뻔한 오늘의 사연을 기록해 놓으려 한다.이른 아침 양수역에서 모일 때 전 등산대장 이종주 동기는 윗입술이 두세군데 부르터서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모습이어서 "아니 어찌 입술이 터졌내요?" 하니 독감에 걸려 일주일 이상 고생하다 어제부터 바깥출입 했다고 했으며,노의영 동기는 해외여행 이후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 지금까지 감기가 남아있는 듯 하다고 했고,김희중 동기 역시 새로 이사간 집 난방시설 기기 작동방법이 서툴러 냉방에서 잠을 자다 보니 감기에 걸려부렀다고 했다. 이처럼 몸이 성치 않은데도 오늘 산행에 참여해 준 걸 생각하면 또다른 감동을 자아내게도 한다.
위는 산행을 마치고 신원역에 닿아 대합실에서 정담을 나누고 있다.다시 양수역 근방 '단골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하러 가는 중 차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여유롭게 한담을 하고 있는 거다.
아래는 신원역 플랫폼에 올라 와 산행모습의 마지막 기념사진 한장을 남겼다.(2시2분)
양수역 아침 산행출발지를 다시 와, 2년 전에도 점심식사를 했던 그집 촌미村味에서 아주 늦어버리고만 점심을 먹기에 앞서 "무탈 산행 자축! ~위하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2시40분)
아침에 농로 조영래 동기가 좀 늦게 온 '죄'로 죄풀이 한답시고 술·음료수 값은 내겠다고 공언을 했다고 한다.못들은 척 하고 넘어갔다.
끝으로 지난 번 청계산 옥녀봉 산행 후 뒤풀이 시 첨부했던 동영상이 여러 동기들 여론이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읽힌다"는 전언에 따라 이번에도 식사를 거의 마치고 정담을 나누는 장면을 담아 올려놔 봤다.조영래 동기 '죄풀이 술'이 달착지근 했던지 비주류로 분류된 동기도 거푸 술잔을 기울린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했다.
오늘도 즐거운 산행의 하루를 무사히 마치게 되어 고맙습니다.개인 산행이 아니고 단체 산행은 먼저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산행을 마치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른 아침부터 산행을 위해 성의를 다해주신 열두회사랑 등산회원 여러분,진실로 고맙습니다.
늘 몸조심 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芙蓉山을 세번째 다녀오줄 알고 있는데 더 많이 다녀왔다는데도 정상에서 내려오는데 잠시 길을
결국 芙蓉寺로 내려왔다,
몽양 여운형 선생님 기념관으로 내려 오기로 했느데 芙蓉山은 오르기 보담 내려오는 코스가 더 힘든 산행이었다.
김희중동기가 감기에 많이 시달리면서도 완주해 줘서 고마웠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