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들어 ‘영화의 전당’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며 겨울을 보내고 새봄을 맞았다. 먼저 본 영화는 미국 드라마 ‘문라이트’, 그 뒤를 이어 미국, 뉴질랜드, 영국 합작 드라마 ‘파도가 지나간 자리’였다. 영화 ‘문라이트’는 단어 뜻 그대로 ‘달빛’ 또는 ‘월광(月光)’으로 배리 젠킨스가 연출한 흑인 소년의 성장 영화다. ‘문라이트’는 지난 2월 26일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2017 아카데미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었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오스트레일리아 M. L. 스테드먼의 소설『Light Between Ocean』을 ‘파도가 지나간 자리’라는 원작을 데릭 시엔프렌스가 연출하고 주인공인 톰(마이클 페스벤드)와 상대역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이 실제 커플로 동반 출연하여 ‘미치도록 지키고 싶은 가슴 시린 사랑’을 열연해 오랜만에 진한 휴먼드라마에 젖을 수 있었다.
미국 마이아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소년이 청소년,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놀라운 감성으로 그려낸 ‘문라이트’는 마허샬라 알리. 나오미 해리스, 아렉스 히버트, 애쉬튼 샌더스 등이 열연하며 어느 할머니가 자신을 보고 “달빛 아래에서는 누구나 파랗다(in the moonlight Black boys look Bkue).”는 명대사로 재미보다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평등의 메시지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극중 샤이론의 아버지 역할을 한 후안은 이렇게 덧붙인다.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돼.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라.”는 후안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모습이 생생하다. ‘문라이트’는 관객들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영화가 얼마나 감동적인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에 대해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많은 양의 내용을 전했다. ‘문라이트’는 샤이론 그 자체이고 지금 내가 샤이론이고, 샤이론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이며 우리 모두의 미래로 와닿았다. 각기 다른 3명의 배우를 내세워 하나의 인물 샤이론을 연기하는 3부작 영화다.
‘문라이트’의 제1부는 소년 샤이론의 이야기, 제2부는 청년 샤이론의 이야기, 제3부는 어른 샤이론의 이야기로 구성했다.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제9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작품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목된 ‘문라이트’는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하여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까지 모두 8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작의 잘못발표로 ‘라라랜드’에게 돌아갔던 최우수작품상을 다시 되찾아오며 감독상, 각색상, 남우조연상까지 3관왕을 휩쓰는 파란을 일으켰다. ‘문라이트’는 그동안 각종 영화상을 통해 175관왕을 돌파함으로써 아카데미 89년 역사를 새로 쓰는 놀라운 결과를 낳기도 했다. 영화 ‘문라이트’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느 한 장면에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성장기에 맞추어 연기한 3명의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였고 눈물 머금은 그 큰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는다. 주인공의 아픔과 성숙과정이 우리 삶의 공감대로 시야를 넓혔다.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톰은 전쟁의 상처로 사람들을 피해 뉴질랜드 남섬의 동북부 끝, 캠벨 곶 야누스 섬에 임시직 등대지기로 지원한다. 그는 전쟁터에서 너무나 많은 주검을 목격한 트라우마에 시달린 사람이다. 야누스 섬으로 가기 전 중간 기착지에서 이자벨을 만나 이끌려 마음을 열고 오직 둘만의 고도에서 “내 모든 선택은 당신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끝내 두 사람은 ‘미치도록 지키고 싶은 사랑’의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사랑으로 얻은 생명을 두 번이나 잃고 상심에 빠진다. 그 뒤 슬픔으로 지새던 어느 날 파도에 떠밀려온 보트 안에서 남자의 시신과 울고 있는 아기를 발견하고 아내의 간청으로 운명으로 아기를 자기들 품에 받아들이고 남자의 시신은 묻어준다. 그러나 톰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신고 미필의 죄책감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몇 년 뒤 친엄마 한나(레이첼 와이즈)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들 앞에 닥친 ‘기른 정과 나은 정’의 세속적인 갈등과 법적인 ‘죄와 벌’의 갈림길에서 증오와 용서의 현실이 진한 감동과 함께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으로서 살아가는 길과 신앙인으로서 겪는 현실의 갈등에 부대낀다. 도입부분에는 영상미에 빠졌다가 스토리 전개에 몰입하는 동안 자신의 이중성이 야누스에서 일어난 일로 반전을 거듭하는 탁월한 연출력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한나가 1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인과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영화의 머리에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된다. 플래시백을 통해서 한나는 남편과 루시-그레이스를 잃게 된 상황을 설명해주는 장면에서 영화의 주제가 사건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는 물론 마을 사람들이 독일인을 핍박할 때 한나 만은 오로지 그를 믿고 사랑한 여인이었다. 루시는 그렇게 편견 없는 사랑으로 낳은 아이임과 동시에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톰 부부가 조건 없이 사랑한 딸이었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이 시점에서 진부한 로맨스나 신파조의 멜로드라마를 벗어나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는 인간의 관용과 박애의 휴머니즘을 엿보인다. 특히 “증오는 매번해야 하지만 용서는 한 번이면 돼‘ 라는 루시-그레이스 아버지의 유언과도 같은 말을 실천하는 친모 한나는 톰과 이자벨을 위해 선처를 구하는 내용 또한 감동적이다. 옆자리의 아내는 몇 차례 손수건을 꺼내는 것 같았다.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의 원작 소설은 2015년 문학동네에서『바다 사이 등대』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을 출간했다. 원작 소설은 극찬을 받은 베스트 셀러인 만큼 공간적 배경이 외딴 야누스 섬의 등대임을 감안하면 의역보다는 직역이 감각적으로 피부에 와 닿았다. 소설은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섬세하게 고려하여 번역의 완성도를 높였다. 영화와 달리 소설에서는 이자벨이 한 번 더 유산을 해서 모두 세 번 유산을 했다. 그리고 번역 소설에서는 ‘이자벨’의 이름을 발음 나오는 대로 ‘이저벨’로 표기하고 종종 애칭 ‘이지’로 부르기도 했다. 한나의 이름 역시 발음을 살려 ‘헤나’로 표기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본 뒤에라도 원작 소설을 한 번쯤 읽을 수 있다면 문학적 감동과 영화의 감각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나이가 들고 자식을 키워본 이른바 삶의 연륜이 쌓인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면 더 진한 감동이 전해지지 않을까?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틈나시면 영화의 전당에 한번 나가보십시오.
영화와 함께 주위 경관이 참 좋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