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46:8-11 가만히 있으라
인도의 바케이 목사님이 친구와 함께 험한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한참 걸어간 후에 그들은 계곡의 급류 위로 연결된 좁다란 밧줄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그 다리를 많이 건너 본 친구가 밧줄 다리를 건너 먼저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 바케이 목사님은 쩔쩔매며 겨우 다리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바케이 목사님은 소용돌이치는 급류를 내려다보며 현기증을 느꼈다. 그 다리가 마치 급류의 반대 방향으로 흔들리며 움직이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때 그 친구가 바케이 목사를 향해 소리쳤다. “내려다 보지마! 나를 똑바로 쳐다보라고!” 그 권면은 효력이 있었다. 바케이 목사님이 세차게 흐르는 물결에서 친구에게로 시선을 돌렸을 때, 담대히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우리는 인생 여정에서 간혹 위협적이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가 문제 상황만을 응시하며 거기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면 그것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문제를 넘어 목표를 바라볼 때 능히 이길 수 있다. 이와같이 우리가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 결코 흔들리거나 두려움 없이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다. (가만히 있어 주님만 바라보자)
살다 보면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해 하나님을 앞서려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높이지 않는 태도다. 하나님은 누구보다 높임 받으셔야 하고 찬양받으셔야 한다. 하나님께서 죄가 넘치는 땅을 황무지로 만들 수 있는 권세가 있고 대적을 패퇴시키고 전쟁을 그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다.
8-9절에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하셨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 능력의 손길을 의지하고 절대로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아야 한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 실패의 지름길) 잠16:18-19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하셨다. 성령 충만을 신비적인 은사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령 충만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을 자기 뜻보다 앞세우는 것이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기가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성령 충만과 순종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만이 성령 충만은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성령 충만인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좌절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환난을 만났을 때, 흔들리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이 앞으로 일으키실 역사를 믿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현실은 만족스럽지 못해도 하나님의 때를 넉넉한 믿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홍해 앞에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이다. 처음에 그들은 홍해 앞에서 흔들렸다. 출14:11-12에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날에 함께하시고 역사해 주셨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자, 홍해와 바로의 군대만을 바라보며 좌절 절망하고 원망, 불평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의 상황을 바라보면 (주 바라기 못하면...)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똑같이 반응하게 된다. 그 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말씀해 주셨다. 출4:13-14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세를 통해 홍해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하시며 오늘 본 애굽 사람들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가만히 있으라고 말씀해 주셨다. 여기서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는 ‘너희 자리를 지키라', '그자리에 꿋꿋이 서 있으라'는 뜻으로 비록 현 상황이 절박하다 하더라도 다급해 하거나 결코 좌절하지 말고 조용히 그 상황을 맞이하라는 명령의 말씀이다. 결국 이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라‘는 의미의 말씀이다. 사55:8-9에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 하나님의 미련함이 사람의 지혜보다 낫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낫다. 사람의 치밀한 계획과 달리 현실은 하나님의 뜻대로 펼쳐진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되고 아름다운 미래를 주시려고 그 예비하신 길로 인도해 주신다. 렘29:11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셨다. 그런데 때때로 하나님이 넓은 길로 인도해 주시지 않고 좁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 (내 생각대로 인도해 주시지 않으심)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감사를 잊어버리고 원망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만약 이런 상황을 만나 하나님과 사람을 그리고 환경을 원망한다면 노예적 사고를 가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몸은 출애굽 했지만 마음과 정신은 출애굽하지 못함) 사랑하는 여러분, 뜻이 있는 사람은 “빵 대신 자유를 달라!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지만 노예적 사고를 가진 자는 자유 대신 빵을 찾고 빵이 없으면 금방 불평을 한다. 믿음이 성숙해지면 어떤 상황을 만난다 해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침착한 태도를 취하고 하나님의 인도와 약속을 믿는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반전의 역사를 큰 가슴으로 기다린다. 그렇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지런히 뛰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가만히 쉬는 것도 잘해야 한다. 쉬는 시간을 적절하게 가지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고전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셨다. 엘리야가 낙심했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마시게 하고 먹이고 재우셨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쉬게 하셨다. 그러나 세상적인 방법으로 쉬게 되면 영혼은 더 피곤해진다. (주 안에서 쉼을 가져야 함) 마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다. 엘리야는 먹고 마신 후에 기운을 차려 호렙산으로 갔다.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명을 부여받고 새롭게 사명의 길을 힘차게 출발했다. 그처럼 쉼의 시간을 사명의 길을 새롭게 출발하는 재충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쉼은 일의 목적을 기억하고 내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한 의미 있는 시간이다. 쉼이 있을 때 인간은 상품 인생이 아닌 작품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 그처럼 일과 쉼을 적절히 배분할 때 참된 행복이 주어진다. 하나님이 주신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은 무엇보다 복된 명령이다. 그때가 깊은 내면의 힘이 축적될 때다. 외면보다 내면이 중요하다. 내면세계가 튼튼하면 인생이 튼튼해진다. 특히 예배하는 삶은 튼튼한 내면세계 구축에 아주 효과적이다. 하나님 앞에 와서 만물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교제하는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면 내면세계는 더욱 튼튼해지고 풍성해질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가만히 서 있는 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세상의 어떤 것이 무너져도 인생이 무너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바쁘게 살되 하나님을 잃어버릴 정도로 바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사람 됨됨이는 일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파악되지만 쉼을 통해서도 파악된다. 너무 일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일 중심의 신앙생활에는 탈진이 옴 - 결과 중심적인 신앙생활에서 과정 중심적인 신앙생활로 바꿔야 함 -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함) 고전3:5-7에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있는 훈련을 통해 든든한 내적 세계를 구축할 때 우리 모두는 진정한 작품 인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