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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9국 여행, 11박 12일(10.9화 ~ 10.20토)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9국)
*이곳에서 버스를 내려 전망대(케블카를 안타고-대기시간 때문에)까지 '지프투어'를 했다 쿵덕거리며 오른 전망대, 인증샷 찍기 좋은 곳을 들러 올랐다.(나름 지프의 장점) * 전망대에서 바라본 두브로브니크 전경 *전망대에 있는 카페 * 전망대에서 바라본 건너편 산 * 지진이 나기 전의 모습을 포스터로 부착해 놓았다.
‘성모 승천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은 12세기 두브로브니크 인근 로크룸 섬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되었지만 다행히 구조된 영국의 리처드 1세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헌한 헌금으로 원래 있던 교회 자리에 증축해 지어졌다. 하지만 17세기 대지진으로 일부가 파괴되고 바로크 양식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성당 안 보물실에는 성 블라이세의 유물과 두브로브니크의 금 세공사가 만든 금 세공품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탈리아 화가였던 티치아노의 ‘성모 승천’과 라파엘로의 ‘마돈나’라는 작품도 볼 수 있다.
* 이 그림이 유명한 것 같았다(유료)
* 십자가의 길이 독특해서 14처 모두 담아왔다.
사진작가들에게 최고의 포토존으로 손꼽히는 명소. 붉은색의 사암층을 물이 수 만년 동안 흐르며 이리저리 깎아낸 후 물은 없어지고 협곡만 남아있는 신비로운 곳이며, 아름다운 빛의 마술을 경험할 수 있다
구시가지의 번화가인 스트라둔 끝자락에 위치해있다. 1516~1522년 해상무역 중심 도시국가 라구사공화국(Ragusa Republic)의 모든 무역을 취급하는 세관으로 지었다. 그 당시 드브로브니크에 유행하던 후기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로 유명 건축가였던 파스코예 밀리체비치(Paskoje Miličević)가 건설을 맡았다.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 있으며 품격있는 아케이드, 긴 형태의 고딕 창문 등이 특징적이다. 중앙홀은 예전에 많은 무역인들이 모이는 장소로 이용되었고 한쪽 부속건물에는 14세기 국립조폐국이 있었고, 은행·귀중품창고·무기고 등도 있었다. 현관과 건물의 조각장식은 안드리지치(Andrijić) 형제가 담당. 두브로브니크에서도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며 1667년의 대지진에도 손상을 입지 않은 채 본모습이 보존됨. 16세기 말에 라구사공화국 중앙문화센터로 바뀜. 현재 매년 두브로브니크 여름축제의 개막식이 열린다.
* 한자의 척도라 했나(?) 암튼 팔 한쪽의 길이로 쟀다고 한다(줄자가 없던시절)
두브로브니크 렉터궁의 글귀 "개인의 욕심은 버리고,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렉터는 도시의 권력을 위임 받은 지도자로, 두브로브니크에 상원위원회의 50세이상 된 인물을 선출 한 달간 도시를 통치하는데, 통치기간에는 건물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한다. 친구는 물론 외부인, 가족까지도 철저히 배제하며, 공공의 업무만을 하게 하였다한다.
두브로브닉 구시가지의 중심이자 가장 번화한 곳인 플라차 거리는 두브로브닉 시민과 관광객들이 많이 있는 곳입니다. 스트라둔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며, 이는 거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스트라다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사실 이곳은 7세기 물자를 운반하기 위한 수송로로 쓰이던 도로였으며, 처음부터 번화가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상점들과 사람들이 몰려 도시의 중심 시가지가 되었습니다. 크로아티아스러운 느낌의 카페 식당,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으며, 시민들도 주말이나 휴일에 쇼핑을 즐기곤 합니다. * 지진이 난 모습을 사진으로 벽 곳곳에 게시해 놓음
도시 성벽의 정문 근처에 위치, 1448년 오노프리오 데 카바라 건축가가 설계, 1667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이후 복원. 거대하고 웅장한 돔 천장을 가지고 있고, 각 16면에는 다른 얼굴을 한 얼굴의 입에서 물줄기가 나오게끔 설계됨. 지금도 맑고 시원한 식수가 나오고 있어 여행자들의 목마름을 축여주는 쉼터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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