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읕 딛고 확실하게 보고 느끼는 건 감성의 세계 뿐
근래 독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지팡이 짚고 호수공원을 산책하다 쉼터로 머무는 광교체육센터와 푸른숲도서관 카페에서 얻은 좋은 습관이다. 산행 취미가 이어졌다면 가질 수 없었던 귀증한 시간이란 생각도 들게 한다. 특히 며느리가 건네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 빌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 제래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김영사) 등은두꺼운 부피에도 불구하고 눈을 마사지하며 빠져들게 했다. 나에겐 무거운 주제란 느낌이 들어 쉽게 풀어쓴 ‘제자백가’ ‘종교이야기’ 등 그 동안의 관심거리들을 책 보따리에 함께 넣고 산책했으나 아예 짐만 되었을 정도였다.
우주, 지구, 생명, 인류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빅 히스토리’ 관련 서적 탐독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우주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137억 년 전 빅뱅과 2년 후의 별과 원소의 출현, 45억년 전 지구 탄생과 38억년 전 생명 탄생은 상상하기에도 아득했다. 그에 비해 인류의 등장 700만년과 농경생활 1만 3천년은 손에 잡힐듯한 과거였으나 이 역시 인류의 유사시대를 견줘보면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먼 역사였다.
천문학, 화석학, 지질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지식을 통섭해 정리한 이러한 연구와 분석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우주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찰하고 때론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빅히스토리는 위대했다.
기원전 3-4세기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영혼은 죽음과 함께 해체되어 사라지는 단순한 원자들에 지나지 않다’고 했던가. 그도 대단한 사상가이지만 과연 135억년 전 원소의 출현을 알기나했을까. 이후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는 원자의 무한한 세상을 짐작이나 했을까.
1654년 아일랜드 성공회 대주교였던 제임스 어셔가 ‘지구는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에 창조되었다’고 해 그를 철석같이 믿었던 중세시대 사람들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지구 역사는 45억년’이라고 이야기 해준다면 어떤 반응일까. 코페르니쿠스가 1473년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주장할 때까지도 천동설을 굳게 믿었고 현대까지도 천동설을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만약 내가 조선시대에 살았다면 자유민주주의는커녕 유교사상에 몰입해 목숨보다 군주를 위하는 ‘사군이충(事君以忠)’의 정신으로 살았을 것이고 근대 할머니 세대에 살았더라도 삼신할머니 조왕신, 측간신을 중요시하고 서양종교를 ‘양귀(洋鬼)’로 취급했었음이 분명하다.
빅히스토리는 새삼 미망과 미혹의 세계에서 나의 눈을 뜨이게 하는 듯했다.
빅히스토리 서적들을 읽으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그동안 가끔씩 작성하던 글도 쓸 수 없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100년도 못겪는 세상사와 삶과 죽음에 대한 한낱 감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 글은 빅히스토리 저술가와 사상가들이 엄청난 저술을 연구하고 정리하면서 느꼈을 생각의 발뒤꿈치도 못미치는 어설픈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각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 주변 사람과 관계에 대한 소소한 담론이 하찮은 것임을, 게다가 종교 정치 사회 문화현상을 이야기하는 거대담론 역시 우주적, 지구적 사고의 틀에서는 시시한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산책 때 함께 지참한 책들과 신문 기사와 칼럼, 사설들이 모두가 시큰둥해졌다.
내가 읽은 빅스토리 서적들의 독후감이나 써볼까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아직 이해 못하거나 그냥 지나친 내용들에 대한 보충으로 유튜브에 올려놓은 수많은 해설도 봤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더 어려워졌다, 그들 통합적인 지식의 깊이가 있는 저술들을 내가 소화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저 내가 순간적으로 느꼈던 감흥만이 더 중요했다.
그러다가 며느리가 건네준 마지막 책을 통독하고 그에게 카톡으로 고마움의 글을 띄었을 뿐이다.
“우주와 인류의 기원과 활동을 과학사로 정리한 책을 공부하며 재밌게 독파했네~ 서윤 엄마 책 선정 안목이 뛰어나서 마음에 든다. 도서관서 내가 고르는 것보다 좋네~ 빌브라이슨 반납할테니 읽은 책 중에서 어느 책이든 또 대여해줘라. 대신 서윤 아빠 술 한잔 살테니~ㅎㅎ”
곧바로 “넵!! 알겠습니다~”라는 답변이 달렸다. 내 칭찬과 농담에 신이 난 모습이 전해졌다.
순간 빅히스토리를 독파한 성취감 만족감과는 또 다른 차원의 감흥이 일었다. 우주현미경, 전자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우주와 원자세계와는 비교안되는 분명하게 보이는 ‘감성의 세계’였다.
또 한 세대가 지난 어느날 137억년전 빅뱅과 양자역학의 이론이 획기적으로 바뀌어 등장할 날이 올 것이다. 너무 엄청나 무한한 우주와 너무 미묘해 무한한 원자는 앞으로도 한없이 확장할게 틀림없다. 그리고 139억년 전 빅뱅과 현재의 양자역학 등이 허구, 미망, 미혹임이 다시 밝혀질 듯하다. 확실한 건 내가 느끼고 있는 지금의 생활과 감성 뿐이다.
땅을 딛고 생활하게 해준 며늘아기야 고맙다! 그래서 한달 여만에 글도 쓰게 되는구나!
빅히스트로리 뿐 아니라 개인이나 소집단의 삶을 탐색한 미시사((微視史)도 건네주면 관심갖고 읽으마. 그리고 신문 사설과 칼럼 등도 적극적으로 비평하며 살아가마. 우주와 원자세게는 신비하고 경탄스럽지만 발을 딛고 사는 감성세계는 때론 힘겸지만 심오한 아름다움이 있구나. <저작권자 ⓒ CR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