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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우먼 여성농민 |
오늘은 여성농민회 총회날이다. 총회겸 1박2일 교육도 함께 한다. 여주에 있는 한 온천장에서 집안일 모두 잊고 교육도 받고 쉬기도 하는 날이다. 올해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 일하는 간부들이 내려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고, 여주 여성농민회에서도 함께 한 토종종자 지키기 운동과 제철꾸러미 사업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여성농민이 직접 찍고 편집하고, 주연해서 만든 여자 ‘땅의 사람들’ 영화도 보았다. 종자주권을 지키고 농업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나가는 다른 지역의 활동 사례는 앞으로 우리 지역에서 같이 할 일들에 대해 고민을 안겨주는 시간이다.
여성농민회는 여성농민 스스로 만든 단체다. 농협이 조직한 농가주부대학과 다르고 기술센터 산하의 생활개선회와도 다르다. 땅콩 심고 고구마 심고 콩도 심어 마련한 돈으로 여성농민에게 필요한 교육사업도 만들고, 산행모임이나 풍물교실 같은 취미교실도 열고, 농번기 탁아소 만들어서 농촌 아이들 돌보고, 촛불을 들 때는 누구보다 먼저 촛불을 들면서 정을 나누고 힘을 모아 온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2002년 농림부 시범사업으로 여성농업인센터 사업에 선정된 이후로는 어린이집과 초등학생 방과후 공부방도 운영하고 교육사업도 더 체계있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농업문제와 세상읽기라는 주제로부터 시작해서 미래와 깨끗한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의 하나인 천연세제 만들기 같은 교육까지. 복지회관 목욕탕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모시고 가는 일도 하고, 이주민 여성한글교실도 한다. 그 오랜 시간동안 처지 비슷한 농사짓는 여자들끼리 서로 등 두들기고 보듬으며 살아왔다. 이름내기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돈자랑 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 아마 그래서 오랜 시간동안 지켜올 수 있었을 게다.
작년 한 해 활동을 돌아보고 올 한해 계획하는 조촐하지만 중요한 자리가 총회다. 그런데 올해는 연세드신 회장님들 두 분이나 시어머니 수발로 나오지 못하셨다. 당신들도 환갑이 지났으면서 팔순 시어머님 병수발에 병원에 계신단다. 또 하우스 일이 안 끝나서 못나온다는 사람, 오래간만에 집에 찾아온 자식들 수발에 못나온다는 사람, 이래저래 못나온다는 사람이 많아 사무국장 걱정이 태산이더니 정작 교육장에 들어서니 빈 자리가 없이 사람들로 꽉 차있다. 다행이다.
교육 중간중간 사람들 인사하며 그동안 어찌 지내셨는지 묻는다. 몸이 아파 여성농민회 사무국장 일을 후배에게 넘기고 난 이후 그동안 여성농민회 어떤 행사도 교육도 참가하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나온 자리라 반가운 얼굴들이 많다. 오래간만에 만난 유리엄만 살이 쏙 빠졌다. 팔자 좋은 여편네라면 다이어트 했다 하겠지만, 농사일에 몸이 녹은 언닌 장이 안 좋아 고생하면서도, 경기를 가장 많이 타는 꽃농사 수지가 안 맞자 대형마트 판매원 일을 하기 시작했고, 농사일과 집안일 그리고 마트 점원까지 동분서주 하더니 살이 쪽 내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마저 몸이 안 좋아 지금은 쉰단다. 마농사 짓는 경해언니는 자궁 수술 하고서도 농사일 손에 놓지 못했고 작년부터 심기 시작한 옻나무 덕분에 옻물이 들어 새까매진 손에다 파란색 매니큐어를 반짝반짝 바르고 나타났다. 네일아트하는 딸내미 솜씨라며 자랑이다.
여성농민은 농사 짓는 여자다. 농촌에 사는 농촌여성이란 말로는 부족하고 농가에서 집안일을 한다는 농가주부만도 아닌, 농사를 업으로 삼은 여자 농사꾼이다. 농사꾼들도 편한 나라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여성농민들이 살기에 참 힘든 나라다. 국회의원, 장관에 국무총리도 여자가 하고 대통령도 여자가 나오네 마네 하는데, 이 놈의 시골여편네(!)들에겐 통 남의 나라 일이다. 논일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하고 밭일은 여자가 한다. 농사일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하고 집안일은 여자가 한다. 사회적 관계는 남자가 맺고 여자는 그 빈 자리를 메꾼다. 예전에는 큰 기계일은 남자가 하고 소소한(?!) 일상의 노동은 모두 여성농민들의 노동으로 메꾸어 왔다. 남편이 경운기로 밭을 갈고 고랑을 타주면 고추 모종을 심고 고추순 따고 말뚝 박고 줄 메고 고추 따고 말리며 중간중간 잡초를 메는 매일의 계속되는 노동이 여자들의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바뀌어가고 있다. 농사규모가 커지면서 여자들도 이젠 1톤트럭과 트렉터 운전 정도는 필수가 되어 버렸다. 남편이 이앙기로 모를 심고 아내가 트렉터로 논을 간다. 남편이 컴바인으로 벼를 베고 아내는 1톤 트럭으로 벼를 실어 나른다. 남편과 같이 비료살포기를 메고 이삭거름을 주고 농약줄을 잡는다.
그나마 농업만으로 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운이 좋은 편이다. 농업수입만으로는 생활을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여성농민들이 부업을 갖는다. 식당 설거지, 써빙일에 휴게소 일에 마트 점원, 가사도우미나 소주공장 병뚜껑 닫는 일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찾는다. 간신히 구할 수 있는 자리는 번듯한 일자리는 없이 모두 일용직. 아이들 학원비라도 구해보려 애를 쓰지만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같이 일을 하면서 노동의 장과 생활의 장이 분리되지 못해 출근도 퇴근도 없는 여성농민, 밖에서 똑같이 흙투성이 일을 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남편은 리모콘을 쥐고 아내는 부엌칼을 쥔다. 밖에서 무거운 설거지 그릇을 나르다가 집에 들어와도 마찬가지. 집안일에 바깥일에 밭일까지 모두 여자들 일이다.
사회적 활동은 남편의 몫이고 그렇게 비워진 자리는 이제 스스로 농기계도 운전하는 수퍼우먼 여성농민이 메꾼다. 남편이 면사무소로 영농교육을 받으러 간 사이 혼자서 감자를 심는다. 남편이 지역발전협의회 회의 나가 낮술에 얼큰히 취해 돌아올 때 혼자서 고추 말뚝을 박고 오이줄을 올린다. 남편이 친구 부모님상에 조문 간 사이 들깨를 심고 참깨밭을 맨다. 남편이 마을회관에 대동회의를 가면 회의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음식 준비하다가 회의 끝나면 밥 차리고 설거지를 한다. 어느 지역에서는 마을 이장도 여자가 한다지만 아직도 대동회의장에 여자가 들어가지도 못하는 마을도 많다. 누가 들어오지 말라고 지켜 서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놈의 문턱 넘질 못한다. 아이들 챙겨 학교 보내고 시부모 뒷바라지야 물론이고, 농한기 동네 어른들 모여계신 마을회관에 돌아가며 반찬 해나르는 일에, 부녀회장이라도 맡을라치면 면사무소에 모여 독거노인 김장에 빨래봉사까지, 농업노동에 가사노동 그리고 돌봄노동까지 모두 여성농민의 몫이다. 이렇게 하루를 정신없이 수퍼우먼으로 돌아치는 여성농민들, 그녀들이 이 땅에 산다.
여성농민이 행복한 나라가 행복한 나라다. 여성농민이 평등한 나라가 평등한 나라다. 여성농민이라 스스로 이름 붙이기에 많이 부족한 내 처지이지만 힘 보태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는 세상, 오늘보다 내일이 좀 더 나은 세상을 꿈 꾸는 일을 멈추기 어렵다. 김형주 |
첫댓글 농사짓는 여인네의 손은 투박하고 거칠어서 손이아니라 그것 자체가 도구화 되어버린 듯하다. 쉴새없이 일하고도 잠자야 할 시간에 도시로 육박자 춤을 배우러간 남편을 기다린다. 그리곤 한 두시간 자고 다시 밭으로 일터로 나간다. 가엾은 그녀에게 얼굴 맛사지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스킨로숀도 안바르는데 무신 얼굴 맛사지더냐고 반문한다. 그렇게 살고 있는 어느 촌부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아프다. 여자이기에 앞서서 그저 생활인이기 때문이다.